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힘 (2)

기도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눴기에 참빛 식구들께는 익숙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지난주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식의 기도를 소개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기도입니다. 매우 신비로운 기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외롭습니다. 주변에 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웃이 있지만, 때때로 군중속의 고독도 경험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갈 때도 많습니다. 조바심이 납니다. 때로는 의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외로운 실존이 겹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쫓으면서 우리의 신앙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친밀하게 기도하면서, 우리의 신앙은 물론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에서 중요한 덕목이 바로 회개입니다. 느헤미야 9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회개합니다. 개인의 회개를 넘어서는 민족의 회개입니다. 우선, 금식했습니다. 금식은 이스라엘 역사 초기인 사무엘 선지자 시절에 미스바에 모여서 금식하면서 기도하던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먹을 것을 중단하는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뜻입니다. 간절함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겠다는 표시였습니다.

 

베옷을 입고 티끌로 몸을 덮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개인은 물론 민족이 회개할 때 행하던 예식이었습니다. 욥도 하나님을 만난 후에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습니다(욥 42:6). 티끌은 재와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했습니다. 바빌론에서 돌아와 보니 예루살렘에는 여러 민족이 들어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이방 민족들이 사마리아에 강제 이주했고, 그들이 이스라엘에 정착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섞여 살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과 절교하고 거룩함(구별됨)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 상황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와 조상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회개는 개인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회개 없이 거듭남도 없습니다. 회개 없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회개는 우리 신앙의 필수입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의 회개를 넘어서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회개했습니다. 민족의 회개, 공동체의 회개까지 나간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에 더 깊이 들어가고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를 원합니다.-河-

입술의 열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책꽂이에는

<입술의 열매: 약이 되는 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독이 되는 말”이었을 텐데 저에게는 없습니다.

약이 되는 말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서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약이 되는 말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당신과 악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이 정도면 넉넉합니다”

“참 아름답지요” “생각 날 거예요” “참 좋은 생각이예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 용기를 주고,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독이 되는 말도 몇 가지가 생각납니다:

“할 수 없어” “절대 안 될거야” “귀찮아”

“기도해도 소용없을걸” “그만두자”

“너 때문이야”.

 

말에 힘이 있어서,

말로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지만,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자신의 영혼을 찌르고

상대방의 마음에 깊이 상처를 남깁니다.

 

2.

그러고보니

하나님께서도 말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우리 신앙도 밀접합니다.

 

혼란이 사라지고 질서가 잡히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찾아오고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고

비난이 아닌 격려를

불평이 아닌 감사와 찬양을,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존재, 나의 나됨(성품)을

보여주는 통로일 수도 있습니다.

 

3.

요즘 세상의 말이 너무 거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말은

“보복(retalia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국가간에 조금만 손해를 받아도, 공격을 받아도

서로 보복하겠다고 기를 세웁니다.

국가간의 거래에 세금을 책정하는 정책에도

“보복 관세”라는 말을 씁니다.

 

꽤 무서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보복하기 보다 용서하고

서로 회복하고 화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복을 원하셨다면,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예루살렘 사람들을 단칼에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보복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아닌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4.

하나님이 곁에 계셔도

부끄럽지 않을 언어를 사용합시다.

독이 되는 말은 줄이고

약이 되는 말을 통해서 세상을 밝혀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러셨듯이

자신은 물론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갖다주는 말을 사용합시다.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입술의 열매가 우리에게 가득하길 바랍니다.

 

온순한 혀는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4)

 

하나님,

살리는 말, 약이 되는 말로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6 이-메일 목회 서신)

입술의 열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책꽂이에는

<입술의 열매: 약이 되는 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약이 되는 말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당신과 악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이 정도면 넉넉합니다”

“참 아름답지요” “생각 날 거예요” “참 좋은 생각이에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세상을 밝게 만듭니다.

 

독이 되는 말도 몇 가지 생각납니다:

“할 수 없어” “절대 안 될 거야” “귀찮아”

“기도해도 소용없을걸” “그만두자”  “너 때문이야”.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자신의 영혼을 찌르고

상대방의 마음에 깊이 상처를 남깁니다.

 

2.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도 말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우리 신앙도 밀접합니다.

 

혼란이 사라지고 질서가 잡히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찾아오고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고

비난이 아닌 격려를,

불평이 아닌 감사와 찬양을!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존재, 나의 나됨(성품)을

보여주는 통로일 수 있습니다.

 

3.

요즘 세상의 말이 너무 거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말은

“보복(retalia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국가 간의 거래에 세금을 책정하는 정책에도

“보복 관세”라는 말을 씁니다.

 

보복 – 꽤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지요.

 

예수님은 보복하기보다 용서하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보복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아닌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본이 되셨습니다.

 

4.

하나님이 곁에 계셔도

부끄럽지 않을 언어를 사용합시다.

독이 되는 말은 줄이고

약이 되는 말을 통해서 세상을 밝혀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러셨듯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창의적인 말을 사용합시다.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입술의 열매가 우리에게 가득하길 바랍니다.

 

온순한 혀는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4)

 

 

 

하나님,

살리는 말, 약이 되는 말로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6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의 힘 (1)

“기도와 말씀으로”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1월에는 말씀에 관해서 공부했고, 2월에는 기도에 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의 신앙과 삶을 견디는 중심축입니다.

 

말씀은 말 그대로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식사하는 것이 우리의 몸에 영양분이 되듯이, 하나님 말씀이 신앙을 살리고 자라게 하는 양식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매일 같이 그리고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고 가까이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을 곱씹고 묵상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습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을 나침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나침반이 북극을 가리키듯이, 성경은 하나님을 지향합니다. 여기서 임하는 말씀의 은혜가 있습니다.

 

앞으로 한 달여 기도에 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기도는 우리 모두 알다시피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성경은 쓰여진 글자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한다면,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음성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통로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매우 신비로운 신앙 행위입니다.

 

지난번 주일학교 설교에서 기도는 하나님과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 때도 하나님과 얘기하기를 바랐습니다. 공부하다가 막힐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길 원했습니다. 속이 상할 때도 하나님과 얘기하면서 마음고생을 풀어나가길 원했습니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어른들도 하나님과 얘기하듯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운전하면서, 설거지하면서, 길을 걸으면서, 일을 하다가 막힐 때도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마음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전하는 통로입니다.

 

느헤미야 9장은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의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킨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느헤미야 9장은 백성들이 다시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릎 쓰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합니다.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를 경험했다면, 백성들이 다시 함께 모여서 과거의 삶을 돌아보고 잘못한 것을 회개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개인적으로 회개를 넘어서 민족 전체가 참회의 집회를 열고 함께 회개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물론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하는 것이 특별해 보입니다. 이방인과 교제를 끊은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기도에는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회개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낱낱이 돌아보는 과정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자리로 나갑시다.-河-

촉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는

주보에 싣고 있는

케빈 캐럴(Kevin Carroll)의 <빨간 고무공의 법칙>을 소개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놀던

빨간 고무공이 저자의 인생 전체를 촉진하고, 변화시키고

이끄는 촉매(catalyst)가 되었습니다.

 

촉매에 해당하는 영어 <카탈리스트 catalyst>는

그리스어 <카타류인>에서 왔는데, “풀어내다”는 뜻입니다.

 

잔뜩 막혀 있거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

촉매가 투입되면 열어젖히고 풀어냅니다.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에 촉매를 첨가하면 빠르게 활성화됩니다.

 

저자는 무엇을 하든지

어릴 때 갖고 놀던 <빨간 고무공>을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한없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NBA 프로 농구팀의

피지컬 트레이너(physical trainer)를 두루 거친 후에

나이키 창업자에게 발탁되어서 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그 모든 인생 여정에서 빨간 고무공이

저자의 인생에 촉매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떠나고

필라델피아 빈민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작고 왜소하고 내성적인 소년이

갖고 놀던 <빨간 고무공>이 있었습니다.

그 정신과 그때의 행복을

인생 굽이굽이에 적용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말 그대로 촉매가 되었습니다.

 

2.

우리에게도

지루한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고,

막힌 인생을 열어주고,

한 단계 두 단계 상승하게 만들어 주는

촉매가 필요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동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깜짝 놀랄 정도로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신앙에 정체를 경험하고 있다면,

촉매를 통해서 신앙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촉매가 있다면,

당연히 기도일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하나님 말씀도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나침반처럼 살아갈 방향을 예측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웁니다.

 

예배는 어떨까요?

예배 속에서 삶을 돌아보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성도 간의 교제도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동지를 만나고, 함께 울며 함께 웃으면서

행복한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자체가 우리 인생의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을 닮은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촉매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갈 힘을 주는 촉매입니다.

 

3.

삶에 초대하는 순간 입가에 미소를 가져다주고

마음에 뿌듯한 감동이 밀려오고

무엇인가 다시 시작할 동기와 힘이 되는 촉매,

빨간 고무공!

 

우리 각자의 빨간 고무공을 촉매 삼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갑시다.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이

촉매가 되어야 함도 잊지 맙시다.

 

내게 이르시기를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촉매가 되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30 이-메일 목회 서신)

말씀의 은혜 (3)

지난 한 달 동안, 느헤미야 8장을 갖고 올해 표어 “기도와 말씀으로”가운데 말씀에 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시간입니다.

 

느헤미야 8장은 70년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예루살렘 성곽을 완성하고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갖는 말씀이었습니다. 제사장 에스라가 나무로 만든 제단에 올라가서 모세의 율법책을 읽으니, 백성들은 모두 “아멘 아멘”하면서 화답하고 얼굴을 땅에 댈 정도로 몸을 굽혀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히브리어가 서투른 사람들을 위해서 레위인과 지도자들이 중간중간에서 통역하고 뜻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 집회(bible conference)가 진행되었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웁니다. 말씀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날은 이스라엘이 지키는 절기에 의하면 새해 첫날이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위로하고 울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날이니 기뻐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했던 말씀을 함께 나눴고 우리 모두 암송하기로 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느헤미야 8장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은혜 받은 것으로 시작해서, 받은 은혜를 삶에서 적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입니다(느8:13-18).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의 은혜를 체험한 백성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잔치했습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돕고 음식을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백성들의 지도자들과 제사장, 레위 사람들이 모여서 에스라와 더불어 모세의 율법책을 공부합니다. 지도자들이 모인 리더 성경 공부였습니다. 일곱째 달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조상들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공부하였습니다(레 23장).

 

초막절에 대한 규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추수 후에 지키는 감사의 절기입니다. 장막을 짓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는 점에서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이라고도 부릅니다. 에스라와 함께 모세의 율법을 공부한 지도자들이 모든 성읍과 모든 백성에게 장막절을 지킬 것을 공포합니다. 산에 올라가서 감람나무 가지, 들감람나무 가지, 화석류나무 가지, 종려나무 가지, 기타 무성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장막을 지을 것도 명령했습니다.

 

백성들이 산에 가서 나뭇가지를 가져와 장막(초막)을 지었습니다. 지붕 위에 지은 사람, 뜰 안에, 하나님의 전 뜰에, 수문 광장에, 에브라임 문 앞 광장에 초막을 짓고 장막절을 지켰습니다. 여호수아 이래 모든 백성이 장막절을 지킨 것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17절). 에스라는 매일 같이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고, 백성들은 말씀의 은혜를 만끽하며 기뻐했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삶 속에서 실천했고,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河-

작심삼일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가 시작된 지 어느덧 20일이 넘었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을 대입하면

벌써 일곱 번은 새로 결심할 시간입니다.

 

오십이 되기 전까지 새해를 맞으면

하나님 앞에서 하고 싶은 일,

이웃과 관계에서 해야 할 일

저 자신과 관련된 일로 나눠서

새해 계획을 꼼꼼히 세웠습니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새해에 세운 계획을 일일이 점검했습니다.

 

오십이 넘으면서

제가 주도하는 삶을 살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작정으로

따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한 해 동안 하고 싶은 일들

몇 가지를 선정해서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만,

작심삼일이 될 때가 많습니다.

 

2.

2-3년 전부터 세우는 새해 계획이 있습니다.

책꽂이의 책들 가운데 읽지 않고 꽂아만 놓았던

책을 꺼내서 한 장(chapter)라도 읽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었습니다.

책 몇 권 꺼내서 읽다가 일 년이 지났습니다.

 

올해도 같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먼지가 앉을 정도로

케케묵은 책들은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20일이 지났건만,

아직 시작을 못 했습니다.

작심만 하고 20일이 흘렀습니다.

올해는 꼭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개운할 것 같습니다.

 

3.

결심한 것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심한 것,

사람들에게 결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결심한 것을 모두 지킨다면

보통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계획하고 결심한 것을

스스로 만족할 정도만이라도 지키기를 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사랑(아하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는

감정적인 의미보다

언약을 지킨다는 ‘의지적인 면’이 더 큽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을 지킨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늘 작심삼일이었습니다.

 

올 한 해 새해에 계획하고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약속(언약)한 것을 지키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의지’가 우선함을 기억합시다.

 

저도 올해 계획한

책 읽기를 절반이라도 꼭 실천하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5)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절대 작심삼일이 없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23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