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기도: 겟세마네 기도 (1)

습관을 따라

 

우리 교회는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한 달여 나누면서, 각자의 신앙을 점검하고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오길 다짐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라고 말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신앙 덕목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읽으며 묵상하고, 기도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임이 틀림없습니다.

 
올해 기도에 대한 연속 설교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본문으로 정했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드리신 기도입니다. 겟세마네 기도에 죽음을 앞두신 고뇌, 그렇지만 결국 하나님 뜻을 따르신 순종이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과 함께 우리가 따라야 할 기도의 모범입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공관복음서로 불리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모두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누가가 알려주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본문으로 삼고 마태와 마가복음을 참고하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누가가 다른 두 복음서에서 빠진 부분까지 세심하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습관대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가셨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실 때마다 제자들과 더불어 감람산에 가신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3마일 떨어진 베다니 나사로 집에 가셔서 주무시기도 했지만,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시고 제자들과 더불어 하나님 말씀을 나누셨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례(ritual)였습니다.

 
“습관대로”에서 습관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에토스>입니다. 여기서 윤리를 가리키는 영어 <ethics>가 나왔습니다. 법이나 규칙에 따라 정해진 관습을 가리킵니다. 개인적으로는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 습관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습관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성품이 됩니다.

 
신앙에서 습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습관대로 감람산에 가셨듯이, 어떤 장소나 상황이 신앙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습관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집에 기도처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 가면 기도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나 상황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으니, 기도가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기도하거나 기도가 특별한 이벤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수시로 기도합니다. 어려울 때는 당연히 하나님을 찾고, 좋은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함께 나누면서 기도가 습관이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河-

 

하나님 형상 (2)

1.
지난주 목요 서신에서
버팔로와 남가주 총기사고를 보면서
하루속히 총기 규제가 이뤄지길 촉구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이 귀하기에,
사람에게 총을 쏘는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텍사스의 한 초등학교에서
19명의 아이들과 두 명의 선생님이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2012년 코네티컷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20명의 아이들과
8 명의 어른이 희생당한 사고가 있은 지
정확히 10년 만에 발생한 사고였기에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그때 모든 정치인이
총기 규제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엄격한 총기 규제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총기 협회(NRA)의 로비를 비롯한
정당과 정치인들이 각자의 이익을 좇느라
실제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입니다.

 

총기를 구입하는 사람의 배경(background)을 세밀하게 점검하고,
총기 거래 과정을 명확하게 추적하려는 법안들이
민주/공화 양당 간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총기 규제가 상대적으로 엄격하지만,
블랙마켓에서 은밀히 거래되는 총기가 워낙 많고
아직도 법에 허점(loopholes)이 많기에 아슬아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
미국은 수정 헌법 2조에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무기 소지를 허용하기에 총기 규제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헌법을 고쳐서라도
강력한 총기 규제를 해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희생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18세 이상의 성인에게 총기 구입을 허용하는 것에 연령을 높이거나,
불법으로 총기를 거래하는 것을 엄격히 단속하고,
위험한 총기는 GPS 추적 장치를 탑재하도록 의무화하거나
요즘같이 AI가 발달한 세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어느 정도의 확실한 규제가 가능할 것입니다.

 

3.
살기 좋은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모든 어른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지혜를 모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해야겠습니다.
행동해야겠습니다.

 

희생된 아이들의 천진난만했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눈물이 흐릅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들의 부모님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아픔은 오죽하겠습니까?
주님의 위로와 소망을 구합니다.

 

이 땅을 회복시켜 주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편 93:13)

 

하나님,
하루속히
강력한 총기 규제가 이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5. 26 이-메일 목회 서신)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연속설교 사이에 찬송가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는 2006년 개정된 21세기 찬송가입니다. 그 이전에는 교단별로 선교사들이 편집한 찬송가를 사용하다가 1983년에 통일 찬송가가 나오면서 한국 교회 전체가 같은 찬송가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교단마다 다른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으니 통일 찬송가를 갖게 된 것은 한국 교회의 자랑입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645곡이 실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 109곡이 한국인이 작곡하거나 작사한 찬송입니다.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처럼 복음성가로 불리다가 찬송가에 편입된 찬송도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반대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한국 교회가 같은 찬송가를 사용한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새 찬송가에 한국 곡이 추가되었어도, 여전히 외국 찬송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도 1800년대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찬송가들이 많습니다. 당시는 미국에서 기독교가 거의 국교에 가까울 정도로 부흥했을 때입니다. 그때 만들어진 찬송가에는 당시의 영성과 신앙이 그대로 깃들어 있기에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기독교 음악의 고전(클래식)이 된 것입니다.

 
지난주 <예수 사랑하심을(Jesus loves me)>에 이어서 오늘은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찬송가의 작사가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는 1820년에 태어나서 95세까지 살면서 무려 8천여 곡의 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대통령들과 교감을 가질 정도로 당대의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작곡가 퓌비 냅(Phoebe Knapp) 역시 500여 곡의 찬송을 작곡한 교회 음악가였습니다.

 
크로스비는 태어나서 6개월 되었을 때 눈에 염증을 앓았습니다. 그때 의사가 그의 눈에 겨자즙을 붙이면서 시력을 잃고 평생을 시각 장애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크로스비는 신앙으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크로스비가 여덟 살 때 처음 지은 찬송시입니다: “앞을 볼 수 없어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요. 나는 이 세상에서 감사하며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찬송가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역시 크로스비의 신앙 고백입니다. 앞을 볼 수 없어도,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눈에 그리면서 완전한 기쁨과 하늘의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크로스비는 신앙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뛰어넘었습니다. 온전하고 참된 신앙을 사모하면서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신앙의 힘이 매우 큽니다. 할렐루야! -河-

하나님 형상 (1)

1.
요즘 연거푸
총기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뉴욕주 버펄로에서는
인종 차별주의자인 18세 청년이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생중계까지 시도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엊그제 주일에는
남가주에 있는 대만 회중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친교 하던 중에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같은 대만 출신 60대 남성이
교회에 모여 있던 연로한 성도님들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산호세에서도 총격 사건이 있었고
쉬지 않고 총기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엇보다 인종차별과 연결된
혐오 범죄여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2.
우크라이나에서는
80여 일 이상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임시 매장지에서 슬프게 우는 병사의 어머니,
도심에 나뒹구는 시신들,
–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의 목숨과 인간의 존엄성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언론이나 유튜브 영상을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넘어서 허무할 정도입니다.

 

3.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비록 죄로 인해서 그 형상이 망가지고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서 형상이 지워졌지만,
본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성경은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열외 또는 배제는 없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 은혜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미리 은혜를 주셨고
그 은혜에 반응하면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존귀합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한 번뿐인 생명은
그 누구도 빼앗을 권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성 모독입니다.

 

그러니 총격 사건과 전쟁이
귀한 생명을 무차별 앗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요 반항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반인륜적 행위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탄식이 나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뿐입니다:

“주님, 이 땅에 평화를 주소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하나님,
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손으로 회복시켜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5. 19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 사랑하심은

2022년 우리 교회 표어는 “새롭게 시작합시다”입니다. 밝은 세상이 다시 찾아오길 기대하면서 정한 표어입니다. 하지만, 쉽게 새로운 일상이 찾아올 것 같지 않기에 주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기대하며 예레미야 애가 말씀을 함께 나눴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나라가 망하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의 슬프고 깜깜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드디어”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노래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빛을 보며 부른 신앙의 고백이었기에 팬데믹을 사는 우리의 현실을 애가 말씀에 대입했습니다.

 
이어서 사도행전 말씀을 나눴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 행전”이라는 별칭대로 초대 교회에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현재 우리 시대와 달라서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임한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너무 큽니다. 베드로나 바울과 같은 초대교회 사도들의 헌신을 따라갈 수 없어서 도리어 기가 죽고 비현실적으로 들립니다. 그래도 같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기에 사도행전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말씀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 살펴본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이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지 않아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시아에서의 전도가 막힌 것도 유럽과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바울이 도착한 아덴(아테네)은 말 그대로 세속 도시였습니다. 철학의 도시이기도 한 아덴에 복음이 들어갈 공간이 적었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맞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레오바고 광장의 전도에서 무려 다섯 명이나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 영혼의 귀함을 바울이 보여준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도 아테네와 다를 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즐거움과 물질을 쫓습니다. 하나님 없이 선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그리고 부활이 필요한 이웃들이 꼭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사랑의 고백이고 표현입니다. 오늘 나눌 <예수 사랑하심은 성경에 써 있네>라는 찬송가 해설이 예레미야 애가와 사도행전에 깃든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소설 속에서 그려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멋진 찬송가로 거듭 태어나서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힘을 주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같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습니다.-河-

사도행전 (11)

아덴: 세상 속에서 (2)

 

 

아덴(아테네)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본 바울이 회당과 시장(아고라).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하거나 믿는 것과 전혀 다른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생소했습니다. 또한 그리스 철학과 문화가 최고라고 믿었기에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무시했습니다. 바울을 말쟁이, 이방신을 소개하는 잡상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교만입니다. 교만은 모든 면에서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이 바울을 붙들어서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데려갔습니다. 아레오바고는 원래 법정과 같은 곳이었는데 바울이 아덴에 갔을 때는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하면 아레오바고의 관리들이나 청중이 판단하는 공론의 장이었습니다.

 
아레오바고는 “새로운 가르침” “이상한 것”에 관심이 컸습니다:”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21절). 첨단 학문이나 종교 또는 이론을 청취하는 곳입니다. 자격지심과 교만한 도시 아덴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갖고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만도 대단한 일입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광장에 서서 아덴 사람에게 맞춘 복음을 전합니다. 자칫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없기에 바울의 연설을 전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면서 십자가의 죽음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아덴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느낀 것을 말합니다. 아덴에 신전과 신의 형상이 많은 것을 보니 종교심이 큰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글귀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알지 못한 채 믿고 섬기는 신이 곧 하나님이라고 알려줍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진정한 신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천하를 심판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심판 후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려주는 표시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놓고 아덴 사람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조롱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어했습니다. 바울을 다시 찾아와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훗날 아테네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알려진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성과 또 다른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면, 결실이 있게 마련입니다. 할렐루야! -河-

 

5월은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한국식으로
5월 5일 어린이날입니다.

 

올해는
100번째 맞이하는 어린이날이랍니다.

 

어린이날 노래가 생각납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

 

팬데믹이 물러가고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찾아오길 기도합니다.

 

2.
5월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가 Mother’s Day입니다.

 

자녀들 선물에 부모님 선물 또는 용돈까지
젊은 부모님들은 허리가 휘는 5월초가 되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자녀들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하고 큰 선물이니
기꺼이 기쁘게 섬기는 어린이날이요 어버이날입니다.

 

Mother’s day에 우리 교회에서 부르는

어머니 마음이라는 노랫말은 늘 감동을 줍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특별히, 팬데믹 동안 얼굴을 뵙지 못한
조국에 계신 부모님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3.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기까지 많은 스승이 계셨습니다.
꼭 학교 선생님이 아니어도,
우리를 빚어주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스승의 노래도 기억합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람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4.
베이지역에서 5월이 되면 건기가 시작되지만,
한국의 5월은 온 세상이 찐한 초록으로 물드는
하늘까지 맑은 청록의 계절입니다.

 

부활절 이후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생명이 넘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죄짐을 모두 지신 친구요,
따라야 할 스승이요,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아버지) 이시니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푸르른 계절 5월을 맞아서
우리 주변을 사랑으로 섬기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변함없이 푸른 초록 색깔이길 바랍니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시 92:13)

 

하나님,
5월을 맞는 참빛 식구들에게
변치 않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5. 5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