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해설 (8):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베풀고,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는 분들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좋은 교회들이 훨씬 많습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밝고 맑게 만드는 원천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찬송가 429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를 지은 엘라이자 휴잇(Eliza E. Hewitt, 1851-1920) 역시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밝힌 인물입니다.

 

휴잇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한 학생이 널판자로 자기 선생님인 휴윗을 공격했습니다. 그 사고로 휴잇의 척추에 문제가 생겼고, 평생 척추 장애인으로 살았습니다.

 

졸지에 장애인이 된 휴잇에게 하루하루가 절망이었습니다. 6개월쯤 지났을 때, 깁스를 풀었지만, 더 이상 학교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었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었고, 아이들도 성실하게 가르쳤는데 자기에게 찾아온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원망이 나왔습니다. 당장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휴잇 여사에게 공원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생겼습니다. 담당 의사의 허락을 받고 목발을 짚고 공원에 나와서 햇빛을 씌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밝은 빛으로 그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자기 몸은 비록 망가졌지만, 하나님은 따스한 봄볕처럼 휴잇 여사를 비추고 언제나 거기에 계셨습니다.

 

병원에 돌아온 휴잇 여사가 창가에 앉아서 받은 은혜를 글로 적어 내려갔고, 그것이 찬송가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입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광채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그 이후로 휴잇 여사는 교회 초등부를 맡아서 주일학교를 섬겼습니다. 한때는 휴잇 여사가 부장으로 있는 주일학교가 백여개 클래스를 운영할 정도로 부흥했습니다. 비록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었지만, 교회에서 가르치는 은사를 마음껏 발휘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찬송으로 표현하는 일도 계속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휴잇 여사의 찬송이 여섯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주 안에 있는 나에게>도 휴잇 여사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도 휴잇 여사가 만든 찬송입니다.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河-

책임감

좋은 아침입니다.

 

1.

인류가 큰 역병을 거치고 나면

세상을 지배하는 사상과 종교, 가치관이 바뀌곤 했습니다.

 

중세 시대 페스트가 지나간 자리에

신(神)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신본주의 사상이 뒷전에 밀리고

인간이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인본주의가 태동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에는

기후 위기까지 겹치면서

예측불허의 어지러운 세상이 찾아왔습니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고, 100년 만에 지진이 나고

극한의 더위 또는 한파가 발생합니다.

 

우선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

분노와 불만이 사람들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에 버금가는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가 이어집니다.

 

“불안”이라는 두 글자가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를 차지한 느낌입니다.

 

2.

한국에서는

학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와 괴롭힘에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말은 그만두고

학생은 물론 학부모도 선생님을 향한 예의가 각별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 다녔던 시골 국민(초등)학교에는

농사일 중간에 학교를 찾아오신 어머니들께서 “선상님”하고 부르면서

자기 자식들을 부탁하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선생님들의 학생 폭력이 도가 지나친 적이 많았습니다.

일제와 군사 독재의 잔재인 것처럼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심하게 구타하고 인격을 모독했었습니다.

 

그래도 스승과 제자의 예의범절은 깍듯했는데,

요즘 한국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은

갈피를 잡기 힘들 정도로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책임을 지려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쉬쉬”하면서 덮기에 급급합니다.

 

3.

언젠가 “내 탓입니다”는 표어가 유행해서

자동차 범퍼에 달고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선 내 탓이라고 말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남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손수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감을 갖고 세상을 이끄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자기편을 챙기는 것을 넘어서,

공공선(公共善common good)을 추구하는 어른들도 보고 싶습니다.

 

교회가 앞장서면 어떨까요?

예수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신앙, 기복적인 신앙,

방어하기에 급급한 자기중심의 편협한 신앙을 극복하고

세상을 품을 정도의 관대함, 어지러운 세상을 살리는 책임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나를 넘어서는 공적인 신앙이 꼭 필요한 요즘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지금도 각박한 세상에서 간신히 살아가시는 분들을

주님께서 꼭 붙들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도 함께 울고,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마5:13)

 

 

하나님,

신실한 주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9. 14 이-메일 목회 서신)

찬송가 해설 (7): 내 주를 가까이

야곱에 관한 연속 설교를 마치면서, 생각난 찬송이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내 주를 가까이>였습니다. 권사님들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찬송입니다.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는 야곱이 자기를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갈 때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배경입니다. 훗날 고백했듯이 야곱은 지팡이만 들고 집을 떠났기에, 돌베개를 베고 들에서 잠을 자는 신세였습니다. 야곱이 꿈을 꿉니다. 하늘이 열리면서 땅에서 하늘까지 사닥다리가 세워지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어느 곳에 가든지 함께 하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고, 야곱이 누워있는 땅도 장차 후손에게 주실 것도 약속하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곳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의 배경입니다.

 

작사가 사라 애덤스(Sarah Adams 1805-1848)는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던 여배우였습니다. 언론인이자 정치가 아버지를 둔 명문 가문에서 태어난 애덤스는 어릴 적부터 외모는 물론 다재다능했습니다. 여배우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애덤스 부인이 공연 중에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과로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당시의 치명적인 질병인 폐결핵이었습니다.

 

애덤스 부인은 나이 서른둘에 배우의 길을 접습니다. 절망에 젖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을 때, 길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창세기 말씀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야곱의 처지에 중첩되면서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를 쓰게 됩니다: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애덤스 부인이 작사한 지 15년 후, 1,600여찬송가를 작곡한 미국의 유명한 작곡가 로웰 메이슨(R. Mason, 1792-1872)이 곡을 붙였습니다. 메이슨은 어느 날 밤에 일어났을 때 고요함 가운데 멜로디가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미국의 25대 대통령 매킨리는 <내 주를 가까이> 찬송을 자주 불렀고 임종과 장례식 때도 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 나라로 갔다고 알려집니다. 영화 <타이타닉>에도 침몰하는 배의 갑판에서 평온하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1912년 4월14일 새벽 2시 20분, 대서양을 항해하던 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가 암초에 걸려서 침몰할 때,  영국 감리교 신자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월리스 하트리(Wallace Hartley, 1878-1912)가 여덟 명의 동료 연주자와 함께 <내 주를 가까이>를 실제로 연주했다고 알려집니다. 이처럼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힘과 용기와 소망을 주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것이 신앙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河-

함께 거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5년 만에 야외예배를 다녀왔습니다.

팬데믹 이후 처음 갖는 야외 예배였기에

감회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노동절 연휴와 겹쳐서

출타하신 참빛 식구들도 많이 계셨지만,

가능한 분들은 거의 모두 참석해 주셨습니다.

올해는 애완견들도 함께 했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풍성한 먹거리,

서로를 소개하고, 힘들 줄도 모르고 뛰고 즐겼던 놀이,

알차게 준비했던 주일학교 아이들 프로그램까지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2.

우리 기독교에서는

“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 거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위로와 힘을 줍니다.

 

어떤 것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은 하나님과 더불어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들어가서 머무는 것입니다.

기도 역시 하나님 마음과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하는 것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별칭도

“임마누엘” –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함께 함을 강조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권면했습니다(롬12:15 ).

사자성어 “동고동락(同苦同樂)”이 생각납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같은 길을 가라는 부탁입니다.

 

3.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무슨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 함께 공감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어주는 것이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거기서 공동체의 힘이 발휘됩니다.

 

우리 참빛교회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주님의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함께 있어서 기분이 좋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냥 함께 있고 싶은 신앙의 동지들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엊그제 야외예배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6개월 된 아기부터 80대 후반의 권사님들까지

함께 예배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같은 공간에 머물렀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던지요!

 

참빛교회를 허락하시고

참빛 식구들을 한 공동체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보라,

형제자매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133:1)

Behold, 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brothers dwell in unity! (Ps 133:1)

 

하나님,

주님 안에서 하나된 교회로 자라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9. 7 이-메일 목회 서신)

참 아름다워라

5년 만에 야외 예배로 모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2년마다 야외 예배를 갖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오고, 중간에 계획했던 야외예배가 갑작스러운 오미크론 바이러스로 취소되면서 이제야 비로소 야외예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팬데믹의 끝이 찾아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마스크를 벗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약이라고 했듯이 마스크도 벗고 우리가 함께 모여서 야외 예배를 갖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갖는 야외 예배이기에 더 뜻깊고 감사할 뿐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노동절 연휴를 맞아서 출타하신 참빛 식구들이 계셔서 모두 모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야외 예배에 참석해 주시고 음식과 순서를 준비해 주신 남선 교회와 여선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맛있게 드시고, 마음껏 즐기시고, 아름답고 풍성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니 많은 무리가 모였습니다. 그 가운데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왔고 예수님께서 팔복으로 시작하는 산상수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구약의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새로운 율법 선언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마태복음 6장도 특별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섰지만, 여전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관한 염려와 불안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공중에 새가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공중의 새는 사람들처럼 물질을 모으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고 먹거리를 제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공중의 새도 하나님께서 먹이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니  백합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니 솔로몬의 영광도 들의 백합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도 입히실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먼저 하나님을 찾고 구할 뿐입니다:“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오랜만에 온 교회가 야외로 나왔습니다. 하나님 주신 자연을 마음껏 즐깁시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를 느끼고 감사합시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공동체로 묶어 주셨습니다. 야외에 나오니 얼굴과 모습에서 빛이 나십니다. 참빛교회 식구들의 밝음과 아름다움을 서로 칭찬하고 축복합시다.

 

세상에서 갖고 살던 염려와 근심을 모두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뛰놀고 즐기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자기 백성을 책임지심을 믿습니다.-河-

2035년…

좋은 아침입니다.

 

1.

5월 캐나다 동부에서 시작된 산불은

그리스 국가 면적을 태웠고 아직도 완전히 잡히지 않았습니다.

팬데믹 때 캘리포니아 산불로 경험했던 붉게 물든 대기 현상이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까지 나타났습니다.

 

보름 전에는 캘리포니아 남부에 태풍이 찾아왔고

LA인근에 강도 5가 넘는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우리 지역도 건기인 8월에 비가 내렸습니다.

 

올해 7월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애리조나 피닉스는 110도 이상의 기온이 한 달 이상 계속되면서

선인장도 말라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2.

2017년 파리기후조약이 체결된 이래

산업화가 시작된 19세기 말의 지구 온도에서

섭씨 1.5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지구 온도가 1.5도가 올라가면

폭염이나 폭우와 같은 급격한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등

재앙이 찾아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5월 한 보고서에 의하면

2027년에 지구 온도가 1.5도 높아질 확률이 66%까지 올라갔습니다.

 

지금이라도 지구의 온도를 낮춰야 합니다.

적어도 1.5도가 상승하지 않도록 모든 인류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탄산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 책임이 큽니다.

 

3.

우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1970년 발효된 미국의 청정 공기법(CAA)에 따라서

미국 전체에서 가장 엄격한 탄소 배출량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캘리포니아가 제정한 기준은 다른 주들이 연방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됩니다.

 

그러니 탄소 배출량에서 캘리포니아는 무조건 앞서가야 합니다.

 

이것을 반영하듯이

캘리포니아에서는2035년 이후에 내연기관 자동차 신규 판매가 금지되고

전기 또는 수소로 움직이는 자동차만 새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 에너지를 비롯한 친환경 에너지의 개발이 계속될 것입니다.

적극 환영할 일이고

정책이 흐지부지되지 않고 결기를 갖고 추진되길 바랍니다.

 

4.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지구를 맡기셨는데

인간의 욕망으로 엉망이 되었으니

그리스도인들이 창조 질서의 회복에 앞장서야 합니다.

 

또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지도자들을  잘 선출해야 합니다.

지금도 화석연료 사용을 추진하고,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그나마 작은 희망의 불씨도 꺼지고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매우 답답합니다.

당장 기후 위기의 피해가 곳곳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구를 지키는 청지기의 사명을 회복하고

다시 지구를 살리는 일에 온 인류가 앞장서기를 바랄  뿐입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편104:30)

When you send your life-giving breath, they are created,

and you replenish the surface of the ground. (Ps 104:30)

 

하나님,

하나뿐인 지구를

하나님 뜻에 맞게 보존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8. 31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