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 (5)/ 시편 23편 1-6절
순례자의 길 (5)/ 시편 23편 1-6절
겸손의 골짜기에서 마귀 아폴리온을 만났던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칩니다. 신앙의 순례길이 고난의 좁은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겁쟁이와 불신이 가던 길을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이번에도 두 사람이 크리스천이 가는 길에서 마주 달려옵니다. 앞에 죽음의 골짜기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도 그 길을 가면 결국 죽게 될 것이라고 겁을 줍니다. 크리스천도 겁이 났지만, 다시 망할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에 사망의 골짜기를 향해서 앞으로 나갑니다. 다윗왕도 한때 빠졌던 위험한 수렁이 왼쪽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빠질 수밖에 없는 수렁입니다.
조심조심 앞으로 나갑니다. 깜깜한 길입니다. 지옥의 불이 그를 향해서 달려듭니다. 크리스천은 아폴리온을 물리쳤던 검을 들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앞으로 갑니다. 수많은 마귀 떼가 달려듭니다. 크리스천이“나는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믿고 걸어가리라”(시71:16)는 말씀을 마귀들에게 선포하니 마귀들이 기가 죽어서 물러갑니다. 기도와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그렇게 날이 밝고 아침이 되니 사망의 골짜기에 햇볕이 비칩니다. 날이 밝아서 사망의 골짜기를 살펴보니 곳곳에 “덫과 함정들 구렁텅이와 그물들”이 여기저기에 깔려 있었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두려웠지만, 빛으로 밝아지니 손쉽게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빛이 중요합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빠져나오니 저 앞에 혼자 순례길을 걷는 사람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집에 있던 문지기 할아버지가 말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크리스천이 앞에 가는 순례자를 따라갑니다. 그 사람은 크리스천과 같은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이 떠난 후에 동네에서는 앞으로 장차 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당장 눈앞에 있는 향락을 즐길 뿐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답니다. 도리어 길을 떠난 크리스천을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크리스천의 뒤를 이어서 신앙의 순례길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믿음(Faithful)이었습니다.
크리스천에게 든든한 길동무가 생겼습니다. 두 사람이 오손도손 이야기하면서 길을 걸어갑니다. 크리스천은 믿음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자세히 묻습니다. 믿음은 절망의 늪도 그냥 지나왔습니다. 대신 바람둥이(Wanton)라는 여인을 만나서 요셉이 당했던 유혹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믿음이 걸어온 순례길은 크리스천이 왔던 길이나 만났던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믿음의 길이 다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다양한 신앙의 순례길을 걷습니다. 내가 걷는 길입니다. 그 길을 기도와 말씀으로 걸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걷는 나의 순례길입니다.-河-
좋은 아침입니다.
1.
2월 2일 오늘은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 hog day)입니다.
우리식 입춘(立春, 올해는 2월 4일)에 해당합니다.
그라운드호그는 다람쥣과에 속하는 설치류입니다.
봄이 되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 위로 올라오는데
그날이 바로 2월 2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라운드호그이 땅 위로 올라왔을 때,
날이 맑아서 그림자가 생기면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서 겨울잠을 청한답니다.
그러면 6주 후에 봄이 찾아온다고 믿었습니다.
날이 흐려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으면 곧바로 봄이 찾아왔다고 선언했습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을 갖고 입춘, 봄이 찾아왔음을 가늠하는
독일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펜실베이니아에 이주한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이 1800년 후반부터 지키기 시작해서
수만 명이 이름도 신기한 펜실베니아 작은 도시 펑수토니(Punxsutawney)에 모여서
봄 축제를 즐깁니다.
동물이 겨울잠에서 깨는 행동을 통해서
봄이 오는 것을 가늠하니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2.
그라운드호그 데이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1993년에 개봉되어서 백만 이상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펜실베니아 펑수토니에서 열리는
그라운호그 데이를 취재하러 가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이직을 고려할 정도로 방송국 일에 싫증을 느낀 주인공이
여성 기자와 함께 억지로 취재를 나갔는데
매일 같이 2월 2일이 반복되는 시간 속(time loop)에 갇힙니다.
무슨 일을 해도 아침에 눈을 뜨면
2월 2일 그라운도호그 데이입니다.
처음에는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도 나고 짜증이 났지만
사랑하는 여성의 조언대로
반복되는 하루를 피아노를 배우고, 예술작품을 만들어서 자선행사에 참가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두 알고 있으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지루한 일상을 특별한 날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결국 사랑까지 성공해서 아침을 맞았는데
드디어 2월 3일이 됩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특별한 순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3.
유독 베이지역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지난 며칠은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꽤 추웠습니다.
그래도 봄은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전쟁, 사건, 사고로 혼란스럽습니다.
물가도 오르고 여기저기서 해고 소식도 들리니
우리 마음도 세상도 아직 겨울입니다.
하지만, 그라운호그가 땅을 뚫고 지상으로 나오듯이
봄은 찾아올 것입니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일상, 지루한 일상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특별한 순간,
사랑을 주고 베푸는 시간으로 채워가는
감사하고 기쁜 하루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편 3:5)
하나님,
새 달에도 하루하루가
삶의 기쁨과 경이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2.2 이-메일 목회 서신)
순례자의 길(4)/ 히브리서 2장 14-18절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은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례길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두루마리를 쉼터에 두고 온 것을 알지 못한 채 떠나는 길입니다.
맞은 편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겁쟁이(Timorous)와 불신(Mistrust)을 만납니다. 잔뜩 겁에 질려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뛰어오는 이유를 물으니 구원의 길을 가면 갈수록 어려운 일이 닥쳤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사자 두 마리가 길 가운데 누워있는데 무서워서 지나갈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다시 장차 망할 성, 세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겁쟁이와 불신의 말을 들으니 크리스천에게도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품속에 있는 두루마리를 찾으니 두루마리가 없습니다. 이제서 두루마리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당황한 크리스천이 어쩔 줄 모르다가 깊은 잠에 빠졌던 쉼터로 다시 향합니다. 왔던 길을 살피면서 쉼터에 도착하니 잠을 자던 의자 밑에 두루마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비록 순례길은 지체가 되었지만,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날이 어두웠습니다. 겁쟁이와 불신이 말했던 사자가 있는 지점도 가까워져 옵니다. 사자에게 몸이 찢겨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그때 눈을 들어보니 저 멀리 길옆에 궁전같이 웅장한 집이 보입니다. 그곳에서 하룻밤 묶고 갈 생각으로 다가가니 문지기가 그를 맞아주면서 사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알려줍니다. 사자들은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겁쟁이와 불신은 사자가 묶여 있는 것을 몰라서 돌아간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가뿐하게 묶인 사자 옆을 지나서 아름다운 궁전에 도착했습니다.
신중(Discretion), 분별(Prudence), 경건(Piety), 자애(Charity)라는 여성들이 크리스천을 반겨줍니다. 크리스천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지나왔고 누구를 만났으며 무엇을 경험했는지 묻습니다. 밤이 늦도록 그 집의 여성들과 크리스천이 대화를 나누고, 잠잘 시간이 되었는데 평화(Peace)라는 방을 숙소로 제공해 줍니다. 언덕길에 있던 쉼터와 비교할 수 없게 편안한 곳입니다. 알고 보니 그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뜻합니다.
아침이 되니 길을 떠나는 크리스천에게 전신 갑주를 입혀줍니다. 이어서 겸손의 골짜기가 나오는데 맨 밑으로 내려가니 아폴리온(Apollyon)이라는 추하게 생긴 괴물이 크리스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아폴리온과의 격렬한 전투로 온몸이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결국 승리합니다. 지옥의 사자 아폴리온을 물리쳤으니 크리스천이 가는 길을 가로막을 악한 세력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할렐루야! -河-
1.
저는 15년째
“좋은 아침입니다”로 시작하는 목요 서신을
참빛 식구들께 보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번은
일부러 “좋은 아침입니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엊그제처럼 총기사고가 났을 때이지요.
어쩌면 목요 서신에서 가장 많이 다룬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 땅에서 총기사고가 사라지길,
아니 적어도 통제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설날 전날인 지난 토요일
남가주에 위치한 몬테레이 파크에서
70대 남성에 의해서 11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장소를 옮겨서 또다시 총격을 시도했지만,
한 청년의 용맹스러운 저지로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처음 총격을 가한 곳이 댄스 연습실이었는데
범인이 자주 다녔던 곳이라는 보도에 더욱 놀랐습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우리 동네에서 아주 가깝고 우리도 종종 방문하는
해프문 베이(Half Moon Bay) 농장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해서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60대 후반의 범인도 농장 두 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범행을 했으니 몬테레이 총기사고와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던 분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이번 총기 사건을 아시안의 이슈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핑계이고 미국의 문제입니다.
새해 25일동안, 무려 40명이 대량살상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었거든요.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두고 만 보고 있어야하는지요.
2.
지난 1월 10일 일리노이 주지사는
21세 이하의 주민은 총기를 소유할 수 없고
살상용 무기와 대용량 탄창(10발 이상)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에 서명했습니다.
작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발생한
시카고 하이랜드파크 총기사고 (7명이 목숨을 잃고 46명이 부상을 입음) 이후에
일리노이 주의회와 주지사가 추진한 총기 규제법입니다.
그런데 발효되자마자 어떤 사람들(나쁜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이
개인의 총기 소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2조를 위반했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1월 20일에 법 집행을 일단 중지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어렵게 발효된 총기 규제법이 10일 만에 저지를 당한 셈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실상입니다. 안타깝습니다. 화가 납니다.
솔직히
우리 같은 범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익단체들의 로비가 워낙 강해서
총기 규제를 위한 법안이 상정되는 것도 쉽지 않으니
투표로 저지할 능력도 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도움과 긍휼만 구합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이 땅을 고쳐 주시고, 악한 사람들을 벌해 주십시오.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지들께
주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편 90:13)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 26 이-메일 목회 서신)
순례자의 길 (3)/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순례길을 떠난 크리스천이 절망의 늪을 지나고, 세상의 지혜로 유혹하는 손길도 뛰어넘고, 해석자의 집에 들어가서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서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무작정 떠난 길이었는데 그 길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자신감과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순례길을 시작합니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다행히 길옆에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곧게 올라갈 수 있었는데 그 울타리 이름은 구원(salvation)이었습니다.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올라가니 그 위에 십자가가 서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열린 무덤이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이 십자가를 향해서 올라가는 순간, 매고 있던 짐이 저절로 풀어져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비로소 지고 가던 모든 짐을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홀가분해졌습니다. 감격의 눈물이 두 뺨을 흘러내리고, 크리스천은 주체할 수 없이 기뻐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때 얼굴에서 빛이 나는 세 사람이 크리스천을 찾아옵니다. 첫째 사람이 “당신의 죄는 사함 받았습니다”고 말하고, 둘째 사람은 크리스천이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을 벗기고 깨끗한 새 옷을 갈아입혀 주었습니다. 셋째 사람은 이마에 표를 달아주고 두루마리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두루마리를 읽으며 위로와 힘을 얻으랍니다. 천국문에 도착했을 때 두루마리를 보여주라고 말하고는 세 사람이 떠납니다. 이제 손색이 없는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이 다시 길을 떠납니다. 발목에 쇠고랑을 찬 채로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천박(simple), 나태(sloth), 거만(presumption)을 만나서 얼른 일어나서 함께 순례길을 가자고 제안하지만, 세 사람은 꼼짝하지 않고 잠만 잡니다. 허례(Formalist)와 위선(Hypocrisy)과 마주치는데 이들은 담을 넘어서 순례길에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겉만 번드레할 뿐 진실함이 없습니다.
크리스천 앞에 고난의 산길이 닥칩니다. 믿음과 은혜로 걷는 길이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손과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고 있는데 아담한 쉼터가 나옵니다. 고난의 산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쉬면서 힘을 얻는 곳입니다. 크리스천이 두루마리를 꺼내 읽으면서 위로를 얻습니다. 그런데 잠시 쉬다가 그만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고난의 여정에 지쳤는지 신앙의 끈을 놓쳤습니다. 게다가 두루마리까지 놓고 길을 떠납니다. 안타깝습니다.
크리스천이 걷는 순례길에 그를 유혹하는 세력이 계속 등장하지만, 꿋꿋하게 걸어갑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 것이 크리스천에게 큰 힘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여정이 쉽지 않습니다. 다음 한 주간, 주어진 순례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실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예배에서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가난한 대장장이집 아들로 태어난 존 번연은
예수님을 믿고 침례교 목사가 되면서
영국 국교회의 핍박을 받고 두 번이나 12년 가까이 감옥살이했습니다.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감옥에서 쓴 우의소설(Allegorical novel)입니다.
알레고리라는 표현대로
천로역정의 등장인물과 장소는 각각의 뜻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주인공 이름 자체가
그가 걷는 순례길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길임을 암시합니다.
앞으로 두 달여
우리 모두 가야 할 신앙의 순례길을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과 함께 걷기 원합니다.
2.
지난주에 살펴본
천로역정 속 해석자(interpreter)의 집에는
먼지가 가득 쌓인 넓은 객실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하인이 빗자루로 방을 쓸기 시작합니다.
쌓여 있던 먼지가 모두 날려서 방이 뿌옇게 변했습니다.
먼지가 이렇게 많았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다른 하인이 와서 물을 뿌립니다.
먼지가 잦아들고
그다음에는 깨끗하게 객실을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해석자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이 객실은 복음의 달콤한 은혜로 성화된 일이 한 번도 없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먼지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하며 또 모든 인간을 이렇게 만드는 내면의 부패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방을 쓸기 시작한 사람은 율법(Law)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물을 뿌려 준 사람은 복음(Gospel)입니다.”
3.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 실체를 보고 깨닫게 합니다.
먼지가 바닥에 쌓여 있을 때는 무심코 넘겼지만,
빗자루로 쓸기 시작하니
집안을 가득 채운 먼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천로역정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이 어깨에 지고 있는 짐도
행위와 공적으로 의롭게 되고 싶어하는 율법의 짐이었습니다.
그것을 십자가 앞에서 내려놓습니다.
율법을 넘어서 복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기쁘고 개운해하든지요!
4.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해석자의 설명을 통해서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명확히 배웠습니다.
신앙의 길을 가면서
우리가 믿는 것, 행하는 것, 또한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하고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크리스천이 십자가 앞에서 무거운 짐을 벗듯이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힘으로 세상을 사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올 한 해 우리 신앙에 가닥이 잡히고
실제로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하나님,
주님의 은혜 속에 깊이 잠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19 이-메일 목회 서신)
순례자의 노래(2)/ 요한복음 6장 3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