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기도 (6)

물들이 주를 보고

 

2020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시편 77편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시편 77편은 10절(“이것이 바로 나의 아픔입니다. 나의 약함입니다. 그런데 지존자의 오른손이 변화시켰습니다”)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었습니다.

 

전반부는 밤에도 손을 내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치열하게 씨름한 시인의 기도였습니다. 좀처럼 응답되지 않아서 한숨이 나오고 힘이 빠졌지만, 끝까지 기도의 끈을 놓치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였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후반부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전에는 힘겨웠던 일이 이제는 찬양과 감사로 변합니다. 깊은 은혜를 경험한 결과입니다. 그것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고 낮은 소리로 노래하면서 마음에 채웠습니다. 소리 없이 강한 시인의 모습을 닮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이로움(wonders)을 고백합니다.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작은 것도 기적으로 변하게 마련입니다. “속량(redemption)”이라는 표현에 주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값을 지불하시고 자신의 백성을 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도 함께 묵상했습니다. 우리 역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우리와 세상을 구하고 속량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했습니다.

 

기도는 피조물인 인간이 온 세상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안에 가두려는 욕심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는 경이로움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사에 초대하지만, 그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별것 없는 우리 일상과 인생이 하나님 역사의 한 부분으로 승격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니 기도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대 시대에 인류를 위협하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다의 폭풍입니다. 폭풍이 불거나 해일이 닥치면 속수무책이어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고대사회에서 폭풍을 다스리는 신이 최고였습니다. 본문 속에서 물들이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했다는 말씀은 시인이 고백했듯이 하나님이 최고라는 뜻입니다(16절). “깊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홈>에는 당시 제국인 바빌론의 여신 티아맛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도 하나님께서 깊음을 제거하십니다. 회오리바람, 우렛소리, 번개와 땅이 흔들리는 지진 등은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통제하시니 하나님께서 그 어떤 신보다 가장 위대하다고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주간 동안, 겸손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기 원합니다. 모든 물들을 이기신 하나님이 최고이심을 고백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하나님의 크심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북극곰 살리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지역이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베이 지역만 해도 수십 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났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샌프란의 경우, 9월에 한 번 닥치는 인디언 썸머 외에는

도시 전체가 냉장고처럼 선선한 것이 특징입니다.

여름에도 히터를 틀어야 할 정도로 춥습니다.

그런데 보름 전쯤 90도가 넘는 더위가 찾아왔습니다.

건기인 8월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도 내렸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더위, 천둥 번개, 산불까지 우리 마음을 심란하게 만듭니다.

 

미국 동부에 허리케인 로라가 상륙해서

커다란 폭풍우가 예상됩니다.

 

한국에서도

건물이 반쯤 잠길 정도의 폭우를

동반한 장마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태풍도 찾아왔습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 내리고 있습니다.

캐나다에 있던 5천 년 된 만년설이 녹고 있다는 소식

남극의 얼음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광경까지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80년 후인 2100년이 되면 북극에 얼음이 녹아서

북극곰이 멸종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습니다.

 

2.

1951년부터 1980년까지 지구 온도를 기준 삼아서

지구의 평균 온도를 15도로 보는데

지난 10년 동안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평균기온이 2도 이상 높아지면,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바닷가에 가까운 도시는 물에 잠길 수 있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결과입니다.

지역적으로 폭우가 내리고, 가뭄이 찾아오고

폭염은 물론 예측 못 할 생태계의 변화가 생깁니다.

 

스웨덴의 십 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쿤베리는

어른들이 손을 놓고 있으니,

장차 지구에서 살아갈 십 대가 나서야 한다면서

환경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

일 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1위인 미국,

–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들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입니다.

 

이미 늦었다는 비관론도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마음으로

지구 살리기에 온 인류가 앞장서야 합니다.

그래야 장차 이 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정신 차려서 북극곰을 살려내야 합니다.

 

3.

지구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후손들이 살아갈 생활 터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기 원합니다.

 

이 일에 앞장서는 지도자들이 생기고

우리가 그들을 후원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심하면서

고온으로 아파하는 지구를 살려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Gen 1:31)

 

하나님,

지구를 살리는데

개인과 모든 나라가 힘을 합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27이-메일 목회 서신)

2020 기도 (5)

속량하리이다

 

하나님 안에서 터닝 포인트를 경험한 시편 기자의 입에서 찬양이 나옵니다. 앞에서 드린 기도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씨름이었다면, 후반부의 찬양은 공동체와 함께 드리는 간증과 고백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편 77편은 탄식과 찬양은 물론 개인과 공동체가 조화를 이룹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관심사가 바뀝니다. 크고 높으신 하나님의 시야를 갖게 됩니다. 시편 기자도 주님께서 행하신 옛날 일을 읊조리고 주님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노래했습니다(11-12절). “작은 소리” “낮은 소리”라는 우리 말 번역처럼 시편 기자가 받은 은혜를 자기 내면에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강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는 온데간데없고 시인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가득 찼습니다. 1-10절에는 “나”라는 단어가 주어로 사용되었는데, 후반부로 오니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문제가 자신을 얽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은 온데간데없고 자기에 닥친 문제만 보였습니다. 문제가 하나님과 시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존재,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먹구름이 거치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듯이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만큼 위대하신 분이 없습니다. 크게 다가온 문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하나님의 도(말씀)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채웠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손길이 깃들어 있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난 시인이 경험하는 기도의 신비(mystery)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온 민족 중에 알리길 기도합니다. 요셉과 야곱으로 시작된 주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능하신 팔로 속량(redemption)하심을 믿습니다. “속량”은 하나님께서 대신 값을 치르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구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 속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자신을 인식(self-awareness)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니 하나님께서 베푸신 속량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 자신은 물론 상황까지 변화시킵니다. 속량(贖良) – 구원의 은혜가 온 세상에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무슨 일이든지 주님께서 함께하신 경이(기적)로 만드는 것도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의 끝에 찬양이 있습니다. 기도를 넘어서 찬양에 이르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河-

행복점 찾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살펴보는 시편 77편 말씀대로

하나님을 만난 후 변화된 삶은

하나님 손길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경이로움(His wonders),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나님 안에서 경험하는 깜짝 놀랄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그동안 함께 읽었듯이

시편 77편에서 시인의 삶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밤에도 손을 들고 기도하고

기도해도 안정은커녕 불안함과 한숨이 나오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사람의 위로까지 마다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질문하고 사정하면서

그 어려운 시간을 견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함과 슬픔을 인정하고

지존자의 오른손이 행하신 변화를 경험하면서

말 그대로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시편 77편은 10절을 중심으로

전과 후가 나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반부가 하나님과 씨름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는 하나님의 경이와 하신 일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감사의 시간입니다.

 

이전에는 옛일을 기억하면 불안했는데

이제는 옛일을 기억하니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이 생각납니다.

 

2.

저도

팬데믹 기간은 물론

그 이전의 옛날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힘들었던 일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을 예상해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고

여전히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했습니다.

 

교회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온상지가 되었다는

조국의 뉴스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시편 77편의 터닝포인트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편 말씀처럼 전과 후가 완전히 갈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옛일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했던 날들

주의 경이로움이 넘쳤던 순간들

교인들, 이웃들, 가족들과 더불어 행복했던 기억을 생각했습니다.

 

지나온 <행복점>들을 찾아서

지금 이곳으로 가지고 오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송이 나왔습니다.

 

3.

주의 경이로움을 생각하는 주간입니다.

 

그 비결 가운데 하나가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내서

그 속에 깃든 주의 손길, 주님의 기적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행복점 찾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때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하시고

앞으로도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시편77:11)

I will remember the deeds of the LORD;

yes, I will remember your wonders of old.(Ps 77:11)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마음 속에 기쁨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20이-메일 목회 서신)

2020 기도 (4)

기억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살던 곳, 만났던 사람들, 그때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물론 잊고 싶은 기억도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아서 마음고생도 합니다.

 

성경에도 “기억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400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도 기억하고 지켜야 했습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구축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성경의 약속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토대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소망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억하며” “기억하리이다” “읊조리며” “되뇌이리이다”와 같은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시편 77편의 전반부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고, 어려울 때 불렀던 노래를 기억했습니다(3, 6절). 그런데 그 기억의 결과는 불안함과 한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존하신 하나님의 오른손을 경험한 후에 새롭게 변화됩니다(10절).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읊조리듯이 그 은혜를 입으로 고백하기를 반복합니다. 앞에서는 과거의 기억이 불안으로 이어졌다면, 오늘 본문의 기억은 찬양으로 발전합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전과 후의 차이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전환점을 수시로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되돌아보고 다시 기억하는 순간입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서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지나온 옛길을 기억하면 찬양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구체적으로 느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소원을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차분히 앉아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읊조리는 시간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2020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의 기도가 깊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끊을 수 없느니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큐티 본문이

로마서 8장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 보석같이 빛나는 최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창조 세계와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 스스로 거부했습니다.

모세 율법을 알고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신

이스라엘도 율법에 걸려 넘어가서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 오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여전히 죄라는 악한 세력이 이곳 저곳에 침투해서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탄식할 만큼

죄의 유혹이 큽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죄로 인해서 힘겨워하는 우리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모든 죄에서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잠시 잠깐 죄에 넘어갈 수는 있어도

죄가 절대로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2.

그래도 우리는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그  뜻대로 기도하고 실천하는데 취약합니다.

 

그때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면서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거칠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분리시킬 세력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칼이나 전쟁도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도

벌거벗겨진다고 해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을 것이 없습니다.

 

3.

분리불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애완견의 경우 주인과 떨어지면

몹시 불안해하고 이상하게 행동합니다.

 

우리도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에서 분리되면

안전의 욕구가 파괴되면서 불안에 휩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힘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 하나님 부재(absence)입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숨어 버리신 하나님!

하나님과 단절이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은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존자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단절시킬

그 어떤 세력도 없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주의 임재(presence)를 매순간 느끼기 원합니다.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 (롬 8:39)

Anything else in all creation, will not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in Christ Jesus our Lord. (Rom 8:39)

 

하나님,

결단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와 끝까지 함께하시는 주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13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