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합시다 (6)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새롭게 삽시다>라는 올해 교회 표어를 갖고 살펴보는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예상치 못한 오미크론 바이러스로 팬데믹 상황이 연장되어서 지역 경제도 다시 얼어붙고 사람들의 마음에 어두운 구름이 짙게 드리웠지만, 전문가들이 예상하듯이 이번 변이 바이러스가 코비드 바이러스의 막판 주자이길 기대합니다.

 

팬데믹이 아니어도 1년 365일을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목적지를 향하는 여행으로 생각했을 때,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만나기도 하지만, 중간에는 구불구불한 언덕길, 울퉁불퉁한 자갈길, 때로는 바퀴가 빠져서 애를 먹는 진흙탕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녹록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누었듯이, 하나님을 경험했던 과거의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어려움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헤쳐나가는 것입니다. 2022년을 살아가는 믿음의 길도 앞으로 살아갈 인생길에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믿음의 자산이 쌓여갈 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 신앙과 삶에 구체화되고 힘이 될 것입니다.

 

한 해를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관계의 문제입니다. 가족과 교회 식구들은 물론 직장의 동료들과 이웃과의 관계가 힘들 수 있습니다. 사소한 만남도 힘든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교환하러 갔지만, 상점에 있는 사람이 쉽게 바꿔주지 않을 때도 관계는 힘들어집니다. 요즘처럼 민감한 때는 감정이 쉽게 상하고 사소한 일을 갖고도 시비가 붙을 수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만남과 관계 속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숨어 있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만남과 관계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힘든 미묘한 관계도 있습니다. 혼자서 끙끙 매는 관계도 많습니다. 자신은 내려놓았지만, 상대방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으니 관계의 진전이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으니 힘이 빠집니다. 관계가 깨졌을 때, 찾아오는 아픔이 매우 큽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애가 기자는 하나님께 나와서 원통함을 풀어주시길 간청합니다. 본문에 “보다(see)”라는 동사가 반복되는데, 하나님께서 억울함을 보셨습니다. 원수들이 보복하려고 달려들고 앞뒤에서 모함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니 하나님께 나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매듭을 풀어주시고 해결해 주시길 간청하고 있습니다.

 

올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지만, 관계로 인해서 어려운 일이 종종 닥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 나와서 마음을 토해내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원합니다. -河-

초점 맞추기

좋은 아침입니다.

 

1.
하나님을 믿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충 또는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또는 장차 가게 될 천국만 소망하는 식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놓칠 가능성이 큽니다.

 

참빛교회 목사로서
말씀과 예배, 성경 공부, 대화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맛보는 것을 안내하고
참빛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실제로 간증하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릴 적 돋보기를 태양에 비추고
작은 초점을 맞추면서 검은 종이를 태웠던 놀이를 소개했습니다.
태양은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인데
그 빛이 돋보기를 통해서 종이에 작은 초점으로 모이면
열이 나고 종이를 태우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제 손바닥에도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아서
아주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았더니
금세 손바닥이 뜨거워서 얼른 치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모시기 위해서는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으듯이
밀도 있게 작은 초점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모아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사모함과 구도자의 태도,
때로는 자연 속에서, 일상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심지어 책을 통해서 등등 하나님의 사랑을 모으고 그것을 느끼는
통로를 각자 개발하길 부탁드렸습니다.

 

2.
제가 예전에 선물했던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에서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느끼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단순하게, 진실함과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미세한 손길도 놓치지 않고 감지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있으려면 우리는 자주 그분을 생각하는
거룩한 습관을 길러야만 한다네 (61)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돋보기로 햇볕을 모으듯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모시고 경험하는 신비로운 과정입니다.

 

3.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세상 것을 통제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봅시다.
아니 하나님을 우리 안에 돋보기의 작은 점으로 모시는 겁니다.

 

이러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일 때,
우리도 예레미야 애가 기자처럼 주께서 가까이 함께 하시는 것과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애3:56)라는 고백이 가능할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4:8)

 

하나님,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2.3 이-메일 목회 서신)

새롭게 시작합시다 (5)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어려울 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침묵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심과 주님의 은혜를 잠잠히 바라는 시간입니다. 조용한 기도에도 힘이 있습니다. 깊은 기도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시작합시다>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살펴보는 예레미야 애가서에 조용한 기도가 등장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기도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춘 기도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대부분은 부르짖고 외치는 기도입니다. 상황이 어려우니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초저녁부터 눈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히11:6)을 확실히 믿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결국에는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 것도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진심(眞心)을 확신하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깊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해서 벌을 받는 것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회개하고 다시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구하면서 소망을 발견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치니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어려운 틈을 타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제압하려는 무리도 있습니다. 생명을 끊으려고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지고 물을 붓는 악한 사람들입니다(3:53).

 
그때 애가서 기자가 “여호와여”라고 하나님을 부릅니다. 깊은 구덩이에 빠진 채로 하나님을 부르는 간청입니다.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입니다. 간절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전에도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이 과거 시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음성에 귀 기울이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깊은 구덩이에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믿음의 자산을 갖고 탄식하며 부르짖는 확신의 기도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올 한 해 우리의 삶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쉬운 삶은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임재와 도움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

 

뺨을 돌려대어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애가서 말씀 중에 까다로운 구절을 만났습니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애 3:30)

 

하나님 앞에서 큰 재앙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에 주신 말씀입니다.
앞 구절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
선지자를 통해서 예고하신 매우 큰 재앙이 찾아왔음을 알립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동안의 잘못을 조사하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아침마다 의지했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애가서가 알려주는 깊은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이스라엘은
입을 땅의 티끌에 대면서 회개했습니다.
잘못했지만, “혹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소망을 구했습니다.

 

그 다음에
자기를 치는 자들에게 뺨을 돌려대서
치욕으로 배부르게 하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에 재앙이 찾아오니
주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는 행위는
잘못한 것을 가볍게 피해가지 않고
충분히 죄의 값을 치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수요일에 살펴보는 사무엘하 말씀에서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다윗이
연거푸 치욕스러운 일을 겪는 것도 생각납니다.
다윗은 묵묵히 자신이 감당할 멍에를 지고
어려운 기간을 견디고, 주어진 길을 갑니다.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는 죄값을 충분히 감당하는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의 본심을 발견하고
온전한 신앙으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라는 말씀은
“오른편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5:39)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폭력 운동을 주창했던 월터 핑크는 그의 저서 <예수와 비폭력 저항>에서
당시 유대의 습관을 갖고 예수님 말씀을 풀어갑니다.

 

(상황을 눈에 그리면서 자세히 읽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관계에서 상대방의 오른편 뺨을 치려면 왼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 관습에서 왼손 사용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른손 손등으로 상대의 오른편 뺨을
치욕스럽게 “찰싹찰싹” 때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주인이 노예를,
또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치욕을 줄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애가서에서 첫 번째 뺨을 맞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때 왼편 뺨을 돌려대면,
상급자는 왼편 손등을 사용해야 상대방에게 치욕을 줄 수 있는데
왼손은 사용 불가이니 할 수 없이 오른손을 들어서 왼편 뺨을 때려야 합니다.
오른손을 충분히 사용하는 것은 상대방을 동등한 경쟁 상대로 여기는 행위이기에
상급자는 몹시 당황해서 더 이상 폭력을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군가 오른편을 때리면 왼쪽 뺨을 돌려대서
상대방을 어이없게 만드는 식으로
폭력에 저항하길 알려주셨다는 것이 월터 핑크의 해석입니다.
“치욕으로 배불릴 지어다”라는 애가서 말씀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러고 보니,
예레미야 애가에서 뺨을 돌려 대면서 치욕을 감수하는 것은
한편에서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뺨을 내리치는 사람에 저항하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얘가서 3장 30절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모두 “그(he)”여서 누가 누구인지 헷갈립니다.

 

3.
때때로 어려운 성경 본문을 만납니다.
애가서처럼 재앙을 겪고,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벌로 여기는 말씀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에 모순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말씀을 곱씹으면
말씀에 담긴 새로운 의미와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본심을 발견합니다.
숨은 그림을 찾고 보물을 찾는 것과 같은 성경 읽기의 묘미입니다.

 

때때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지만,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경을 사랑하는 우리의 열정이 만나서
성경이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길 바랍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가 3:33)

 
하나님,
아침마다 주시는 주의 말씀, 그 깊이에 스며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 27 이-메일 목회 서신)

새롭게 시작합시다 (4)

– 인자하심을 따라

 

예레미야 애가서를 읽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대하시는 것이 너무 심하게 느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충분히 경고하셨고, 이스라엘의 죄악도 용서받기 힘들었지만,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멍에를 메우셨다고 말하니,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선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도 하나님을 기업삼고 아침마다 새롭게 찾아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애가서 말씀이 대단하게 다가옵니다.

 

애가서 속의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구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서로 대표되는 구약의 정통 신학은 인과응보입니다. 그에 반기를 드는 욥기같은 말씀도 있지만, 대부분 구약성경은 죄와 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애가서 역시 이 같은 구약의 큰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가서 처음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리고 오늘 본문(33절)에도 알려 주듯이 백성들에게 벌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잠시 벌을 주어서 힘들게 하시지만, 결국에는 구원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악해서 보통 벌을 갖고는 뉘우칠 가능성이 없으니 하나님께서도 궁여지책으로 큰 재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역시 “인자와 긍휼”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에 따른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기 백성을 심판하지만, 하나님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변치 않는 인자(헤세드)와 어머니 같은 긍휼(레헴)이 자리잡습니다. 그러니 재난으로 인해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결국에는 구해 내실 것입니다.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이 여기실 것임이라”(32절)는 말씀이 당시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생하게 하시고 근심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절대 아닙니다. 또한 여기서 “근심”은 힘든 일이 겹치면서 찾아오는 슬픔입니다. 애가서의 슬픔은 죽은 자를 애도할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이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할 신앙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입술을 땅에 대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혹시라도 소망을 주실 것을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河-

 

멍에를 메고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예레미야 애가 본문에서
“멍에(yoke)”라는 표현을 만났습니다.
젊었을 때 멍에를 메는 것이 좋고
그것조차 하나님께서 메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일설교에서 의미를 설명했지만,
멍에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멍에는 고대 이스라엘은 물론 주변국들,
심지어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소나 나귀 같은 가축의 목에 걸어서 통제하고,
밧줄로 연결해서 농기구를 끌게 하는 기구입니다.

 

성경에서 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우선, 노예 상태 또는 억압의 의미입니다(레26:13).
멍에에서 풀려나는 것을 해방으로 묘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멍에를 풀어주시는 해방자가 되십니다.

 

둘째로, 감당해야 할 짐입니다(렘27:2)
예레미야가 멍에를 매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한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것을 감당하는 것을 멍에로 설명했습니다.

 

셋째로, 멍에는 연결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멍에 하나로 두 마리의 소를 연결해서
밭을 갈거나 농사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의 멍에는 두 번째 감당할 짐에 해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감당해야 할 멍에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벗겨 주실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참된 쉼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고 가던 율법의 멍에와 대비됩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과도한 멍에를 강요했습니다(마23:4)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자유가 없었고
신앙과 종교가 도리어 백성들을 억압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것을 “종의 멍에”라고 불렀습니다(갈5:1)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참된 은혜의 종교,
진정한 해방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들에게 새로운 멍에를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계명입니다(마22:36)

 

게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죄의 짐도 모두 없애 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쉼을 얻게 됩니다.

 

3.
주일 날 말씀드렸듯이
우리 모두 지고 가는 멍에가 있습니다.

 

행여나, 어떤 일이나 사람 또는 환경에 눌린 멍에가 있다면
하나님 안에서 자유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또한 가정이나 세상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감당해야 할 멍에는 기쁘게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마음에 쉼을 얻으면서
올 한 해 주어진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9-30)

 

하나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멍에를 메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 20 이-메일 목회 서신)

새롭게 시작합시다 (3)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새롭게 시작합시다>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에 맞춰서 예레미야 애가서를 읽고 있습니다. 여전히 팬데믹이 지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과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기다리는 애가서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애가서는 예루살렘의 멸망 앞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눈물로 기록한 슬픔의 노래입니다. 조가(弔歌)에 맞먹는 애가서는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했음을 슬퍼합니다. 큰 재앙이 닥쳤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앞세워서 애통하고 부르짖습니다. 예루살렘은 자신들의 행위를 조사하고 결국에는 하나님께 돌아와서 다시 눈물로 회개합니다.

 

애가서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이 한 가운데 위치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애가서 3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벌을 내리신 것은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벌을 내리시지만, 그 끝에는 구원과 회복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들을 야단치고 꾸짖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에 어머니의 마음이 들어있는 이유입니다.

 

쑥과 담즙과 같은 고난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이 눈물로 회개하면서 소망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이 겪는 모든 어려움이 결국에는 소망이 된다는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인데 하나님께 소망을 두니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힘든 삶 한 가운데서 아침마다 찾아오시는 성실하신 주님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기업삼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애가서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고난을 주신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니 고난도 결국에는 소망이고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좋으신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따라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 잠잠히 주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힘든 멍에를 지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듯이 우리도 자기 멍에를 지고 묵묵히 인생길을 가는 것입니다. 옛날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처럼 자기가 스스로 자초한 멍에라면 입을 땅의 티끌에 대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주님을 찾습니다. 그때 임하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어떤 이유든지 인생길에 근심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때 소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치욕을 당해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주님을 찾고 기다리는 주의 백성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