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형제 빌레몬 (1)

골로새 교회의 빌레몬

 

매년 하반기에는 신약 성경 가운데 한 책을 선택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올해는 사도 바울의 옥중 서신 가운데 하나인 빌레몬서를 읽겠습니다. 빌레몬서는 한 장으로 되어 있고, 빌레몬이라는 개인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에서 존경받는 신실한 지도자였습니다. 그에게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는데 오네시모가 주인인 빌레몬에게 큰 잘못을 범하고 도망했고, 로마 감옥에 있던 바울을 만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레몬서는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라고 요청하는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빌레몬이 살던 골로새라는 지역은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100여 마일 떨어져 있었고, 인근에는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가 있었습니다. 골로새 역시 한때는 명성 있는 도시였지만,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쓰는 당시에는 에베소나 라오디게아에 비해서 작은 도시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주후 60년경에 라오디게아와 골로새 일대에 커다란 지진이 연거푸 발생하였는데 라오디게아는 스스로 지진복구가 가능했던 반면 골로새는 폐허가 된 채로 재기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네 개의 옥중서신(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을 남겼습니다. 바울이 직접 개척한 에베소와 빌립보 교회와 달리,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그곳을 방문했던 에바브라가 예수님을 믿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추측합니다(골4:12).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은 로마를 방문한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 교회에 그릇된 복음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에 대해서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골로새서입니다.  바울은 두기고와 오네시모 편에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때 빌레몬서도 함께 전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읽은 빌레몬서의 인사말(1-3절)에서는 편지를 보내는 바울과 디모데가 빌레몬과 골로새 교회에 문안합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빌레몬, 빌레몬의 부인으로 추측되는 자매 압비아, 빌레몬의 아들일 가능성이 큰 바울과 함께 주님의 군사된 아킵보입니다. 빌레몬은 그의 집을 예배처소로 개방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과 그의 가정 그리고 골로새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임하길 기원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기둥이었고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데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이 꼭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河-

감사의 달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달력이 달랑 두 장 남았습니다.
이제 (추수)감사절만 지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이 닥칠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얼른 커서 어른이 되고 싶어도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갔건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헬라어에 시간을 뜻하는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인데,
일 년 365일 달력의 숫자를 따라서 사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힘을 가진 사람도
벽 위에 있는 시계의 초침을 다스릴 수 없듯이
우리는 크로노스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와 달리 통제 가능합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365일을 각자의 자리에서
뜻깊은 시간으로 만드는 창조적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쫓기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다만 한순간이라도 의미를 찾고 가치 있게 만드는
창조적인 시간 카이로스를 추구합니다.

 

2.
야고보서에서는
크로노스를 사는 인생은 안개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약 4:14).

 

“안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트미스>는
물방울(vapor), 연기(smoke), 내쉬는 숨(exhalation)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백세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크로노스의 인생길만 산다면 인생이 늘 짧게 느껴질 것입니다.
안개와 같다는 말에 사로잡히고 아쉬움만 쌓일 수 있습니다.

 

인생의 연수에 상관없이
우리 삶이 참된 의미로 채워질 때
밀도 있고 보람된 삶이 될 것입니다.

 

3.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 있다면
“사랑과 감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고
선행(charity), 작은 사랑이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를 표현하는 말과 행동 역시
의미 있는 삶을 이끄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인도합니다.

 

11월 한 달은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아봅시다.

 

감사 속에 임하는 기쁨, 행복, 은혜, 넉넉함을 누립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합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시 118:28)

 

하나님,
감사의 새달을 맞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1. 4이-메일 목회 서신)

하박국 (5)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구약성경 하박국서에 관한 연속 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 인물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떠나고 결국 당시의 제국 바빌론에 멸망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들고 거리로 나가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외쳤다면, 하박국 선지자는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홀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질문하고 탄식했습니다(1-2장).

 

하박국 선지자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이스라엘에 만연한 악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 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의 예상과 달리 바빌론 제국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무너뜨리실 것이라고 답변하셨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이방 제국에 무너질 수 있냐고 강력히 항의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 “화 있을진저”라는 경고를 통해서 바빌론을 비롯한 악한 세력과 민족들이 반드시 멸망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박국서 마지막 3장은 하나님의 응답에 설득당한 하박국의 찬양과 기도입니다. 하박국은 마음에 생기는 의심을 하나님께 나와서 솔직히 질문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찾으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때가 되면 악한 세력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은 세상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2:14).

 

하박국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이전에 임했던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찬양합니다(2-15절).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죽음의 세력인 바다와 물을 제압하십니다. 악인의 머리를 치시고 그들을 산산조각 부숴 버리십니다. 전사 하나님(Warrior God)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바빌론을 비롯한 악한 세력과 싸우시는 장면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앞으로 닥칠 재앙을 생각하니 창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박국은 희망을 찾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립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유명한 고백이 이어집니다:“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라고 고백하면서 어려움을 넘고 탄식을 넘어서 소망의 길로 나갑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기다리고 찾고 구한 하나님 백성이 누리는 은혜입니다.-河-

피난처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10월도 저물어갑니다.
길가에 낙엽이 뒹굴고
엊그제 단비까지 내리면서
나뭇가지가 앙상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싹이 돋는 봄을 좋아하고
낙엽이 지는 가을은 솔직히 별로입니다.
그렇지만 자연의 순리를 어길 수 없어서
어느덧 60 번에 가까운 가을을 맞고 있습니다.

 

싹이 트고, 파란 잎과 열매를 맺고
거기에 멈추면 좋은데
마지막으로 화려한 단풍과 함께
하나하나 잎이 떨어질 때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도 생각나고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가 있는 샌프란 도심은
사시사철 서늘하고 계절의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 권사님들이 연세에 비해서 젊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2.
하여튼
가을이 찾아오면 한 해를 돌아봅니다.

 

기쁘고 감사한 일들은 나뭇가지에 달려있습니다.
바닥에는 힘들고 외롭고 막막한 일들이 낙엽처럼 뒹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 역시 연약하고 부족해서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기쁨과 감사보다
길가에 뒹구는 어려운 일들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밟힙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감사하고 기쁜 일들이 많이 생긴 식구들
힘들지만 참으면서 한 해를 믿음으로 사신 식구들
예상치 않은 일들로 인해서 마음고생을 하신 식구들
선하게 살았는데 힘든 일이 닥치니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신 식구들
혼란하고 악한 세상을 보면서 하박국처럼 탄식하고 질문하시는 참빛 식구들.

 

목사로서는
어려운 한 해를 사신 참빛 식구들께 마음이 더 쓰입니다.
목회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3.
무엇보다
어려운 중에도 피난처 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믿음이 남아있고
그 믿음이 우리를 견인하는 것에 역시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 “주님”
무심코 또는 간절히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 것도 감사합니다.

 

주일에 하박국을 함께 살펴보면서
“탄식(lament)”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탄식은 금기 사항이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모범 답안처럼 여겼는데
하박국과 아침에 읽는 욥기를 통해서 “탄식”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앙의 요소/덕목임을 배웠습니다.

 

10월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 앞에 솔직히 서기 원합니다.
우리 힘으로 다스리기 어려웠던 것들
저절로 눈물이 나오고 원망과 탄식이 나왔던 순간들
하나님 앞에 남김없이 내어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표시가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고 의지한다는 표시입니다.

 

마음껏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흘려보내고
홀가분하게 올해 남은 두 달을 맞이합시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62:8)

 

하나님,
주님 앞에 나와서 마음을 쏟는
참빛 식구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 28이-메일 목회 서신)

하박국 (4)

– 정한 때가 있나니

 

하박국서는 선지자 하박국이 두 번의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으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이스라엘에 만연하는 악을 두고 보실 것이냐는 항의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바빌론이라는 당시의 최고 강대국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빌론에 멸망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서 어떻게 하나님 백성이 세상 제국 바빌론에 멸망할 수 있느냐고 재차 질문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백성이 바빌론에 무너졌을 때 그들이 기뻐하는 것을 차마 지켜볼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

 

두 번째로 질문한 하박국은 망대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끝까지 기다리고 추구하는 하박국의 태도와 믿음이 돋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대답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판에 새겨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은 곧 바빌론에 멸망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바빌론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도록 판에 기록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바빌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교만, 정직하지 못한 거짓, 술을 즐기며 권하듯이 다른 사람을 유혹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바빌론에 하나님의 화가 임할 것입니다. 바빌론은 여러 나라를 무너뜨리고 큰 제국을 세웠지만, 그들이 행한 교만과 악행을 그대로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으로 장차 멸망할 바빌론의 교만과 악행을 일일이 열거하십니다. 첫째는 폭력과 학정으로 여러 나라를 착취한 행위, 둘째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것, 셋째는 백성들의 피의 댓가로 불의로 도시를 건축하고 곧 불에 타버릴 헛된 일을 행한 것, 넷째는 이웃에게 술에 취하게 해서 수치를 당하게 하고 치욕스러운 길을 가게 한 것, 마지막 다섯째는 나무와 돌을 신처럼 섬기는 우상숭배에 대해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성전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분명하게 판에 기록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은 훗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河-

작은 손길 큰 도움

단비가 내리는 좋은 아침입니다

 

1.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종종 외로운 순간을 맞습니다.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오르기도 하지만,
너무 자주 작은 일에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견디지만,
때로는 신앙까지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작은 일에도 흔들립니다.

 

우리의 삶과 존재 자체를 힘들게 하는 큰 일이 찾아오면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에 휘말립니다.

 

그때 누군가 손을 꼭 잡아주고,
마음과 기도로 함께 해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요.

 

2.
지난 월요일 참빛 카톡방에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Jill Biden)에 관한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2015년 장성한 아들(46세)을 뇌종양으로 잃었습니다.
질 바이든은 그때부터 4년여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배우는
탄식의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엄청난 비극에 신앙의 축이 흔들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배신감을 느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 대통령 유세를 하면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브루클랜드 침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주로 아프리칸 아메리칸100여명 교인이 참석한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아내가 질 바이든 옆에 앉아서 손을 잡고
“제가 당신의 기도짝(prayer partner)이 되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수요일마다 텍스트를 주고받았고
그 작은 도움으로 인해서 질 바이든은 다시 신앙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 질 바이든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브루클랜드 침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경호원들이 교회에 배치되는 등 특별한 일이 생겼지만,
목사님 부부는 상원의원 정도가 오는 줄 알았는데
영부인이 예배에 와서 자신이 어떻게 신앙을 회복했는지 간증까지 했더랍니다.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요!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었을까요!

 

3.
우리의 삶이 만만치 않습니다.
속을 내보이면,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마음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혼자서 끙끙 매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물론, 우리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기에 멀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작은 마음 씀씀이가
어려움 속에 있는 이웃들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깜짝 놀랄 경이로운 일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천사의 손길을 기대합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의 손과 마음이 되어서
이웃을 보듬어 앉아주고 기도짝이 되고
같은 길을 걷는 신앙의 동지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주님 보내신 천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10. 21이-메일 목회 서신)

하박국 (3)

–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그동안 살펴본 하박국 선지자의 탄식은 하나님 백성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탄식하고 때로는 항의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탄식하고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표시입니다. 물론,“나의 하나님”이라는 선지자의 고백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고 하나님의 응답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함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뿐 아니라 시편에도 하나님 백성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드리는 탄식 기도가 많이 등장합니다. 개인에게 닥친 어려움 가운데 드린 개인 탄식시,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에 환난이 닥쳤을 때 드리는 공동체 탄식시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13편은 다윗이 드린 개인 탄식시입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십여 년 이상 광야에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왕이 되고 노년이 되었을 때는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밤중에 피신을 가야 했습니다. 다윗은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시편에 등장하는 다윗의 시는 다윗의 삶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대표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남유다는 바빌론에 무너지면서 포로로 잡혀가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습니다. 후대에는 알렉산더의 후예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성전을 유린하고 예배를 금지했습니다. 그때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시편 13편에는 “어느 때까지니이까(how long)”라는 질문이 네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으시는 것 같고,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지 않습니다. 원수들은 하나님 백성을 이겼다고 자랑하고 즐거워하니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니 고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질문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라는 질문은 탄식시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다윗은 탄식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구합니다. 대적에게 무너질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탄식시는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5절)는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탄식의 열매는 포기나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확신하는 구원의 소망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탄식과 애통의 기도는 마음을 하나님께 솔직히 내어놓고 주의 도움을 구하는 깊은 기도입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기회입니다. 우리가 애통하고 탄식할 때 임하는 주님의 위로와 소망을 기대합니다. 할렐루야!-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