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저는 한 달에 한번
은퇴하시고 우리 지역에 계신
감리교 총장님 그리고 목사님들과 몇분들과 함께
요한 웨슬리의 설교를 읽는 모임을 갖습니다.

평생 동안 웨슬리를 연구하신
은사님의 설명을 깃들여서 설교를 읽는 유익한 시간입니다.

오전에 설교읽기가 끝나면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근처 볼링장에 가서 뒤풀이를 합니다.

저는 직장에 다닐 때 몇 번 볼링을 쳐본 이후로
거의 못하다가 이번에 하게 되었기에 완전 초보입니다.
제가 그 모임의 대표격이어서 참석했는데

오늘도 점수가 100을 간신히 넘겼습니다.

하도 제가 헤매니까
볼링 고수이신 총장님께서
자세와 위치를 교정해 주십니다.

요령은
멀리 있는 핀을 보고 던지지 말고
마루 앞에 표시된 화살표를 보고 던지라는 것입니다.
스승님 말씀대로 해보니 신기하게 공이 맞습니다.
스트라이크도 두 번 했습니다. 나이스!!!

2.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내와 마태복음 6장 34절 말씀을 자주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Therefore do not be anxious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be anxious for itself.
Sufficient for the day is its own trouble. (Mat 6:34 ESV)

내일 일을 오늘 염려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삶입니다.

저 멀리 있는 볼링 핀을 맞추려고 애를 쓸 때는
공이 자꾸 양 옆 도랑으로 빠졌습니다.

코 앞에 있는 화살표를 보고 던지니
멀리 있는 핀을 맞출 수 있었듯이
하루 하루가 모여서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푯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3.
새해 첫 달도 어느덧 지나갑니다.
힘차게 시작했지만
뿌듯함보다 아쉬움이 남게 마련입니다.
남은 한 해를 생각하면
염려와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한 켠에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곱씹어 봅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루 분만 내려주셨습니다.

하루씩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
하나님께서 내일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겁니다.

허락하신 하루를 감사함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내일이 있음을 믿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허락해 주신 하루를
소중하게, 열심히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3 이-메일 목회서신)

선함과 아름다움으로

2014년은 말의 해입니다. 새해 첫 달을 보내면서 올 한 해를 말처럼 힘차게 달려가자는 덕담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목표가 정확해야 합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새해계획을 세우면서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과연 어떤 목표를 향해서 50여년을 달려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서 달려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누님들을 따라서 교회에 나갔습니다.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가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실제적인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그 이후로 20대와 30대는 제가 만난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제자훈련’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진짜 그리스도인들(Radical Christians)을 많이 세워보고 싶었던 패기 넘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어디를 가나 제자훈련을 강조했고 저 역시 더욱더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 다니던 직장을 접고 30대 중반에 목회의 길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제 삶 속에 불꽃처럼 강하게 임하던 시절입니다.

40대에 접어 들면서 ‘거룩함’을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고 때때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회복하지 않고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룩함은 단지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가는 곳마다 거룩함을 역설했습니다. 제 스스로도 거룩함의 길을 가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에 힘을 쓰면서 보냈습니다. 거룩함의 길을 가면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50대 중반을 향해서 가고 있는 요즘, 저는 ‘선함과 아름다움’을 많이 생각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감탄하신 것을 전합니다. 여기서 “보시기에 좋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선하다는 뜻입니다. 이를 두고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악이 배제된 선한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악의 실체는 선함이 결핍되었을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선한 세상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인간을 비롯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도 악한 세력을 물리치시고 선한 세상을 회복시켜주신 거대한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의 선함을 세상에 드러낼 때 그리스도인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입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는 아름답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실제로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자연만물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하늘의 별들도, 길가의 꽃들도, 갓 태어난 아기의 배냇짓 속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선함이 내적인 모습이라면 아름다움은 선함이 밖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선함이 씨앗이라면 아름다움은 꽃이고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던 본래 모습으로의 회복입니다. 선함과 아름다움에는 제자훈련은 물론 거룩함까지 모두 들어있습니다.

50대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면서 인생을 선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은 것입니다. 인생길을 걸을 수록 제 안에 선함이 없음을 실감하기에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날마다 회개의 자리에 나가서 마음과 삶이 정결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거울을 보면 예전의 동안(童顔)이 사라져갑니다. 머리 숱도 적어집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외모로 변해가지만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인생을 소망합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제 안에 새겨주신 선함과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밖으로 드러날 수 있다면 더 없는 기쁨이요 감사입니다.

2014년 한 해도 훌쩍 지나갈 것입니다. 시간 가는 것을 세면서 달력만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점점 허전해 집니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선함과 아름다움을 향해서 나가기 원합니다.(2014년 1월 23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 (2) : 말씀읽기

“배우고 자라가는 교회”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를 실천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통한 배움과 자라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양식인 성경을 읽고 먹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나누고,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4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는 힘이 있고, 말씀이 우리를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검보다 더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옛날 로마시대에 양날이 선 검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할 정도로 대단한 무기였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검’에 비유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강력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상한 골수와 영과 관절을 찔러서 폐부를 드러내고 새롭게 해줍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단순히 글자(letter)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영(spirit)입니다(고후3:6).

성경을 어떻게 읽으면 이 말씀이 글자가 아닌 영이되고 살아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을까요? 다음의 몇 가지 방법을 배우고 익히시면 성경 말씀이 마음에 더 깊이 다가오고, 살았고 운동력있는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성경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연애편지임을 깨닫고 젊은 시절에 받았던 연애편지를 읽듯이 읽는 것입니다. 연애편지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있어서 연애편지를 읽을 때는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를 씁니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반복해서 자세히 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 때에도 말씀 속에 깃든 하나님의 마음을 포착하려고 애를 쓰면서 읽어야 합니다.

둘째, 성경을 읽을 때는 마음에 다가오는 구절이나 표현들에 줄을 긋거나 따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금세 잊어버립니다. 줄을 그어놓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 쉽고, 읽은 말씀을 따로 기록하다보면 그 순간 말씀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말씀을 눈으로 읽지만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놓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을 읽는 것과 동시에 성경을 쓰시는 것도 적극 권장합니다. 어떻게든지 읽은 말씀을 마음속에 소중히 담아놓아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반복해서 읽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개역성경으로 읽는 것과 새번역으로 읽는 맛이 다르고, 한글 성경으로 읽을 때와 영어 성경으로 읽을 때가 다릅니다. 같은 말씀을 읽어도 연초에 읽는 말씀과 연말에 읽는 말씀의 맛이 다릅니다. 말씀은 우리의 상황과 마음가짐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한번 읽고 마는 것은 식사를 한번 만 하고 그만두는 것과 똑같습니다.

넷째,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성경읽기에서도 폭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읽는 것보다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경건의 시간(큐티)을 가지시면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습관화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라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을 때 성경이 생명의 양식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하나님 말씀을 자세히/깊이 읽으면서 주님의 사랑을 느껴봅시다. -河-

은근한 갈증

좋은 아침입니다.

1.
동부나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요 며칠 우리 지역 날씨가
반소매를 입어도 될 정도로 따뜻합니다.

기온만 높은 것이 아닙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겨울임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켠에 염려가 있습니다.
지금 캘리포니아는 우기입니다.
10월경부터 비가 와서
3월 말 정도까지 끊임없이 비가 내려줘야
여름의 건기를 물 걱정하지 않고 견딜 수 있습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강수량을 측정한 지난 160년 이래
가장 극심한 가뭄이랍니다.

게다가 지난 3년 동안
충분한 비가 오지 않아서
식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도 최저수위입니다.

급기야 지난 주에는
캘리포니아 가톨릭 교회들이 강우를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다는
기사가 한국까지 보도되었습니다.

우리들이야 농사를 짓는 농부도 아니고
샌프란 같은 대도시는 식수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기에
캘리포니아의 가뭄을 몸으로 느낄 수 없습니다.

가뭄은 뒤로 하고
따뜻하고 청명한 겨울철 날씨만 즐길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비가 와야 합니다.
비가 와야
식물들도 숨을 쉬고
먹을 물도 확보됩니다.

2.
캘리포니아의 좋은 날씨를 즐기면서
비가 와야 할 계절에 비를 기다리는 것을
깜빡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도 현재의 삶에 도취되어서
정작 필요한 “은혜의 단비”를 잊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로 사는 것인데
그만 눈 앞의 즐거움 때문에 정작 중요한
영원하고 본질적인 은혜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한 켠이 찜찜합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가 와야 할 때
비가 오지 않으니 맑은 하늘을 염려스럽게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들도 마음 깊은 곳에 “은근한 갈증”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은혜의 단비가 필요하다는 표시(sign)입니다.

영적인 갈증을 풀어줄 단비가
마음과 삶에 내려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시다.
작심삼일이어도 괜찮습니다.
3일씩 자꾸만 결심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야 합니다.

말씀을 펴서 간절한 마음으로 읽어나갑시다.
매일같이 기도의 자리, 골방으로 들어갑시다.
시간을 내서 찬양을 듣고, 목소리 높여 찬송합시다.

이렇게 주님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
주님께서 우리들 마음 속에 들어오시길 갈망합시다.

따뜻한 캘리포니아의 날씨처럼
별 탈 없이 맞은 새해에 마음이 해이 졌다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기 원합니다.

새해 첫 달에 은혜의 저수지를 가득 채워놓아야
올 한 해를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8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9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땅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10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11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12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시 65:8-12)

8 You make the going out of the morning and the evening to shout for joy.  9 You visit the earth and water it; you greatly enrich it; the river of God is full of water; you provide their grain, for so you have prepared it.  10 You water its furrows abundantly, settling its ridges, softening it with showers, and blessing its growth.  11 You crown the year with your bounty; your wagon tracks overflow with abundance. 12 The pastures of the wilderness overflow, the hills gird themselves with joy.  (Psa 65:8-12 ESV)

하나님 아버지
새해 첫 달을 사는
우리들에게 올 일년을 살 수 있는
은혜의 단비를 충분히 내려 주옵소서.
주님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16 이-메일 목회서신)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 (1) : 배움

올해 우리 교회의 키워드는 “배움”입니다. 만물 가운데 사람은 가장 미숙한 상태에서 태어나서 완전히 성장하고 성숙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 가운데 배우고 익히는데 상당 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마치는데 20년이 소요되고 요즘은 대학교육까지 의무처럼 되었으니 학습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특징임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살면서 배워야 합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배워야 하고, 성숙의 길로 나가기 위해서 배움이 꼭 필요합니다. 오죽하면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배움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절로 배워지는 것은 거의 없고 에너지를 들이고 때로는 물질을 투자해서 배워야 합니다. 노력하는 것만큼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배움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배우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지겨운 마음이 들지만 배움의 끝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또한 배움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것을 깨우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기쁨입니다. 무엇보다 배움이 깊어지면 인격이 성숙해지고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배우는 학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는 책의 종교라고 말할 정도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은 성경에 들어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배움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손길과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쌓여갑니다.

올 한해 우리의 배움이 깊어지고 넓어지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성경 일독(一讀)을 권합니다. 일정한 시간을 떼어놓기로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제공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공부는 함께 할 때 효과가 배가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꼭꼭 씹어서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대로 행함으로 말씀의 능력과 은혜를 깊이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 하나님의 마음과 손길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이야말로 성경 다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족, 성도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과 이웃을 우리의 스승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살아있는 책인 셈입니다. 겸손하게 그리고 마음을 열면 최고의 스승들이 가정에 교회에 그리고 우리들 주변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무엇보다 참빛 교회 식구들 간에 풍성한 교제와 깊은 배움이 있길 원합니다.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북돋아주면서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배우고 자라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풍성함을 누리는 참빛교회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

진가(眞價)

좋은 아침입니다.
1.
짝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짝퉁은 진짜와 똑같아서
아주 세심하게 살피거나
연구하지 않으면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답니다.

유사품이라고 하는 가짜는
신앙생활에도 존재합니다.

늘 말씀 드리듯이
사단의 영적인 시험은
불량품으로 오지 않고
유사품으로 다가옵니다.

겉이 번드르르해서
눈과 귀를 유혹합니다.
별 차이가 나지 않기에
“이 정도쯤이야 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만만하게 보다가
그만 시험에 들어서 넘어지곤 합니다.

가짜와 진짜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가짜는 절대로 진짜가 될 수 없습니다.
진짜는 겉모습이 허술해 보여도
끝까지 진짜입니다.

2.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실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자칭 메시야라고 내세우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주전 6세기에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이후에
600년 가까이 페르시아와 헬라
그리고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다 보니
백성들이 마음과 몸이 지쳤습니다.

삶이 힘들고
희망이 없을 때 등장하는 것이 “메시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도
마찬가지여서
여기저기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또는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진짜 메시야로 오신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었다는 증언들이나
예수님께서 베푸신 여러 가지 기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이야임을 보여주는 말씀들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이야말로 그 절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4:6-7)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If you had known me, you would have known my Father also. From now on you do know him and have seen him.”  (Joh 14:6-7 ESV)

3.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된 생명의 길임을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비록 질그릇과 같지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화로 임하셨기에
우리들도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매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참된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진가(眞價)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 앞에서
세상 속에서
누가 보아도 “진짜(authentic)”라고 불릴 정도로
진가를 발휘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진실된 그리스도인,
참된 믿음의 길을 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9 이-메일 목회서신)

정한 마음

한번 더
Happy New Year!

1.
2013년 한 해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목요서신 파일을 열어보니
작년 이 맘 때 보낸 서신 제목이
작년의 사자성어였던 거세개탁(擧世皆濁)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들다.”는 뜻이었지요.

세상이 혼탁하지만
홀로 아니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깨어있기를 소망했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바르지 않은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작년에 말씀 드린 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거세개탁”은 올해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2.
올해 교수신문에서 발표한 사자성어 세가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전미개오(轉迷開悟, 번뇌로 인한 미혹에서 깨어나서 열반을 깨닫는다는 불교용어)
격탁양청(激濁揚淸,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게 하다)
여민동락(與民同樂, 지도자가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 하다)”

학식이 높으신 교수님들이 뽑아서 그런지
여민동락을 뺀 앞의 두 가지는 생소한 말입니다.
(영어가 익숙하신 분들은 오늘 서신이 쉽지 않겠습니다. Sorry!)

저는 위의 세가지 가운데
격탁양청(激濁揚淸,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게 하다)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흙탕물에는
맑은 물을 아무리 넣어도 뿌옇습니다.
더러운 것들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되지만
휘-저으면 다시 흙탕물이 되고 맙니다.

흙탕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을 새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하면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각자에게 대입하면
그나마 희망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말갛게 씻겨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정한 영을 창조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개입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격탕양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시편 51편은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통회자복하며 드린 회개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간구합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9-11)
Hide your face from my sins, and blot out all my iniquities.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Cast me not away from your presence, and take not your Holy Spirit from me.  (Psa 51:9-11 ESV)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에서 <창조하다>라는 동사에는
창세기 1장 1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용한
“바라”라는 히브리어가 쓰였습니다.

큰 죄를 지은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정한 마음을 새로 창조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말 그대로 흙탕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로 새로 채우는 <격탕양청>입니다.

4.
올 한해 날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께서 창조해 주시는 맑은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혼탁한 세상에 살지만
정한 마음 (Clean heart), 맑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힘들겠지만
세상 속에서도
주님께서 창조하신 정한 마음으로 살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로 인해서 세상이 조금은 맑아질 테니까요!

하나님 아버지
혼탁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시는 정한 마음으로 한 해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 이-메일 목회서신)

잠언이 주는 교훈 4 : 인도하심

올해의 마지막 달에 잠언을 한 장씩 읽으면서 지내기로 했는데 한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한 달 뿐만 아니라 2013년도 이틀 남았으니 이제 새해를 준비할 시간입니다. 잠언 말씀의 핵심은‘여호와를 경외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실제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경외함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기고 갈망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인도하시고, 그의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더욱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결심하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갈망하기 원합니다.

잠언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이 언어생활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주에 읽은 말씀에도 말에 대한 교훈이 계속 등장했습니다. 미련한 사람에게 조언을 해봐야 지혜로운 자의 말을 무시할 것이니 조심해야 한답니다(잠23:9). 정직한 말을 하면 마음이 기쁘고 가벼울 것이라고 했습니다(잠23:16). 적당한 말로 대답하는 것은 입맞춤처럼 하나 됨을 이루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잠24:26). 이웃과 분쟁이 생기면 자기변명을 그치고 남의 비밀은 누설하지 말아야 합니다(잠25:9). 경우에 맞는 말은 금으로 아로새겨진 쟁반에 들어있는 사과와 같다고 했습니다(잠25:17).

잠언 후반부로 오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을 자랑하지 말라는 하나님 경외가 다시금 강조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지침을 얻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은 순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됩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외부로부터 공격을 당할 때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 말씀을 읽고 그대로 따르면 어려운 일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습니다. 결국 잠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생길을 인도해주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겸손하게 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길이 여호와 앞에 있다고 했습니다(잠5:21). 사람이 보기에 좋아 보이지만 그것이 사망의 길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잠14:12). 사람이 마음으로 길을 계획할 찌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잠16:9). 사람이 가는 길을 하나님만 아신다고 가르쳐줍니다(잠20:24). 사람이 자신의 앞길을 모두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들의 입의 말입니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고 앞길을 두고 자신만만할 수 있지만 처음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은 인생길입니다. 인생의 부귀영화를 모두 경험한 솔로몬의 가르침이니 진리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길을 훤히 내다보시고 약속 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생 여정의 운전대를 맡기는 것입니다:“하나님, 주님 뜻대로 인도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이 최선의 길임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또 한 해를 맞이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7-18).아멘! -河-

길을 걷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는 2013년 인생길을
거의 다 걸어와서
이제 달랑 일주일 남겨놓았습니다.

각자의 삶의 처지가 다양했듯이
한 해를 돌아보는 마음들도
모두 다를 것 같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에 하나님의 은혜 임해서
하나님께 감사했고,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을 많이 이루어서 뿌듯하고,
눈에 띠는 열매는 없어도 최선의 삶을 살았기에 담담히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힘겨운 한 해를 보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 먹은 대로 인생길이 펼쳐지지 않았고
의외의 장애물을 만나서 고전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붙잡고
의지적으로 감사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2013년 한 해 동안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길이 어떠했든지
360여 일을 걸어오신 것만도
대단한 일이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2.
히브리어에서는
율법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걷는다(하랔흐)”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표현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단지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이니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면서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성탄절을 보내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를 다시 보았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무작정 달립니다.
악당들이 뒤쫓아와도,
미식축구 선수가 되었어도
심지어 베트남 전쟁에 나가서도 그는 앞으로 달릴 뿐입니다.

“얼간이”이라는 별명 그대로
어눌해 보이지만
앞으로 뛰어가면서
정상인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해냅니다.

그는 사람들과 약속을 지켰고,
평생 사랑을 쫓았습니다.
정류장에 앉아서 그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정류장에 앉아서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의 에피소드를
낯선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비록 시한부 사랑이지만
사랑의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영화 속의 포레스 검프는
얼간이가 아닙니다.

그는 우직하게 걷고 뛰면서
잘난척하며 미적거리는
정상인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3.
영화를 보면서
복잡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모해 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은
걷고 뛰기를 계속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신실함을 믿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신앙의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얼마나 멋진 모습인지요!

비록 우리들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어도
올 한 해 여기까지 꿋꿋하게 달려왔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박수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함께 달려주신 줄 믿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최고이십니다.

내년에도 우직하게 달려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올 한 해 여기까지
꿋꿋이 걸어오신 주님의 백성들을 기쁨으로 맞아주옵소서.
주어진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에
늘 곁에서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3.12.26 이-메일 목회서신)

기다림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청년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여기저기 원서를 넣고 있지만 아직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실력도 있고 괜찮은 학교를 졸업했기에 무난히 좋은 직장을 구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해를 넘길 것 같습니다. 뒤에서 기도해주는 저도 조바심이 나는데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해를 넘기는 본인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언론보도가 남의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어디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들만 그럴까요?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거나, 올 해 이루려던 계획을 내년으로 미뤄야 하는 분들의 마음은 똑같이 조급할 것입니다. 아니 대부분의 일들이 마무리가 되기보다는 내년으로 이월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연말을 맞는 우리들의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고 도리어 무겁기만 합니다. 시간은 왜 이토록 빨리 흘러서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갔는지, 한 장 남은 달력이 괜히 야속해집니다.

이것은 설령 개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미국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서민의 삶은 여전히 쪼들립니다.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것을 예측하고 양적축소를 발표했지만 우리네 서민들과는 딴 세상 이야기입니다. 과연 미국의 경기가 좋아져서 지금보다 나은 이민생활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시됩니다. 태평양 너머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더 갑갑합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북한에서는 하루아침에 권력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대한민국도 여전히 정치가 골치거리입니다.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서로 싸우는 모습이 추할 뿐입니다. 얼마나 기다리면 미국의 경기가 실감날 정도로 회복되고 조국 대한민국에서 좋은 소식들이 들려올 수 있을지요!

개인의 인생길이나 세상만사가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다 이루고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도달해 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임 오지 않는다는 노래의 가사처럼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급해집니다.

이와 같은 기다림은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지만 그 후로 10여 년 이상을 광야에서 쫓겨 다녔습니다. 사울왕이 집요하게 그의 목숨을 노립니다. 사방에 적군입니다. 왕으로 등극하는 것은 그만두고 목숨 하나 부지하기 힘든 상황이 계속 펼쳐집니다.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미친 척까지 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 다윗은 주님께 탄식하면서 기도 드립니다: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립니다. 주님께서는 언제까지 지체하시렵니까?” (시편6:3).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호소입니다. 기다림의 끝이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에게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된 것입니다.

올 한 해가 다 지나가지만 우리들에게도 “언제까지(how long)라는 질문이 남아있습니다.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지, 언제까지 더 참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준비만 해야 하는지, 과연 기다림의 끝이 있을 것인지 – 해는 저물어가는데 질문은 점점 늘어 갑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기다림이라는 단어 속에 희망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합니다.희망이 없으면 기다리지도 않겠지요. 기다림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기다림은 희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희망의 끈을 꼭 붙들고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주어진 인생길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비결임을 한 해를 보내면서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기다림에는 끝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올해 못다한 일을 두고 너무 속상해하지 맙시다. 세상에 모든 일을 마음먹은 대로 다 해내는 사람은 없기에 기가 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심기일전해서 새해에 더 열심히 하면 되지요. 내년에는 아니 끝까지 믿음 가운데 기다리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실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확신이고 자신감입니다. 내년에는 제가 간절히 기도해주는 젊은이에게도 좋은 직장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12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