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힘 (4)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기도를 크게 하고, 기도에 열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기도의 다양한 방식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어 있을 때, 우리의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라는 올해 표어에 따른 이번 연속 설교에서는 특별히 회개(참회)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 생각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바르게 정돈하는 과정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이야기하는 기도가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다는 뜻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자기 성찰을 위한 22가지 점검 리스트를 만들어서 속회는 물론 감리교인이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함께 나눕니다:

1. 나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실제보다 훨씬 낫다는 인상을 주려고 애쓰지 않는가? 즉, 나는 위선자인가?

2. 나는 모든 행동과 말에 정직한가, 아니면 과장하는가?

3. 나는 비밀을 지켜주기로 하고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달하지 않는가?

4. 나는 신뢰할 만한가?

5. 나는 옷, 친구, 일, 취미의 노예는 아닌가?

6. 나는 자의식, 자기 연민, 혹은 자기 합리화가 빠지지 않았는가?

7. 오늘 성경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있는가?

8. 나는 매일같이 성경이 나에게 말할 시간을 주고 있는가?

9. 나는 기도를 자주 하는가?

10. 나의 신앙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말한 것이 언제인가?

11. 나는 내가 쓰는 돈에 대해 기도하는가?

12.나는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가?

13.나는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14. 내 양심이 불편해하는 일을 고집하며 행하지는 않는가?

15. 나는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는가?

16. 나는 질투심 많고, 불순하고, 비판적이며, 짜증을 내고, 예민하거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17.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18. 나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가? 지나친 자만심이 있지 않은가?

19. 나는 다른 사람, 특히 세리를 멸시한 바리새인처럼 내가 다른 사람 같지 아니함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지 않은가?

20. 내가 두려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의절하거나, 비판하거나, 원망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21. 나는 끊임없이 투덜거리며 불평하는가?

22. 나에게 그리스도는 실제적인가? -河-

울타리 칠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 설교에서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소개하였습니다.

 

톰 소여(“톰”)와 허클베리핀(“허크”)이

벌이는 모험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서 했던 일들이

나중에는 우정, 친구와 가족을 향한 책임감,

옳고 그름의 선택으로 발전합니다.

 

톰은 자기만 생각하는 장난꾸러기 아이에서

관계를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갑니다.

 

그런 점에서

<톰 소여의 모험>은 성장 소설입니다.

 

2.

소설 속의 유명한 장면은

장난을 치다가 이모에게 들켜서

울타리에 페인트 칠하는 벌을 받는 장면입니다.

 

톰은 혼자서 울타리를 칠하는 것이 지루했습니다.

그것도 벌을 받은 것이기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친구를 발견하고는

울타리를 신나게 칠하기 시작합니다.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매우 재미있는 일로 가장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 친구들이 사과 등 선물(뇌물)까지 주면서

울타리를 칠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결국 톰은 친구들에게 울타리 칠하기를 맡겼습니다.

 

톰 소여가 벌로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톰 소여의 효과(Tom Sawyer Effect)라는 용어가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억지로 하면 효능이 떨어지지만,

단순한 일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있게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저는 지난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톰이 친구들에게 울타리를 칠하게 한 것을

좋지 않은 일로 보았습니다.

 

톰의 동기가 옳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친구들에게 시켰습니다.

친구들을 거짓으로 선동했습니다.

울타리를 칠하는 것을 특별한 일로 착각하게 했습니다.

 

톰만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톰에게 속아 넘어간 친구들도 문제입니다.

친구들은 톰에게 선물까지 바치면서

울타리를 칠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훗날, 톰 소여는 어릴 적 자기가 했던 일을 돌아봅니다.

그렇게 톰은 자기 성찰을 통해서 성장해 갑니다.

 

4.

일을 놀이로 만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전, 야곱에 대한 설교에서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외삼촌을 섬긴 것은

사랑에서 우러난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동기를 살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톰 소여의 효과에 앞서서

친구들에게 울타리 칠을 시킨 톰의 동기가

바르지 않았음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사랑으로 섬기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되길 바랍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도록

우리 자신을 살피고 바른길을 가기 원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16:2)

 

 

하나님,

분별력을 갖고 참된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20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의 힘 (3)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통로가 기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죄와 허물로 막혀 있다면, 기도는 하나님께 도달하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함이듯이, 우리 역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과 막힘없이 소통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입니다.

 

한 주간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지냈습니다. 말씀을 갖고 우리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마음속에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기도하면서 우리의 내면을 깊이 파헤치고 그것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 성찰, 회개는 안으로 향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과 대조됩니다. 특별히 회개는 우리를 속속들이 통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한 기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솔직하게 드러내 보일 때, 성령 하나님께서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가 흰 눈같이 정결하게 됩니다. 회개에 이은 죄사함, 용서의 은혜입니다.

 

느헤미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창조의 시간부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된 광야 40년,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쫓은 왕조시대를 성찰했습니다. 결국 나라와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70년 동안 바빌론에서 포로로 살다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라 잃은 백성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집트에서 400년 종살이할 때도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광야를 지날 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불만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부족들을 모두 몰아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신실하셨습니다. 오래 참으셨습니다. 백성들은 힘들 때만 하나님을 찾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변덕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河-

엔지니어링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이슈가 되는 파나마 운하의 원리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았습니다.

 

1904년부터 10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서 완공된 파나마 운하는

수위 조절을 통해서 계단식으로 배를 들어 올리는 방식입니다.

들어 올려진 배가 50마일에 달하는 인공호수를 지나고,

계단식 수문을 통해서 다시 바다로 내려갑니다.

운하 덕분에 일만 이천 마일을 우회하지 않아도 되었다니

시간과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약하였습니다.

 

프랑스가 실패한 공사를

미국이 완공한 놀라운 업적입니다.

미국 엔지니어링의 승리였습니다.

 

1999년 파나마에 넘여 주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다시 찾아오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2.

내친김에 금문교(Golden Gate Bridge)의

건축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았습니다.

 

1933년에 시작해서 1937년 5월 27일에 개통했습니다.

개통하는 날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리를 걸어서 건넜고

다음날부터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카운티를 연결하는 금문교가 개통되었습니다.

 

항간에는 다리를 건설하면서 중국인 인부들이 많이 죽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열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열아홉 명은 공사 중인 다리 밑에 설치한 안전망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훗날 열아홉 명은 “지옥에 반쯤 갔던 사람들의 모임(halfway-to-hell club)”을 만들었답니다.

 

금문교를 최초에 설계한 사람은

조셉 스트라우스(Joseph Strauss)입니다.

조셉 스트라우스는 물살이 센 협곡에 다리를 건설하는데

다리 교량을 최소화하고, 다리 밑으로 배가 통과할 수 있는

현수교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교량을 잇는 철근 케이블 27,572개를 공중 와이어 공법으로 하나씩 교량에 연결했습니다.

케이블의 총길이가 지구를 세 바퀴 감을 정도랍니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중간에 도로를 가로지르는 철판들이 있는데

다리를 잇는 케이블의 변화로 다리 갑판이 변형되는 것을 막는 완충장치랍니다.

교량의 높이, 간격, 케이블이 갖는 힘, 건축 자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세밀하게 예측하고 공사 현장에 적용했습니다.

 

3천 5백만 불이 들었습니다.

오늘로 환산하면 7억 불 정도 됩니다.

당시는 대공황으로 경제가 좋지 않을 때였는데,

주민들이 납세 채권에 동의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금문교의 기술을 모방하고 발전시킨 현수교가 여럿 생겼지만,

처음 건설할 때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습니다.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의 최고 명물이자 상징임엔 틀림없습니다.

 

저는 엔지니어링 분야에 문외한이어서

금문교 건설에 적용된 설계나 기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다른 나라 언어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물길이 거세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곳에

현수교를 건설한 엔지니어링에 감탄이 나옵니다.

 

3.

엔지니어링은

철저한 이론, 설계, 시공, 공사를 거쳐서

목적한 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입니다.

 

자칫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건설 현장은 물론 훗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기초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합니다.

오차 없이 설계하고 시행하는 세심한 작업입니다.

 

우리 신앙과 인생도 엔지니어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눈대중 하듯이 대충 대충은 안 됩니다.

철저하게 살피고 꼼꼼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 모든 여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신앙과 인생의 집을 지어갑시다.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4-25)

 

 

하나님,

신앙과 인생에 탁월한 엔지니어가 되게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13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의 힘 (2)

기도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눴기에 참빛 식구들께는 익숙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지난주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식의 기도를 소개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기도입니다. 매우 신비로운 기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외롭습니다. 주변에 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웃이 있지만, 때때로 군중속의 고독도 경험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갈 때도 많습니다. 조바심이 납니다. 때로는 의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외로운 실존이 겹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쫓으면서 우리의 신앙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친밀하게 기도하면서, 우리의 신앙은 물론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에서 중요한 덕목이 바로 회개입니다. 느헤미야 9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회개합니다. 개인의 회개를 넘어서는 민족의 회개입니다. 우선, 금식했습니다. 금식은 이스라엘 역사 초기인 사무엘 선지자 시절에 미스바에 모여서 금식하면서 기도하던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먹을 것을 중단하는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뜻입니다. 간절함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겠다는 표시였습니다.

 

베옷을 입고 티끌로 몸을 덮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개인은 물론 민족이 회개할 때 행하던 예식이었습니다. 욥도 하나님을 만난 후에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습니다(욥 42:6). 티끌은 재와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했습니다. 바빌론에서 돌아와 보니 예루살렘에는 여러 민족이 들어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이방 민족들이 사마리아에 강제 이주했고, 그들이 이스라엘에 정착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섞여 살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과 절교하고 거룩함(구별됨)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 상황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와 조상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회개는 개인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회개 없이 거듭남도 없습니다. 회개 없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회개는 우리 신앙의 필수입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의 회개를 넘어서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회개했습니다. 민족의 회개, 공동체의 회개까지 나간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에 더 깊이 들어가고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를 원합니다.-河-

입술의 열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책꽂이에는

<입술의 열매: 약이 되는 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독이 되는 말”이었을 텐데 저에게는 없습니다.

약이 되는 말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서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약이 되는 말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당신과 악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이 정도면 넉넉합니다”

“참 아름답지요” “생각 날 거예요” “참 좋은 생각이예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 용기를 주고,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독이 되는 말도 몇 가지가 생각납니다:

“할 수 없어” “절대 안 될거야” “귀찮아”

“기도해도 소용없을걸” “그만두자”

“너 때문이야”.

 

말에 힘이 있어서,

말로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지만,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자신의 영혼을 찌르고

상대방의 마음에 깊이 상처를 남깁니다.

 

2.

그러고보니

하나님께서도 말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우리 신앙도 밀접합니다.

 

혼란이 사라지고 질서가 잡히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찾아오고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고

비난이 아닌 격려를

불평이 아닌 감사와 찬양을,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존재, 나의 나됨(성품)을

보여주는 통로일 수도 있습니다.

 

3.

요즘 세상의 말이 너무 거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말은

“보복(retalia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국가간에 조금만 손해를 받아도, 공격을 받아도

서로 보복하겠다고 기를 세웁니다.

국가간의 거래에 세금을 책정하는 정책에도

“보복 관세”라는 말을 씁니다.

 

꽤 무서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보복하기 보다 용서하고

서로 회복하고 화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복을 원하셨다면,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예루살렘 사람들을 단칼에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보복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아닌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4.

하나님이 곁에 계셔도

부끄럽지 않을 언어를 사용합시다.

독이 되는 말은 줄이고

약이 되는 말을 통해서 세상을 밝혀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러셨듯이

자신은 물론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갖다주는 말을 사용합시다.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입술의 열매가 우리에게 가득하길 바랍니다.

 

온순한 혀는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4)

 

하나님,

살리는 말, 약이 되는 말로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6 이-메일 목회 서신)

입술의 열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책꽂이에는

<입술의 열매: 약이 되는 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약이 되는 말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당신과 악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이 정도면 넉넉합니다”

“참 아름답지요” “생각 날 거예요” “참 좋은 생각이에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세상을 밝게 만듭니다.

 

독이 되는 말도 몇 가지 생각납니다:

“할 수 없어” “절대 안 될 거야” “귀찮아”

“기도해도 소용없을걸” “그만두자”  “너 때문이야”.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자신의 영혼을 찌르고

상대방의 마음에 깊이 상처를 남깁니다.

 

2.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도 말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우리 신앙도 밀접합니다.

 

혼란이 사라지고 질서가 잡히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찾아오고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고

비난이 아닌 격려를,

불평이 아닌 감사와 찬양을!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존재, 나의 나됨(성품)을

보여주는 통로일 수 있습니다.

 

3.

요즘 세상의 말이 너무 거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말은

“보복(retalia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국가 간의 거래에 세금을 책정하는 정책에도

“보복 관세”라는 말을 씁니다.

 

보복 – 꽤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지요.

 

예수님은 보복하기보다 용서하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보복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아닌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본이 되셨습니다.

 

4.

하나님이 곁에 계셔도

부끄럽지 않을 언어를 사용합시다.

독이 되는 말은 줄이고

약이 되는 말을 통해서 세상을 밝혀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러셨듯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창의적인 말을 사용합시다.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입술의 열매가 우리에게 가득하길 바랍니다.

 

온순한 혀는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4)

 

 

 

하나님,

살리는 말, 약이 되는 말로

입술의 열매를 맺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2. 6 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의 힘 (1)

“기도와 말씀으로”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1월에는 말씀에 관해서 공부했고, 2월에는 기도에 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의 신앙과 삶을 견디는 중심축입니다.

 

말씀은 말 그대로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식사하는 것이 우리의 몸에 영양분이 되듯이, 하나님 말씀이 신앙을 살리고 자라게 하는 양식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매일 같이 그리고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고 가까이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을 곱씹고 묵상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습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을 나침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나침반이 북극을 가리키듯이, 성경은 하나님을 지향합니다. 여기서 임하는 말씀의 은혜가 있습니다.

 

앞으로 한 달여 기도에 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기도는 우리 모두 알다시피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성경은 쓰여진 글자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한다면,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음성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통로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매우 신비로운 신앙 행위입니다.

 

지난번 주일학교 설교에서 기도는 하나님과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 때도 하나님과 얘기하기를 바랐습니다. 공부하다가 막힐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길 원했습니다. 속이 상할 때도 하나님과 얘기하면서 마음고생을 풀어나가길 원했습니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어른들도 하나님과 얘기하듯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운전하면서, 설거지하면서, 길을 걸으면서, 일을 하다가 막힐 때도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마음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전하는 통로입니다.

 

느헤미야 9장은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의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킨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느헤미야 9장은 백성들이 다시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릎 쓰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합니다.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를 경험했다면, 백성들이 다시 함께 모여서 과거의 삶을 돌아보고 잘못한 것을 회개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개인적으로 회개를 넘어서 민족 전체가 참회의 집회를 열고 함께 회개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물론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하는 것이 특별해 보입니다. 이방인과 교제를 끊은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기도에는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회개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낱낱이 돌아보는 과정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자리로 나갑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