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워라

오늘은 우리 교회가 격년으로 갖는 야외예배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드리는 예배이기에 더욱 은혜가 넘칩니다. 하늘에서는 새들이 노래합니다. 아름답게 펼쳐진 자연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오묘한 창조의 신비를 드러내기에 충분합니다. 곳곳에 피어있는 들꽃을 보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들꽃의 영성을 배웁니다. 무엇보다 기쁜 마음으로 야외로 나오신 참빛 교회 식구들의 모습이 자연과 잘 어울릴 만큼 아름다우십니다. 잘 오셨습니다!

오랜만에 세상 시름을 모두 잊고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찬송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찬송해도 광활한 자연에 묻힐 것입니다. 오늘 예배 시간에는 가끔씩 딴청을(?)하셔도 괜찮습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돌아보십시오. 새가 지나가면 바라보시고, 푸른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면서 온갖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생각해 내시기 바랍니다. 옆에 계신 꽃보다 아름다우신 성도님들을 지긋이 바라보시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이렇게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기 원합니다.

야외예배에서는 성도의 교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풍성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다이어트 생각하지 마시고 배가 불룩할 만큼 육의 양식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었습니다. 식탁을 함께 나누면서 마음을 나눈 것입니다. 정다운 담소와 격려 그리고 서로를 향한 기도제목도 함께 나누는 식탁의 교제가 되길 바랍니다. 물론 풍성한 먹거리 앞에서 가난하고 주린 이웃들을 늘 마음속으로 기억하는 것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본문입니다.

온 교우들의 친교시간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선교회에서 놀이와 운동 그리고 성경퀴즈까지 다양한 순서를 준비했답니다. 옛날 가을 운동회의 추억을 되살리시면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웃고 즐기는 친교의 시간을 통해서 서로 간에 다소 서먹했던 관계들이 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참빛 가족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처럼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도 근처 공원에 나올 여유가 없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맛보고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을 찾아내고 감격하길 잊고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 마음을 활짝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을 호흡하기 원합니다. 신앙적으로는 물론 우리의 육신도 재충전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오늘 야외 예배를 준비하신 남선교회와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한 교회로 불러주시고 서로 사랑하면서 참빛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뛰놀며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흥겨운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야외예배에 오신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河-

귀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런던 올림픽으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미국에 있어서 올림픽을 생중계로 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대한민국 선수들의 경기를 관전할 수 있습니다.

저도 스포츠 경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영국과 미국의 시차는 물론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쁘다 보니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인터넷으로
대한민국 선수들의 경기상황을 수시로 살펴봅니다.

올림픽이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상업화되었다고 해도
4년 마다 지구촌 전체가 올림픽 열기에 빠져드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2.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귀감이 되는 일화들이 전파를 탑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네이버 뉴스에
한국의 유도선수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는 유도선수로는 환갑이 넘었을
서른 다섯의 나이에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올림픽에 참석했습니다.

16강 전에서 경기를 하다가
이마가 찢어 졌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지만
붕대로 감고 경기에 임해서 승리를 거둡니다.

8강전에서는 손톱이 부러졌습니다.
불운의 연속이었습니다.
3-4위 전에서 패배해서
결국 메달을 얻지 못하고 경기를 마쳤습니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웃으면서 생애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마무리했답니다.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많은 언론이 이 선수를 주목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메달 리스트 이상의 귀감이 된 것입니다.

3.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은 값진 일입니다.

그렇다고 꼭 금메달을 따고
일등을 해야만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낮고 낮은 자리에 오셨고
급기야 죄인들이 달리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LORD)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무릎을 그에게 꿇게 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 2:10)

물론 우리 같은 범인들이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을 닮으면 귀감이 되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사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마음과 삶이 예수님을 닮기를 애쓰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5)
Let the same mind be in you that was in Christ Jesus.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서
세상 속에서
귀감이 되는 근사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8.1 메일 목회서신)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으로 시작했던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사방에 흩어져있던 뼈들이 모여서 골격을 이루고, 거기에 살이 붙고 가죽이 입혀지는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생기가 불어넣어지자 흩어졌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죽어있던 뼈들이 새로운 생명을 입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너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 모습은 에스겔 골짜기의 뼈들을 연상케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2-3절에서 죄와 허물로 죽은 것을 두고 소속이 달라서 생긴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불순종하는 그룹에 속해있었습니다. 그때는 세상의 유행을 따랐고, 육체의 욕심을 채우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이것이 곧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한없이 크시고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죽어있던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군대를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그대로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그 큰 사랑이 우리를 살렸고 결국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살리셨듯이 은혜로 우리를 살리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입니다. 에베소 2장 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인 구원을 누리는 매스터 키가 곧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은혜로 인도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일어나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이뤄지는 프로세스입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누릴 뿐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구원을 두고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은혜로 구원받은 이후의 삶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 하나님께서 손수 창조하신 존재라는 뜻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군대가 된 것도 하나님께서 손수 하신 일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들을 새롭게 지으신(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서 세상 풍조와 육체의 욕심을 쫓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선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요 사명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 식구들도 자신의 성품은 물론 가정과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른 뼈가 살아난 하나님의 군대, 죄와 허물로 죽었다가 은혜로 살아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쁨으로 걸어가야 할 인생길입니다. 날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길을 걸어가시는 근사한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河-

잊지 않으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동네 근처를 운전하고 가다가
한 아파트에 붙어있는 재미있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Best Senior Apartment for 55+”
– 55세 이상의 시니어들을 위한 최고의 아파트랍니다.

아내가 저에게 말합니다.
당신도 5년만 있으면 되네…”

생각해 보니 5년만 있으면 저 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치솟는 아파트 렌트비를 생각하면 반가운 일이지만
(실제로 값이 싼지는 모름)
왠지 순간적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해 집니다.

뭐 우리 교회 어르신들 앞에서야
제 나이를 꺼낼 수도 없지만
요즘 들어서 부쩍 염려되는 것이
약간의 건망증이 가미된 심각한 망각증세입니다.

약속 같은 것들을 메모해 놓지 않으면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책을 읽고 났는데
내용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야 하고 독서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한 가지만 잊어 버리지 않으면 되겠지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 붙잡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우리들은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잊어버리고, 덜렁대고, 실수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어르신들이 일러주십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답니다.

누가복음 12 6절에서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 하는도다.
Are not five sparrows sold for two cents?
Yet not one of them is forgotten before God.

페니에 팔리는 참새 두 마리 가운데 하나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우리를 잊으실 리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까지 잊어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언제나 거기에 계십니다.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하루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순간순간 느끼며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새 마리도 잊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억해 주실 믿고 감사드립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은혜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7.26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지난주에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죄와 허물로”죽어있었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여기서 죄는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에 자기가 왕입니다. 신앙의 세계인 영적인 부분을 알지 못하기에 육체가 원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충동적인 삶이되기 쉽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욕심대로 살아가고, 혼자 있으면 불안하기에 세상 풍습을 쫓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이 곧 허물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대속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인정하고 그 예수님을 마음에 믿으면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십니다. 또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에 깃든 구속의 은혜입니다. 우리 혼자는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가운데 진행됩니다.“은혜”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호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곧 선물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주관합니다. 선물은 값을 지불하지 않고 거저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이 곧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것이 선물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 자신의 것(선물)으로 만드는데 꼭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히브리서 11장 6절에 있듯이 1)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는 것, 2) 하나님을 믿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보상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에게도 새로운 생명이 임했음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의지적인 결단입니다. 믿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듣는 그 순간 믿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지속적인 자라감입니다. 한번 믿고 마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또는 상황에 따라서 믿음이 흔들리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으면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 은혜로 임한 구원의 선물이 활동하고, 구원의 은혜가 넘치게 임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얻은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행위를 따라서 나눠주신 것이 아니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또한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저 선물로 받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이 세상사는 동안 서로 격려하면서 믿음의 공동체/구원 공동체를 은혜 가운데 세워 갈 뿐입니다.-河-

분복 (分福)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아모스 6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 풍요입니다.
6 1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리로다.
Woe to you who are complacent in Zion,
And to you who feel secure on Mount Samaria,
you notable men of the foremost nation.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라는 왕이 통치했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빈부의 격차였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힘없는 백성들을 착취하고
속여서 부를 챙겼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그것을 비판합니다.
재물로 인해서 마음이 든든해 지니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그리고 쾌락을 쫓았습니다 ( 6:4-6)

2.
그래서인지
성경에서는 지나친 부유함을 경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 (daily bread)를 주옵시고라고
기도하길 부탁하셨습니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내려주신
만나를 연상케 합니다.

만나는
안식일 전날을 제외하면
하루 분만 거둘 수 있었습니다.
욕심을 부려서 하루 분 이상을 거두면
어김없이 썩어서 먹지 못했습니다.

하루 분 만나만 가져오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불안했을 것입니다.
다음 날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신뢰하는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3.
때때로 우리들도 더 많은 소유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창고에 쌓아놓고
안일하게, 마음 편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모스 선지자는 그것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원인이 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삽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만나를 기대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일용할 양식을 두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만나를
하루 분 음식이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만나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은
우리 각자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신앙 안에서 적정수준입니다.
많아서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적어서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지 않는
알맞은 수준이 곧 일용할 양식입니다.

이것을 두고 잠언 30 7-8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줍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Two things I ask of you, O Lord,
do not refuse me before I die: Keep falsehood and lies far from me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but give me only my daily bread.

전도서 3 13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갑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That everyone may eat and drinks, and final satisfaction I all his toil
– this is the gift of God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分福, portion)에 만족하고
누리는 주님의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확실히 의지하기 원합니다.
주신 복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7.19 메일 목회서신)

너희를 살리셨도다

지난주에는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나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생기(영)가 임하면서 다시금 생명을 회복하는 예언이었습니다. 어디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랬을까요? 우리들도 마른 뼈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절망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뼈들이 모이고 힘줄과 살과 가죽이 붙고 마지막에 생기가 불어넣어졌듯이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생명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요약하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사랑”입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크고 넓은 주님의 사랑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이웃과 세상에 나눌 때 사랑이 완성될 것입니다. 신앙을 요약하는 또 다른 표현은 “소망”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현재의 모습이 어떠할지라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마지막 예수님을 만날 소망을 가슴에 품고 떳떳하게 주님을 맞기 위한 삶의 여정을 걸어갑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그 날을 사모합니다. 현재의 어두움이 물러가고 주님께서 주시는 빛의 날이 올 것을 확신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신앙을 요약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죽음에서 생명, 그것도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 안에 사망권세를 이길 생명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살아나게 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그대로 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에베소서 2장 말씀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임한 것을 증거합니다. 1절부터 대단한 말씀이 선포됩니다.:“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 우리를 다스리던 세력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요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잘 살지 모르지만 결국 그 끝은 죽음이라고 성경이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찾아오신 것과 같습니다. 4절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듬뿍 나타나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그 큰 사랑”이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최고로 표현합니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깃든 생명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 가운데 거저로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품고 삽니다. 죽을 육체로 살지만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생명의 능력으로 한 주간 힘차게 사시길 바랍니다.-河-

변덕쟁이

좋은 아침입니다.

1.
기도해 주신 덕분에

코스타에 잘 다녀왔고
제가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 해도
선한 사람이 세상에 더 많은 것처럼
요즘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와 달리 신앙에서 멀어져 있다 해도
하나님을 찾는 아침이슬 같은 젊은이들이 더 많음을 몸소 느꼈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면, 밝은 면 그리고 희망찬 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겠지요.

2.
시카고에 있는 동안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일주일 내내 기온이 100도에 육박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신문을 보니
이번 더위로 목숨을 잃은 분들도 있답니다.

땀이 저절로 흘러내렸습니다.
은근히 습도까지 높아서 몸이 끈적끈적거렸습니다.
대낮에 강의실로 걸어가다 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집니다. 허덕 허덕!
사시사철 선선한 샌프란이 그리웠습니다.

코스타를 마치고
샌프란에 돌아와서 공항을 나오자마자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일주일간의 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릴 만큼 시원했습니다.
바로 이거야!
하나님,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2.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새벽에는
옷을 끼어 입고 집을 나섭니다.
겨울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옷입니다.

기온을 보니 50도 안팎입니다.
시카고의 절반인 셈입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동네를 걷다 보면
아침안개와 바람이 얼굴을 내리칩니다.
“한 여름인데 왜 이리 추운거야!”

더운 곳에서는 선선한 곳을 생각하고
선선한 곳에 있으면 적당히 더울 것을 기대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 보다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불평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비슷해서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계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거나 조금만 힘든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합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하나님이 내 장단에 춤을 춰 주시길 바라는
못된 심보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기 원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Be joyful always, pray continuously,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하나님 아버지
험한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님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욕심쟁이가 되기 쉽습니다.
변덕쟁이 신앙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일정하신 하나님을 닮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7.12 메일 목회서신)

마른 뼈가 살아나다

지난 4주 동안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저주의 땅이라고 불리던 사마리아에 가셨습니다.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사람의 눈총을 피해서 물을 길러 온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의 복음을 전하십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확인한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메시야가가 우물가에 있다고 전파합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온 동네사람들은 이틀 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 스스로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합니다. 버려진 땅에서 울려 퍼진 복음의 메아리였습니다. 버려진 인생을 살았던 여인에게 생수의 복음이 임한 결과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들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힘겹게 살아갑니다. 한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복음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수님을 메시야로 마음에 모실 때 우리 삶에 드리운 깊은 그림자가 사라질 것입니다. 새롭게 변화되고 세상을 향해서 담대히 나가는 활기찬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스겔서의 말씀 역시 매우 독특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골짜기로 가십니다. 그곳에 가보니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마른 뼈는 하나님을 떠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들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서 골짜기 사방을 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마른 뼈들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을 하십니다.:“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이 인간의 상식이나 생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에스겔 선지자는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지혜롭게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이 서로 모이게 하고, 살이 붙고 혈관이 생기고 마지막으로 생기가 돌아서 살아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신기하게도 마른 뼈들이 사방에서 모여들더니 사람의 골격이 되고, 그곳에 살이 붙고 가죽이 덮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기가 들어가니 살아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 많은 뼈들이 모두 살아났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생긴 셈입니다. 이것을 에스겔에서는 군대라고 표현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절망가운데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서 생명이 떠났고 결국 멸절될 것이라고 자포자기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마른 뼈의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이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토록 많은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살아났을 때 하나님의 군대가 될 것이랍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삶이 곤고했듯이 우리들의 삶에도 곤고함이 있습니다. 마른 뼈들처럼 아무런 쓸모가 없고 다시 살아날 것 같지 않은 절망감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임할 때 마른 뼈도 살아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낙심되고 절망스러운 부분들에 하나님의 생기가 임하길 바랍니다. 힘겹고 곤고한 인생길 한 가운데 마른 뼈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군대를 만드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마음껏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4

세상의 구주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에 대한 말씀 마지막 시간입니다. 한낮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시작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지나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제까지 발전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생이 힘겹고 처량했기에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살았을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때가 온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여자가 가로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25절). 여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예수님께서 “내가 그로라”고 자신이 메시야임을 여인에게 밝히십니다.

여인은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거셨고 자신의 가장 아픈 곳을 언급하시면서 그곳도 만져주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참된 예배라는 것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여인은 무척 기뻤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의 인생에 빛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를 괴롭히던 인생의 어려운 순간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둔 채 동네로 뛰어갑니다. 메시야를 만났다고 자랑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메시아임에 틀림없으니 예수님을 만나러 가자는 초청입니다.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이웃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훌륭한 전도법입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행한 일을 간증합니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예수님은 물론 사람들에게도 담대히 밝힐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열등감이나 죄책감에서 벗어났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얽어매는 줄이 끊어졌습니다. 여인의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누구보다 동네사람들은 여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완전히 새사람이 된 것을 보고 그들도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틀을 머물다 가실 것을 부탁합니다. 동네사람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이틀 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자신들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동네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찬양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자유함을 경험합니다. 그를 속박하는 인생의 문제와 어려움으로부터의 자유함입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입니다. 사람들의 이목으로부터 자유함입니다. 자기가 이고 온 물동이를 예수님 앞에 버려두고 동네로 갔던 여인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인생의 짐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치유와 회복의 손길을 경험하면 자기도 모르게 세상에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전도는 힘이 있습니다. 확신 가운데 복음을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들 인생의 우물가에 찾아오셔서 말을 거십니다. 우리에게 생수의 복음을 전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길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은 새로운 인생을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전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