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 교회 (1): 사도행전 11:19-30
https://www.youtube.com/watch?v=d3TxoWaURn8
안디옥 교회 (1): 새로운 교회
오늘부터 신약성경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주일설교를 시작합니다. 오래전 주일예배에서 나눈 적이 있기에, 그때 빠뜨린 본문을 마저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가 기록한 두 번째 책입니다.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탄생에서 부활까지 기록했다면,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면서 예루살렘부터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으로 시작해서 예루살렘에서 마무리되었다면,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다와 사마리아, 세 차례에 걸친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을 통한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앞으로 두 시간에 걸쳐서 살펴볼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안디옥은 로마와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주전 300년경 알렉산더 대제의 후예들인 셀류시드(안티오커스)에 의해서 세워진 이래, 로마 시대까지 동서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 당시에 안디옥은 인구가 3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대도시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로 사도들과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아프리카 북부 지방 구레네와 지중해의 섬나라인 구브로 출신 사람들이 안디옥에 도착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들은 안디옥에 있는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이 300마일 떨어진 예루살렘에 전해졌습니다. 안디옥과 같은 큰 도시에 복음이 전해진 것과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지도자로 있던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했습니다. 바나바는 제사장 지파인 레위 족속이고 자기 밭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내놓을 정도로 헌신 된 사도였습니다.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출신 성도들이 안디옥 교회 개척 멤버로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를 인도하기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울까지 데리고 와서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세우니 교회가 든든해졌습니다. 가뭄으로 예루살렘 모 교회에 구제헌금을 거둬서 바나바와 사울 편에 보낼 정도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이어받아서 복음 전도의 전초기지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동네를 산책하면서
사거리 길을 건너는데
4 way stops에 대기하던 승용차가 제 앞으로
우회전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횡단보도 사고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조심해서 건너길 다행이지 서둘러 도로로 뛰어들었다면
자칫 사고를 당할 뻔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급해지고 여유를 잃어가는 듯합니다.
팬데믹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꼬박 2년을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고 갇혀 있으면서
마음이 좁아지고 불안함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2.
엊그제
LA 공항을 떠나서 워싱턴 DC로 향하던 여객기가
캔자스 시티에 비상 착륙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승객 중에 한 사람이 조종석에 들어가려 하더니
갑자기 비행기 문을 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승무원들이 신속하게 이 사람을 제압했고
비상 착륙한 후에 FBI에 넘겼답니다.
어쩌면, 비슷한 사고가 예전에도 있었겠지만,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팬데믹과 연결시키게 됩니다.
3.
얼마 전까지 아시안 혐오로 인해서
아시안이 많이 사는 샌프란까지 바싹 긴장했었습니다.
엊그제 뉴욕에서는 노숙자가 30대 한인 여성을 집까지 따라가서
살해하는 어이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서
자동차 유리를 깨서 물건을 훔쳐가거나
무작정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에 있는 물건을 가져갔다는 글이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옵니다.
경찰에 신고해도 작은 절도나 손해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분도 있습니다.
4.
저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까지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 샬롬을 구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세상이 안정되고 차분해지길 기대합니다.
팬데믹 막바지로 오면서
그동안 숨어 있던 사람들의 분노와 그릇된 본성이 터져 나올 수 있는데
서로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차분하게 일상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사라져야 합니다.
치안 당국의 더 현명한 대처를 기대합니다.
5.
저는 셀폰이나 지갑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을 싫어해서
지갑을 차에 두고 다닐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꼭 주머니에 챙겨서 갑니다.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화롭고
더불어 사는 협력과 사랑이 임하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16:33)
하나님,
여호와 샬롬,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 17 이-메일 목회 서신)
슬픔에서 희망으로
2022년 임인년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 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았던 팬데믹은 꼬박 2년째 접어 들고 있습니다. 지난 2년여 우리 교회도 예기치 않게 영상 예배를 실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카톡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유튜브로 실시간 예배를 전송하고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하셨고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한 마음으로 견딘 지난 2년의 팬데믹 기간이었습니다.
올해는 정상으로 복귀할 것을 기대하면서 <새롭게 시작합시다>라는 교회 표어를 정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고, 팬데믹 이후의 일상을 맞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기에 구약 성경의 예레미야 애가서를 본문으로 택해서 지난 7주 동안 말씀을 나눴습니다. 애가서 한 가운데 있는 소망의 말씀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독특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전체가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 네 장은 각 절마다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합니다. 영어로 하면 A부터 Z까지 알파벳 순서대로 각 절이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모두 스물 두 자입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던 애가서 3장은 히브리어 알파벳 한 글자에 세 구절을 배치해서 전체 66절로 구성된 것도 특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애가서 5장은 알파벳 순서가 아니지만 알파벳 숫자를 반영해서 22절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 히브리어 알파벳을 두운으로 삼고 말씀을 기록한 것은 무엇보다 고대 시대에 암송과 교육을 위한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운을 띄어주면 쉽게 풀어나가듯이 모든 사람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당시에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운을 띄우면서 말씀을 암기하고 익혔을 것입니다. 애가서 외에도 구약 성경에는 시편 37편과 119편처럼 지혜를 알려주는 말씀에서 아크로스틱(Acrostic) 구조라고 불리는 알파벳 순서로 기록된 본문이 있습니다.
이처럼 애가서는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까지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을 알파벳 순서대로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훗날 슬픔을 경험한 하나님 백성들 역시 애가서를 읽으면서 자신들에게 닥친 슬픔을 낱낱이 헤아리고 하나님 앞에서 풀어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애가서 3장처럼 슬픔 너머 소망까지 완벽하게 역사에 새기기 위해서 알파벳을 동원해서 말씀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애가서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삶과 신앙을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날마다 새로우신 주의 성실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4년 전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남북대화의 물고가 트였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덧 4년이 지났습니다.
베이징 올림픽도 지난 동경 하계 올림픽처럼
팬데믹 가운데 열리는 올림픽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 외교 사절을 파송하지 않는 등
최근에는 판정 논란까지 크고 작은 이슈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4년을 준비한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하고
스포츠를 통한 올림픽 정신이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2.
동계 올림픽 종목 가운데 “루지(Luge)”가 있습니다.
루지는 프랑스어로 “썰매”라는 뜻입니다.
썰매를 타고 80마일 이상의 속도로 곡선 주로를 타고 내려옵니다.
선수가 썰매에 몸을 맡기고 누워서 내려오는데
워낙 속도가 빠르니 부상 위험이 큰 위험한 스포츠랍니다.
루지는
19세기 중반 스위스에서 벌어진 썰매 경기에서 유래했고,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네 일반인들은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는 썰매 경주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올림픽에
네 명의 선수가 참가했는데,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은발의 여성 선수가 눈에 띕니다.
한 남자 선수는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썰매가 전복하면서
정강이뼈가 드러날 정도의 큰 부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대회에 출전했답니다.
이 선수의 최종 성적은 34명 가운데 33위였습니다.
비록 순위는 거의 최하위였지만
큰 부상을 딛고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도 정신 승리입니다.
3.
올림픽이
점점 정치에 이용되거나 패권 분쟁에 휘말리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어릴 때는 아마추어 선수들만 올림픽에 참가했었습니다.
올림픽이 상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들의 참가가 본격적으로 허용되더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NB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남자 농구 dream team까지 등장했습니다.
프로가 존재하면서도 아마추어 선수들의 출전만
허용하는 종목은 복싱뿐이랍니다.
무엇이든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올림픽 정신이 그대로 유지되고 인류 평화를 위한 축제가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루지를 비롯한
인기 없는 종목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도 응원합니다.
올림픽 근처에 갈 수 없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각자의 길을 가는 이 세상의 모든 분을 응원하고,
오늘도 일상을 살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실
참빛 식구들도 힘껏 응원합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16)
하나님,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 10 이-메일 목회 서신)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새롭게 삽시다>라는 올해 교회 표어를 갖고 살펴보는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예상치 못한 오미크론 바이러스로 팬데믹 상황이 연장되어서 지역 경제도 다시 얼어붙고 사람들의 마음에 어두운 구름이 짙게 드리웠지만, 전문가들이 예상하듯이 이번 변이 바이러스가 코비드 바이러스의 막판 주자이길 기대합니다.
팬데믹이 아니어도 1년 365일을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목적지를 향하는 여행으로 생각했을 때,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만나기도 하지만, 중간에는 구불구불한 언덕길, 울퉁불퉁한 자갈길, 때로는 바퀴가 빠져서 애를 먹는 진흙탕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녹록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누었듯이, 하나님을 경험했던 과거의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어려움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헤쳐나가는 것입니다. 2022년을 살아가는 믿음의 길도 앞으로 살아갈 인생길에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믿음의 자산이 쌓여갈 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 신앙과 삶에 구체화되고 힘이 될 것입니다.
한 해를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관계의 문제입니다. 가족과 교회 식구들은 물론 직장의 동료들과 이웃과의 관계가 힘들 수 있습니다. 사소한 만남도 힘든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교환하러 갔지만, 상점에 있는 사람이 쉽게 바꿔주지 않을 때도 관계는 힘들어집니다. 요즘처럼 민감한 때는 감정이 쉽게 상하고 사소한 일을 갖고도 시비가 붙을 수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만남과 관계 속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숨어 있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만남과 관계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힘든 미묘한 관계도 있습니다. 혼자서 끙끙 매는 관계도 많습니다. 자신은 내려놓았지만, 상대방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으니 관계의 진전이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으니 힘이 빠집니다. 관계가 깨졌을 때, 찾아오는 아픔이 매우 큽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애가 기자는 하나님께 나와서 원통함을 풀어주시길 간청합니다. 본문에 “보다(see)”라는 동사가 반복되는데, 하나님께서 억울함을 보셨습니다. 원수들이 보복하려고 달려들고 앞뒤에서 모함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니 하나님께 나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매듭을 풀어주시고 해결해 주시길 간청하고 있습니다.
올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지만, 관계로 인해서 어려운 일이 종종 닥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 나와서 마음을 토해내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원합니다. -河-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을 믿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충 또는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또는 장차 가게 될 천국만 소망하는 식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놓칠 가능성이 큽니다.
참빛교회 목사로서
말씀과 예배, 성경 공부, 대화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맛보는 것을 안내하고
참빛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실제로 간증하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릴 적 돋보기를 태양에 비추고
작은 초점을 맞추면서 검은 종이를 태웠던 놀이를 소개했습니다.
태양은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인데
그 빛이 돋보기를 통해서 종이에 작은 초점으로 모이면
열이 나고 종이를 태우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제 손바닥에도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아서
아주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았더니
금세 손바닥이 뜨거워서 얼른 치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모시기 위해서는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으듯이
밀도 있게 작은 초점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모아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사모함과 구도자의 태도,
때로는 자연 속에서, 일상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심지어 책을 통해서 등등 하나님의 사랑을 모으고 그것을 느끼는
통로를 각자 개발하길 부탁드렸습니다.
2.
제가 예전에 선물했던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에서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느끼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단순하게, 진실함과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미세한 손길도 놓치지 않고 감지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있으려면 우리는 자주 그분을 생각하는
거룩한 습관을 길러야만 한다네 (61)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돋보기로 햇볕을 모으듯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모시고 경험하는 신비로운 과정입니다.
3.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세상 것을 통제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봅시다.
아니 하나님을 우리 안에 돋보기의 작은 점으로 모시는 겁니다.
이러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일 때,
우리도 예레미야 애가 기자처럼 주께서 가까이 함께 하시는 것과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애3:56)라는 고백이 가능할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4:8)
하나님,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3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