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한국식으로
5월 5일 어린이날입니다.

 

올해는
100번째 맞이하는 어린이날이랍니다.

 

어린이날 노래가 생각납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

 

팬데믹이 물러가고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찾아오길 기도합니다.

 

2.
5월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가 Mother’s Day입니다.

 

자녀들 선물에 부모님 선물 또는 용돈까지
젊은 부모님들은 허리가 휘는 5월초가 되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자녀들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하고 큰 선물이니
기꺼이 기쁘게 섬기는 어린이날이요 어버이날입니다.

 

Mother’s day에 우리 교회에서 부르는

어머니 마음이라는 노랫말은 늘 감동을 줍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특별히, 팬데믹 동안 얼굴을 뵙지 못한
조국에 계신 부모님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3.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기까지 많은 스승이 계셨습니다.
꼭 학교 선생님이 아니어도,
우리를 빚어주고, 가르쳐준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스승의 노래도 기억합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람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4.
베이지역에서 5월이 되면 건기가 시작되지만,
한국의 5월은 온 세상이 찐한 초록으로 물드는
하늘까지 맑은 청록의 계절입니다.

 

부활절 이후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생명이 넘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죄짐을 모두 지신 친구요,
따라야 할 스승이요,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아버지) 이시니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푸르른 계절 5월을 맞아서
우리 주변을 사랑으로 섬기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변함없이 푸른 초록 색깔이길 바랍니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시 92:13)

 

하나님,
5월을 맞는 참빛 식구들에게
변치 않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5. 5이-메일 목회 서신)

사도행전 (10)

아덴: 세상 속에서 (1)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난 바울과 실라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루스드라가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바울 일행은 북쪽에 위치한 갈라디아 지방으로 올라갔고 무시아라는 지역에서 비두기아 지방으로 가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성령께서 길을 막으십니다. 결국 드로아라는 항구 도시에 머물러 있었는데, 마게도냐 사람이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고 요청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에게 나타난 사람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라고 보기도 합니다. 누가가 바울 일행에게 합류해서 “우리”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16장 11절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환상 속의 인물과 현실의 누가와 연결하는 것에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본 환상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건너갑니다. 복음이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과 땅끝까지 전파되는 순간입니다. 이때부터 바울 일행은 로마의 주요 도시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입니다. 우선, 빌립보,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인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를 거쳐서 우리가 살펴볼 아덴(아테네)에 도착했습니다.

 
베뢰아에서의 전도는 신사적이고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순조로웠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루스드라에서 그랬듯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베뢰아까지 내려와서 바울을 핍박하니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만 배를 태워서 아덴으로 보낸 것입니다.

 
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면서 철학, 종교, 예술과 문화 등으로 유명한 아테네를 둘러보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아덴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고, 도시 전체가 우상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심하게 격분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바울이 아덴 선교를 시작합니다. 유대인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아골라(시장)에 날마다 나가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했습니다. 교만한 아테네 사람들은 바울을 이상한 종교를 전하는 잡상인 취급했지만, 바울은 꿋꿋하게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새로운 생각을 발표하는 곳으로 유명한 아레오바고 광장에 섰을 때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맞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향한 바울의 열심이 특별합니다. -河-

사이 잇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루스드라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바울의 후계자가 된 디모데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 인이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신실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유대인으로
헬라인과 결혼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가운데는
다른 민족과 결혼한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유대인 가정의 신앙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딤후 1:5)

 

구약 성경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고 있었기에
바울이 설명하는 예수님을 금방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로 믿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사전지식, 기초지식,
신앙도 초기 교육이 중요함을 디모데를 통해서 배웁니다.

 

2.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디모데의 몸에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피가 함께 흘렀습니다.
유대인의 밭에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의 씨가 뿌려졌으니
신앙적으로 두 종교가 섞여 있습니다.
어쩌면 경계선에 서 있던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디모데는
유대인은 물론 헬라인을 위한 전도에 딱 맞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제안으로 몸에 할례까지 받음으로
유대인의 비난도 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문화 가정들이 보편화되었고
부모들이나 자녀들이 제한 없이 자기 인생을 펼쳐 나가지만,
바울과 디모데 시절에는 쉽지 않은 선택이고 삶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디모데를 선택하셔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 선교 사역을 이뤄 가셨습니다.
경계선에 있는 인물이 아닌,
두 민족과 종교를 통합하는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간격과 차이를 이어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3.
사실 우리도 경계선에 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 살다 보니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말 그대로 어중간한 모습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거나,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놓고도
딱 부러지게 잘하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처하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걷는 인생길 자체가 경계선이요
모호한 길을 걷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 여정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사이를 잇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디모데처럼 우리를 사용하시길 기대합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의 장점이 발휘되고,
여기저기, 이것저것을 통합하고 화평케 하는 삶을 살고
우리의 모든 삶이 결국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처지를 아시고,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주님의 역사를 써 가실 것입니다.

 

하나 되게 하시고, 사이를 잇게 하시고,
모든 것을 들어서 참되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4월을 마감하고 새달 맞읍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께 드려지고
주께서 쓰시는 것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4. 28 이-메일 목회 서신)

 

사도행전 (9)

하나님께서 하신 일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이 부활절 둘째 주일입니다. 성령 강림절까지 부활절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는 물론 우리 신앙의 기초석입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신앙과 삶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서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도한 제자들처럼 우리도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기대하면서 부활절을 살기 원합니다.

 
다시 사도행전 본문으로 돌아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떠났던 1차 전도 여행은 말 그대로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안디옥 교회에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하고 성도들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안디옥 교회에 가르쳤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들과 논쟁했지만, 결국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지도자로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자문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과 바나바가 그곳 성도들에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지만, 예루살렘에도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는 예수님을 믿은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임할 수 있고, 할례나 모세의 율법이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대신 우상을 섬기지 말고, 우상에게 드려진 피와 이방 종교의 음란한 예식에 참여하지 말라는 조건을 만들어서 바울과 바나바 편에 안디옥 교회에 보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을 성도들에게 전하니 분열되었던 교회가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 편지를 들고 자신들이 복음을 전했던 소아시아 지역을 방문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지난번 전도 여행에서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간 바나바의 조카 마가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결국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온 지도자 실라와 소아시아로,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자기 고향 구브로로 떠났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바울이 돌에 맞아서 죽을 뻔했던 루스드라를 다시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라고 불렀던 후계자 디모데를 만납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루스드라에 왔을 때 예수님을 믿었고, 약 5년이 흐른 가운데 칭찬받는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디모데가 바울의 후계자가 된 것에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관통하고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河-

 

앞을 향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부활절을 보내고
이제 부활 이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였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요
진리였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제자들은 능력 있는 사도가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2.
살아생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고하셨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 자
제자들이 모두 흩어지고
두려움에 떨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을 향하는 열린 세상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악한 세력을 이기신
우주적인 승리였습니다.
과거의 청산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었습니다.
미래를 향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아담의 죽음을 해결하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었습니다 (고전 15:21).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죽으심은 과거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활은 십자가 죽으심의 완성입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은혜를 알려준다면
부활은 영원히 펼쳐진 희망을 살게 합니다.

 

4.
이제 우리도 부활을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고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소망 가운데
앞을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버릴 것, 정리할 것,
미련을 갖고 양손에 쥐고 있던 욕심과 집착 등등
과거를 청산하고
앞을 향해서 부활을 살기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하나님,
소망 가운데
부활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4. 21 이-메일 목회 서신)

부활을 삽시다

고난 주간을 지내고 부활의 아침을 맞았습니다. 팬데믹 이후 세 번째 맞는 부활절입니다. 지난 두 해와 달리 2022년 올해는 비교적 많은 참빛 식구들과 교회에서 예배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는 물론 온 세상이 코비드 바이러스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6백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미국만 98만명 이상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가족과 친지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감히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고난 주간을 마치고 부활절을 맞지만, 지난 2년여 자체가 고난의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올해 부활을 기점으로 세상에 희망의 빛이 비치길 다시 한번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지고 죽으신 현장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다는 신성 모독으로, 로마 제국 입장에서는 로마 황제를 배제하고 식민지 유대의 왕이라고 불렀다는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이 이유일 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자 파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매년 성전에 나가서 드리던 제사를 “한 번에 영원히(once and for all)” 해결하심으로 더 이상 성전의 제사가 아니라 믿음과 은혜로 하나님께 나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고 외치므로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셨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죽음이 판치는 세상에 생명의 빛이 되셨습니다. 죽음을 지배하는 악한 세력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구원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로마 제국은 물론 구약 시대부터 죽을 죄를 지은 사람들을 나무에 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용서와 생명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것을 역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이 없는 영원한 세상을 개척하시고 말 그대로 온 세상의 왕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십자가를 지나서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염려, 근심, 두려움, 그리고 죄를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온 세상에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죽음의 세력과 씨름하는 세상에 부활의 빛과 능력이 비추길 기도합니다. 우리 안에도 부활의 능력과 생명이 임하고 부활을 살기 원합니다. “예수 부활하셨습니다”-河-

2022년 고난주간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도 어김없이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함께 나눴듯이
“세상에 쉬운 일이 없습니다”
– 행복한 순간은 잠시일 뿐,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는 에덴 이후의 세상은
크고 작은 어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물론, 파도가 밀려오지 않기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어려움에서 제외된다면
그것은 자연법칙 위반이자 지나친 이기주의입니다.

 

어려움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밀려오는 파도를 어떻게 마주하고 넘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어려움을 현명하게 풀어나갈
힘과 용기 그리고 지혜를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더욱 깊이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2.
사도 바울이 자기가 개척한 교회들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을 겪게 될 것이니
단단히 준비하고 믿음 안에 거하라고 부탁한 말씀을 다시 생각합니다.

 

물론, 초대 교회의 어려움과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다를 수 있고
우리의 어려움이 꼭 예수님을 믿는 데서 오는 특별한 어려움이기보다
인생길을 가면서 마주치는 일반적인 어려움일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행복, 완전함, 위로와 소망을
꼭 간직하면서 세상을 사는 것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2022년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아사셀의 염소”라는 구약의 전통이 있습니다(레16장).
염소 하나를 정해서 그곳에 이스라엘의 죄를 모두 얹고
광야로 내보내는 예식입니다.

 

혹자는 여기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대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셨기에
십자가 앞에서 괴로워하시고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뤄지길 원하십니다.

 

절대 쉽지 않은 그 길을 가셨습니다.

 

4.
팬데믹 막판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멀리서 들려오는 전쟁의 참상 때문인지
게다가 “쉬운 것이 없다”는 우리 각 개인의 현실까지 겹치니
올해 고난주간에는 아세살 염소와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기보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모든 짐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우리 주님을 의지하고,
단지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우리 자신과 삶을 얹어 놓고
말 그대로 공짜로/은혜로 생명의 부활절을 기다립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참으로 큽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하나님,
우리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구하며
오늘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4. 1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