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아니라 아들이니

2023년 마지막 날에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늘 그렇듯이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한 해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치솟는 물가 때문에 외식이나 쇼핑을 망설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 역시 불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권사님들께서는 연세가 드시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내려앉으셨습니다. 한국에 계신 가족들의 건강이 늘 염려가 됩니다. 교회적으로도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참빛 식구들 개인과 가정마다 한 해를 돌아보시면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실감나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2023년 마지막 날까지 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만큼 우리 삶이 치열하고, 생소하고, 때로는 힘겨웠습니다. 그래도 기도와 말씀 가운데 2023년 365일을 믿음으로 완주하신 참빛 식구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은 성탄절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약혼기간의 요셉과 마리아 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보면 10대의 젊은 부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셉의 직업이 목수였으니, 말 그대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00%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음을 뜻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어둠을 밝히실 참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에서는 세상을 통치할 왕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메시아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너무 평범해서 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이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거부했습니다.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다윗 왕국을 세울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기에 예수님을 애써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은 온 인류와 세상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므로 죽음과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완벽하게 화해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평화의 왕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모든 사람은 그릇된 것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사로잡혀서 자유를 잃었습니다. 생명의 율법이 서로를 정죄하는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무엇인가에 매인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니 종에서 아들로 지위가 바뀌었습니다.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외쳐 부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종은 없습니다. 얽매인 것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河-

소중함

좋은 아침입니다.

 

1.

2023년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갑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소식이

이따금 들리지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팬데믹도

2023년의 시작과 끝을 훼방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마스크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지난 3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미세 먼지로 마스크 착용이 잦다고 들었지만,

미국에서는 특정 직종에 근무하는 분들이 아니면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당시 대통령부터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을 느낀 이유입니다.

 

펜데믹 동안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우리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微笑)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스크로 반쯤 얼굴을 가리다 보니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얼굴의 표현과 표정이

얼마나 소중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는지 실감했습니다.

 

아직도 마트나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감기 기운만 있어도 이웃을 배려해서 마스크를 쓰고

예배나 공공 행사 참여를 자제합니다.

 

코로나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그렇고,

조금 더 세심하게 생각하면

서로를 향해서 조심하겠다는 표시입니다.

 

2.

우리 삶에 소중한 것은

작고 사소한 것, 가까운 것, 일상적인 것에 숨겨져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을 보고 미소 짓는 것,

깜짝 놀랄 표정을 짓고 감탄의 말을 전하는 것

명확하게 의사전달을 하는 것 등등 –

마스크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니

우리 삶의 뒤편에 숨겨진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으면서,

불가피하게 뒤에 숨겨놓았던 것들,

늘 그곳에 있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챙기고 마음 한편에 소중히 간직하기를 원합니다.

 

가까운 이웃의 소중함도 깨닫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소중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별한 것, 대단한 것,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보다도

마스크 속에 숨겨졌던 아름다운 미소처럼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찾아내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 감사와 기쁨을 더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거기에 물을 주고 가꿔 나가기로  우리 함께 결심합시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하나님,

주변에 흩뿌려진 소중한 것을 찾아내서

감사하는 연말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28 이-메일 목회 서신)

2023 성탄 주일

평강의 왕

 

오늘이 대강절 마지막 주일이지만, 우리 교회는 성탄 주일로 지킵니다. 지난 한 달여 마음에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참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고 세상 곳곳에 깃든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길 기도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누가복음의 시므온과 안나를 보면서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린 하나님 백성에게 임하는 은혜가 특별함도 배웠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한 주간 예수님을 기다렸기에 오늘 예배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실 예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죄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하나님 백성 삼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일4:10).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신 이유와 목적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거듭남(born-again)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영접했을 때 임하는 것이 평안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우리 마음과 삶을 지배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찾아오는 평안입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에서 임하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다는 은혜 속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야기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죽음을 극복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에 근거합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에서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다)”로 오실 예수님을 예고했습니다. 이 시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9장 역시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앗시리아라는 제국에 의해서 핍박받고 고통받는 이스라엘에 임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북쪽의 스블론과 납달리 땅은 앗시리아에 의해서 힘없이 무너졌지만, 요단강 건너 남쪽 유다는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에게 큰 빛이 비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앗시리아가 탈취물을 나누면서 기뻐하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는데, 그것을 능가하는 기쁨이 하나님 백성에게 임할 것입니다. 주께서 압제자의 채찍과 막대기를 꺾어 버리십니다.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모두 불에 타버리고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실행하기 위해서 메시아가 오십니다. 한 아기로 태어나셨지만,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가 통치하는 나라가 영원할 것입니다. 그 아기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河-

예수님이 읽으신 성경

좋은 아침입니다.

 

1.

대강절 셋째 주일이었던

지난 주일에는

성서일과(Lectionary)에 따라서

이사야서 61장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사야서 61장 1-2절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당을 방문해서 첫 번째로 읽으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메시아로 세상에 오신 목적과 사역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임을

이사야 말씀을 인용해서 직접 알리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정통하셨습니다.

 

2.

이사야 61장 말씀을 갖고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읽으신 본문을

지금 제가 읽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설교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2천 년이라는 시차는 있지만,

예수님과 제가 같은 말씀의 공간에 머무른 것입니다.

 

메시아의 사역을 예고한

이사야서 61장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이사야 61:1-2)

 

한 글자 한 글자, 한 구절 한 구절을

예사롭게 읽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이사야 말씀을 대하셨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구할 메시아로

살아가실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준비하시면서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으셨을 것 같습니다.

 

3.

이처럼 우리가 읽는 성경 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신앙과 삶이 깃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비롯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분들을 성경에서 만납니다.

그러니 성경은 매우 신비로운 책입니다.

 

올해도 성경 통독을 마쳤습니다.

10여 년 가까이 계속된 성경 통독입니다.

매년 읽을 때마다 같은 말씀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성경의 신비를 경험합니다.

 

새해에도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합시다.

보물찾기하듯이, 성경 속에 깃든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마음속에 들려주시는 주의 음성을 듣는 성경의 신비를 누립시다.

 

하나님,

세심하게 주의 말씀을 읽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21 이-메일 목회 서신)

2023년 대강절 (3)

성서 일과(lectionary)에 있는 이사야서를 중심으로 대강절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이사야서 61장은 여전히 바빌론 포로에 있거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왔어도 페르시아라는 제국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이스라엘의 상황도 미완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사야서 61장 1-2절은 예수님께서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당에 들어가셔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오늘 이사야 말씀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눅4:16-20)

 

 

이처럼 이사야서 61장은 하나님의 완벽한 회복을 선포합니다. 주님의 영이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내게 기름을 부으사”(1절)는 메시아(기름 부은 자)를 가리킵니다. 메시아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과 안성맞춤입니다.

 

1-3절이 메시아 사역이라면, 4-9절은 메시아 사역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위로와 기쁨을 주십니다. 재를 쓰고 죄를 회개하던 마음에 기쁨이 임합니다. 슬픔 대신에 찬송이 임하니 근심이 사라집니다. 의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복 받는 자손”(9절)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10-11절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크게 기뻐합니다.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즐거워합니다. 구원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공의의 겉옷을 입히셨습니다. 신랑이 제사장의 관을 쓰고 신부가 보석으로 단장하는 것 처럼 우리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들어갔다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시고 세상에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길 원합니다. -河-

견리망의

좋은 아침입니다.

 

1.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국의 교수 신문은 사자성어를 공모해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목요 서신에서는

거의 매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소개하면서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2023년에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빠져서 의로움을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성현 장자(莊子)가 산책을 하는데

매우 커다란 까치 한 마리가 그의 이마를 스치더니

밤나무 숲에 가서 앉았습니다.

 

장자가 새총을 들고 까치를 잡으러

살금살금 밤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까치에 접근하는데

까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알고 보니, 눈앞에 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사마귀는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까치를 모른 채

눈앞에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습니다.

매미 역시 시원한 밤나무 숲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장자 뒤에서

밤나무를 지키는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장자를 밤 서리꾼으로 생각한 것인데,

장자 역시 까치를 잡으려는 생각에

남의 집 밤나무 밭을 침범하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장자가 사흘 동안 고민에 빠집니다.

까치를 잡으러 남의 밤나무 밭에 들어간 자신의 그릇된 행동은

눈 앞의 먹잇감만 노리고 있는 까치나 사마귀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다가 옳은 일을 잊어버렸다”는

사자성어 <견리망의(見利忘義)>가 나왔습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고 배만 불리려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을 빗대서

견리망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것 같습니다.

 

2.

견리망의의 반대는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견리사의(見利思義)>입니다.

눈앞에 이익을 놓고,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바른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도리인데,

개인의 잇속을 먼저 챙기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살기보다,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적 생각도

코로나 이후 사람들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지요?

 

올해 마지막 성경공부 주제였던 <참된 복>에서 배웠듯이

상대적인 복을 절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성공이나 출세, 심지어 기도 응답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자신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길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길 원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마음도 장착하고 싶습니다.

 

야곱에 관한 연속설교 이후 계속 반복하듯이

‘정말 중요한 것’과 ‘그까짓 것’을 분별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길 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하나님,

행여나 우리 속에 숨어있는

<견리망의>몰아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1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