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과 익숙함 사이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1.
24년 전 우리 가족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 내려서 느꼈던
8월의 미국 공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미국에서의 삶은
낯선 것과의 끊임없는 만남이었습니다.
사람들, 이웃들, 살아가는 삶의 양식,
일을 처리하는 방식, 사회의 관습과 제도, 언어 등등
반세기를 낯선 것들과 씨름하며 살았습니다.

 

물론, 그동안 낯선 것을 넘어서
익숙해진 것들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물건을 살 때마다 달러를 원화로 환산했고
일기 예보를 보면서도 화씨를 섭씨로 바꿨고
체중계 올라가서도 파운드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파운드는 물론 화씨가 편하고,
물건값도 달러로만 생각합니다.

 

생활 속의 낯섦은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함으로 자연스레 변하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네요.

 

2.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낯설 수밖에 없지만,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서로 알아가다 보면
낯섦은 사라지고 친근함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그때부터는 인간관계가 익숙하고 편해집니다.

 

그런데
낯섦을 극복하기 힘든 인간관계도 있습니다.
경계선 밖에 계시는 분들과의 사귐입니다.

 

레비나스라는 철학자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타인 속에서 발견된다고 했습니다.
낯선 타인(other)이 우리의 자화상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정말 위대하십니다.
당시의 보통 사람들이 죄인 취급하고
밖으로 밀어냈던 계층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고
자기 얼굴을 타인의 모습에 각인시키신
진정한 인간미,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3.
성경에 나타난 낯선 사람들
외국 출신 군인들에게 대한 연속 설교를 마쳤지만,
이들의 모습과 삶이 중첩되어 계속 생각납니다.

 

우리 역시 미국 땅에서 낯선 사람들,
나그네로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의 외국 군인들처럼
낯선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남아야 합니다.

 

낯선 것을 사랑으로 받아주고
낯선 사람들과의 경계를 허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이웃 사랑이 우리를 통해서 완성되길 소원합니다.

 

오늘도 낯선 세상에서
낯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시는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하나님,
오늘 하루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낯선 자의 이웃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9. 1이-메일 목회 서신)

내 평생에 가는 길

다음 연속 설교로 넘어가기 전에 갖는 찬송가 해설 시간입니다. 오늘 살펴볼 찬송가는 413장(내 평생에 가는 길)입니다. 찬송가는 물론 이 찬송가에 깃든 이야기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작사가 호레이쇼 스패포드(Horatio Spafford, 1828-1888)는 시카고에서 개업한 변호사였습니다. 재정적으로 넉넉한 스패포드는 당대 최고의 부흥사 무디 선생의 사역을 돕는 친구였고, 시카고에 위치한 장로 교회에서 장로로 섬겼습니다. 부족함이 없었던 스패포드에게 예상치 않은 재난이 닥쳤습니다. 1871년 10월에 발생한 시카고 대화재로 스패포드 역시 재산을 거의 잃었습니다.

 

마음과 몸이 지친 스패포드 가족은 가족 휴가 겸 영국에서 열리는 부흥사 무디 선생의 집회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대화재가 일어난 지 2년 후였습니다. 스패포드는 유럽으로 떠나기 직전에 처리해야 할 문제가 생겨서 시카고에 남고 부인과 네 명의 딸만 계획대로 영국행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스패포드를 제외한 다섯 명의 가족이 탄 배가 대서양을 건너는 중에 영국 범선과 충돌해서 226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를 당합니다. 1873년 11월 22일 새벽 2시에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그때 스패포드의 네 딸은 목숨을 잃었고 부인만 구조되었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가족의 안부를 애타게 기다리던 스패포드에게 아내로부터 전보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혼자 살아남았음(Saved alone).” 사고 후 열흘이 지난 12월 2일이었습니다.

 

스패포드가 아내를 만나러 대서양을 건너서 영국으로 갑니다. 스패포드가 탄 배 역시 자녀 네 명을 잃은 사고 현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스패포드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패포드의 마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안입니다. 그때 스패포도의 마음을 표현한 찬송이 413장입니다.

 

영어 가사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가는 길에 강물 같은 평화가 찾아 올 때도, 거친 파도처럼 슬픔이 밀려올 때도, 내 운명이 어떠하든지,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당신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평안합니다. 내 영혼 평안합니다.”

 

부인과 함께 시카고로 돌아온 스패포드는 다시 세 명의 자녀를 낳습니다. 그런데 네 살 난 아들을 폐렴으로 잃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도 닥쳤습니다. 그때 스패포드가 섬기던 교회가 그를 사랑으로 섬겨주지 않았답니다. 교회를 떠난 스패포드는 자기 집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임을 갖다가 열세 명의 교인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우리도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경험하는 놀랍고 신비로운 평안입니다. 그 평안을 누리는 한 주간 되길 바랍니다.-河-

드러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구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8월 초에는 데스 밸리에 홍수가 나서
관광객 천여 명이 발이 묶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구요.

 

인간이 자초한 재난이라면
온 인류가 지혜를 모으고 힘을 다해서
어떻게든지 바로 잡는 노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유럽에서는 500년 만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오면서
강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답니다.

 

물에 잠겨 있던
2차 대전 때 사용했던 군함이 흉물스러운 몸체를 드러내고
고인돌이나 수억년 전 공룡 발자욱 같은 고대 유적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동안 물에 잠겨서 숨겨져 있던 것들이
물이 빠지니 겉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2.
드러나는 것을 성경에서는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계시(revelation)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내는 탐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만큼 알고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기록된 계시라면,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역사 속에 드러내신 하나님의 확실한 계시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1:18).

 

다음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마지막 때가 되면
숨겨진 것 없이 모두 드러날 것입니다.
가뭄으로 강바닥이 마르면서
물 아래 있던 것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고대 유물 같은 값진 것이 드러나듯이
우리가 남몰래 하나님 앞에서 행한 귀한 일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
흉물처럼 드러날 수도 있으니 평소에 조심해야겠습니다.

 

3.
하나님의 드러남, 즉 계시는 영광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 임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의 드러남은
칭찬과 수치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이 모두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바로잡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 것들이
많이 드러나는 감사하고 복된 순간이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종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았던
이름도 없는 “어떤 백부장”처럼
예수님까지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놀라운 이야기들이
우리 안에 숨겨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눅 8:17)

 

하나님,
우리 안에 값지고 선한 것들을
차곡차곡 은밀히 쌓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8. 25이-메일 목회 서신)

어떤 백부장

어떤 백부장: 믿음

 

성경에 나오는 이방인들 특히 군인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본 연속 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헷 사람 우리아, 아람 장군 나아만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약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이 주인공처럼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민족이나 국가는 관심 밖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고, 그 빛을 보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이 대단했습니다. 그때 백부장 고넬료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하고 베드로를 통해서 세례를 받은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 와중에도 로마 총독 벨릭스와 같은 안타까운 사람들도 존재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인물은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한 어떤 백부장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마태복음과 달리 백부장이 본문에 등장하지 않고 그가 보낸 유대인의 장로들이 대신 나옵니다. 물론 당시는 대리인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해도 당사자가 직접 전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유대인 장로들이 백부장을 위해서 예수님께 왔다는 것도 특별한 일입니다. 그 정도로 백부장이 식민지 사람들인 유대인들을 사랑했고 그들에게 신뢰를 얻었습니다. 로마에서 파견된 백부장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유대인들을 사랑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백부장은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고넬료와 비슷합니다.

 

성경에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에 비유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백부장은 예외입니다. 아니 부자라고 해서 모두 나쁘게 볼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성경은(예수님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대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온전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기꺼이 백부장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때 백부장이 친구를 보내서 자기 집에 오시지 말고 명령만 하시길 부탁합니다. 백부장의 믿음과 마음씨를 보신 예수님께서 깜짝 놀라시면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9절)고 칭찬하십니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 종이 나아 있었습니다.

 

우리의 편견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선교가 제한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넓은 믿음을 구합니다.-河-

절반의 세상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에는 미국 상원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고
엊그제 화요일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 발효가 되었습니다.

 

노인과 저소득층의 의료비 지원과 더불어
2030년까지 탄소가스를 40% 절감하겠다는
에너지 관련 조항이 포함된 법안입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관련 분야에
삼천 칠백억($370billion)불에 이르는
엄청난 재원을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내년에 전기차를 사는 경우 7,500불을 지원해 준답니다.

 

미국의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수가 50대 50입니다.
동점이 나오면 상원 의장인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합니다.
실제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도 51:50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법안이 올바로 실행되어서
미국의 어려우신 분들의 의료비 지원은 물론
세계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국이
솔선해서 지구 살리기에 앞장서길 바랍니다.

 

2.
미국 상원만 의석을 반반씩 나눠가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화합보다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사람들의 생각이 갈라졌습니다.

 

상대편 의견에는 무조건 반대하고
자기편 의견은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찬성하는
갈라치기가 유행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내 편 챙기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상대편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절반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3.
주일에 살펴보는 이방 군인들은
유대인들 입장에서 이방인, 즉 완전 타자입니다.
결코 유대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헷 사람 우리아를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했습니다.
아람 사람 나아만도 나병에서 회복되고 하나님을 믿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신약 성경의 로마 백부장 고넬료는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날 정도였습니다.
결국 베드로를 초대해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경계를 허물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 자녀 삼는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상대하지 않았던
죄인들, 세리들의 친구가 되셨고 그들과 함께 먹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서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타자 또는 반대편에 있는
절반의 이웃을 품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도는 할 수 있습니다.
절반의 세상을 하나 되게 만드는
화평케 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하나님,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하시고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8. 16이-메일 목회 서신)

총독 벨릭스

총독 벨릭스: 욕망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만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선민 의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백성들을 이방인이라고 불렀고,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절대로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헷사람 우리아는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고, 아람 장군 나아만도 나병을 고치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가이사랴에 살던 로마 백부장 고넬료에게는 하나님의 사자가 직접 찾아가서 베드로를 초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들은 고넬료와 그의 집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베드로의 말대로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고 각 나라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모든 사람을 다 받아주십니다. 하나님 사랑의 넓이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품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넓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을 믿기는 커녕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총독 벨릭스가 그런 인물입니다. 벨릭스는 로마 황제가 유대에 파견한 총독으로 클라우디오 황제에 의해서 노예에서 자유인이 된 사람입니다. 벨릭스에게는 두루실라라는 유대인 부인이 있었습니다. 헤롯 가문의 여성인데 벨릭스가 그녀의 외모만 보고 가로채서 부인으로 삼았습니다.

 
벨릭스는 유대인들을 가혹하게 다루었습니다. 열심당원으로 알려진 유대인 독립 단체 회원들을 색출해서 죽이는 등 못된 짓을 많이 해서, 로마로 귀환했을 때 로마의 유대인들이 그를 황제에게 고소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네로 황제와의 인연으로 무죄로 풀려납니다.

 
오늘 본문은 벨릭스 총독이 바울을 불러서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고소당해서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부로 호송되었던 죄인의 신분이었습니다. 바울은 벨릭스 총독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했습니다. 벨릭스는 절대 의롭지 않았습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쾌락까지 즐겼으니 장차 올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죄수인 바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기에 한없이 담대했습니다.

 
바울의 말에 두려움을 느낀 벨릭스 총독이 지금은 가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돌이켜서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었다면, 벨릭스 총독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구원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룹니다. 그 와중에도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를 행하고 진실한 마음을 갖고 오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河-

예수님이시라면

좋은 아침입니다.

 

1.
125년 전에 출판되었는데
여전히 기독교 베스트 셀러 상위권에 위치한 책이 있습니다.

 

찰스 셸돈 목사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In his steps>입니다.
무려 3천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책의 주인공 맥스웰 목사는
미국 소도시의 대형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분입니다.

 

인쇄 기계가 발명되면서 해고된
인쇄공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서
아내도 병으로 잃고 아이는 보육원에 맡긴 채
직장을 구하러 다니다가 거의 노숙자 수준이 되었습니다.
삶에 지치고 몸이 허약해진 젊은이 역시
목사님 곁에서 하늘나라로 갑니다.

 

대형 교회에서 편안하게 목회하던 맥스웰 목사님에게
인쇄공 젊은이의 죽음은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어야 할지 고심 끝에
뜻을 같이한 50여 명의 성도들과 함께
1년 동안이라도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신문사 사장은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기사를 접고 건전한 기사만 싣기로 합니다.
오페라 가수로 발탁된 여성도
술집이 있는 곳에서 열리는 전도 집회에 참여합니다.

 

손해를 감수한 결정들인데
1년을 예수님을 따라 살았더니
개인과 교인은 물론 도시 전체가 변했습니다.

 

소문을 들은 시카고와 뉴욕에 있는 교회들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운동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선한 물결의 파장이 넓게 퍼져나간 것입니다.

 

2.
100년도 넘은 옛날에 쓰인 책입니다.
게다가 소설이니 내용도 단순하고 극적입니다.

 

훨씬 복잡한 오늘날 현실과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질문입니다.

 

지난주 설교에서는 이 질문이
복음을 따라 사는 삶의 시작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중요한 결정 또는 선택의 순간에 예수님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 사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손해가 생길 수 있고, 우리의 본성을 거스를 수 있어 불편하고,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우리이기에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설령 가지 못해도,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좌표를 정해 놓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번 시도하면 어떨까요?
1년은 길 테니 일주일만이라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기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면 더 좋겠지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닮으면서
복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하나님,
한 가지라도 주님을 닮은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8. 11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