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편에 서라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 편에 서라 On God’s Side>는

짐 월리스라는 분이 쓰신 책 제목입니다.

짐 월리스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난, 전쟁, 차별과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시는 분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세상이 양극화되었습니다.

우리 편만 중요합니다.

자기는 늘 옳고, 상대방은 바른 일을 해도 비판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고 둘로 나눠서 싸울 뿐입니다.

 

짐 월리스는

보수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진보는 사회의 책임을 중요시한다고 했습니다.

보수는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에 돌리는 경향이 있고,

진보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개인의 책임과 사회적 책임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개인 혼자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사회적 책임도 결국 개인이 협조할 때 가능합니다.

 

짐 월리스는 이 지점에서

누구에게나 유익하고 필요한 “공동선(common good)”과

건전한 시민 정신을 강조하면서

성경에 기초한 일곱 가지 선언문을 만들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 두 가지 선언만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는 서로 대화할 때,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는

성경의 정신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때,

심지어 그들이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이거나 우리의 원수일지라도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우리에게 동의하는 사람들과 우리와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기로 다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와 함께 ‘그들도 하나가 될’(요17:22) 수 있도록

기도하셨던 우리 주님의 신실한 증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

세상이 너무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극우와 극우가 만나면 전쟁도 불사합니다.

극우와 극좌가 만나면 대화가 단절되고

상대방을 비판하고 자기주장만 쏟아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신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지요!

 

지난주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이 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소원은 세상에

생명의 기운이 넘치고, 평화가 임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편에 서서

세상에 생명과 평화의 기쁜 소식을 선포할

주님의 자녀를 찾고 계실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품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게 하소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6)

 

하나님,

우리 마음에, 우리 세상에

생명과 평안을 간절히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0. 19이-메일 목회 서신)

진짜 그리스도인 (4)

분별하라

 

로마서 12장 말씀을 공부하면서, 처음 두 구절에서 한 달 동안 머물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로마서 전반부(1-11장)를 요약함은 물론, 앞으로 펼쳐질 로마서 말씀(12-15장)의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옷매무새가 망가집니다. 높은 건물일수록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이 첫 단추와 같고, 건물의 토대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로마서 12장 1절에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던 죄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고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은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백성이 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첫 번째가 “예배”입니다. 몸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예배입니다.

 

몸을 드리는 예배에 이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존재 근거입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중심입니다. 마음이 변하면 우리 자신이 새롭게 됩니다. 몸으로 드리는 예배도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세대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는 거룩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니 하나님과 우리의 동역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정렬되었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내면서 신앙의 길을 가야 합니다. “분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는 무작정 또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심사숙고하면서 주의 길을 가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찾고 분별하면서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사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신앙과 생활이 통합되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

하나님의 꿈

좋은 아침입니다.

 

1.

리처드 로(Richard Rohr)라는

영성가의 묵상글이 매일 이-메일로 배달됩니다.

항상 챙겨서 읽지는 못하고

제목을 보고 마음이 가면 클릭해서 읽곤 합니다.

 

지난 월요일(9일)에 배달된 편지의 제목은

“희망, 평화, 그리고 공의(Hope, Peace, and Justice)”였습니다.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폐지를 위해서 평생 투쟁했던

데즈먼드 투투 주교의 “하나님의 꿈(God’s dream)”이라는 글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유명한 연설을

하나님 입장에서 다시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꿈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게는 꿈이 있단다(I have a dream).

내 꿈이 이루어지도록 제발 나를 도와다오.

 

그것은 세상에 대한 꿈이지.

세상의 추함, 보기 흉할 정도로 잔악함과 가난,

전쟁과 적대감, 탐욕과 가혹한 경쟁, 소외와 위화감(disharmony)이

그와 반대되는 영광스러운 것들로 바뀌는 꿈이란다.

 

더 많은 웃음, 기쁨, 평화,

정의와 선함과 연민(compassion),

사랑과 돌봄과 나눔으로 바뀌는 꿈!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내 자녀들이 한 식구가 되는 것이 내 꿈이란다.

온 인류가 하나님의 가족, 바로 내 가족이 되는 것이지.”

 

2.

또다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의 9.11에 버금가는 테러로 규정하고

무차별 보복을 선포했습니다.

 

민간인을 상대로 한 총격이나 폭격은

누구를 막론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는

수천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를 읽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픈데

팔레스타인이든 이스라엘이든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희생되는 전쟁은

하루속히 끝내야 합니다.

 

3.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요한 계시록의 아마겟돈 운운하면서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믿는 하나님이시라면,

백성들이 무차별 희생당하는 전쟁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와 기쁨, 돌봄과 나눔, 긍휼과 사랑,

무엇보다 아주 많은 웃음이 세상에 넘쳐나길 꿈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고

그 꿈을 이뤄드리는 주의 백성들이 곳곳에 많이 생기길 기도합니다.

 

전쟁을 멈추십시오(Stop war)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이라 (롬14:17)

 

 

하나님,

전쟁으로 희생당한 분들을 위로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0. 12이-메일 목회 서신)

진짜 그리스도인 (3)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로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이 계속됩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촉구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로마 교회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미 임했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해서 로마 교회를 향해서 강력하게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12장 2절 가운데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를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2절 앞부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가 겉모습이라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은 내면에서 시작되는 변화입니다. 세상에서 겉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을 “이 세대”라고 했습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유혹과 세력에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밖으로부터의 영향을 방지했다면, 이제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마음은 존재의 심연입니다.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마음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생활방식이 시작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느끼고 체험합니다. 이웃사랑도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변화되는 것은 존재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새롭게 되는 것은 변화입니다. 겉모습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바뀌어서 새사람이 됩니다. 옛날의 성품과 삶이 바뀌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을 갖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변화를 받아”라는 수동태 동사가 쓰인 이유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옛사람과 새 사람을 대조해서 자세히 알려줍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또한 새사람을 입는 것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는 에베소서 말씀과 맞물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릴 때 일어나는 완전한 변화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옛날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우선, 세상을 본받지 않는 구별, 즉 거룩함입니다. 다음에는 마음이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셔서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기 원합니다. -河-

다시 시작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1.

한국은 거의 일주일 동안

추석 황금연휴를 보냈답니다.

 

미국에 살면 살수록

추석이라는 큰 명절도 잊혀집니다.

한국의 친지들이 보내주는

추석 인사에 옛 추억을 되새길 뿐입니다.

 

한국 뉴스를 보니

추석 연휴 동안 중국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과 같은

커다란 국제 대회에서는

여러 가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번에도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니

롤러스케이트 3천 미터 계주 경기에서

너무 아쉬운 일이 생겼습니다.

 

마지막 계주가 우승인 줄 알고

결승전 바로 직전에 손을 번쩍 들었는데

그사이에 대만 선수가 스케이트 날을 들이밀면서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친 것입니다.

 

롤러스케이트는 이번에 처음 채택된 시범 종목이랍니다.

올림픽에도 같은 종목이 없고

4년 후 아시안 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지 확실하지 않다니

정말 간발의 차이로 우승을 놓친 선수들이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군대 면제의 혜택도 있다는데

0.01초 차이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루고도

웃지 못하고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웠습니다.

 

2.

0.01초 차이라니

허리만 펴지 않고 들어왔어도 우승했을 것입니다.

조금만 참고 우승이 결정된 후에 기뻐했더라면…

 

저도 아쉬운데 당사자 선수는 오죽할까요!

평생 그 순간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기도해 주었습니다.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친 선수처럼

잠시 잠깐 삐끗해서 실수하고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한 선수들이 많을 것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요.

 

누구나 실수합니다.

실력이 모자라는데 더 열심히 하다가 실수하고,

실력은 충분한데 한순간의 방심으로 실수하고

너무 좋아서 흥분한 나머지 실수할 수 있습니다.

 

결승점에서 실수한 선수를 너무 나무라지 말고

그 선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고

힘을 북돋아 주면 좋겠습니다.

 

금메달을 따고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지만,

행여나 마음에 커다란 짐을 갖고 경기를 끝낸 선수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조금 일찍 우승을 즐기다가 금메달을 놓친 선수부터

아시안 게임은 물론 우리 인생의 경주에서

잠깐 한눈팔다가 실수한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인생은 단판 승부가 아닙니다.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시작할 기회가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에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37:24)

 

 

하나님,

우리 손을 붙들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0. 5 이-메일 목회 서신)

진짜 그리스도인 (2)

로마서 12장(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진행하고 완성하신 구원에 참여하였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고 보답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12장 말씀이 우리가 해야 할 도리의 시작을 알립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임을 지난주에 배웠습니다. “몸”이라는 표현 속에서 신앙이 단순히 영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과 실제로 살아가는 삶과 연결됨을 깨달았습니다. 삶을 하나님께 드리니 거룩한 산 제사(living sacrifice)가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이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수요예배에서 레위기를 공부할 때 나눴듯이 하나님은 뒤섞이는 혼란함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질서를 갖추고 하나님 백성으로 단정하게 사는 것을 요청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르고 닮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을 사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그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거룩의 길을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절과 추구입니다. 우선, 세상과의 단절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 또는 환경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과 반대편에 있는 세력, 상황,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쫓아 사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기 전에 쫓았던 세계관이나 생활방식입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했거나 원래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가 명확하게 구분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세상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모습입니다.

 

“이 세대”라는 표현에서 로마서가 쓰일 당시의 세상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통치합니다. 쾌락을 즐깁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로마 제국이 최고입니다. 제국의 시민으로 사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세상의 모습일 수 있어서 섬찟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 백성으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결정나는 것도 잊지 맙시다. 세상에서 거룩의 길을 걸어가는 참빛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河-

 

믿음으로 사는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로마서 12장 말씀을

함께 공부하고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16장 말씀 가운데

8장이 최고로 꼽힙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했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것이 없다는

보석과 같은 말씀입니다.

 

8장과 쌍벽을 이루는 말씀이

로마서 12장입니다.

 

“그러므로”로 시작하면서

로마서 전반부(1-11장)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요약하고,

이어서 하나님 백성의 삶에 관해서 조목조목 교훈합니다.

13-15장은 12장의 부연 설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 연속 설교의 제목을

<진짜 그리스도인>이라고 붙였습니다.

가짜가 판치는 요즘 시대에

진짜 그리스도인(Authentic Christian)으로 살기 원해서입니다.

 

우리가 로마서 12장 말씀대로

믿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한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믿음을 지나치게 추상화했는지 모릅니다.

‘영적’이라는 말을 중심으로

현실감 없는 믿음을 만들어서

신앙과 삶이 따로 놀게 했습니다.

 

교회에서의 신앙과 세상에서의 삶이 다르거나

연결조차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신앙과 생활의 통합이 결여된 모습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아닙니다.

 

신앙을 저 멀리 하늘나라로 옮겨 놓아서

이 세상의 삶에 소홀하거나

세상의 삶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준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역시 온전한 신앙은 아닙니다.

 

아니, 신앙 자체에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고

악세사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3.

믿음으로 사는 것은

지난주 로마서 12장 1절에서 배웠듯이

우리 “몸(body)”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몸은 실체입니다.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 자체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는

일상이 예배가 되고

우리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 제사(living sacrifice)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다 보면,

그 유익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작은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실제의 삶에 하나님을 초대합니다.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평소에 흘려보내던 시간도

하나님과 더불어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됩니다.

삶 전체가 소중합니다.

 

이처럼 믿음은 신비입니다.

느끼고 더불어 살아가는 경험입니다.

신비가 현실이 될 때, 깜짝 놀랄 경이(驚異)를 맛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놀랍고 행복할 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11:1)

 

 

하나님,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9. 28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