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널 위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 찬양팀이 선곡해서

함께 부른 찬양 가운데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가 있었습니다.

 

언제 불러도 은혜로운 찬양입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누군가 위해 기도하네

 

본문에서 누군가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부모님, 자녀들,

형제자매, 교회 식구들이 모두 포함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기도가 있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도의 빚을 지며 살고 있습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해 준다면

아름답고 강력한 기도의 체인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2.

위에 소개한 찬양 가사를 세심하게 읽으면,

우리가 외롭고 힘들 때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지는 “누군가”는 곧

예수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침마다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

제자들과 훗날 예수님을 따를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7장, 대제사장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외롭고 힘들 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편이 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그 힘으로 우리가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며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알려줍니다.

 

성령 하나님의 별칭은 보혜사입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위로하시고

상담해 주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3.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무심코 하는 말이나,

인사치레가 아니길 바랍니다.

기도해 드리겠다는 약속을 꼭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후에

셀폰 캘린더에 노트해 놓는 것도 약속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

오늘도 누군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임한 은혜이고 힘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

 

하나님,

기도의 체인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20 이-메일 목회 서신)

요한복음 5장 (1)

베데스다 연못

 

오늘부터 한달여 요한복음 5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부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11장까지 한 묶음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특별히 ‘표적(sign)’이라고 부릅니다. 표적은 예수님의 기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가지 기적을 소개하고, 각각의 기적 후에는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표적(sign)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가지 표적 가운데, 세 가지는 갈릴리에서 나머지 네 가지는 예루살렘에서 행하셨습니다.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갈릴리에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표적은 갈릴리에 있는 관리의 아들을 방문하지도 않고 말씀으로 고치신 것, 세번째는 우리가 살펴볼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 네번째는 갈릴리에서 행하신 오병이어, 다섯번 째는 물위를 걸으시고, 여섯번째는 날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을 고치신 표적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표적은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공부할 요한복음 5장은 유대인의 절기를 따라서 펼쳐지는 예수님의 사역 첫번째입니다. 5-11장까지 한 묶음입니다. 안식일(5장), 유월절(6장), 초막절(7장), 하누카(10장)로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베데스다(“은혜의 집”)라고 불리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이 연못은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했습니다. 행각 다섯이 있었는데, 혹자는 그것이 모세의 다섯 두루마리를 뜻하면서 여전히 율법에 얽매인 예루살렘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19세기 후반 독일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베데스다 연못터가 발견되어서 요한복음 5장의 역사성이 증명되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행각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내려오는 때가 있는데 그때 연못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병자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 피가 돌지 않아서 몸이 마비되는 사람들이 천사들이 내려와서 물이 심하게 움직일 때를 기다리며 머물고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물이 동할 때, 연못으로 뛰어들어가는 한 명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이 동하기를 막연히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찾아가셨습니다.-河-

나우루 섬

좋은 아침입니다.

 

1.

셀폰으로 전달되는 뉴스 가운데

호주에서 2천 마일 떨어진 남태평양에 있는

나우루(Nauru)라는 섬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나우루는 바티칸시티와 모나코에 이어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작은 독립 국가입니다.

섬의 면적이 20제곱킬로미터(약 8마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곳에 12,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남태평양 원주민입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기독교인이고요.

 

나우루는 3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9세기에는 독일 식민지였고, 2차 대전 때는 일본군이 주둔했습니다.

호주 네덜란드 등의 합병 통치를 받다가1968년에 독립하였습니다.

 

나우루는 한 때 세계에서 아랍 에미리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잘 사는 국가였습니다.

인광석으로 덮인 섬이었기에 자원이 고갈된

1980년대까지 최고의 부를 누린 것입니다.

 

국민들은 게을렀습니다.

90% 이상이 비만이고, 절반 가까이 당뇨병을 앓고 있습니다.

기대수명이 65세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나우루 정부는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웠습니다.

페이퍼 컴퍼니를 허용해서 조세 피난처가 되기도 했고

1997년에는 천여 개의 여권을 돈 주고 발급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피아들의 자금 세탁 경로가 되고

나우루 여권을 갖고 테러를 일으킨다는 제보도 있어서

그나마도 중단해야 했습니다.

 

2.

CNN보도에 의하면

올해 나우루 정부는 $105,000.-을 내면

나우루 시민권을 발급해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 89개국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황금 여권(Golden Passport)입니다.

 

이번에 시민권 장사를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서 나우루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변에 사는 주민들이 이사를 해야 하는데

개인은 물론 정부에 재정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민들의 이사비용은 물론,

해수면 상승 등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기사를 읽고

나우루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니 사정이 딱합니다.

수십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에 속했는데

길가에 버려진 고급 승용차들과 녹슨 광산 장비만 뒹굴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심한 관리들이

시민권 장사를 통해서 조달한

자금을 제대로 쓸지도 의문입니다.

테러와 사기 등에 사용될 가능성도 큽니다.

 

3.

나우루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구약성경 전도서가 생각났습니다.

 

모든 것이 헛됩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취하고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자만에 빠져서 몸집만 불려도 안 되겠습니다.

 

어렵게 쌓아온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소중하게 관리하고 발전시켜야겠습니다.

 

처음과 끝이 똑같은 신앙과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5)

 

 

하나님,

반석 위에 집을 짓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13 이-메일 목회 서신)

찬송가 해설(12)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엊그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2025년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킵니다. 초대 교회부터 지켜오던 전통입니다. 사순절은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에 기독교인이 되는 첫 관문인 세례가 그만큼 엄격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금식하며 경건의 훈련을 했습니다. 금식해서 절약된 양식과 재정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매년 맞는 사순절이지만, 2025년 사순절은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올해 사순절도 특별한 기간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금식과 절제를 통해서 신앙을 돌아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을 준비를 하는 사순절로 만듭시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의 배경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무덤을 찾아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관점에서 쓰인 찬송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이 지난 안식 후 첫날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기에,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동산으로 가는 길옆에 핀 장미꽃에는 아침 이슬이 맺혀 있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도착해보니 무덤을 막아 놓았던 돌이 옮겨졌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감히 무덤 안을 들여다볼 생각도 못 하고 서둘러 내려와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한 명의 제자가 무덤으로 뛰어갑니다. 또 다른 제자는 요한으로 보입니다.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와 수건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미처 생각하지도 믿지도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자기들이 머물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안을 들여다봅니다.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이 누우셨던 머리와 발에 앉아 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묻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누군가 훔쳤고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마리아는 “랍오니 (선생님)”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만지는 것을 허락치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을 지은 오스틴 마일즈(Austin Miles)는 요한복음 20장 말씀을 읽고 감동해서 이 찬송을 지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듯이 묘사했기에 더욱 은혜롭습니다.-河-

단짝

좋은 아침입니다.

 

1.

“단짝”

– 꽤 친근한 말입니다.

 

어릴 적에는 거의 항상

단짝 친구를 만들 곤했습니다.

단짝 친구가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고 당당했습니다.

 

십 대 시절에는

단짝 친구(들)와 끝까지 우정을 지키자고

엄숙함에 가까운 약속도 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삶이 다르게 전개되고

물리적으로 헤어지게 되면서

단짝 친구와의 약속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이브를 단짝 친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탄생했으니,

옆구리(side)를 맞대고 살아가는 단짝 친구입니다.

성경은 돕는 배필(helper)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단짝 친구의 우정을 그릇 사용했습니다.

둘이 함께 연대해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자리를 감히 엿보았으니

무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윗과 요나단도 단짝 친구였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로서 왕국의 후계자였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아버지가 아니라 다윗 편에 섭니다.

피는 진하다는 속담을 삭제해 버린 순간입니다.

 

 

이처럼 요나단은 아버지를 배신하면서까지

단짝 친구 다윗과 함께 옳은 길을 갔습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우정)이 지극했습니다.

 

3.

지난 주일 설교에서 나눴던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작사 작곡한

대니얼 위틀(Daniel Whittle)과 제임스 맥나라한(James Mcnarahan) 은

1840년생 동갑이었습니다.

 

두 분의 친분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우리 찬송가에 실린 3곡을 작사 작곡한 것을 보면

단짝 친구였을 것 같습니다.

 

위틀은 시(詩)를 쓰고,

맥나라한은 친구가 쓴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자신들의 찬송이 교회에서 불리는 것을 보면서

둘이 있어서 한없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홀로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외롭습니다.

인생을 함께 걸어갈 단짝 친구가 있다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것입니다.

행복할 것입니다. 든든할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이

서로에게 단짝 친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목사로서 갖고 있는 기도 제목이고 바람입니다.

그런 공동체, 장(場)을 만들고 싶답니다. 함께 노력해 봅시다.

 

혹시 안되어도 실망하지는 맙시다.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함께 걸었던

단짝 친구의 이름도 불러보고, 안부도 전해 봅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잠언 13장 20절)

 

 

하나님,

항상 곁에서 동행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3 6 이-메일 목회 서신)

친밀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두 달 동안 주일예배에서는

올해 표어인 <기도와 말씀으로>에 맞춰서

말씀과 기도에 관해서 공부했습니다.

 

2월부터 살펴본 기도에 대한 말씀에서는

기도를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로 정의하고

하나님과 속삭이듯이 얘기하는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이후에 나누는 대화는

과거, 현재와 미래, 단순한 스몰 토크부터 깊은 대화까지

말 그대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대화입니다.

 

이처럼 대화는 관계를 형성해 주고

친밀함으로 나가게 합니다.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정의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제조건이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접속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처음에 한두 번 접속하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정기적으로, 수시로 하나님과 접속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과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형성되었을 때,

하나님과 얘기하듯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3

관계가 깊어졌다는 표시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친해지면,

기도의 방향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옮겨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자신을 뛰어넘는 기도입니다.

 

관계가 깊어졌다는 또 다른 표시는

혼자 있을 때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친밀하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과 속삭이고, 마음을 드리고,

필요할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일지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4.

아침에 함께 읽고 묵상하는 요한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로 묘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 하나님께 초대하고

하나님 자녀로 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셨음을 뜻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깊고 친밀한 기도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올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하나님,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27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