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라 (6)

이사야

 

이스라엘의 역사는 험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빌론에 속한 우르 땅에 살다가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서 정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 전에 400년을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게 됩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되고 광야 40년을 지났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셨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신, 세상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 백성의 구별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반짝했지만, 결국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당대의 제국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멸망했습니다. 성전도 무너지고, 나라도 사라지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빼앗겼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에 닥친 비극과 재난을 놓고 애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신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아닌 것을 쫓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애를 쓰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끝까지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흩어진 백성)의 삶을 살게 됩니다. 북왕국이 무너지면서 아시리아가 사마리아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남왕국이 무너지면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주민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이사야 말씀은 이사야서의 두 번째 메시지에(40-55장) 속합니다. 바빌론이 쇠퇴하고 페르시아가 신흥 제국으로 등장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의 막바지가 된 것입니다. 그때 바빌론에 포로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위로와 희망의 말씀입니다.

 

이집트에서의 400년에 비하면 짧고 상황도 비교적 좋았지만, 70년이라는 긴 시간을 바빌론에서 포로로 지냈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적인 상실감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때 모세를 통한 출애굽을 떠올리면서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하나님께서 바빌론에서도 자유를 주실 것을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이사야서 40장 이하는 절망하지 말고 제 2의 출애굽을 꿈꾸라는 소망의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河-

 

일상의 발견

좋은 아침입니다.

 

1.

벌써 두세 달이 지난 것 같습니다.

TV 아침 방송을 틀어 놓고 일하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말과 함께 화면에 등장했습니다.

 

신기해서 볼륨을 높이고 시청했더니

남가주에 사는 할로(Harlow)라는 소녀로

말에게 주는 먹이(간식)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로는 집에서 피터 팬이라고 이름을 붙인

조랑말(pony)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학교 과제 가운데 하나로

자기가 키우는 조랑말 피터 팬에게 줄 간식을 개발해서 발표했고

그것을 사업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일상의 발견입니다.

 

할로의 웹사이트에 가면,

사람이 먹어도 될 것 같은 조랑말 간식을 진열해 놓고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조랑말을 위한 간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게 만들었습니다.

순수 자연산 재료로 만들었답니다.

 

가격은 저렴하지 않습니다.

 

2.

방송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

매우 다양한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랑말을 집에서 키우는 것부터,

조랑말 애호가들이 전국적으로 꽤 많은 것 같고

열 개도 되지 않는 간식 한 상자가 20불이 넘는데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상품성이 있어도 어린아이의 제품이라면 무시하기 일쑤인데

초등학생이 만드는 조랑말 간식을 구매하고

그것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미국은 겉모습보다 내용을 중시하고,

기업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땅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3.

할로는

자기가 키우는 조랑말 피터 팬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숙제를 했을 것입니다.

 

억지로 할 수도 있는 학교 숙제입니다.

학생으로서 해야 하는 지루한 일상인데

할로는 즐겁고 특별한 일로 발전시켰습니다.

 

일상은 소홀히 하거나 지나치기 쉽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일을 찾아내기 힘듭니다.

그러니 학교 숙제를 비즈니스로 만든 할로가 더욱 대단해 보입니다.

 

어느덧 10월이 되었으니 올해도 석 달 남짓 남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상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 속에 깃든 특별한 의미를 포착해 내기 원합니다.

무채색처럼 지루할 만한 일상을

다채롭고 특별한 일로 바꾸는 일상의 발견을 기대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 말씀과 기도 역시

일상으로 보이기 쉬운데,

그 안에 숨겨진 은혜를 찾아가면서

남은 석 달을 새록새록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어 봅시다.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니라 (전9:10)

 

 

하나님,

무심코 지나칠 일상 속에

숨겨진 보석을 찾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 6 이-메일 목회 서신)

두려워하지 말라 (5)

스바냐

 

스바냐 선지자는 유다 왕 요시야 시대(주전640-609년)에 활동했습니다. 아버지 아몬이 살해되면서 요시야가 여덟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무너지고 남유다만 존속하던 시대입니다. 훗날 요시야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 책에 따라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다윗에 버금가는 왕이 되었지만, 요시야 개혁 전의 남유다는 정치, 경제, 종교 완전히 엉망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때 스바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스바냐는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셨다” 또는 “숨어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앗시리아와 같은 제국에서 수입한 우상들이 판을 쳤고 백성들은 우상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겼습니다. 이방신의 특징은 물질과 번영입니다.

 

신앙은 물론 도덕적으로 나라가 망가지는데 앞장선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관리들은 폭력을 사용해서 힘없는 백성들을 학대하고, 선지자들은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며,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예루살렘의 상황을 패역, 더러움, 포학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패역한 세상 가운데 계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날이라는 말씀대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세상이 망가졌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남아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3:14-18)은 남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기쁨으로 찬양하라는 부탁으로 시작합니다. 심판이 지나고 구원과 회복의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한 가운데 계십니다. 모든 어려움이 지났고 원수는 쫓겨났습니다. 이제 기쁨의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선지자는 그동안 많이 지쳐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16절). 손을 늘어뜨리는 것은 낙심과 절망 그리고 포기입니다. 힘이 없어서 털썩 주저앉은 모습입니다.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들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 끝까지 남아서 하나님을 의지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찬양이 이어집니다:“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17절).

 

우리도 오늘 말씀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찬양하고 기뻐하기 원합니다.-河-

 

그리스도인다움

좋은 아침입니다.

 

1.

9월 초 미국의 퓨 리서치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20년 현재

미국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64%인데

앞으로 점점 줄어서

50년 후에는 절반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2007년 통계만 해도

미국의 기독교 인구는 70% 이상이었습니다.

10년 만에 10%가 줄었습니다.

동시에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무종교 비율이

15%에서 30%로 늘었습니다.

 

기독교 인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도

50대 이상에 기독교인이 많아서 그렇지

30대 이하의 젊은 층으로 내려가면 기독교 인구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젊은 층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크리스천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침에 나누는 말씀 묵상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전수된 것이 떠오릅니다.

 

2.

올해 한국의 각 교단이 집계한 통계에서

교인 숫자가 수십만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으니

미국의 추세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기독교인의 숫자가 감소할까요?

 

기독교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요즘 세대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아닌 물질로 대표되는 세속주의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데 당장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문명의 이기나 새로운 기술을 쫓아갑니다.

가치보다 실용이 우선입니다.

 

시대 상황 외에도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가 매력을 잃었습니다.

교회는 배타적인 집단,

사랑을 외치는 그리스도인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3.

그렇다고 여기서 멈춰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주신 사랑의 예수님,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처음 불렸듯이

지금 이 시대에 “다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그리스도인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독특함을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밀도 있게 간직하고 믿는 것입니다.

3% 정도의 소금기(염도)가 바닷물을 짜게 하듯이

반듯하고 품격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가치 있고, 행복하며, 생명의 길임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많이 묵상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장착하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걷는 <예수 닮기>를 실천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 다운 참빛 식구들의 모습을 눈에 그립니다.

참빛 식구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빛으로 임하시길 기대합니다.

 

우리 함께 “그리스도인다움”의 덕목을 회복합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하나님,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9. 29이-메일 목회 서신)

두려워하지 말라 (4)

여호수아 (2)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웠고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광야 40년과 전혀 다른 리더쉽이 요청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찾아오셔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광야 40년 동안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모세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5절). 여호수아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이고 약속입니다.

 

여호수아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시는데, 전쟁에 나가는 장수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성전과 가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여기서 “율법책”은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7절) 입니다. 우리 성경으로 하면 토라로 불리는 모세 오경입니다.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합니다.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지키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인도할 여호수아에게 요청되는 최고의 덕목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 곧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백성을 인도하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가까이하고 익혀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십니다. 우선,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합니다. 눈과 입으로 읽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을 묵상(meditation)해야 합니다. 묵상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것입니다. 눈과 입으로 보고 읽은 말씀을 마음과 삶에 채우는 과정입니다. 보고 읽는 것을 통해서 말씀이 머리에 머문다면, 묵상을 통해서 말씀이 마음으로 내려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머리와 마음 그리고 손과 발로 말씀이 자라고 연결되는 과정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말씀으로 삶의 중심을 세웠을 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갖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은 우리 안에 자리잡은 불안과 두려움을 다스리고,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을 마주할 힘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河-

다양한 시각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 행렬이 지날 때
길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너도나도 셀폰을 꺼내서
사진찍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아빠의 어깨에 올라가서,
양손으로 셀폰을 받치면서 사진찍는 모습이
마지막 가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향해서
경배를 표하는 모습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누구나 갖고 읽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셀폰에 성경 앱을 다운로드 받아서
손쉽게 성경을 읽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성경책 대신에
양손에 셀폰을 들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성경이 대중의 손에 들어온 것은
15세기 종교개혁 이후입니다.
그전까지 성경은
가톨릭 사제들만 소장했고 읽고 설교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고
마틴 루터와 종교 개혁자들이 성경을
독일어를 비롯한 자국어로 번역하면서
개신교인들이 성경을 직접 읽게 된 것입니다.

 

2.
성경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옵니다.

 

같은 말씀도
읽는 독자들과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의미로 찾아옵니다.

 

어릴 적에 읽을 때와
어른이 되어서 읽을 때 그 의미가 다릅니다.
힘들 때 읽을 때와 편안할 때 읽는 성경이 다릅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 안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세상 속에서
그리고 우리 삶의 여러 맥락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3.
수많은 사람의 셀폰에 담긴
엘리자베스 여왕의 마지막 가는 모습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전체적인 장례 행렬을 담았는지,
70년 이상 여왕이 갖고 있던 통치의 상징 홀(scepter)
또는 왕관만 찍었을 지,
각자가 위치한 자리와 관심사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함이 우선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유니폼을 입고 하나 됨을 과시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주요 신문이 전하는 몇 가지 사진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시대도 지났습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신앙도 다양합니다.
팬데믹 이후의 교회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참빛교회도 다양한 지체들이 모여 있습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참빛 식구들의 재능과 은사,
삶과 성품을 드러내고 그것이 발휘되길 돕고 싶습니다.

 

다양함이 모여서
모자이크처럼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조화를 이루는
멋진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갑시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17:26)

 

하나님,
삼위 하나님의 다양함과 하나 됨이
우리 안에도 그대로 임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9. 22이-메일 목회 서신)

두려워하지 말라 (3)

여호수아 (1)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의 믿음을 실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자손과 땅을 약속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 지시겠다는 일방적인 계약을 맺으십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사는 아브라함의 나그네 삶을 공감하고 돌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 전에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게 될 것을 예고하셨는데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창세기 족장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갖게 된 근거, 요셉을 통해서 이집트에 내려가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는 과거로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400년동안 종으로 살았습니다. 마지막에는 바로의 학정으로 신음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괴로움과 탄식을 보시고 모세를 부르셔서 이집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바로에게 내린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죽음의 사자가 이집트 모든 집에 밀어닥쳐서 장자는 물론 동물의 맏배까지 죽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죽음의 사자가 건너뛰었습니다(pass-over). 유월절의 시작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 직선거리로 10여 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는데 40년을 광야에서 지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꾸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먹이고 입히시는 보호자요 구원자 되심을 훈련하셨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와서 광야 40년을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역사는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뤄질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의 대표로 가나안 땅이 내다보이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약속의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인물입니다. 열 명의 대표단이 땅을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증언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약속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 확언했습니다. 결국 그 시대 사람들 가운데 갈렙과 함께 약속의 땅을 밟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끌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6,7,9절). 모세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계승해야 합니다. 광야 생활과 차원이 다른 가나안 정복입니다. 모든 것을 앞두고 불안하고 두려웠을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주의 백성들에게 이보다 더 강력한 말씀이 없습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