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형제 빌레몬 (4): 내 심복이라/ 빌레몬서 1장 8-14절
https://www.youtube.com/watch?v=6evyTQDmpXw
내 심복이라
빌레몬서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손해를 입히고 도망한 종 오네시모를 형제로 맞아주라는 바울의 부탁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 빌레몬에게는 믿음과 사랑이 있었고, 성도들과 믿음의 교제를 통해서 선한 일은 물론 예수님께 자라가는 힘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평안을 주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빌레몬은 예수님을 닮은 멋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4-7절).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다가 도주한 노예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도주한 종을 환대하고 보호하라는 말씀이 있지만(신23:15-16), 초대 교회 당시는 종이 주인을 버리고 도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도주한 종을 보호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고, 종이 다시 주인을 찾아와도 쉽게 용서해 주지 않았습니다.
빌레몬에게서 도망한 오네시모는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만나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향해서 자신이 낳은 아들, 나의 심복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심복”이라는 말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온 마음으로 사랑했고, 오네시모 역시 바울의 마음을 헤아리며 최선을 다해서 섬겼다는 뜻입니다. 7절에서 빌레몬이 “성도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였다고 했는데,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플랑크나>가 심복에도 쓰였습니다.
오네시모의 이름은 “유익함(benefit)”이라는 뜻입니다. 주인을 버리고 도망한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무익한 종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면서 그의 이름 뜻대로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1절). 무익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크레스토스>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헬라어 발음에 매우 가깝습니다.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무익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만나고 예수님 안에서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과 현재가 완전히 바뀐 바울의 심복이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 있는 바울을 계속 돕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주인인 빌레몬의 용서와 승낙 없이 오네시모가 자기를 돕는 것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낸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믿음과 사랑의 사람 빌레몬이라면 할 수 있었기에 바울이 부탁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세심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절차를 무시하지 않고 빌레몬과 오네시모 사이를 중재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신앙은 변화입니다. 신앙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주님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河-
감사절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교회 정리를 마치고
근처 쇼핑몰에 들렸는데
주차 자리를 찾기 위해서 20여 분을 돌아야 할 정도로
커다란 주차장이 차들로 꽉- 찼습니다.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은 모습을 보니
주차 자리를 찾는 것이나 줄을 길게 서는 것에
짜증보다 왠지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예전의 일상으로 회복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감사절을 지킬 엄두를 내지 못했고
문을 열지 않은 상점도 많았습니다.
가족 모임까지 제한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올해 감사절은 거의 예전 수준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2.
여행 전문 기관인 AAA의 예측에 의하면
올 추수감사절에 5천 3백만(53 mil) 정도가 이동한답니다.
2005년 이래, 한 해 여행객 증가율 최고 수치입니다.
그만큼 작년에 발이 묶였던 셈입니다.
가스 값이 무척 비싼 데도
자동차 여행이 으뜸으로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비행기와 기타 대중교통 수단이 나머지 10%입니다.
항공편을 이용한 여행객은 작년보다 배가 늘었습니다.
AAA에서는
올해 감사절 여행을 즐기되 마스크를 꼭 챙기고,
도로는 물론 공항까지 인파로 붐빌 것을 예상하고
지혜롭게 계획을 세우라는 팁을 전했습니다.
3.
팬데믹 한 가운데 있을 때는
이 정도의 일상 회복도 기약할 수 없었는데
함께 노력하고, 조심하니 이런 날이 찾아왔습니다.
어두운 밤이 계속될 것 같아도
새벽이 찾아오듯이 …
팬데믹 뿐 아니라
우리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들도
결국에는 빛에 굴복하고 좋은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를 기대하고, 신앙 가운데 앞을 보면서
인생의 골짜기를 걷는 것이지요.
4.
아직은 아슬아슬한 측면이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변이가 등장할 수도 있고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돌파 감염이 늘어나서
다시 문을 닫는 유럽 국가도 있습니다.
감사절을 맞아서 출타하신 참빛 식구들도 많으신데
안전한 여정이길 기도합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들과
마음껏 즐기시고 좋은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행여나
추수감사절을 맞는 마음이 무거우시다면,
저 앞에 빛으로 계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감사절을 지내시길 바랍니다.
결국에는 빛이 찾아올 것입니다.
해피 땡스기빙!!!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9)
For with you is the fountain of life;
in your light do we see light. (Ps 36:9)
하나님,
감사절을 맞는 참빛 식구들께
풍성함을 더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1. 25이-메일 목회 서신)
– 사랑으로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우리가 농사를 짓지 않으니 “추수”라는 표현을 앞에 부치는 것이 어색합니다. 그래도 한 해의 삶을 결산한다는 의미에서 추수 감사절입니다. 영어 표현 그대로 “감사 주일 (thanksgiving Sunday)”이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우리는 2021년 한 해도 팬데믹을 살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렇게 오랫동안 세상을 괴롭힐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백신 접종이 계속되면서 치명적인 환자들이 줄었고 우리 지역은 “위드 코로나”에 가깝게 일상을 회복했습니다. 올겨울만 넘기면 내년 봄부터는 훨씬 자유로운 세상이 찾아올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 교회도 내년 3월에 완전체로 모이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조심하면서 각자 신앙의 자리를 지켜야겠습니다.
감사절은 한 해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무엇보다 어둠과 죽음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해서 빛으로 인도하신 생명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신앙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힘겹지만, 이 길이 진리와 생명의 길임을 믿고 한 해를 산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딘 가족들과 참빛 식구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가족이 있기에 어려운 시간을 견뎠습니다. 예배로 함께 모이지 못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하며 마음으로 격려하고 힘을 주는 참빛 식구들이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팬데믹을 지날 수 있도록 백신을 개발하고 환자들을 진료한 과학자들과 의료진들, 전염병 관리에 온 힘을 쏟은 행정당국과 어려운 시간에도 각자 생업의 자리를 지키고 개인 생활까지 희생하면서 정부의 지침을 따른 모든 분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온 인류가 이렇게 한마음이 되어서 전염병과 싸운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빌레몬서에서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 빌레몬을 생각하면서 감사했듯이 우리도 한 해를 돌아보니 감사할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받은 이웃에게도 꼭 감사해야겠습니다.
오늘 빌레몬서 본문처럼 감사 속에는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매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때 감사가 생깁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감사절을 맞는 참빛 식구들께 주님의 사랑이 넘치고 그 사랑이 이웃에게 전파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보도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야생 사슴에게서 발견되었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여러 가지 변종이 있어서
야생 동물에서 발견되곤 했지만,
이번처럼 사슴에게서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은 특이한 현상이랍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연구팀이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아이오와주에서 채집한
사슴의 80%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을 보였답니다.
다른 연구에서도 400여 개의 사슴 샘플 가운데
30% 이상에서 바이러스 항체가 발견되었답니다.
하지만, 사슴이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겼거나
반대로 주택가를 비롯한 사람들과 친숙한 사슴이 사람에게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슴에게서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상
보건 당국은 사냥한 사슴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동부나 중서부에서는 사슴 사냥이 인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지난 2년 동안
온 세상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팬더믹”이라는 용어에 걸맞게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인류가
남녀노소, 빈부귀천 불구하고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래도 온 세계가 함께 대응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백신을 발명한 과학자들, 의료진들, 행정 당국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심지어 교회 건물까지 문을 닫을 정도로 협조한 시민 정신의 승리입니다.
아직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가의 백신 접종률이 낮아서
델타 바이러스처럼 코로나 변종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동안 인류가 연대했던 뒷심을 발휘하면
결국에는 팬더믹을 극복할 것입니다.
3.
사슴에게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로 인해서 타락한 세상을 모든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으로 요약했는데
지난 2년여 팬더믹을 보내면서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고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씀을 실감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 8:22)
그렇다면 이제 살길을 여는 것도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힘을 합쳐서 한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청지기로 위임하신 인간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4.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역시 혼자 살 수 없음을 새삼 느낍니다.
그동안 우리를 돕는 손길들이
언제나/어디서나 있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가 다 함께 힘을 합쳤기에
올 한 해도 소처럼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무엇보다
삼위 하나님의 인도하심, 도우심, 함께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은혜로 이곳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참빛 식구들이 서로에게 신앙의 동지가 되고
주님의 백성이 가야 할 길을 다 함께 걸어가기 원합니다.
사랑으로 완성된 믿음의 교제가 우리 안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12)
하나님,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주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1. 18이-메일 목회 서신)
– 믿음과 사랑
사도 바울은 당시의 편지 형식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는 방식으로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익숙한 형식의 편지를 받았고, 낯설지 않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장뿐인 빌레몬서 역시 인사말, 감사와 축복에 이어서 본문이 시작되고 마지막 인사로 끝나는 바울 서신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빌레몬서의 인사말에서는 바울과 디모데가 편지를 보내는 사람으로, 빌레몬과 그의 가족, 빌레몬 집에서 모이는 골로새 교회가 편지를 받는 수신인이었습니다. 은혜와 평강으로 인사말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인사말에 이어서 등장하는 빌레몬을 향한 바울의 감사와 축복 (기도)입니다(4-7절).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편지를 받는 빌레몬과 사도 바울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장면입니다.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기억했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은 예수님과 성도들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는 믿음이, 성도들을 향해서는 신뢰와 성실함이 빌레몬의 믿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빌레몬은 하나님은 물론 성도를 향한 사랑이 컸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성도들과 나눴습니다. 물론, 본문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사랑은 성도들을 향한 마음으로 나눠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참고 골1:4).
이어지는 6절과 7절은 믿음과 사랑을 다시 한번 각각 부연해서 설명합니다. “믿음의 교제”는 빌레몬이 골로새 교인들은 물론 동역자인 바울과 나눈 믿음안에서의 사귐과 행위입니다. 교제는 마음이 하나 되는 행동까지 포함합니다. 빌레몬이 나누는 믿음의 교제는 선한 것을 깨닫고 그것을 행하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돕는 구체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했기에 “믿음의 교제”라고 불렀습니다.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평안을 얻었습니다. 빌레몬의 믿음이 사랑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은 믿음과 사랑이 자리 잡는 자리입니다. 믿음의 교제가 이뤄지는 자리가 빌레몬을 비롯한 성도들의 마음입니다. 바울도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소식을 듣고 기쁨과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과 사랑은 서로 짝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허상이고, 믿음 없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불가능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힘이 우리 참빛 교회 속에서도 역사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지난주 설교 시간에 스치듯 말씀드린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제목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은 미카일이라는 천사가
세 가지 질문을 갖고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질문에 답을 찾아야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1)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성당을 지나던 구두 수선공이
성당 앞에서 맨몸으로 누워있던 미카엘 천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구두 수선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이것을 본 미카엘 천사는
사람의 마음속에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착한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질문의 답을 찾은 것입니다.
하루는 한 부자가 하인과 함께 구두 수선집을 방문해서
아주 까다로운 모양의 장화를 주문하면서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감옥에 넣겠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미카일 천사는 장화가 아니라 죽는 사람이 신는 슬리퍼를 만듭니다.
그것을 본 주인이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때 부자의 하인이 들어와서 자기 주인이 죽었다면서
장화가 아닌 슬리퍼를 주문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답을 찾은 것입니다.
하루는 한 부인이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구두집을 찾아왔습니다.
아빠가 죽고 곧이어 엄마까지 죽은 이웃집 쌍둥이를
그 부인이 맡아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미카엘은 부인을 보면서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세 번째 질문의 답을 찾은 것입니다.
2.
세상에 사랑이라는 언어가 흘러넘칩니다.
교회에서조차 하도 많이 사용해서
진부한 표현으로 취급받곤 합니다.
그런데 사랑 앞에 “진실한”이란 형용사를 붙이고 읽으면
사랑의 깊이와 넓이에 숙연해집니다.
진실한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지 고민하게 되고
진실한 사랑을 사모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가 아무리 잘못해도 조건 없이 맞아 주시는 아가페 사랑,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가 맞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나눈
골로새 교회의 영적 지도자 에바브라와 빌레몬은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고
그 진실함에 감격해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예배 처소로 자기 가정을 개방했을 것입니다.
사랑을 맛보니 그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소설 속의 천사 미카엘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해답을 찾아내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그런데 믿음이 드러나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오늘 하루,
사랑으로 살아봅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4:20)
하나님,
우리 안에 임한 주의 사랑을
꼭 세상에 전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1. 11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