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 (2)

<장망성> 장차 망할 성을 떠나서 천국을 향하는 크리스천의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부인과 가족들은 크리스천의 설득에도 그대로 남았습니다.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비웃기도 하고 헛된 여행하지 말라고 겁을 줍니다. 크리스천은 성경을 통해서 받은 확신을 굽히지 않고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을 외치면서 길을 떠납니다.

 

고집쟁이(obstinate)와 유약한 온순(Pliable)이 크리스천을 따라 나섭니다. 고집쟁이는 크리스천이 집을 떠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고, 온순은 일종의 동정심으로 따라 나섰습니다. 고집쟁이는 크리스천이 향하는 곳이 좁은 길이라는 말을 듣고 일찍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온순은 크리스천과 정답게 대화를 나누면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절망의 늪에 빠집니다. 세상의 모든 두려움, 의심, 절망이 모인 늪에 빠진 온순씨는 겁에 질려서 곧장 집으로 돌아갑니다.

 

크리스천 역시 지고 있던 무거운 짐때문에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도움(Help)이 나타나서 그를 구출해줍니다. 동네 친구였던 고집쟁이와 온순은 중간에 집으로 돌아갔고, 크리스천 혼자서 평원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때 세속 현자(Mr. Worldly Wiseman)를 만납니다. 세속 현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어리석게 여깁니다. 그보다 율법을 지키고 도덕을 따라 예의 있게 살면 크리스천이 찾으려는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세속 현자의 말에 설득 당한 크리스천이 세상에서 최고로 현명하고 정직하다는 사람을 찾아가는데, 그 집을 향하는 언덕이 가파르고 커다란 바위와 깊은 골짜기가 있어서 도저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 율법과 세상의 도덕을 따라갔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는 커녕 죽을 뻔했습니다. 그때 처음 만났던 전도자가 찾아와서 잠시 한눈을 팔았던 크리스천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부탁합니다.

 

좁은 문에 도착하니 선의(good-will)라는 분이 크리스천을 반기면서 구원의 장소에 이를 때까지 곧게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갈 것을 부탁합니다. 조금 더 가면 해석자(Interpreter)의 집에 이를 것이고 앞으로 갈 길을 자세히 알려줄 것이랍니다. 크리스천이 해석자의 집에 도착합니다. 해석자는 자기 집의 방들을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크리스천을 안내합니다.

 

율법이나 세상의 도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짊어지고 있는 짐이 점점 무거워질 것입니다. 복음이 필요합니다. 욕망을 따라 살아도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끝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마귀는 은총의 불을 끌려고 애를 쓰지만 예수님께서 계속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중간에 복음을 내버리고 자기 욕망을 따라 산 사람들은 결국 지옥과 같은 깜깜한 방에 갇히게 됩니다.

 

그동안의 길은 물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자세히 설명하고 해석해 주니 힘들어도 다시 순례길을 걸어갈 희망과 힘이 생겼습니다. 크리스천이 다시 길을 떠납니다.-河-

내가 가는 길

좋은 아침입니다.

 

1.
<푯대를 향하여>라는 올 해 표어와 관련해서
새해에 우리가 함께 생각하는 화두가 있다면 “길”입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천로역정>에 관한
연속설교 제목도 “순례자의 길”로 잡았으니
누구나 걷고 있는 인생길, 신앙의 길이 우리 모두의 관심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새로운 길>이라는 시에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는 길을 두고 새로운 길이라고 했습니다.
민들레 피고 까치가 나는 일상의 길을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상의 그리스도인(Everyday Christian)을 강조하는
우리 교회에 딱 맞는 노래요 깨우침입니다.

 

2023년을 열흘 남짓 살았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350여일
아침이 되고 저녁을 맞는 일상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민들레 피고 까치가 나는 매일 걷는 길입니다.

 

그 길을 새로운 길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이겠습니다.
매일 걷는 지루한 길이 아니라
다시 못 올 오늘 하루만의 길,
말 그대로 새로운 길로 단장하고 그 길을 걷기 원합니다.

 

2.
운동 경기에서
감독이나 코치는 선수들에게
그동안 훈련한 대로 “우리 식의 경기”를 할 것을 요청합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지
자기 팀 나름의 페이스를 잃지 말고
자기들 경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전략에 말려들어서 쩔쩔매면
경기 결과는 물론 후유증이 크지만,
자기 방식대로 경기하면
승패에 상관없이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도 흡족하기 마련입니다.

 

3.
우리가 걷은 인생길,
신앙의 순례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이말저말 듣다가 자기 주관을 상실하고
좌우상하로 요동치는 삶을 살아서는
우리가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푯대를 정하고
흔들림 없이 주어진 ‘나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책임지고 내가 살아야 할 “나의 길”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물론,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부르심을 따라서 자기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고 선언했습니다.

 

2023년,
아무도 걷지 않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시기하고 질투할 것도 없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걸어갑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서 동행하실 것입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욥23:12)

 

하나님,
올 한해 참빛 식구들이 가는 길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12 이-메일 목회 서신)

순례자의 길 (1)

앞으로 두 달여 존 번연의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의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존 번연(1628-1688)은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가정 환경 탓에 간단한 초등교육만 마치고  16세에 군대에 갔다 온 후에는 아버지를 따라서 땜장이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던 존 번연은 대장간의 쇠로 바이올린을, 의자 다리를 깎아서 플룻을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존 번연은 두 번 결혼했습니다. 첫 번째 부인 역시 가난해서 단지 책 두 권을 갖고 시집왔는데 번연이 그 책을 읽고 기독교인으로 회심합니다. 26세가 되었을 때  고향 근처 베드퍼드에서 목회하던 침례교 목사 존 기포드(John Gifford)를 찾아가서 상담한 후에 평신도 설교가가 됩니다. 당시는 영국 국교회 외에 다른 교회를  허락하지 않았기에  존 번연은 두 번 감옥에 갇혔습니다. 천로역정은 감옥에서 쓴 작품입니다. 번연은 평생 목사와 작가로 살았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1695년에 출판되면서 영국은 물론 각 나라 말로 번역되었고, 성경 다음으로 애독하는 기독교 고전이 되었습니다. 우리 말 <천로역정>은 구한말 캐나다 선교사 게일이 붙인 제목으로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의 지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1895년에 게일에 의해서 한글로 번역된 <텬로력뎡>은 한글로 번역된 최초의 영어 소설이 되었고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등장인물은 물론 장소까지 우의적(allegorical) 기법을 사용합니다. 주인공 크리스천과 여러 등장 인물의 이름과 그들의 속성이 조화를 이룹니다. 훗날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문학에도 영향을 끼쳐서 유명한 작가들이 천로역정의 우의적 기법, 순서,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C. S 루이스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여정을 회고하는 작품(The pilgrim’s regress)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천로역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해설자의 꿈으로 시작됩니다. 해설자가 세상의 황폐한 광야를 돌아다니다가 굴에 들어가서 깜빡 꿈을 꾸었는데 크리스천이라는 주인공이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향해서 가는 여정을 꿈속에서 보았고 그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허름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습니다. 주인공 크리스천입니다.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을 읽고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곧 망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즐기지만, 크리스찬은 더 이상 장차 망할 세상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때 전도자가 찾아와서 멀리 보이는 빛을 따라서 좁은 문으로 가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천로역정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행 16:30-31)가 천로역정의 큰 주제요 화두입니다.-河-

푯대를 향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사뿐사뿐 뛰면서
올 한 해를 살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불황이 찾아온다는 예고가 많습니다.
팬데믹 동안에 너무 많은 돈을 풀어서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다시 돈을 거둬들이니 불황이 찾아올 수 밖에요.

 

그 과정에서
힘없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고생이 크고
격차는 더 벌어질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우리가 사는 베이지역도 뒤숭숭하고
웬만한 사건과 사고에 경찰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세상은 점점 양극화됩니다.
둘로 갈라져서 자기 편이 옳다고
내로남불의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과 분열은 물론
배제와 혐오가 버젓이 행하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평화의 동산으로 만드시고
그렇게 되길 바라시건만
세상은 점점 하나님의 의도와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2.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푯대를 향하여>입니다.
지난 주일에 함께 공부한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푯대는 목표(target) 목적(goal)
바라보는 곳 또는 가야 할 곳을 뜻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 속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큽니다.

 

바른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틀리면 노력한 것이 헛것이 되거나
잘못된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변치 않는 명확하고 확실한 푯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을 따라 살기에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부르심의 상을 푯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하늘의 부르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중간에 멈추거나 다 이루었다고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해마다/날마다 이전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쫓아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이며
여러 개의 부르심이 동시에 작동할 수도 있고
심지어 한 번뿐인 부르심도 있다고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선물이자 부르심입니다.
그러니 매일같이 푯대를 향해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올 한 해, 예수님 바라보면서
그리고 각자 삶의 현장에서 힘차게 부르심을 좇아 삽시다.

 

거친 세상을 살아갈 때
생명과 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14)

 

하나님,
푯대를 향해서 나가는 참빛 식구들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이 밝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1. 5이-메일 목회 서신)

2023년에는…

2023년 새해 첫날입니다. 올해는 계묘년(癸卯年) 토끼해입니다. 토끼는 영민하고 꾀가 많은 동물이랍니다. 동시에 겁이 많고 소심하다고 합니다. 재빠른 토끼의 장점은 살리고 소심하고 겁 많은 모습은 믿음으로 극복하면서 올 한 해도 멋지게 시작합시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푯대를 향하여>입니다. 여기서 푯대는 우리의 주인이요 왕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이 곧 푯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시고 준비하신 상입니다. 신앙적으로 예수님을 닮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상이 우리의 푯대입니다. 우리 각자 한 해의 목표도 푯대일 수 있습니다. 끝까지 달려가야 할 말 그대로 푯대입니다.

 

2023년에 교회가 촛점을 맞추는 사역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입니다. 모임이 많지 않은 우리 교회에서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단지 말씀뿐만 아니라 예배의 시작과 마무리, 친교까지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우리 예배 속에 주기도문이 빠져 있어서 결단의 찬송을 주기도문 송으로 정했습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이번 주부터 토요일마다 아침 기도회(6시30분)가 시작됩니다. Zoom을 통해서도 전송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기도 시간이 늘 부족합니다. 밤 10시 교회를 위한 기도, 각자의 자리에서 드리는 삶의 기도와 골방 기도가 튼튼해지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셋째는 교육입니다. 교회가 감당할 부분을 충실히 감당하도록 주일학교 교육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5주 단위로 주일 오후와 금요일 온라인에서 성경 공부가 시작됩니다. 소그룹 사역이 주춤한 가운데, 성경 공부 모임을 소그룹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자원하시는 분들을 중심으로 소그룹을 구성하고, 나머지 분들에게도 한 달 또는 두 달 단위로 돌아가면서 소그룹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넷째는 구제와 선교입니다. 작년에 임원들과 성도님들의 추천을 받아서 여덟 개 단체 또는 선교지 그리고 장학금을 지원했고, 연말에는 만 불을 구제와 선교비로 따로 떼어놓았습니다.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지원할 예정입니다. 소년/소녀돕기는 교회 재정에 포함해서 집행하기로 했습니다. 교회의 구제와 선교 사역에 기도와 지혜로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 밖에도 점심 친교에 자원하는 손길을 계속 기다립니다. 여선교회와 남선 교회의 사역은 교회가 지원하고 따로 회비를 수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봄에는 야외예배를 계획 중입니다. 올 한 해 교회 사역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참빛 식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면서 힘차게 한 해를 시작합시다.-河-

아침마다 새로우니 2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첫 번째 목요서신 마지막 부분입니다:

 

“새롭게 2022년을 맞았습니다.
올해도 우리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두려움과 기대가 섞여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기에
힘차게 그리고 담대하게 한 해를 시작합니다.

 

올해 주제 말씀처럼
아침마다 새롭게 찾아오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매일같이 성실하심을 보여주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2022년 한 해는 카이로스, 창조적인 순간들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2.
달력에 따라 흐는 시간인 크로노스와
창조적인 순간들로 채워지는 카이로스를 구분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 안에서 일어난 카이로스의 순간을 되새겨 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를 경험한
에피파니(epiphany)가 있었다면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빛이 우리에게 비추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잠깐 비추는 주님 은혜의 빛으로 살아갑니다.
한 순간의 은혜로 평생을 살기도 한답니다.

 

가족, 친지들, 교회 식구들과 함께 했던
일상의 시간과 추억도 소중한 카이로스 사건들입니다.
귀한 것, 진실한 것은 작은 일상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포착해서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
카이로스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커가는 아이들의 현재 모습을
사진 찍듯이 마음에 간직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도 중요한 카이로스 시간들입니다.
아이들이 훌쩍 커서 부모의 품을 떠날 날이 금방 닥치거든요.

 

세상 속에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빛으로 소금으로 반사하면서 살았던 것도
카이로스 순간입니다.
생명의 복음을 드러내고,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고 의무랍니다.

 

이 밖에도 올 한해
우리 각자가 경험했던 카이로스의 순간은 다양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필요하면 주님의 위로와 치유의 손길도 구합니다.

 

3.
우리는 이렇게 2022년을 떠나 보냅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작별인데
아쉬움은 남지만 행복하고 감사한 작별이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인생의 순간순간 함께 하시고 손잡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의 은혜가 큽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6)
For from his fullness we have all received, grace upon grace.(John 1:16)

 

하나님,
2022년 한 해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2. 22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