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은혜 (2): 느헤미야 8장 5-8절
말씀의 은혜 (2): 느헤미야 8장 5-8절
<기도와 말씀으로>라는 우리 교회 표어에 맞춰서 느헤미야 8장 말씀을 차례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한자어로 “학습(學習)”이라고 합니다. 두 글자를 떼어서 생각해 보면, “학(學)”은 배우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 또는 필요한 것을 배웁니다. 이론을 배우는 것입니다. “습(習)”은 배운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삶의 기술로 적용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공부(배움)는 학(學)을 넘어서 습(習)에 이를 때 온전해집니다.
저의 경우 이론적인 것을 소개하고 알려드리는 것은 열심히 실천하는데, 참빛 식구들께서 공부하신 것을 습득하고 그대로 따라 사시는 지 여부를 점검하는 것에 소홀하고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일일이 검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저의 성품 탓도 있습니다. 저는 부족해도 참빛 식구들의 공부가 “학(學)”에 그치지 않고 “습(習)”까지 이르러서 온전한 학습(學習)이 되길 바랍니다.
느헤미야 8장은 70년 바빌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 성곽을 완공한 후에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갖는 말씀입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백성이 모였습니다.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책을 갖고 새벽부터 정오까지 백성들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백성들은 에스라가 읽어주는 모세의 율법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히브리어가 어눌한 백성들을 위해서 레위인과 지도자들이 통역하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에스라가 나무로 만든 단상에 서서 율법책을 펼치면 모든 백성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면,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했습니다. 얼굴이 땅에 닿을 정도로 몸을 굽혀서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바빌론에서 포로로 있으면서 고향 예루살렘에 돌아갈 것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린 70년이었습니다. 처음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어르신들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고, 새로 태어난 아기가 70이 되었습니다. 긴 시간인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초라합니다. 아직 성전도 없습니다. 여전히 삶이 피곤하고 힘에 겹습니다. 바빌론에 있을 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고향 예루살렘에 돌아왔고, 성곽을 완공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온 민족이 모인 집회 한 가운데는 에스라가 읽고 있는 “모세의 율법책” 즉 하나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 교회의 예배에 말씀의 은혜와 능력이 넘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감동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위해서 기도할 때
구약 성경 아모스를 펼쳐 읽습니다.
아모스는 남유다 예루살렘 출신인데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에 올라가서 활동했습니다.
텃세가 심했습니다.
게다가 아모스의 예언은 집요했고, 거칠었고
그릇된 것을 고발하고 지적하기에 충분히 예리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잘 살 때입니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했고 강한 자들이
약한 백성들을 약탈해서 자기들의 배를 채웠습니다.
공의(바름)와 정의(공평)가 무너졌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낱낱이 지적하고 고발합니다.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
예수님은 어떠셨을까요?
참 빛이 세상에 왔지만,
어두운 세상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빛을 빛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치부가 온 세상에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수치심이라도 있었으면 다행입니다.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
더 이상 어두움에 거하지 못하는 것이 싫었을 것입니다.
어두움의 수렁에 빠져버린 것이지요.
어두움 속에서는
거짓말을 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공의와 정의를 무시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자기 배만 채우면 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과 같은
거친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악의 실체요 본성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3.
지난 토요일 아침 기도회에서
성경에는 예언자 신앙과 제사장 신앙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사장 신앙은 예루살렘 성전이 중심입니다.
체제를 보호하고 기존의 신앙을 고수하는 것이 초점입니다.
전통을 유지해야 하기에 많은 사람을 품고 갑니다.
예언자 신앙은 모세로 대표되는 광야 신앙입니다.
제사장 직분이 세습되는 것과 달리
예언자들은 그때그때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세상에 외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행동하는 몸짓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체제를 향해서 쓴 소리하고
잘못된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공의와 정의를 촉구했습니다.
제사장이 인기를 얻었다면,
예언자들은 대부분 미움을 받았습니다.
2025년 새해의 시작이 쉽지 않습니다.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언자들이 그립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부르심, 소명을 쫓아 살았습니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꿈꾸는
예언자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하나님,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9 이-메일 목회 서신)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세상이 평화롭지 않으니 뒤숭숭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새해입니다. 그래도 우리 앞에는 새로운 365일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니, 멋지게 관리해서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한 해로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기도와 말씀으로>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고 교회로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겠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해진다는 사도 바울의 교훈처럼(딤전4:5) 기도와 말씀은 신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가 가능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놀라운 신앙의 사건들이 기도를 통해서 일어나고 경험합니다. 기도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소원이 성경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 벌레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성경을 사랑하고 공부했던 웨슬리의 후예답게 올 한 해 성경을 꼭 붙들고 살기 원합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성경을 통독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교회는 올해도 주일예배, 주일학교와 성경 공부, 성도의 교제, 구제와 선교에 균형을 맞춰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일학교를 담당할 전임 목회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신앙은 물론 삶의 모범이 되는 신앙의 지도자가 연결되길 기도합시다.
일과 가정을 챙기는 것만도 바쁜데 교회까지 섬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교회 일을 가능한 줄일 예정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올해는 여선교회와 남선교회가 아니라 교회 사역별로 담당자를 세워서 선교회의 일을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여선교회와 남선교회 회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눠지려는 것입니다.
주일 점심 친교도 적지 않은 짐이 됩니다. 넉 달에 한 번씩 싸인업을 받아서 가정별로 섬기고 있는데, 매달 마지막 주는 교회가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돌아가면서 섬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길 것 같습니다. 교회 설거지는 3명 네 개 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엌 설거지 조가 부족하다 싶으시면 자원해서 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진행해 오는 구제와 선교는 지속할 것입니다. 주보 중보기도에 있는 교회와 선교사님들을 도울 예정입니다. 새로운 선교지나 도울 곳이 있으면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지원하던 초록우산의 소년소녀가장 돕기는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우리가 지원하는 손길과 금액도 줄다 보니 서울에서도 영수증이나 기타 지원이 늦어지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일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고 기대합니다. -河-
기도와 말씀으로 (1): 느헤미야 8장 1-4절
1.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가 밝았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 않습니다.
연말에 한국에서는 너무 큰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희생자들의 사연을 듣고 읽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그러니 가족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요!
어찌하여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저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을 부를 뿐입니다.
주님의 깊은 위로를 구합니다.
비행기를 만든 회사이든지,
비행기를 운항하던 회사이든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이든지,
어디서든지 사람의 실수가 발견된다면
다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완벽하게 개선해야 하겠습니다.
2.
새해가 되었는데,
조국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도 오리무중입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비상계엄의 상처가 너무 큽니다.
무엇보다
조국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렵답니다.
환율이 IMF 이래 가장 높이 올랐습니다.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으로서 큰 부담입니다.
소상공인들에게 그 모든 짐을 지우는 격이 됩니다.
힘없는 백성들을 살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미국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예측불허의 성격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지난번 대통령에서 물러날 때,
미국 국회에 난입했던 폭도들을 지지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무분별한 분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서류를 갖추지 못한 불법체류자들에게
냉혹한 겨울이 찾아올 것 같습니다.
이민자들에게도 절대 이롭지 않습니다.
본인이 큰소리쳤듯이
취임하고 한 달 안에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그치게 한다면 그나마 점수를 주겠습니다.
꼭 약속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3.
지금부터 120년 전
구한말 나라를 팔아버린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와 똑같이
올해도 뱀띠해 을사년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이 하루속히 안정되고 바른 나라로 세워지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생애 마지막 대통령직을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엄중하게 수행하길,
몇 년째 계속되는 지구상의 전쟁이 그치길
그리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어제 송구영신 예배에서 나눴듯이,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지혜,
하나님을 똑바로 바라보는 순결(일편단심 一片丹心)을 갖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머뭇머뭇할 수 없습니다.
포기해도 안 됩니다.
소망의 노래를 부르면서,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살아갈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10:16)
하나님,
올 한 해도 시시때때로
살아갈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 2 이-메일 목회 서신)
빛을 비추소서/ 시편 80편 17-19절
좋은 아침입니다.
1.
성탄절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경축하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사신 33년은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사랑과 희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우리도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할 텐데
너나 할 것 없이 요즘 기독교인들의 모습에서
이기적인 면이 너무 많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저는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를 쓰기가 두렵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고
진짜가 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뿐입니다.
2.
헤르만 헤세의 <아우구스투스>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호적을 명령한 인물입니다.
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여윈 상태에서 아들(유복자)을 낳고
이름을 <아우구스투스>라고 지었습니다.
남편 없이 키우게 될 아들이 위대한 인생을 살기 바란 것입니다.
이웃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노인이 찾아와서 어떤 아이가 되길 바라는지 묻습니다.
여인은 자기 아들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여인의 소원대로 아들은 정말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물론, 주변 사람들,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이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사랑을 받기만 하던 아이는 응석받이로 자랐고,
받는 것에 익숙한 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랑에 실패하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만 받다 보니 인생이 도리어 망가진 것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된 이 아이에게
어머니를 찾아왔던 노인이 다시 찾아옵니다.
그동안의 삶이 행복했는지 묻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된 아이는
“사랑을 받기만 하다가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미워하고 조롱하고 핍박하는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서 좋은 것을 찾고 미워하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자 노년의 삶이 행복했습니다.
주는 기쁨을 새롭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3.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여기저기서 사랑의 빚을 많이 졌습니다.
우리가 베푼 사랑과 받은 사랑을 대조해 보면
받은 사랑이 더 많아서 “마이너스(-)” 계좌가 되었습니다.
베푼 사랑이 더 남아야 하늘나라에 예금이 될 텐데요…
단지, 받는 것에 길들지 않고
베푸는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의 남은 며칠은
사랑을 베풀면서 사랑의 빚을 갚아 봅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하나님,
사랑을 베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2. 26 이-메일 목회 서신)
기다림의 끝: 시편 8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