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읽기 : 내 길의 빛

시편은 감정을 실어서 읽어야 하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시(詩)들을 모아놓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시 속에는 여러 가지 상징들이 들어있습니다. 시인들만이 사용하는 표현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는 읽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야 합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시편이 바로 그렇습니다.

시편은 곱씹으면서 읽어야 합니다. 한 장이 짧다고 해서 서둘러 읽거나 대충 넘어가면 하나님 말씀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이 귀중합니다. 한번 읽고 두 번 읽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시편 말씀의 단맛을 경험합니다. 그때 우리도 하나님 말씀이 송이꿀보다 달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시편은 소리 내서 읽어도 좋습니다. 시를 낭송하듯이 하나님 말씀인 시편을 소리 내서 읽을 때 입으로 나온 소리가 다시 우리들 귀를 통해서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소리 내서 읽으면 눈으로 읽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울려 퍼집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소리 내서 시편말씀을 차근차근 읽으면 은혜가 더욱 풍성해 집니다.

시편은 우리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습니다. 시편말씀을 읽다보면 우리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서 답답해합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괴롭혀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더 잘됩니다. 그때마다 스스로 주눅이 들고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섭섭함과 죄송함이 교차합니다. 나라를 잃고 하나님을 예배할 성전을 잃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탄식합니다.

늘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경험하게 하시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그때 우리도 시편 말씀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만물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이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 가장 큰 감사입니다. 이처럼 시편에는 감사와 기쁨, 찬양과 고백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오늘 살펴보는 시편 119편 105절 말씀에서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들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라고 가르쳐줍니다. 발의 등은 가까운 거리를 비춥니다. 길의 빛은 먼 인생길을 비춰주는 전조등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들 인생길의 안내자요 지침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말씀이 가르쳐준다고 시편기자가 고백합니다.

시편 119편 속에 나타난 시편 기자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비방합니다. 기도의 응답이 지체됩니다. 순간순간 생기는 탐욕과 헛된 것을 향한 욕망이 자신을 괴롭힙니다. 때로는 사망의 골짜기를 걷는 느낌이 듭니다. 그 순간에 시인은 하나님 말씀을 붙잡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삶에 말씀을 세웁니다. 말씀으로 살아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주의 말씀이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0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온 교회가 주의 말씀에 깊이 빠져봅시다. 할렐루야! -河-

시편 119편 읽기 : 내가 사랑하는 계명들

시편 119편이 무려 176절에 달하는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이지만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을 열고 읽다보면 말씀의 은혜가 곳곳에 배어있음을 발견합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33-40절에서는 주의 말씀을 세워주시길 간구했습니다. 탐욕이 밀려오고 헛된 세상 것들에 곁눈질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주님의 말씀가운데 새로운 생명을 주시길 간청했습니다. 사람들의 비방으로 두려움이 밀려오지만 하나님 말씀에 삶을 붙들어 매고 그 안에서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길 기도했습니다.”나를 살아나게 하소서“라는 시편 기자의 기도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왔습니다.

오늘은 이어지는 41-48절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42절에서 시편기자를 비방하는 사람들과 이유를 발견합니다. 시편기자의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을 두고 세상 사람들이 그를 비방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왜 그런 일이 닥치느냐?”고 비아냥거립니다. 자신의 처지가 좋지 않기에 떳떳하게 답변할 수 없으니 마음이 편치 않고 심하면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시편기자의 상황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왕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직무를 갖고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직책을 갖고 있는데 어려움이 생기니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기가 더욱 쉽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 모두 세상 속에서 종종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의 기준에 딱 맞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세상의 부귀영화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고 그 힘과 지혜로 세상에서 근사하게 사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도 세상에서는 힘겨운 고난의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때 주눅이 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지 않은 말을 하면 마음이 상합니다.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면 혹시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두려운 마음도 생깁니다. 세상을 사는 주님의 백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입니다.

이런 어려운 순간에 시편기자는 주님의 말씀을 꼭 붙들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베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구원이 임하면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 즉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하길 원합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입에서 하나님 말씀이 떠나지 않길 기도합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특징입니다. 그때 자유함이 임합니다. 말씀을 세우고 말씀에 붙어서 행하면 삶의 기준과 가치관이 확실해 집니다. 반면에 말씀을 뒤로 한 채 세상 것들을 둘러보면 도리어 세상에 종이 되고 맙니다. 시편기자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도리어 자유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유함 속에는 “넓은 곳”을 다닌다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말씀으로 신앙과 삶의 지경을 자유롭게 넓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이라고 부릅니다. 말씀을 사모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사랑합니다.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주의 말씀을 향해서 손을 듭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립니다. 시편기자가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고 사랑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도 이 가을에 주님의 말씀 앞에서 손을 들고 읊조리면서 말씀의 은혜를 깊이 누리기 원합니다.-河-

아버지와 아들

지난 6월에는 학업을 위해서 미시간으로 떠난 큰 아이와 자동차 여행을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3박 4일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 네 식구가 둘러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제 목소리가 떨립니다. 애써 참고 있던 아내도 아들을 안아주면서 울음이 터졌습니다. 큰 애도 손으로 눈물을 훔칩니다. 이렇게 약간 무거운 마음으로 아들과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넓고 넓은 미국 대륙의 절반을 횡단하는 여행은 저와 아들에게 큰 추억을 남겼습니다. 하루 10시간 정도를 번갈아 가면서 운전했습니다. 좁은 자동차 안에 둘만 있으니 저절로 얘기꽃을 피우게 됩니다. 어릴 적 한국에서부터, 커네티컷과 인디애나를 거쳐서 캘리포니아에 오기까지 우리 가족의 얘기, 학교생활과 친구들간의 에피소드, 교회 안에서 목사의 자녀로서 겪었던 애환, 앞으로의 학업과 그 이후의 계획까지 부자지간에 깊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매우 엄격하게 키웠습니다. 지금도 제 목소리 톤이 올라가면 큰 애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잔뜩 긴장합니다.그것이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그 부분도 건드렸습니다. 아빠로 인해서 마음에 상처가 있다면 아빠를 용서하고 훌훌 털어버리길 부탁했습니다. 아이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덕분에 자신이 잘 클 수 있어서 고맙다고 했습니다.아들과 단둘이 하는 자동차 여행이기에 가능한 대화였습니다.

정착을 도와주고 아들을 미시간에 남겨둔 채 비행기편으로 돌아오는데 못난이처럼 자꾸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빠를 배웅하고 혼자 학교로 돌아가는 아들의 마음이나, 아들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나는 저의 마음이나 아쉽고 허전하기는 매일반이었을 겁니다.

요즘은 둘째와 둘이 지냅니다. 아내가 2주 예정으로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2주가 아니라 한 달도 견딜 만큼 많은 음식을 준비해서 냉장고에 얼려놓았습니다. 우리 부자가 제대로 끼니를 챙겨먹을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지 매일 카톡 메시지를 보냅니다. 저 역시 음식을 만들거나 집안일에 젬병이라 아내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를 많이 닮은 둘째이기에 아내가 없는 두 주간이 꽤 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생활 3년 동안 자취를 해서인지 둘째가 음식을 잘합니다. 제가 챙겨줘야 할 줄 알았는데 대학원 준비로 바쁜 이 녀석이 밥도 미리 해놓고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합니다. 식탁에 마주 앉아서 부자지간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기쁨도 솔솔합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아들이 알고 있을 때는 살짝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뿌듯함을 느낍니다.

단 둘이 마주하고 있으니 더 잘해 주지 못한 일들이 생각나면서 한없이 미안해집니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난 괜찮아, 아빤 괜찮아?”라고 저를 걱정해 줍니다. 아직은 제가 젊지만, 이렇게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가고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 아들과 각각 단둘이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에 감사했습니다.

아들을 향한 제 마음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저에게 가장 잘해 주고 싶으실 겁니다. 때때로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들지만 결국에는 선을 이루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주 가끔 매우 엄격하게 대하십니다. 육신의 아버지께서 사랑의 매를 드시는 듯 합니다. 정신이 바짝 납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의 측은지심이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동시에 과연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 자랑스럽고 대견한 아들인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공항에서 제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손을 흔들어주던 큰 아이만큼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는지, 힘들면서도 “난 괜찮아, 아빠는?”이라고 말하는 둘째처럼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많이 부족한 자식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부자지간을 떼어놓을 수 없듯이 그 어떤 것도 십자가의 은혜로 맺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아빠)라고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향해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음이 감사할 뿐입니다. (2014년 9월 25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심장이 뛰는 일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한국 선수 류현진이 뛰는 LA 다저스에게 지면서
LA에게 지구 우승을 내주었습니다.

물론 샌프란시스코도 와일드 카드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습니다.

어제 다저스가 우승을 결정지은 경기에서
투수로 활약한 선수가 클레이튼 커쇼입니다.
커쇼는 어제까지 올 시즌 21승을 거두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노히트 게임을 펼치기도 했고
이미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하는 사이영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투수입니다.

커쇼는
스무 살에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꿈을 이룬 것입니다.

커쇼가 최고의 투수가 되는데
홀몸으로 그를 키운 어머니의 힘이 컸습니다.
커쇼가 중학교때 만나서 스물 두살에 결혼한 아내도
커쇼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 엘렌은 독실한 감리교인입니다.
커쇼도 신앙심이 돈독한 운동선수로 유명하지요.
엘렌과 커쇼는 신혼여행을 아프리가 잠비아로 다녀왔습니다.
결혼 전부터 그곳의 고아를 후원하는 일을 했고
현재는 희망의 가정(Hope’s home)”이라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Hope는 커쇼가 후원하던
잠비아 소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커쇼가 이 소녀를 만나고
아프리카에 있는 고아들을 도울 생각을 하면
심장이 뛰었습니다.

야구는 수단이요
그의 인생의 목적은 아프리카의 고아들을 살리는 일이 될 정도입니다.

2.
요즘 미식축구에서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가
뒤 늦게 발각이 나서 큰 창피를 당한 못된 선수도 있습니다.
워낙 큰 돈을 만지는 프로선수들이기에
운동은 잘하지만 성품이나 사생활이 엉망인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커쇼는
야구도 잘하고, 삶도 건실합니다.
그의 신앙이 가정과 직업을 꼭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신앙에 자신의 삶을 붙들어 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 그리고 은혜로
최고의 투수, 최고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멋진 말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지켜본다. 그들에게 신앙을 대놓고 전할 수 없다.
그저 기독교인이 어떻게 사는가를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지난 토요일 청년부 세미나에서
여러 번 강조했던 그리스도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어떤 방식으로/어떤 모습으로 사는가가 매우 중요하지요.

커쇼에 대해 조사하면서 두 가지가 마음에 남습니다.

첫째는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전하려는 태도입니다.
요즘 시대에 가장 시급하고 지혜로운 전도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그는 생각하면 심장이 뛰는 일을 찾았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고아들과 그들을 돕는 일입니다.
스트라이크 아웃을 시킬 때마다 500불을 기부한답니다.

커쇼야 말로 요즘 시대에
귀감이 되는 그리스도인임에 틀림없습니다.

3.
여러분에게도
생각하면
심장이 뛰는 일이 있으신지요?

여러분을 설레게 하는 일이 있다면
오늘은 그 일을 하십시오.
아니면 그 일이 이루어질 기대하면서
오늘 하루 꿈을 꾸면서 열심히 사십시오.

심장이 뛰는 일이 아직 생각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꼭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저에게도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
심장이 뛰는 일이 있습니다.
모두들 아시는 것인데 오랫동안 기도해 왔습니다.
그 일을 향해서 함께 나갑시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아주 멋진 참빛 교회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내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37:4-6)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act.  He will bring forth your

righteousness as the light, and your justice as the noonday. (Psa 37:4-6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그리고 참빛 교회 식구들 한 분 한 분에게
심장이 뛸 만한 꿈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9.25 메일 목회서신)

시편 119편 읽기 : 말씀을 세우소서

<신앙 터잡기>에 대한 네 번의 말씀을 마쳤습니다. 참빛 식구들과 우리 교회의 신앙의 터가 깊고 넓게 자리 잡아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으로 자라가길 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사모하고 주님께 날마다 가까이 가려는 말씀읽기와 기도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지난 수요예배때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씨가 좋은 밭에 뿌려져야 열매를 맺습니다. 길가에 뿌려진 말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와서 빼앗아 갑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받을 때는 기쁘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시들어 버립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인생의 가시덤불인 염려, 욕심, 쾌락, 재물에 대한 유혹으로 인해서 크게 자라지 못하고 중간에 질식해 버립니다. 여기서 씨는 하나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고 보니 말씀이 우리 안에 어떻게 자리잡느냐에 따라서 신앙은 물론 삶이 결정됨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서너 주는 시편 119편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편 119편은 176절로 구성된 성경에서 가장 긴 장(障)입니다. 또한 히브리어 본문을 보면 알파벳 순서로 각 문단이 시작되는 운율이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시편 1편과 더불어 대표적인 지혜시에 속하는데 특별히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176절에 달하는 각 구절마다 하나님 말씀을 가리키는 표현들이 매번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주의 법도, 주의 판단, 주의 계명등입니다. 기회가 되시면 시편119편을 펼쳐놓고 각 구절마다 말씀과 관련된 표현들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살펴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다양한 표현을 가지고 설명하고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하실 겁니다.

176절에 달하는 시편 119편을 모두 살펴볼 수 없기에 듬성듬성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라는 우리 교회 표어에 맞는 말씀들을 택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편 119편이 기록되던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도 잃고 신앙도 무너진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나라가 어려우니 개인의 삶도 어렵습니다. 고초의 삶이 지속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꼭 붙들고 견뎌야 하는데 그것마저 힘겹습니다. 그때 시편 기자는 하나님 말씀이 생명줄임을 깨우쳐줍니다.

오늘 본문(33-40절)에서는 시편 기자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대개 기도는 우리들 개인의 문제나 세상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해결책을 간구하게 마련인데, 본문 속의 시편기자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행하게 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기 원하는 소원을 기도로 표현합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본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고 말씀을 따라 살고 싶지만 그의 마음은 자꾸만 탐욕을 향하고 있습니다. 아침안개처럼 헛된 것에 마음과 힘을 쏟고 있습니다. 거기서 돌이키고 싶은데 자신의 의지로서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주님의 길을 걷고 싶어서 도움을 구합니다. 생명의 길로 나가고 싶은 것입니다. 시편 기자 마음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환경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비방합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두렵습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고역입니다. 그때도 시편기자는 말씀을 사모합니다. 말씀으로 세워지고 의롭게 되는 인생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말씀 속에 은혜와 능력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河-

오늘 여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모세 오경의 마지막 말씀인 신명기를 읽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2세들(광야에서 태어난 세대)에게 준 말씀입니다.
부탁에 가깝습니다.

신명기를 읽다 보면
오늘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 8:1)
“The whole commandment that I command you today you shall be careful to do, that you may live

and multiply, and go in and possess the land that the LORD swore to give to your fathers. (Deu 8:1 ESV)

여기서 오늘은
모세가 설교하는 시점입니다.

무엇보다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이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목입니다.

광야 40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뼈아픈 추억입니다.
38년 전 약속의 땅에 다 왔다가
여호수와 갈렙을 제외한 열명의 정탐꾼들이
하나님께서 주실 약속의 땅에 대해서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백성들이 열명을 쫓아가면서 40년을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백성들은 끊임없이 불평했고 원망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먹이셨고, 마실 물도 주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생활의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
바로 오늘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어떻게 행하였는지 다 보았습니다.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을 모세 자신이 한 몸으로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자신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호수아가 대신 백성들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모세에게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했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들이 미래를 생각할 때 갖는 감정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오늘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세대들을 향해서
조목조목 교훈하고 있습니다.

2.
오늘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속에는 과거가 들어있습니다.
대개는 기억(memory)으로 남겨져 있지요.

미래는 오늘 속에 기대(expectation)
자리잡고 있습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미래는 미리 가서 돌아볼 수 없습니다.
자칫 미리 간다고 해도 인간은 부정적이어서
가나안땅을 정탐했던 열명의 지도자들처럼 미리 겁을 먹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통제하면서 살수 있는 시점은 오늘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의 삶이
과거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만들고
미래를 향해서 힘차게 나갈 힘을 줍니다.

신명기에서 모세가
오늘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이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 통제함을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오늘이 순간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 하거나 반대로 지나친 기대를 하기보다
오늘을 알차고 근사하게 살아갑시다.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말씀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실제적으로 임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 5:3)
Not with our fathers did the LORD make this covenant, but with us, who are all of us here alive

today.  (Deu 5:3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순간
그리고 여기에서
주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9.18 메일 목회서신)

신앙 터잡기 (4) : 주님의 교회

신앙 터잡기 마지막 시간인 오늘은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즘처럼 교회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때일수록 교회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갖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각 지역마다 회당이 있어서 유대인들은 그곳에 모여서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의 성전이나 회당을 교회의 직접적인 뿌리로 보는 것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약의 제사법에 따른 예배였고, 회당의 경우 바리새인들이나 랍비가 유대교 중심의 신앙생활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설교를 하니 삼천명이 예수님을 믿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대부분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기독교로 개종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가정에 모여서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면서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교제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처음으로 모인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기독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예루살렘외에 안디옥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행11장). 당시 팔레스타인의 거점 도시였던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는 다양한 민족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매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이방인 선교에 나섰던 바울과 바나바도 안디옥 교회가 파송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식민지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역 교회를 세웠고 이들에게 서신을 보내서 신앙과 교회가 바로 세워지길 권면했는데 이것이 신약성경에 있는 바울서신들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가정을 넘어서 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졌고, 이들은 신앙훈련과 친교는 물론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의미를 다음의 두 가지 표현들이 잘 가르쳐줍니다. 먼저 헬라어 에클레시아(ecclesia)입니다.‘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 성도들의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헬라어“키리아코스(kyriakos)입니다.‘주님께 속한 공동체’라는 뜻으로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쳐줍니다. 이처럼 교회는 단순히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부름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주님께 속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드러내는 네 가지 표지(marks)가 있습니다. 첫째로 단일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사도성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았습니다. 둘째는 보편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세워진 그리스도인의 모든 모임이 교회입니다. 셋째로 거룩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였다는 것이 드러날 정도로 구별된 모임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예배, 훈련, 구제와 선교 그리고 성도의 교제입니다.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이웃을 구제합니다. 함께 교제하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갑니다. 교회는 이렇게 세가지 표지들과 네 가지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초대교회에 뿌리를 내린 교회가 지금 우리에게 임했으니 지금 여기서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영광이요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할렐루야! -河-

여호와 샬롬

1.

오늘은 9.11 13주년 되는 날입니다.
매주 9 11일이 되면
온 미국은 그때 그 악몽 같은 사건을 떠올리면서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그날 아침
저는 인디애나대학 기숙사에 살고있었습니다
우리 집은7층이었는데 아침 먹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수업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방문교수로 오신 성도님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셔서 TV를 켜보라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오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TV를 켜는 순간
생방송을 진행하는 앵커 뒤로
비행기 한대가 건물로 돌진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아마 당시의 사건을 목격했던 미국 국민들은
9.11에 대한 트라우마를 여전히 갖고 살 겁니다.

그로부터 2년 후
한국에서 오신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동부여행을 하면서
World trade center현장을 가 보았습니다.

목숨을 잃으신 분들의 이름이 곳곳에 적혀있었고
복구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현장을 둘러볼 뿐이었습니다.

2.
13년이 지난 오늘
미국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이슬람 무장 단체의 무자비한 테러행위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급기야 어젯밤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무장 공습을 승인했습니다.

간신히 이락에서 빠져 나오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연말까지 철수하려고 하는데
또 다시 미국이 전쟁에 말려드는 지경입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으로서도
다른 방법은 없고
여러모로 곤경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젯거리를 해결하기가 참 힘이 드는군요.

어제 저녁 대통령이 악(evil)이라고 규정을 하고
선전포고를 한 셈인데
손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3.
테러나 전쟁이나
평화가 깨진 상태입니다.
혼란인데 성경에 의하면 창조 이전의 상태가 바로 혼동입니다.

그러다보면
아무런 죄가 없는 시민들,
특히 노약자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가능한 피해야 합니다.
테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은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입니다.

미국이 대면한 테러와 전쟁,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에서부터
우리들이 매일같이 맞닥뜨리는 이웃들과의 관계까지
여호와 샬롬(하나님의 평화)”이 임하길 원합니다.

참빛교회 식구들께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세상에 나감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을 누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주에 함께 나눈 말씀대로
삶이 예배가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 같은 범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그리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1분동안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and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Rom 14:17 ESV)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God. (Mat 5:9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9.11 메일 목회서신)

네게 족하다

샬롬

1.
요즘은 새벽기도회에서
신명기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고
40년을 그들과 동고동락했지만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자신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세워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록 돕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두 번째 설교 또는 두 번째 법(Deuteronomy)이라는 뜻의
신명기는 이처럼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둔 모세가
새로운 시대에 전해주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2.
모세는 약속의 땅에 꼭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신명기 3 23절 이하에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Please let me go over and see the good land beyond the Jordan, that good hill country

and Lebanon.’  (Deu 3:25 ESV)

그렇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약속의 땅 동서남북을 바라만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가시가 없어지길 세 번 구했던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12:9)라고 응답하신 경우와 똑같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합니다.
순명(順命) – 하나님의 명령을 아주 cool하게 받아 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믿음이고, 용기이고, 위대함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네게 족하다 (Enough!)”라는 하나님 말씀에 동의해서
정말 만족하고 감사한 삶을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몫(portion),
자신의 사명이 어디까지 인지 그 한계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모세의 마음으로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순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요?
하나님의 뜻 앞에 아멘이라고 응답할 수 있는지요?
나와 세상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는지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믿음, 용기가 우리 안에 있기 원합니다.

네게 족하다는 하나님 말씀에
아멘으로 답할 수 있는 진정한 부요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님 주신 삶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9.4 메일 목회서신)

신앙 터잡기 (3) : 예배와 삶

신앙 터잡기 세 번째 시간인 오늘은 예배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예배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를 이어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대한 성경적 의미는‘하나님께 몸을 숙여서 경배한다’는 뜻입니다. 단지 몸을 숙이는 것을 넘어서 땅에 엎드려서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왕이나 황제를 맞이하듯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땅에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는 매우 엄숙하고 하늘의 신비를 맛보는 거룩한 행위(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길 원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백성들만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물을 갖고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언약가운데 주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합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신령은‘영(spirit)’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영으로 예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영으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성령의 임재 속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죄를 고백하면서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거짓, 교만, 불의를 버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둘째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올 때 참된 예배자가 되기 힘듭니다.

셋째는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시51:17).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근사한 것 완전한 것을 바라기보다 부서지고 통회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며 예배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회복과 치유 그리고 넘치는 은혜가 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신6:4-5).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그 신앙과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모든 것을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할 때 주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사랑은 우리 마음과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주일에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공동체 예배는 늘 중요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고 세상으로 나가서 삶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삶의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예배로 드려져야 하고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가 될 때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