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좋은 아침입니다.

 

1.

“단짝”

– 꽤 친근한 말입니다.

 

어릴 적에는 거의 항상

단짝 친구를 만들 곤했습니다.

단짝 친구가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고 당당했습니다.

 

십 대 시절에는

단짝 친구(들)와 끝까지 우정을 지키자고

엄숙함에 가까운 약속도 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삶이 다르게 전개되고

물리적으로 헤어지게 되면서

단짝 친구와의 약속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이브를 단짝 친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탄생했으니,

옆구리(side)를 맞대고 살아가는 단짝 친구입니다.

성경은 돕는 배필(helper)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단짝 친구의 우정을 그릇 사용했습니다.

둘이 함께 연대해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자리를 감히 엿보았으니

무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윗과 요나단도 단짝 친구였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로서 왕국의 후계자였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아버지가 아니라 다윗 편에 섭니다.

피는 진하다는 속담을 삭제해 버린 순간입니다.

 

 

이처럼 요나단은 아버지를 배신하면서까지

단짝 친구 다윗과 함께 옳은 길을 갔습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우정)이 지극했습니다.

 

3.

지난 주일 설교에서 나눴던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작사 작곡한

대니얼 위틀(Daniel Whittle)과 제임스 맥나라한(James Mcnarahan) 은

1840년생 동갑이었습니다.

 

두 분의 친분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우리 찬송가에 실린 3곡을 작사 작곡한 것을 보면

단짝 친구였을 것 같습니다.

 

위틀은 시(詩)를 쓰고,

맥나라한은 친구가 쓴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자신들의 찬송이 교회에서 불리는 것을 보면서

둘이 있어서 한없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홀로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외롭습니다.

인생을 함께 걸어갈 단짝 친구가 있다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것입니다.

행복할 것입니다. 든든할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이

서로에게 단짝 친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목사로서 갖고 있는 기도 제목이고 바람입니다.

그런 공동체, 장(場)을 만들고 싶답니다. 함께 노력해 봅시다.

 

혹시 안되어도 실망하지는 맙시다.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함께 걸었던

단짝 친구의 이름도 불러보고, 안부도 전해 봅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잠언 13장 20절)

 

 

하나님,

항상 곁에서 동행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6 이-메일 목회 서신)

친밀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두 달 동안 주일예배에서는

올해 표어인 <기도와 말씀으로>에 맞춰서

말씀과 기도에 관해서 공부했습니다.

 

2월부터 살펴본 기도에 대한 말씀에서는

기도를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로 정의하고

하나님과 속삭이듯이 얘기하는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이후에 나누는 대화는

과거, 현재와 미래, 단순한 스몰 토크부터 깊은 대화까지

말 그대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대화입니다.

 

이처럼 대화는 관계를 형성해 주고

친밀함으로 나가게 합니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정의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제조건이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접속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처음에 한두 번 접속하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정기적으로, 수시로 하나님과 접속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과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형성되었을 때,

하나님과 얘기하듯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3

관계가 깊어졌다는 표시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친해지면,

기도의 방향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옮겨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자신을 뛰어넘는 기도입니다.

 

관계가 깊어졌다는 또 다른 표시는

혼자 있을 때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친밀하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과 속삭이고, 마음을 드리고,

필요할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일지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4.

아침에 함께 읽고 묵상하는 요한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로 묘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 하나님께 초대하고

하나님 자녀로 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셨음을 뜻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깊고 친밀한 기도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올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하나님,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27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의 힘 (4)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기도를 크게 하고, 기도에 열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기도의 다양한 방식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어 있을 때, 우리의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라는 올해 표어에 따른 이번 연속 설교에서는 특별히 회개(참회)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 생각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바르게 정돈하는 과정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이야기하는 기도가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다는 뜻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자기 성찰을 위한 22가지 점검 리스트를 만들어서 속회는 물론 감리교인이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함께 나눕니다:

1. 나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실제보다 훨씬 낫다는 인상을 주려고 애쓰지 않는가? 즉, 나는 위선자인가?

2. 나는 모든 행동과 말에 정직한가, 아니면 과장하는가?

3. 나는 비밀을 지켜주기로 하고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달하지 않는가?

4. 나는 신뢰할 만한가?

5. 나는 옷, 친구, 일, 취미의 노예는 아닌가?

6. 나는 자의식, 자기 연민, 혹은 자기 합리화가 빠지지 않았는가?

7. 오늘 성경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있는가?

8. 나는 매일같이 성경이 나에게 말할 시간을 주고 있는가?

9. 나는 기도를 자주 하는가?

10. 나의 신앙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말한 것이 언제인가?

11. 나는 내가 쓰는 돈에 대해 기도하는가?

12.나는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가?

13.나는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14. 내 양심이 불편해하는 일을 고집하며 행하지는 않는가?

15. 나는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는가?

16. 나는 질투심 많고, 불순하고, 비판적이며, 짜증을 내고, 예민하거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17.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18. 나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가? 지나친 자만심이 있지 않은가?

19. 나는 다른 사람, 특히 세리를 멸시한 바리새인처럼 내가 다른 사람 같지 아니함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지 않은가?

20. 내가 두려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의절하거나, 비판하거나, 원망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21. 나는 끊임없이 투덜거리며 불평하는가?

22. 나에게 그리스도는 실제적인가? -河-

울타리 칠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 설교에서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소개하였습니다.

 

톰 소여(“톰”)와 허클베리핀(“허크”)이

벌이는 모험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서 했던 일들이

나중에는 우정, 친구와 가족을 향한 책임감,

옳고 그름의 선택으로 발전합니다.

 

톰은 자기만 생각하는 장난꾸러기 아이에서

관계를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갑니다.

 

그런 점에서

<톰 소여의 모험>은 성장 소설입니다.

 

2.

소설 속의 유명한 장면은

장난을 치다가 이모에게 들켜서

울타리에 페인트 칠하는 벌을 받는 장면입니다.

 

톰은 혼자서 울타리를 칠하는 것이 지루했습니다.

그것도 벌을 받은 것이기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친구를 발견하고는

울타리를 신나게 칠하기 시작합니다.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매우 재미있는 일로 가장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 친구들이 사과 등 선물(뇌물)까지 주면서

울타리를 칠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결국 톰은 친구들에게 울타리 칠하기를 맡겼습니다.

 

톰 소여가 벌로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톰 소여의 효과(Tom Sawyer Effect)라는 용어가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억지로 하면 효능이 떨어지지만,

단순한 일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있게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저는 지난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톰이 친구들에게 울타리를 칠하게 한 것을

좋지 않은 일로 보았습니다.

 

톰의 동기가 옳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친구들에게 시켰습니다.

친구들을 거짓으로 선동했습니다.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특별한 일로 착각하게 했습니다.

 

톰만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톰에게 속아 넘어간 친구들도 문제입니다.

친구들은 톰에게 선물까지 바치면서

울타리를 칠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훗날, 톰 소여는 어릴 적 자기가 했던 일을 돌아봅니다.

그렇게 톰은 자기 성찰을 통해서 성장해 갑니다.

 

4.

일을 놀이로 만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전, 야곱에 대한 설교에서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외삼촌을 섬긴 것은

사랑에서 우러난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동기를 살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톰 소여의 효과에 앞서서

친구들에게 울타리 칠을 시킨 톰의 동기가

바르지 않았음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사랑으로 섬기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되길 바랍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도록

우리 자신을 살피고 바른길을 가기 원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16:2)

 

 

하나님,

분별력을 갖고 참된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20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의 힘 (3)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통로가 기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죄와 허물로 막혀 있다면, 기도는 하나님께 도달하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함이듯이, 우리 역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과 막힘없이 소통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입니다.

 

한 주간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지냈습니다. 말씀을 갖고 우리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마음속에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기도하면서 우리의 내면을 깊이 파헤치고 그것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 성찰, 회개는 안으로 향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과 대조됩니다. 특별히 회개는 우리를 속속들이 통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한 기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솔직하게 드러내 보일 때, 성령 하나님께서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가 흰 눈같이 정결하게 됩니다. 회개에 이은 죄사함, 용서의 은혜입니다.

 

느헤미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창조의 시간부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된 광야 40년,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쫓은 왕조시대를 성찰했습니다. 결국 나라와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70년 동안 바빌론에서 포로로 살다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라 잃은 백성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집트에서 400년 종살이할 때도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광야를 지날 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불만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부족들을 모두 몰아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신실하셨습니다. 오래 참으셨습니다. 백성들은 힘들 때만 하나님을 찾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변덕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河-

엔지니어링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이슈가 되는 파나마 운하의 원리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았습니다.

 

1904년부터 10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서 완공된 파나마 운하는

수위 조절을 통해서 계단식으로 배를 들어 올리는 방식입니다.

들어 올려진 배가 50마일에 달하는 인공호수를 지나고,

계단식 수문을 통해서 다시 바다로 내려갑니다.

운하 덕분에 일만 이천 마일을 우회하지 않아도 되었다니

시간과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약하였습니다.

 

프랑스가 실패한 공사를

미국이 완공한 놀라운 업적입니다.

미국 엔지니어링의 승리였습니다.

 

1999년 파나마에 넘여 주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다시 찾아오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2.

내친김에 금문교(Golden Gate Bridge)의

건축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았습니다.

 

1933년에 시작해서 1937년 5월 27일에 개통했습니다.

개통하는 날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리를 걸어서 건넜고

다음날부터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카운티를 연결하는 금문교가 개통되었습니다.

 

항간에는 다리를 건설하면서 중국인 인부들이 많이 죽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열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열아홉 명은 공사 중인 다리 밑에 설치한 안전망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훗날 열아홉 명은 “지옥에 반쯤 갔던 사람들의 모임(halfway-to-hell club)”을 만들었답니다.

 

금문교를 최초에 설계한 사람은

조셉 스트라우스(Joseph Strauss)입니다.

조셉 스트라우스는 물살이 센 협곡에 다리를 건설하는데

다리 교량을 최소화하고, 다리 밑으로 배가 통과할 수 있는

현수교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교량을 잇는 철근 케이블 27,572개를 공중 와이어 공법으로 하나씩 교량에 연결했습니다.

케이블의 총길이가 지구를 세 바퀴 감을 정도랍니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중간에 도로를 가로지르는 철판들이 있는데

다리를 잇는 케이블의 변화로 다리 갑판이 변형되는 것을 막는 완충장치랍니다.

교량의 높이, 간격, 케이블이 갖는 힘, 건축 자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세밀하게 예측하고 공사 현장에 적용했습니다.

 

3천 5백만 불이 들었습니다.

오늘로 환산하면 7억 불 정도 됩니다.

당시는 대공황으로 경제가 좋지 않을 때였는데,

주민들이 납세 채권에 동의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금문교의 기술을 모방하고 발전시킨 현수교가 여럿 생겼지만,

처음 건설할 때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습니다.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의 최고 명물이자 상징임엔 틀림없습니다.

 

저는 엔지니어링 분야에 문외한이어서

금문교 건설에 적용된 설계나 기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다른 나라 언어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물길이 거세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곳에

현수교를 건설한 엔지니어링에 감탄이 나옵니다.

 

3.

엔지니어링은

철저한 이론, 설계, 시공, 공사를 거쳐서

목적한 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입니다.

 

자칫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건설 현장은 물론 훗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기초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합니다.

오차 없이 설계하고 시행하는 세심한 작업입니다.

 

우리 신앙과 인생도 엔지니어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눈대중 하듯이 대충 대충은 안 됩니다.

철저하게 살피고 꼼꼼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 모든 여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신앙과 인생의 집을 지어갑시다.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4-25)

 

 

하나님,

신앙과 인생에 탁월한 엔지니어가 되게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13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