새로운 삶의 법칙

주보에 있는 큐티 본문이 골로새서에서 디도서로 넘어갔습니다. 골로새서는 골로새에 있는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입니다. 바울이 골로새를 방문한 적이 없어서 만나본적이 없는 성도들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기에 기쁨과 간절함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이번 달 말까지 큐티하게 될 디도서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했던 신실한 동역자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레데 섬에서 사역하던 디도가 교회를 섬길 일꾼들을 잘 세우고, 바른 신앙으로 성도들을 이끌 것을 조목조목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임원들께서는 디도서를 깊이 묵상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지난 화요일 큐티본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옛생활을 정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누릴 것을 부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과거의 삶을 모두 청산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기에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전에는 땅엣 것을 추구하면서 세상과 죄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에 하늘을 바라보는 새로운 삶이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보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상태를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육체와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은 자신의 쾌락을 쫒는 것입니다. 허무한 삶입니다.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입니다. 3장 5절에서“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육체와 욕심으로 살면 분쟁과 훼방에 휘말리게 마련입니다. 서로를 비교합니다. 시기하고 경쟁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져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가져야합니다. 비교하는 가운데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삶이 불안하고 늘 무엇엔가 쫓기게 마련입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님 안에서의 새로운 삶은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옛사람과 그 행위를 모두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었습니다. 그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입게 된 구원의 옷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입은 옷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긍휼”“자비”“겸손”“온유”“오래참음”입니다. 이 다섯 가지 옷을 입고 세상을 살면 사는 것이 황홀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온유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끝까지 오래 참는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새로운 삶입니다.

예수님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용납하고 용서합니다. 사랑이 넘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과 삶을 주관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언제나 풍성하게 거합니다. 말씀이 주는 지혜로 서로를 대하고 세상을 살아가니 그 길에 찬양이 넘칩니다.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그 안에 감사가 넘칩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삶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요즘에는 교회도 많고 기독교인들도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옛 생활에 젖어 있고, 육체와 탐욕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배운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河-

기도! 기도! 그리고 또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큐티는

골로새서 4 1-9절이었습니다.

문맥을 생각하면서

자세히 읽어보면

4 1절은 3장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나면

4 2절이 오늘 본문의 첫 번째 구절이 됩니다.

아침에 성경을 펼쳐서 큐티하면서

저는 4 2절만 갖고 묵상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 드리면

뒤로 더 이상 나갈 수 없을 만큼

4 2절 한 구절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Devote yourselves to prayer,

keeping alert in it with an attitude of thankdgiving.

이 말씀은 교회에 주셨습니다.

너희들(yourselves)”에 해당하는

복수형 동사가 쓰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가 부족합니다.

장소 때문에 새벽기도,

금요 심야기도를 갖지 못한 지 꽤 되었습니다.

이제 미국교회 목사님께서

이번 주에 부임하시는데

교회를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마음대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처가 생기기를 간절히 간구합시다.

오늘 말씀에서

기도에 온 힘을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기도에 온 교회가 헌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교회의 힘이고,

복음 안에서 바르게 세워지는 비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

우리 각자에게도 마찬가지로

기도는 생명줄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말씀에 뿌리를 내리면 건강해 지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 위에

기도가 합쳐지면

신앙이 하늘로 이어집니다.

신앙이든, 세상에서의 삶이든

갈팡질팡한다면

우리의 길을 비춰주는

말씀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힘이 들고 축쳐져 있다면

하늘로 연결되는

기도가 끊기거나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가르쳐줍니다.

기도에 우리의 목숨을 걸라(devote yourselves)는 말씀입니다.

기도에 깨어있으랍니다.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는데

호흡을 멈추면 생명을 잃어버리듯이

기도를 멈추면 영적 생명이 다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랍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을 때,

세상의 눈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눈을 가졌을 때

비로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깨우침입니다.

기도합시다.

영혼의 호흡을 멈추지 말고 기도합시다.

무릎 꿇고 골방에서 기도하고,

잠시 일손을 멈추고 기도하고,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운전하면서 앞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기도 기도 그리고 또 기도합시다.

우리의 호흡을 따라서 기도하고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도록 만듭시다.

할렐루야!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의 삶의 모습이 힘겹습니다.

때로는 신앙을 지탱하기도 힘들만큼 어렵습니다.

그때도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에,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기도가 살아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9.23 메일 목회서신)

사도 바울의 기도

지난 설교에서 말씀드린 대로, 앞으로 두 달여 매주 주보에 나오는 큐티 본문(첫 아침을 주님과 함께)가운데 하나를 갖고 주일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주중에 큐티를 꼬박꼬박하시면, 주일 설교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은혜를 받고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기회를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주보에 실린 본문을 갖고 각자 마음에 정하신대로 경건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신앙은 심지가 견고해서 흔들리지 않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어느덧 또 다시 팔월한가위가 되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와서 보름달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공부할 때 밤늦게 도서관에서 집에 올 때면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고향생각, 부모님생각, 그리고 달의 모양이 변해갈 때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보름달이 왜 그리 빨리 뜨는지 그때도 달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절감했습니다. 혹자는 인생을 강물에 비유합니다. 흘러가는 강물을 막을 수 없듯이 흘러가는 인생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흘러가는 강물위에 자신의 모습이나 업적을 각인시켜 놓고 싶어 합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나중에는 깨닫게 되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강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몸을 맡기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전도서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분복(分福)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때 깨닫게 되는 하늘의 진리이기에 큐티가 그토록 중요합니다. 올 하반기 우리 모두 말씀과 기도에 진력합시다.

오늘 본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가 세운 것으로 추정합니다(골1:7).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골로새 교회와 그곳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교회는 기도로 세워집니다. 비록 우리 교회를 와보지 않았어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들 역시 주님의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는 요즘 우리 세대의 기도와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 속에서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간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에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신앙이 모든 삶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들은 우리들의 인생길과 하나님의 사역에 필요한 경우 부가적으로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기도의 우선순위가“신앙”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에 온 힘을 쏟게 하시고, 2) 범사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게 하시고, 3) 빛 가운데서 거룩한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기업을 얻은 것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사도바울의 기도는 우리들이 따라야 할 중보기도의 모범입니다. 우리들 역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바울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된 기도를 통해서 신앙과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그 안에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성도의 삶을 누릴 수 있음을 꼭 기억합시다.-河-

어떤 힘으로 사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설교에서

주보에 있는 성경구절을 갖고

꼭- 큐티하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샘물(根源)이고,

다른 것은 대부분 지류(支流)일 뿐입니다.

말씀과 기도라는

기본을 망각하거나

소홀히 하면

믿음의 빛이 희미해 지고

신앙과 삶이 시들해 지기 마련입니다.

2010년의 남은 날들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큐티로

멋지게 장식해 봅시다.

2.

오늘 큐티를 하다가

맨 마지막 절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29절은 앞 구절과 더불어

바울 사도의 이어지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많은 어려움을 견디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고

초대교회와 이방인 선교를 시작한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직접 택해서 쓰신 사도입니다.

29절은

바울이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근거/힘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줍니다.

29절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영어와 비교해서 읽으셔도 좋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For this purpose also I labor, striving according to His power,

which mightily works within me.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서

수고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가 “코피아오”인데

이 단어를 외울 때, “코피 터지도록 수고하다”라고 외웠었답니다)

그런데 그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바울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능력으로” “역사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에서

영어의 “에너지”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바울 안에서 역사하시는 에너지가 있었고

바울은 그 에너지를 갖고

지치지 않고 끝까지 수고했습니다.

우리 성경 “힘을 다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애고니조마이”인데

여기서 영어의 “애고니/agony”가 나왔습니다.

바울에게 힘을 주는 원천이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제자들, 동역자들,

또한 바울이 개척해 놓은 각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성자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는 도움들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보다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오늘 큐티를 하면서

목사인 저의 마음가짐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정말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능력을 따르기 위해서

애쓰고 그 힘으로 목회하고 있었는지…

말씀을 곱씹어 볼수록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 힘으로 목회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제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서 목회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모두 내려놓기로 기도했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자유했습니다.

힘이 생겼습니다.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무슨 힘으로 사십니까?

혹시 여러분들 안에서 역사하는

그 능력을 감지하지 못한 채

금방 방전되고 말 것들을

의지해서 살고 있지 않으십니까?

우리들 각자 안에서

그리고 우리 서머나 교회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그 능력을 감지하고

그 능력으로 오늘 하루 멋지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9.16 이-메일 목회서신)

황금률

1.

어제 저녁에

재흥이가 고민이 있다고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자기가 주중에 참석하는 캠퍼스 모임이 있는데

그곳에서 약간의 갈등이 생겼답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아주 잘 도와주었답니다.

그런데 여학생들이 고마움이 없고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점점 더 대접만 받으려 한답니다.

그것이 남학생들 사이에 말이 되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말하기를

여학생들이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끝까지 도와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고

그것을 두고 의견이 갈렸답니다.

대학생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실제로 우리들 주변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사랑하고

끝까지 희생해야 한다고 말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거기에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고 말하면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자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재흥이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흥이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상대방이 고마워하든지 안 하든지

예수님처럼 끝까지 도와주는 것은 옳단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를 늘 힘쓰고

그 정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단다.

그런데

우리들의 믿음이 예수님 수준에

올라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

아직은 믿음이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해서

예수님처럼 도와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때때로 지칠 수 있단다.

신앙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너도 앞으로 많이 경험하게 될 거야.

기회가 되면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함께 대화를 하기를 바란다.

여학생들도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해야지.

(예수님의 비유에서 열 사람이 병고침을 받았는데

한 명만 찾아 와서 감사한 것을 보면

도움을 요청할 때와 후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많지)

도움을 주는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로

서로 얘기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

너도 힘닿는 대로 이웃을 도와주고

도움을 받았으면 꼭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도록 하렴.”

2.

아침에 컴퓨터에서 성경프로그램을 열면

그 날의 성경 구절이 화면에 뜹니다.

그것을 갖고 기도하고,

큐티 말씀과 더불어 하루 종일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이

황금률로 잘 알려진

마태복음 7 12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만 잘 지켜도

온전한 신앙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엉뚱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자신을 대접해 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도 남을 대접해 주겠답니다.

공평해 보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맞지 않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무조건 자신만 대접해 달랍니다.

소위 왕자병, 공주병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재흥이의 경우처럼, 주변 사람들이 지칩니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대에는

대접도 받지 않고, 대접도 하지 않겠답니다.

그런데 세상을 과연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위의 세 가지 경우를 모두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황금률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남에게 먼저 다가가서 사랑을 베풀기를

서로 솔선하는 것이지요.

어제 저녁 재흥이가 겪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도

황금률만 서로 실천한다면 금방 해결될 듯싶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한결 밝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들 자신이 행복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더불어 사는 세상,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참 쉬워 보이지만, 아니

한 두 번은 할 수 있지만

황금률이 우리들의 신앙인격에 자리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기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우리들의 끈질긴 노력이 요청됩니다.

하나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황금률대로 살기 원합니다.

말씀을 실천할

힘과 의지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9.9 메일 목회서신)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3)

오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표적에 대한 마지막 시간이자, 요한복음의 일곱 가지 표적을 살펴본 연속 설교의 마지막입니다. 요한복음의 일곱 가지 표적들은 단순히 기적(miracle)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교훈이 들어있는 표적들(signs)이라고 했습니다.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된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여실 것을 잔치자리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멀리 있는 신하의 아들을 말씀으로 고치신 기적은 예수님은 거리나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전능하신 분임을 보여주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고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속에 깃든 네 개의 손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이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에 불과해도 예수님의 손에 올려질 때 많은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물위를 걸어오시고, 폭풍을 잠잠케하신 예수님은 자연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십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이 눈을 떴습니다. 영적인 눈이 떠야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 속에 깃든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마지막 일곱 번째 표적은 예수님께서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가르쳐 줍니다. 또한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통해서 장차 죽음에서 부활하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들도 부활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역시 이 모든 것에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에 누이들과 동네 사람들은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을에 오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무척 아쉬워하면서 예수님의 발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도 이들과 함께 우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이 슬픈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부활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라비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슬픈 마음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함께 우신 겁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십니다. 무덤은 돌로 막혀 있었고 이미 장사한 지 나흘이 지나서 냄새가 날 지경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돌을 옮겨 놓으라.”믿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표적에서도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표적에서는 아들이 살았으니 가라고 하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향해서도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을 행할 때 제자들에게 떡을 나눠주라고 했습니다. 태어나면서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말씀‘아멘’으로 받아 들일 수도 없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나 세상의 상식을 뛰어넘는 말씀이기에 그렇습니다. 요한복음의 표적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예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본문의 마르다와 마리아도 처음에는 주춤거렸지만 결국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마음속에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이 굳건히 자리 잡기를 기도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