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도하라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의 시작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이어서 하나님을 향한 세 가지 기도가 이어집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간청이 대부분입니다. 조금 더 나가면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그것도 이웃을 위한 간청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가 먼저 하나님을 향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자칫 우리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이 완성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간섭할 수 없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 3계명과 맞닿아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여기서 이름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은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가치관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삽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9:2)는 레위기 말씀처럼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기도문의 첫 번째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서 거룩하게 살겠다는 결단의 기도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성취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뤄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회개의 복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니 우리는 “이미 아직(already but not yet)”의 중간기를 살고 있습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와 함께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눅17:21). “나라가 임하옵시고”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길 바라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결단의 기도입니다. -河-

애즈베리의 지난 한 달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예배에서 소개했듯이
컨터키주 윌모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시작된 부흥 운동으로
미국은 물론 부흥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애즈베리라는 대학 이름은
영국에서 미국에 건너온 감리교 선교사로
훗날 미국 감리교를 세운
프란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 1745-1816)에게서 왔습니다.
오하이오주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신학교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한 달 전인 2월 8일,
애즈베리 대학교 채플이 끝나고
함께 모여서 밤늦게까지 기도하던 20여 명 남짓의 학생들이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쏟아붓는(outpouring) 은혜였습니다.

 

캠퍼스에 있던 학생들이
마치 플래시 몹(flash mob)을 하듯이 채플로 모였고
이렇게 시작된 애즈베리 채플 모임은 수만 명이 찾아오는
캠퍼스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애즈베리 현장을 찾은 분들과
참여한 학생들의 방송 인터뷰를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시작이었습니다.
특정 부흥강사나 리더가 의도한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현장 집회를 통해서
다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설교를 듣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뜨거운 부흥의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젊은이들 가운데서 일어난 영적 부흥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애즈베리 대학은 이름 그대로 크리스천 대학이고
일주일에 3번 이상을 채플 출석이 의무라고 합니다.
1970년에도 비슷한 영적 부흥이 일어나서
일주일 동안 예배와 기도회를 했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요즘 시대에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부흥이니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자연스러운 시작과 진행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부흥을 사람이 계획하고 의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나치면 조작(manipulation)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번 애즈베리 부흥 운동은 수십 명이 남아서 기도하다가
경험한 말 그대로 주님께서 찾아오신 사건이었습니다.

 

2.
CNN을 비롯한 주류 언론이 보도할 정도로
애즈베리 부흥(Asbury Revival 2023)은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펼쳐지고 지속될지 궁금합니다.

 

애즈베리 대학 당국과 많은 사람이 기대하듯이
영적 부흥이 각자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뜨거운 냄비가 금세 식듯이 부흥이 삶으로 내면화되지 않으면
자칫 한 번의 뜨거운 경험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동안 17세기 영적 대각성을 비롯한 미국의 부흥 운동은
백인 중심의 복음주의권이 주도했습니다.
회개와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회 정의와 같은 세상의 문제는 무시했습니다.

 

애즈베리 대학교도 공화당이 압도적인 켄터기주에 있습니다.
트럼프 시절 부통령이었던 마이클 펜스는 소셜 미디어에
자기도 켄터키 애즈베리에서 회심했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자칫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뜨거운 부흥의 불길이
온 미국과 전 세계로 순수하고 온전하게 퍼져 나가길 기도합니다.

 

3.
사순절을 맞는
우리에게도 영적 부흥을 기대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주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집중하고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일하십니다!!!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시편 69:32)

 

하나님
주의 임재, 주의 부흥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3. 9 이-메일 목회 서신)

이렇게 기도하라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매년 한 달여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 나눌 주제는 예배 마지막에 함께 부르는 주기도문 송의 가사인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합니다. 때로는 중간에 있는 “기도”를 빼고 주문처럼 외웁니다. 본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중언부언 습관적으로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예배나 모임을 끝내는 형식적인 문구로 사용하곤 합니다. 주기도문이 알맹이 없는 형식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번에 주기도문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속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맞춰서 우리 기도를 점검하고 바른 기도를 배우고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에서 주기도문은 산상수훈에 속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았다면,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산에 올라가셔서 백성들에게 팔복(the beatitude)과 산상수훈을 선포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뛰어넘은 새로운 율법입니다. 주기도문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로 시작하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는 마침 기도로 마무리됩니다. 주기도문의 본문은 하나님에 관한 세 가지 기도와 우리에 관한 세 가지 기도로 균형을 이루면서 차례로 진행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우리가 매일 드리는 기도에 주기도문의 정신이 깃들어 있을 때 진정한 기도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주기도문의 시작입니다. 성경이 쓰일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늘 위를 가본 사람이 없으니 우주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고, 하나님은 낮의 구름과 해, 밤의 달과 별 너머에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과 구별되시는 초월적 존재임을 가르쳐줍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모든 세상을 내려다보실 것이니 세상을 통치하는 주권자가 되십니다. 거기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능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할 뿐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1;12). “우리”는 하나님 백성의 연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시작 기도에 우리의 진실함, 간절함, 감격과 소망, 하나 됨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河-

새봄

좋은 아침입니다.

 

1.
2023년은 비가 많이 내리고
겨울 폭풍도 찾아오고
심지어 베이 지역의 높은 산에 하얀 눈이 쌓였습니다.
샌프란에 온 지 올해로 18년째인데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어쩌면 샌프란에도
약간의 눈이 내릴 수 있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우박으로 바뀌었지요.

 

찾아보니 샌프란에도 눈이 내린 적이 몇 번 있습니다.
1882년과 1887년에는 3인치가 넘는 눈이 내렸고,
가장 최근 1976년에 약간의 눈이 내렸답니다.
눈이 내린 집 앞에서 썰매를 타는 사진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번 겨울 폭풍이
기후 위기의 맥락에서 진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눈이 온 적은 있으니까요!
단지 경각심을 갖고 지도자들이나 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랄 뿐입니다.

 

무엇보다
비가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우면
집이 없는 분들이 염려됩니다.
물가가 오르니 춥고 배고픈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우리 사회 음지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께
정책과 도움의 손길이 임하길 바랍니다.

 

2.
그래도 어느덧 3월을 맞았습니다.

 

우리 지역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 날씨가 차지만,
교회 앞에 자두나무에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봄입니다.

 

너무 움츠리지 말고
새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의 순례길, 함께 걷는 순례길,
푯대를 향해서 앞으로 나가는 길이 되길 바랍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3.
2023년 새봄을 맞아서
그리고 다시 못 올 2023년 사순절 길을 걸으면서
우리 모두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어 걷는 봄 길로 살기 원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 37:4-6)

 

하나님
예수님을 따라
길을 만들고 길이 되는 참빛 식구들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3.2 이-메일 목회 서신)

2023년 사순절

올해도 어김없이 사순절(Lent)을 맞이합니다. 지난 3년여 사순절 가운데 팬데믹 이전의 모습을 가장 많이 되찾은 사순절인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역사의 추를 되돌려서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팬데믹을 맞으면서 뉴-노멀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팬데믹 이후는 치솟는 물가를 비롯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요즘 세상은 인공지능(AI)에 매료된 듯합니다. 무슨 질문을 하든지 척척박사처럼 답해주고 심지어 아이들 숙제와 대학 논문까지 불과 몇 분 내에 써서 보여주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공 지능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인류는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 것 같습니다. 기대 반 우려 반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2천 년 전 초대교회부터 지켜왔던 사순절을 맞이합니다. 복음의 은혜와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에도 일정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변해도 하나님의 일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성령의 함께 하심을 인정하고 믿기에 변치 않는 마음으로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사순절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을 앞두고 금식하면서 절제와 경건 훈련에 힘썼습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사순절은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처음에는 1년 365일의 십분의 일인 36일간의 금식을 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7세기 말 또는 8세기 초에 와서 재의 수요일부터 4일을 더하여 40일을 사순절로 지키게 되었답니다. 40일이라는 날 수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간 금식하신 것(마4:2, 눅4:2), 시내 산에서 모세가 40일간 금식한 것(출24:18, 신9:9),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에 가기 전 40일간 금식(왕상19:8)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봅니다. 40일이란 기간이 성경에서 왔음을 뜻합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기간이지만,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금욕하면서 우울하게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사순절의 끝에는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금식이 행하여졌다는 것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면서 하나님을 더 많이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꼭 금식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신앙의 성장을 도모하는 사순절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구제와 선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기억합시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기도와 말씀에 더욱 힘쓰기 원합니다. 교회와 가정, 공동체 속에서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예배합시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눕시다. -河-

순례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존 번연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중심으로
올해 표어인 <푯대를 향하여>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 모두 길을 걷는 순례자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말이 통하고 생각이 같은 길동무를 만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믿음과 소망이라는 진실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판치는
허영의 도시에서 믿음이 순교합니다.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야 함을 친구 믿음이
크리스천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소망은 크리스천과 함께 천국에 들어갑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소망을 잃지 않고 푯대를 향해서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소망을 친구로 삼은 크리스천은 행복한 순례자였습니다.

 

크리스천이 믿음과 소망 두 친구와 나눈
대화와 우정이 곧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고
그 가운데 사랑이 최고입니다.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

 

2.
지난주 점심 친교 시간,
각 테이블을 돌면서 인사를 나누는데
한 집사님이 설교를 들으면서 느낀 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순례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섰을 때,
어깨에 지고 있던 짐이 풀리고 은혜를 체험했으면
거기서 끝나거나 그 은혜가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유혹과 어려움이 계속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생명수 강가에서 쉼을 갖고 떠나는 크리스천과 소망에게
절망과 자포자기가 위력을 발휘하는
의심의 성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집사님께서 귀한 발견과 나눔을 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세심하게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3.
우리가 알다시피
신앙이나 인생이 말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 더하기 일은 이(1+1=2)처럼 공식화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유혹과 위협이 이곳저곳에 숨어있고 계속 닥칩니다.
엉뚱한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도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많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을 배웁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순례길 곳곳에
쉼터, 해석자의 집, 아름다운 집(교회), 기쁨의 산
생명수 강가와 같은 ‘미리 보는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힘으로 순례길을 가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 각자의 순례길을 걷습니다.
누구도 걸어줄 수 없는 독특하고 유일한 길입니다.
“파라-클레토스(옆에서-부르시고 이야기 걸어 주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심도 믿습니다.

 

올 한 해 근사하게 말 그대로 성공적으로
푯대를 향한 순례길을 걸어갑시다.

파이팅!!!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2)

 

하나님,
주님과 함께 걷는 순례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3. 2. 23 이-메일 목회 서신)

순례자의 길 (7)

존 번연의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을 통해서 올해 표어인 <푯대를 향하여>에 관한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허영의 도시에서 신앙의 동지 믿음(Faithful)이 목숨을 잃었기에 크리스천은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허영의 도시에서 믿음과 크리스천의 말과 행실을 보고 신앙의 순례길을 시작한 소망(Hopeful)을 만납니다. 다시 길동무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힘겨운 신앙의 순례길 길목마다 쉼의 장소를 허락하셨습니다. 해석자의 집, 크리스천이 성경 두루마리를 두고 왔던 쉼터, 예수님께서 주인이셨던 크고 아름다운 집에서의 환대에 이어서 생명수가 흐르는 강가를 만납니다. 강둑을 따라서 크리스천과 소망이 걷습니다. 기쁨의 길입니다. 강물을 마시니 지친 마음에 활기가 생깁니다. 강 양편에 각종 열매를 맺는 푸른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 열매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온전케 하는 능력입니다.

 

강가를 걷는데 앞에 두 길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좁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푸른 초장이 펼쳐진 큰길입니다. 소망은 계단을 올라가고 싶었지만, 크리스천은 천국이 가까웠으니 큰길을 가고 싶어 합니다.

 

푸른 초장이 펼쳐진 넓은 길을 가는데 앞에 절망 거인과 그의 아내 자포자기가 사는 의심의 성이 있습니다. 신앙의 순례길을 시작할 때 절망의 늪에 빠져서 혼쭐이 났는데 순례길 마지막에 다시 절망을 만난 것입니다. 절망과 그의 아내 자포자기는 크리스천과 소망을 위협합니다. 신앙의 순례길을 중단하고 심지어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깊은 감옥에 가둬버렸습니다.

 

크리스천과 소망이 이름에 걸맞지 않게 믿음을 잃고 절망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때 크리스천이 자기에게 있는 한 가지 능력을 발견합니다. 약속입니다. 크리스천이 몸에서 약속이라는 열쇠를 찾아냅니다. 의심성에 있는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만능열쇠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니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절망의 감옥을 빠져나온 크리스천과 소망이 천국이 보이는 기쁨의 산에 올라갑니다. 그곳에 있는 목자들이 크리스천과 소망을 맞이합니다. 임마누엘, 주님께서 기쁨의 산의 주인이십니다. 목자들이 천국에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마지막 관문이 남았습니다. 강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거칠게 흘러가는 강물을 건널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강물은 믿음으로 걸으면 낮아지고 그렇지 않으면 깊어지는 신비한 강물입니다. 크리스천은 거의 빠져 죽을 뻔하지만, 소망이 크리스천을 격려하면서 믿음으로 강물을 건넜습니다.

 

마침내 천국문에 이르렀습니다. 나팔수들이 크리스천과 소망을 맞이합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평안과 기쁨만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될 천국입니다. 할렐루야!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