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16)

은혜

 

우리는 지난 넉 달 동안 야곱에 관한 말씀을 함께 나눴습니다. 야곱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여정이었습니다.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싸웠습니다. 형으로부터 팥죽 한 그릇에서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서 외삼촌 집으로 피난 가서 20년을 살았습니다. 외삼촌에게 연거푸 속지만,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니 열두 명의 아들과 재산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형 에서를 마주하기 전날 밤,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고, 다음날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야곱의 삶도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세겜에서 딸 디나가 성폭행 당합니다. 세겜의 삶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온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과 다시 언약을 맺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길에서 죽습니다. 장남 르우벤이 라헬의 여종이자 야곱의 부인인 빌하와 동침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야곱이 편애하던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로 팔려 갔습니다. 아들들은 야곱이 아버지를 속일 때 사용했던 숫염소를 죽여서 그 피를 요셉의 옷에 묻힙니다. 그리고 요셉이 들짐승에 물려서 죽었다고 아버지 야곱을 속입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인 것처럼 야곱도 아들들에게 속은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굳게 믿고 살았는데, 이집트에 팔려 간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서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열두 자식들을 축복하면서 생을 마감합니다. 이처럼 야곱의 인생은 험악했지만, 끝이 좋았습니다.

 

야곱에 관한 말씀을 마치면서 그동안 소개했던 몇 가지 표현을 다시 생각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그까짓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그까짓 것으로 생각하고 팥죽 한 그릇과 바꿨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그까짓 것 취급하지 말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둘째는, “산 넘어 산”입니다. 야곱에게 어려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쉬운 인생은 없습니다. 늘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셋째는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야곱과 함께 하셨고, 야곱의 모든 인생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보이지 않게 뒤에서 도우셨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복된 삶이었습니다. 마지막 “스티그마”입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몸에 남겨진 하나님의 흔적이었습니다.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도 거룩한 상처를 간직하길 바랐습니다.

 

야곱에 관한 연속 설교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함께 읽고 나누면서 만났던 야곱의 하나님을 우리 각자의 하나님으로 삼고 주어진 인생길을 믿음으로 걸어갑시다. -河-

각박한 세상 속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1.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각자 알아서 자기 삶을 책임진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정적인 뜻도 들어 있습니다.

 

기후 위기도

지구 전체를 생각하기보다

일단 자기 나라만 잘 살려다 보니 생긴 재난일 것입니다.

각자도생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사람들 마음속에는 ‘나는, 내 가족은’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기주의가 생겼습니다.

역병을 겪고 나면서 생긴 부작용인데,

역시 각자도생의 어두운 면입니다.

 

이처럼 민족과 나라도, 개인도

각자도생을 위해서 무한 경쟁에 뛰어든 느낌입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망가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2.

각자도생의 어두운 면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만 살아남고, 나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기주의’입니다.

무한 이기주의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기주의 앞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까지

자신의 생존과 성공에 사용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기주의는 우상숭배입니다.

자기가 신이 되고 하나님 자리에 앉았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내 의견과 내 이익만이 참(true)이고 옳음(right)입니다.

오직 관심은 자신(넓혀야 자기 가족)에만 쏠려 있습니다.

 

이기주의는 양심과 도덕의 기능도 마비시킵니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원칙은 무시하고

내게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해서 적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점점 각박해집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인간과 생물이, 그리고 자연과 우주 만물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상생의 시스템인데 말입니다.

 

3.

이기적이고 각박한 세상을 바꾸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세상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

삶의 현장에서 작은 일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일 성경 공부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아브라함의 기도) 생각하셔서

그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을 구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넉넉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푸근하게 품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작지만 소중한 도움의 손길을 펼칩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해도,

예수 사랑으로 차가운 세상을 녹여보는 겁니다.

 

기도와 사랑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지만,

우리는 여유를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성령의 바람이

우리부터 시작되기를 기대합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때에 밭모퉁이까지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23:22)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세상을 살리는 작은 힘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8. 24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15)

약속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화해하고 하란을 떠났습니다. 형 에서와도 화해하고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얍복강에서 이름까지 바뀌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으니 야곱 앞에는 장밋빛 융단이 펼쳐져야 할 것 같습니다.

 

벧엘, 하란, 얍복강 그리고 형 에서와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야곱도 한층 성숙해서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에 적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야곱의 남은 인생이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인생에 어울립니다.

 

그런데 야곱의 인생이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형 에서와 헤어진 야곱은 하나님과 약속했던 벧엘로 가지 않고 당시 경제의 중심지라고 추측되는 세겜에 정착합니다.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도시에 상업이 발달해서 돈을 벌고 가족을 돌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체류 신분을 확보하지 못한 야곱과 그의 가족이 경제적인 이유로 세겜에 터를 잡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루는 레아에게서 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마을에 놀러 나갔다가 세겜 부족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성폭력을 당합니다. 세겜은 디나를 강제로 추행했지만, 진심으로 디나를 좋아해서 아내로 삼길 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하몰과 함께 야곱을 찾아와서 디나를 아내로 줄 것을 요청합니다. 부족장과 사돈이 되면 야곱과 그의 가족의 합법적인 체류가 가능해집니다. 괜찮은 제안입니다.

 

하지만, 여동생이 성폭행당한 것을 알고 있는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으면 동생 디나를 아내로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는데, 세겜 사람들을 속이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실제로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움직일 수 없을 때, 레아의 아들인 레위와 시므온이 세겜에 가서 사람들을 죽입니다. 여동생 디나를 대신해서 복수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 야곱은 말이 없습니다. 나중이 되어서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느냐고 한탄할 뿐입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31절)라는 구절에서 야곱의 무기력과 야곱 아들들의 분노를 느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벧엘로 가지 않고 세속 도시 세겜에 머물다 생긴 일입니다. 디나 사건을 다루는 본문에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이처럼 세겜은 하나님 부재(divine absence)의 장소였습니다.

 

디나 사건을 겪은 후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서 그곳에 거주하며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신을 차린 야곱은 이방 신상들과 장신구를 모두 나무 밑에 묻고 벧엘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힘들 때마다 찾아오셨고 약속을 모두 지키셨습니다. 진작에 벧엘로 와서 자리를 잡아야 했습니다. 있어야 할 곳,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河-

하나님의 얼굴

좋은 아침입니다.

 

1.

야곱에 관한 말씀을 석 달 이상 공부하다 보니

야곱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야곱은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속이고 속는 그의 삶이 정상은 아닙니다.

넘어야 할 산을 앞에 두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야곱은 애처로울 정도입니다.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던 야곱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의 생각과 다름을 실감합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고

그곳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해서 보았는데 생명을 구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다른 초월적 존재이십니다.

인간이 마주할 수 없는 전적인 타자이십니다.

야곱이 그 하나님과 밤새도록 얼굴을 맞대고 씨름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2.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목숨을 유지한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자

형의 얼굴이 하나님 얼굴 같다고 말합니다.

엄청난 말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어떤 면에서  원수지간입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속고 장자권과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았습니다.

 

형 에서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안절부절못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자신과 가족을 구해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자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한 것입니다.

깜짝 놀랄 일입니다.

 

얍복강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본 야곱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3.

어떤 철학자는

“타인의 얼굴”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하고

낯선 타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진정한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넘어서 낯선 타인의 지경에 들어가야

참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을 때,

이웃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하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낯선 이웃, 관계가 깨져서 서먹한 이웃, 약하고 소외된 이웃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교감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얼굴에만 신경 씁니다.

관계가 어그러지고 그 속에 진실함이 사라집니다.

타인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신비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깜짝 놀랄 얼굴로 찾아오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오늘 하루 힘차게 시작합시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같사오며 (창33:10)

 

하나님

불현듯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지나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8. 17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14)

화해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은  형 에서를 대면해야 했습니다. 지팡이 하나 들고 고향을 떠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족들과 함께 재산을 갖고 오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에서라는 큰 산이 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에 잔뜩 긴장한 야곱은 재산을 둘로 나누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에서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모든 준비를 끝낸 야곱이 얍복강에 혼자 남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밤새도록 씨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기에 다리를 절었지만, 야곱은 새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영광의 상처를 몸에 새긴 셈입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형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야곱에게 자신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사람과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의 여종과 그의 자식들을, 레아의 자식들,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차례로 배치했습니다. 야곱이 앞에 섭니다. 형 에서가 나타나자, 야곱은 당시 왕 앞에 나갈 때 하는 예식대로 일곱 번 몸을 굽히면서 형에게 다가갑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에 따르면 에서가 야곱에게 몸을 굽혀야 하는데 반대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야곱의 상황이 다급했습니다.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웬일인지 형 에서가 달려와서 야곱을 환영합니다. 목을 어긋 맞추어 안아주고 입을 맞추면서 서로 웁니다. 야곱과 에서가 커다란 전투를 벌일 것을 예상한 우리 독자들에게 싱거운 결말입니다. 누구보다 야곱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형 에서가 눈을 들어서 야곱 일행을 보면서 누구냐고 묻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라고 답변합니다. 야곱의 부인과 자식들이 차례로 나와서 에서에게 절합니다. 야곱이 선물로 준비한 가축 떼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야곱은 말끝마다 에서를 “내 주”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낮춥니다. 준비한 선물을 받아 주길 간청합니다. 야곱은 20년 전 형을 속인 것을 보상하듯이 에서를 깍듯이 윗사람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에서가 자기와 함께 가자고 제안합니다. 야곱은 자기 일행은 지쳐 있으니 천천히 에서가 살고 있는 세일로 가겠답니다. 에서가 야곱을 도와줄 종들을 남겨놓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형과 작별합니다. 야곱은 형에게 말한 것과 달리 숙곳으로 갔습니다. 숙곳은 “머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야곱과 형 에서가 이렇게 화해했습니다. 에서가 상남자로 등장하지만, 그에게서 하나님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야곱은 여전히 형 에서를 의식해서 세일로 가지 않고 숙곳으로 갔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살아남았듯이, 형 에서를 만나서도 살아남았습니다. 형과 화해했습니다. -河-

하나님과 씨름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 예배에서는 두 시간에 걸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본문을 공부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형 에서를 맞닥뜨려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야곱은 재산의 절반이라도 챙기기 위해서 가축 떼를 둘로 나누고

형 에서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서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야곱에게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형 에서를 극복하고 살아남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각 속에는 에서 밖에 없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야곱이 가족까지 얍복강을 건너보내고

혼자 남아서 마지막 밤을 보냅니다.

가장 외롭고 불안하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밤새도록 씨름하셨고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마지막에는 야곱의 요청대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2.

지난주 설교에서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과 씨름하자고 제안하면서

시간상 나누지 못한 것을 오늘 보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우선,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이끄는 운영체계가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매사에 믿음 안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흔들림 없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둘째,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앞에 놓고 당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제하실 수 있는 하나님 손에 문제를 맡깁니다.

문제를 일으킨 상황을 독수리의 시선(Bird’s eye view)으로 내려다볼 수 있을 때까지

기도와 말씀을 갖고 씨름합니다.

 

셋째,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입니다.

야곱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하나님과 끝까지 씨름했습니다.

이름이 바뀌었고 결국 하나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은 끈질기게 살아남습니다.

 

넷째,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은

세상의 관습, 옛사람의 습관, 유행 등을 따르지 않습니다.

결국 없어질 세상 것들과 씨름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궁극적인 것(ultimate concern)”에  관심을 갖습니다.

신앙 안에서 각자의 인생관을 정립하는 과정입니다.

 

마지막 다섯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평화를 도모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과 씨름한다는 것이

세상 일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 앞을 막아서는 장애물을 뛰어넘고

신앙이든지 우리의 인생이든지

결국에는 중요한 과제를 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기를 원합니다.

그 과정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32:28)

 

 

하나님

사람이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과 씨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8. 10 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13)

브니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던 벧엘과 하나님과 씨름했던 얍복강은 야곱의 신앙은 물론 인생을 받쳐주는 두 기둥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 집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팡이 하나 들고 외삼촌 집으로 가던 때입니다. 450여 마일 외삼촌 집으로 가는 것도 막막한 여정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사닥다리가 이어졌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고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고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일어나서 돌기둥을 갖다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야곱은 20년 외삼촌 집에서 지내는 동안 벧엘의 약속을 마음에 간직했고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견뎠습니다.

 

두 번째 얍복강 사건도 형 에서와 연결되지만, 상황은 반대입니다. 벧엘은 형을 피해서 고향을 떠날 때였고, 얍복강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형과 대면해야 합니다. 외삼촌과 작별했기에 다시 하란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벧엘과 똑같이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얍복강의 야곱은 벧엘의 야곱보다 훨씬 힘든 상황입니다. 그때는 야곱 혼자였는데, 지금은 가족이 있습니다. 그때는 빈손이었는데 지금은 재산도 많아졌습니다. 그때는 형 에서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축복을 가로챈 야곱을 죽이겠다고 위협했지만, 지금은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는 긴박한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밤중에 홀로 있는 야곱을 찾아오셔서 밤새도록 씨름하셨습니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동사 <아바크>는 먼지(dust)라는 뜻과 함께 하나님과 야곱이 흙범벅이 되면서 뒹구는 모습을 알려준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싸움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끈질기고 집요했습니다. 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십니다. 그래도 야곱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합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시면서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28절)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으니, 사람인 에서를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보았는데 생명을 보전하였다고 기뻐하면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지었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야곱은 다리를 절었습니다. 그로부터 야곱은 평생 다리를 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상처를 몸에 지니고 사는 복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 힘들때 마다 찾아오신 벧엘과 얍복강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