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의 문이라

에고 에이미 (3)

 

신약성경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신 일곱 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헬라어 <에고 에이미(나는…I am)>로 시작합니다. 처음 시간에 “나는 생명의 떡이라,” 지난주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예수님의 <에고 에이미>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몸을 주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생명의 빛으로 밝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것을 말씀하실 때는 초막절이라는 이스라엘의 3대 명절 기간이었습니다. 낮에는 성전에 물을 붓고, 밤에는 불을 켜는 초막절 기간이 끝나면서,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셨음을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빛은 절대로 꺼지지 않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는 세 번째 예수님의 <에고 에이미>는 “나는 양의 문이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유대인의 명절 가운데 하나인 수전절(하누카) 기간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가운데 한 명인 셀류시드 왕조의 안키오커스 4세(주전175-164)의 통치를 받을 때였습니다. 안키오커스는 이스라엘은 물론 정복한 민족들에 헬라 문화를 강요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것은 물론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헬라 제국에 뇌물을 바치고, 대제사장의 직분을 사고파는 일을 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을 헬라식으로 바꾸는 데 앞장섰습니다. 예루살렘은 혼란에 빠졌고, 커다란 신앙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20여 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 데모인에 살고 있던 제사장 맛다디아와 그의 다섯 아들이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하스몬 왕조(주전143-주후63년)를 세웠습니다. 맛다디아의 셋째 아들 유다 마카비(“망치”)가 혁명을 주도했기에 마카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했을 때, 성전에는 하루 분 기름밖에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여드레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마카비 형제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는 유대인의 절기가 “수전절/하누카(봉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실 때가 바로 유대인의 절기 수전절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도 마카비 시대의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에 아부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양을 돌보는 목자가 없었습니다(겔34장):”내 양 떼가 노략 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겔34:8). 그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안전하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가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河-

도마뱀

좋은 아침입니다.

 

1.

저희 부부가 가끔 산책하는

동네 호숫가 산길에서 마주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사슴 가족이 대표적입니다.

엄마 아빠 아기 사슴들이 사뿐사뿐 가볍게 산을 탑니다.

호숫가에는 오리 떼가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요즘은 터키 또는 타조 비슷한 커다란 새들도 보입니다.

 

산책길 초입부터 우리를 반기는 작은 친구도 있습니다.

바로 도마뱀입니다.

요즘처럼 날씨가 더울 때는 더 많이 눈에 뜁니다.

 

제가 어릴 적 살던

시골 마을에도 도마뱀이 있었습니다.

학교가는 길에도 가끔 출몰했습니다.

 

도마뱀을 잡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똑똑해진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어서,

도마뱀보다 잽싸고 빠른 아이들은

도마뱀을 잡아서 주머니에 넣기도 했습니다.

 

산책길에 도마뱀을 만나면,

어릴 적 좋은 추억 때문인지 반갑습니다.

 

2.

도마뱀은

지구상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파충류라고 합니다.

따라서 종류도 매우 많습니다.

카멜레온이나 이구아나도 도마뱀 종류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도마뱀은 “자절(自切, Autotomy)”이라고 불리는

위험한 상황에서 연골로 이뤄진 꼬리를 자르고

살아남는 생존 기법으로 유명합니다.

신체 구조상 꼬리 자르기가 여러 번 가능하지만,

재생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나 시간,

기형적으로 재생되는 확률을 고려하면

그 횟수가 제한적이랍니다.

 

3.

성경에도 도마뱀이 두 번 나옵니다.

사막이 많고 날씨가 더운 팔레스타인 지역에

도마뱀이 많았을 텐데 의외로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레위기 11장 29-30절입니다.

고대 히브리어를 현대의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카멜레온까지 서너 가지 종류의 도마뱀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땅에서 기어다니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먹을 수 없습니다. 닿기만 해도 부정합니다.

성경에 도마뱀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둘째는 잠언 30장 24-28절입니다.

레위기와 달리 잠언에서는

땅에 사는 작지만, 지혜로운 짐승들과 함께 등장합니다.

힘이 없지만 여름에 부지런히 먹을 것을 준비하는 개미,

연약하지만 바위틈에 집을 짓고 사는 사반(바위 토끼),

손에 잡힐 정도로 작지만, 웅장한 왕궁에 사는 도마뱀입니다.

 

도마뱀이

땅에 사는 지혜로운 짐승들의 반열에 당당히 올랐습니다.

게다가 임금님의 거처인 왕궁에 사는 짐승으로 묘사됩니다

도마뱀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똑똑해진다는 전설이 생각납니다.

 

4.

뱀띠해를 맞던 올해 초,

신앙적으로 비둘기처럼 순수해야 하지만,

세상에서는 뱀처럼 지혜로워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도마뱀처럼

세상 한 가운데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도마뱀에게 끈질긴 생명력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도 도우시고 살아남을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 주시는 지혜와 힘으로 오늘 하루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상을 삽시다.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넷이 있나니…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잠언 30:24,28)

 

 

하나님,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9. 4 이-메일 목회 서신)

나는 세상의 빛이라

에고 에이미 (2)

 

“에고 에이미(I am)” – 예수님께서 직접 밝히신 일곱 가지 “나는 누구인가?”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소개하시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떡은 예수님의 몸(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의 몸을 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신 사랑이요 희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울 두 번째 “에고 에이미”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입니다:“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빛은 어두움의 반대입니다. 어두움은 또한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죽음을 몰아낼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주님의 백성들은 어두움에 다니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기적을 표적(sign)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기적 자체를 넘어서 기적이 주는 교훈을 자세히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생명의 떡으로 이어진 것이 대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셨을 때도 말씀하신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3대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을 맞아서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초막절은 추수감사절에 해당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였습니다. 초막절에는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떠서 제단에 붓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초막절이 끝날 즈음, 성전에 물을 붓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 여기서 생수의 강은 실로암 연못의 물을 넘어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가리킵니다.

 

낮에는 제단에 물을 붓는 예식을 행하였다면, 밤이 되면, 성전에 불을 밝혔습니다. 성전의 헌금함 앞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셨는데(8:20), 성전 헌금함은 여성들까지 들어갈 수 있는 여성의 뜰에 있었고 이곳에서 초막절 불을 밝혔습니다. 초막절이 끝나니 불이 꺼졌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초막절에, 제단에 물을 붓고 밤에 불을 켜는 예식은 구약 성경에 기초한 전통이었습니다(슥 14:7-8). 무엇보다 빛에 대한 성경 말씀은 곳곳에 등장합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예고한 빛이 세상에 오셨음을 예수님께서 알리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어두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세상에 깃든 어둠을 몰아내고 생명을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河-

 

한 책의 사람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쉽게 읽히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내용이 어렵고 시대 상황과 동떨어졌습니다.

성경보다 더 재미있는 글이나 영상들이 넘쳐나니

성경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하나님께서 현대에 맞는 성경을 다시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요즘 아침마다 읽는

에스겔을 비롯한 예언서입니다.

거칠고 어렵습니다.

비슷한 심판 예언이 반복되고,

공개적으로 읽기 난감한 대목도 있습니다.

 

그래도 40대 이상은 성경에 친숙합니다.

성경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30대 이하로 내려가면 성경은

이상한 책일 수 있습니다.

번역은 어렵고, 문장은 낯설며,

무슨 말인지 알기 힘듭니다.

흥미를 잃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해석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저는 성경을 역사적으로 읽는 훈련을 받아왔고

(역사비평, historical criticism)

여전히 역사적 읽기를 즐깁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상력을 동원한 본문 해석,

독자를 고려한 성경 읽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자기 마음대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더 깊은 실력과 내공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쉽지 않은 과업입니다.

 

하지만 요즘 각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갖춘 마니아(mania)들을 보면서,

성경을 사랑하는 마니아들도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손에 들고 가슴에 품고 씨름하는 성경 덕후들이지요.

성경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보화를 발견하며

성경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2.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한 책의 사람(homo unis libro, a man of one book)”으로 불렸습니다.

 

여기서 “한 책”은 바로 성경입니다.

그렇다고 웨슬리가 성경만 읽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모든 책을 사랑하는 진정한 독서가였습니다.

원시 의학에 대한 책을 직접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웨슬리는 세상에 일만 가지 책이 있어도

성경이 그 가운데 최고라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웨슬리는 우리가 읽는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같은 성령이 역사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웨슬리가 활동하던 19세기도 오늘날에 못지않게

이성과 과학은 물론 산업혁명까지

성경보다는 세상 학문과 기술문명이 인기를 끌 때였습니다.

 

그러니, 웨슬리는 세상 한 가운데서

성경의 진수(眞髓)를 맛보았고 경험한 것입니다.

 

혹자가 “요즘 세상에 누가 성경을 읽겠습니까?

그냥 갖고 있는 책이지…”라고 말한다면,

“아니요, 우리는 여전히 성경을 사랑하고 읽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성경을 두고 누가 뭐라고 해도,

성경이 아무리 어렵고 읽기가 곤란해도

그냥 한 책의 사람이길 원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편 19:8)

 

 

하나님,

주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8. 28. 이-메일 목회 서신)

나는 생명의 떡이라

에고 에이미 (1)

신약성경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신 일곱 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헬라어 “에고 에이미(나는…I am)”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소개하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표적(sign)과 함께 하나님에게서 오신 예수님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7주에 걸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설명하시는 요한복음의 “에고 에이미”를 한 가지씩 살펴볼 예정입니다. 헬라어 “에고 에이미”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who I am)”(출3:14)라고 하신 것과 맞물립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만 자신을 계시하셨다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에고 에이미”는 “나는 생명의 떡이라”(요 6:35)입니다. 요한복음 6장은 71절이나 되는 매우 긴 말씀입니다. 또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표적(sign)이라고 부릅니다. 기적이 뜻하는 의미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기적에 이어서 기적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말씀(해설)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빈 들에서 어린아이가 갖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니 모두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라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먹거리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물질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이 한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은 신기한 물(magic water)을 구한 것처럼,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백성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신기한 떡(magic bread)을 얻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자리를 뜨십니다.

 

이튿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생을 주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그리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물론 제자들도 예수님 말씀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백성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먹고 마시는 것, 즉 세상의 물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떡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생각 속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셔서 백성들을 살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그를 믿는 자를 위해서 내주시는 생명의 떡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河-

진실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침마다 읽는 에스겔서에서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고 쫓는 것)와

진실을 버린 모습을 질타합니다.

 

에스겔서뿐만 아니라

구약 예언서에서 알려주는 네 가지 핵심 메시지가 있습니다:

진실(에메트), 정의(미쉬파트), 공의(차디카), 인애(헤세드)입니다.

 

진실은 거짓이 없는

솔직함입니다. 정직함입니다.

숨기는 것이 없고, 꾸미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솔직한 모습으로

심지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갑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이웃과 다른 사람 앞에서

숨김없이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줍니다.

진실한 신앙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진실은

그 다음 세 가지 덕목의 기초가 됩니다.

정의는 거짓 재판을 없애고, 공평하게 판정하는 것입니다.

약자의 편에 서면 진실과 정의는 실천됩니다.

공의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똑바로 정돈된 상태입니다.

하늘 향해서 부끄러움이 없는 진실함이 곧 공의입니다.

진실이 빠진 인애(사랑)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거짓 없는 사랑이 곧 참사랑입니다.

 

2.

요즘 세상은 진실이 많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가짜가 판을 칩니다. 거짓말이 진실을 덮고 있습니다.

유튜브 쇼트가 자꾸 올라오는데,

진짜 같은 가짜가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자연재해도 가짜로 만들어서 올리는데

진짜 같아서 깜빡 속을 때도 있습니다.

 

가짜 정보도 난무하고 있습니다.

가짜일수록 화려하고 그럴듯하기에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귀를 속이고

심지어 마음과 생각을 속입니다.

 

AI가 발달하면서,

진짜 같은 가짜가 더욱 많아질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가 매의 눈을 갖고 살피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 내면이 진실하길 원합니다.

참됨이 거짓을 이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 없기를 바랍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흠과 티가 많아서 주름이 깊어도

솔직하길 원합니다.

 

생명과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목에 매며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3:3-4)

 

하나님,

진리가 승리하는 세상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8. 21. 이-메일 목회 서신)

강하고 담대하라 (6)

시편 27편을 통해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정확한 확인은 어렵지만, 체로키 인디언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우리 마음에는 좋은 늑대와 나쁜 늑대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쁜 늑대는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열등감 좌절을 가져다주고, 선한 늑대는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겸손함 관대함 신뢰를 선물한다고 했습니다. 손자가 두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물었을 때, 할아버지는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인디언 할아버지의 현명한 대답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틈틈이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지 점검했고,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오면 제가 나쁜 늑대에게 먹이를 주었음을 반성했습니다. 매우 현실적인 지혜였습니다.

 

팔로 알토에서 목회했던 존 오트버그(John Ortberg) 목사님의 <하나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계십니다(God is closer than you think)>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여기서 목소리는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가지 일까지 포함합니다.

 

예를 들면, 재정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은 부자들을 질투하고 자신의 삶을 비관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어려운 중에도 감사를 잃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냅니다.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명예를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고 사람들을 부려 먹습니다. 다른 사람은 동료들의 만족과 성장을 위해서 함께 노력합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입니다.

 

오트버그 목사님은 실존 인물이었던 존 내쉬(John Nash)의 인생을 소재로 삼은 “뷰티플 마인드(A Beautiful Mind)”라는 영화도 소개합니다. 피해망상증을 앓았던 주인공은 있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고, 두려움에 떨며 살아갑니다. 수학자였던 내쉬가 국방부의 군사 작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누군가 자기를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도 주인공은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가운데서도, 좋은 말을 듣고 좋은 생각을 하면서 이뤄낸 업적이었습니다.

 

오트버그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뷰티플 마인드가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올 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경청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예”라고 답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 때 마음과 생각이 변화됩니다. 우리에게 “뷰티플 마인드”가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평강을 누릴 때입니다(롬8:6).-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