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지난 번 한국 방문길에 보고 싶은 책들을 구입해 왔습니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을 주문하다가<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만 보고 얼른 카트에 담았습니다. 충동구매를 한 셈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 기대를 갖고 책의 목차를 살폈건만 찾고자 하는 내용은 한 장(chapter)뿐이었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통념들을 철학적으로(?) 뒤 짚어보는 식입니다. 기대했던 내용이 많지 않아서 조금은 실망했지만 흥미로운 내용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hadenfreude)>를 소개합니다. 샤덴프로이데는 “남의 불행을 보고 고소하다고 느끼는 심술궂은 마음”을 뜻합니다.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못된 마음씨입니다. 샤덴프로이데를 설명하는 짧은 예가 나옵니다. 고급 양복을 입고 빙글빙글 지팡이를 돌리면서 산책을 하는 신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하늘을 날던 비둘기가 실례한 것이 그만 신사의 고급 양복 위에 떨어집니다.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은 대개 키득거리면서 웃는답니다.신사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운이 없어서 그런 것인데도 사람들은 고소해 한다는 것이지요.

위키피디아에서 샤덴프로이데를 검색해 보니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더 많이 있었습니다. 여성들보다 남성들에게서 샤덴프로이데가 심하게 나타난답니다. 남성들이 성취지향적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자아 존중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남의 불행에 고소한 맛을 더 많이 느낀답니다. 국가간의 운동경기에서도 샤덴프로이데가 작동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이 시합에서 이기면 괜히 속이 쓰립니다. 반면에 우리 팀과 상관이 없는데도 일본이 지면 고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제 36년의 잔재일 것입니다.

샤덴프로이데가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라면, 우리말 속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남의 성공을 놓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말은 ‘사촌’입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이 땅을 사면 전혀 배가 아프지 않습니다. 빌 게이츠가 미국 전체를 산다고 해도 배가 아프기는커녕 그를 존경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살살 아파옵니다. 경쟁상대로 여겼던 사촌이 땅을 샀다는 소식에 그 놈의 질투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가까운 사촌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뛰어나야 한다는 얄궂은 자존심 일 수도 있습니다.

한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고급 양복을 버린 신사의 불운을 보고 웃기보다 그에게 다가가서 손수건을 내밀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촌이 땅을 샀다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아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도 어려울 때 누군가 도움을 줄 것이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누군가 다가와서 자기 일처럼 축하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 갑니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거나 좋은 일에 진심으로 기뻐해 줄 이웃을 찾아보기 힘들어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크게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들 자신이 따뜻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솔직히 쉽지 않아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는 성경 말씀이 샤덴프로이데는 물론 사촌이 땅을 사더라도 그대로 실천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12년 5월 25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다니엘의 기도

2012년 기도에 대한 연속설교에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인물들을 통해서 올바른 기도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인물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단순한 포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총명한 소년들을 장차 왕을 보좌할 관리로 키우기 위해서 특별히 데려온 것입니다. 다니엘과 함께 왕궁에 잡혀온 소년들 가운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다. 다니엘서의 처음 여섯 장에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이방 땅 바벨론에서 어떻게 그들의 신앙을 지켰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였는지 알려줍니다. 흥미진진합니다.

이들에게는 매 순간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포로로 잡혀왔기에 하나님을 마음대로 섬길 수도 없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왕궁에서 특별 교육을 받으면서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었지만 식탁의 고기들은 대부분 바벨론 신에게 제사지낸 음식들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해서 이방의 음식으로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채식만 먹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얼굴을 다른 소년들보다 더 빛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네 소년가운데 다니엘은 더욱 뛰어났습니다. 그는 꿈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갖고 있었는데 당시는 꿈을 정확히 해석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의 꿈을 해석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고위관리가 됩니다. 다른 소년들도 이방 땅에서 출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신앙이 출세에 걸림돌이 됩니다. 사람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하나님 믿는 것을 두고 모함했기 때문입니다. 쇠를 녹이는 풀무 불에도 들어갔지만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목숨걸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했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니엘이 120명의 고위 관리들 가운데 세 명뿐인 총리로 임명되었을 때 그를 모함하던 사람들로 인해서 사자 굴에 던져지는 말씀입니다. 다니엘은 군계일학이어서 그의 총명함과 유능함을 견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다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온 사람이 출세를 하니 시기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왕궁의 대신들이 다니엘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음모를 꾸밉니다. 30일 동안 바벨론 왕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라도 절을 하면 사자 굴에 던져서 죽게 하자는 법을 신설합니다. 이것은 다니엘을 겨냥한 음모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이 조서에 도장을 찍어서 만방에 공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니엘에게 또 다시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창문이 열린 방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한 것입니다.“전에 하던 대로”- 다니엘은 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어려운 순간에만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늘 기도했습니다. 방은 다니엘의 기도처였고,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로 무장된 다니엘이었기에 사자 굴에 던져 진다해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순교하는 것이기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건져주실 것이니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구해주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심을 다니엘을 통해서 다시금 배웁니다.-河-

여호와 삼마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예배에서
에스겔서를 모두 읽었습니다.
하루에 한 장씩 읽어가니
48일이 걸린 셈입니다.

새벽에 예언서를 읽기가 쉽지 않지만
창세기부터 이어지는 긴 여정이기에
광야를 걷는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에스겔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선지자의 관점에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서 행했던
예루살렘이 멸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임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예루살렘에 남은 것이라고는
처절한 심판뿐입니다.
그렇게 에스겔서의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2.
하지만 끝 무렵에 가면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심판이 아닌 소망인 것을 가르쳐줍니다.

37장에서 죽은 뼈가 살아나는 모습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강물이 되어서
바닷물을 살리는 말씀을 읽을 때는 속이 시원했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는 47장 말씀은
얼마 후에 주일설교에서 다룰 계획도 세웠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에스겔서의 마지막은
두 단어로 종지부를 찍습니다.:
여호와 삼마 (The Lord is There)

이제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 성전에 계십니다.
하나님 거기에 계십니다.

3.
우리들도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살아간 것인데……
그때도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행여나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할 지를 염려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버리면 버렸지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전에 모여서 예배할 때도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예배를 끝내고 각자 삶의 처소로 돌아갔을 때도
하나님 거기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
하나님 늘 거기 계십니다.

여호와 삼마
언제나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빛 교회 식구들이 가는 곳에
하나님께서 거기 계실 줄 믿습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24 메일 목회서신)

한나의 기도

2012년 기도에 대한 연속설교에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인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올바른 기도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민족적으로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앗시리아 왕에게 항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꼭 붙들었던 히스기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적군이 보낸 선전 포고문을 앞에 펼쳐놓고 기도하는 히스기야왕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만큼 구체적으로 아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눈으로 보시고 귀로 들으심을 확신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기도의 인물은 한나입니다. 한나라는 이름 속에는 “은혜”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한나는 에브라임땅 명문가에 시집왔습니다. 그녀의 남편 엘가나는 사려가 깊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가문에 시집을 왔으면 대를 이어야 하는데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엘가나에는 다른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때 풍속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는 마음이 늘 무거웠습니다. 그때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에게 더 많은 정을 주면서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브닌나입니다. 브닌나가 아들을 낳으면서 한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매우 힘들게 하였습니다. 약이 오를 만큼 지능적으로 괴롭혔다는 의미도 본문에 들어있습니다.

남편이 잘해주었지만 한나는 괴로웠습니다. 남편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없는 그 무엇이 한나의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온 가족이 예루살렘에 제사를 드리러 갔을 때 한나가 식음을 전폐합니다. 남편의 위로도 소용없을 만큼 마음이 무척 상했습니다. 결국 슬며시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합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술이 취한 줄 알았습니다. 이처럼 한나는 주위를 의식하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처럼 한나는 자신의 어려운 순간에, 사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없는 가슴 속의 응어리를 안고 하나님 전에 나왔습니다. 히스기야와 마찬가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만큼 한나의 사정이 다급했고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한나의 마음이 간절했음을 뜻합니다. 한나의 사정을 들은 엘리 제사장이 한나에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다고 확신시켜줍니다. 기도가 응답된 것을 확신한 한나의 얼굴은 곧바로 밝아졌습니다. 음식도 먹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이처럼 한나는 기도의 능력과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솔직하고 간절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솔직히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게는 주변에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있어도 사람으로부터 해결될 수 없는 응어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혼자서 풀려고 애써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솔직히 아뢰어야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솔직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간절한 기도, 절박한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한나와 같이 각자의 사정을 하나님께 솔직히/ 간절히 믿음으로 구하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

하나님의 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구약성경의 신명기를 읽고 있습니다.
이래 저래 올해 성경 통독이 많이 늦었지요.
부지런히 따라잡아야겠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나머지 백성들은 광야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모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의 2세들에게
들려준 마지막 설교였습니다.

제가 오늘 읽은 신명기 22장은
신명기 법전(12-26)의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신명기 22 1-12절을 읽으면서
하나님 마음을 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본문에 나오는 예들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1-4절에서는
이웃의 소나 양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랍니다.
주인이 없으면 집에 두었다가
주인이 찾을 때 돌려주랍니다.
소나 양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이웃이 잃어버린 것들을 발견하거든
못 본체 해서는 안 된답니다.

요즘처럼 무관심이 판을 치는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아니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 모두 각박한 세대를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솔선해서
이웃의 일을 내일처럼 보살피고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6-7절에서는 길을 가다가 어미 새와 새끼 새가 있는 것을 보거든
새끼나 알은 꺼내와도 어미는 잡지 말랍니다.
어미는 계속해서 새끼를 낳으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명령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
여지를 남겨놓으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은 끝장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8절에서는 집을 지을 때 난간을 만들어 놓으랍니다.
난간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져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발적으로 짓는 살인죄도 막을 수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행여나 준비를 덜해서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자신이 손해를 당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발적인 것까지 고려하면서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라는 교훈입니다.

5절과 9-12절은
남녀가 옷을 바꿔 입거나,
양털과 무명실로 섞어서 짠 옷을 입거나
밭에 식물을 섞어서 심거나
소와 나귀가 함께 멍에를 지고 밭을 가는 것을 금지합니다.

혼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거룩한 것과 세상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섞어서 무질서하게 보이거나
혼란스럽게 일을 행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순수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고정되어야 하고
복잡한 것에 질서를 부여하면서 정돈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혼란스럽거나 혼동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금물입니다.

엊그제 새벽기도회에서 읽었던
에스겔서 42 20절 말씀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성전 주변에 담을 두를 것을 명령하십니다.
성전과 세상을 구분하는 담입니다.:
그 담은 거룩한 곳과 속된 곳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It had a wall around it to make separation between the holy and the profane.

구약의 율법서들이 지루한 것이 사실이지만
차분하게 읽다 보면
율법의 조항 조항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들이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고,
이웃을 배려하면서 근사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동안 세상에 살면서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시고,
이웃을 배려하고,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완벽히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17 메일 목회서신)

히스기야의 기도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영혼의 호흡이라고 불립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호흡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친구 간에 속삭이듯이 기도합니다. 연인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진실된 사랑을 고백합니다. 부모님 앞에서 응석부리듯이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뢸 수 있습니다. 다급할 때는 울부짖으면서 긴급히 도움을 요청합니다. 상한 심령을 토해내면서 기도합니다. 온 교회가 한 목소리로 통성으로 기도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골방에 들어가서 고요한 가운데 깊은 기도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특권입니다. 기도의 지경은 넓고 깊고 높습니다.

신구약 성경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대부분 기도의 인물들이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였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2012년 기도에 대한 연속설교에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인물들 네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히스기야왕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시대에 남유다의 왕이었습니다. 스물다섯 살에 왕위에 올라서 29년을 통치했습니다. 그가 통치하는 시대는 앗시리아라는 초강대국이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앗시리라는 북이스라엘을 침공해서 수도 사마리아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쪽 유다까지 정복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산헤립이라는 왕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화친을 시도하지만 앗시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히스기야의 남유다를 침공합니다. 앗시리아에는 랍사게라고 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랍사게는 이스라엘 말을 구사할 정도의 지략가였습니다. 랍사게가 예루살렘 사람들을 말로 현혹시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만을 의지하자고 말하는 것은 헛된 말이라고 백성들을 꾀고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강대국인 앗시리아와 산헤립왕을 의지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해도 질 것이 확실하니 미리 항복하라고 백성들을 유혹하고 급기야 히스기야 왕에게 전쟁을 포고하는 문서를 보냅니다.

오늘 본문은 앗시리아로부터 온 편지를 받아든 히스기야가 하나님 전에 들어가서 드린 기도입니다. 히스기야가 세계 최강인 앗시리아와 맞서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일발의 순간입니다. 히스기야는 랍사게로부터 온 편지를 앞에 펴놓고 기도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간절합니다. 그는 먼저 온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15절).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앗시리아와 산헤립의 말과 행동을 귀로 들으시고 눈으로 보시길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시길 바라는 기도입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천하만국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다급하고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앗시리아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주셨습니다. 간절한 기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응답해 주십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히 기도할 때 세상을 이길 얻을 수 있음을 기억하고 다음 한 주간 기도생활에 진력합시다.-河-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귀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제 얼굴을 가만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입과 코는 하나인데

눈과 귀는 각각 두 개씩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눈과 귀를 각각 두 개씩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이 하나라면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왜곡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두 개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세심하게 돌볼 수 있습니다.

물론 두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들만 본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귀가 두 개인 이유도 생각해 봅니다.

당장 저는 개인적으로 두 개의 귀를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다른 쪽 귀로 거의 정상인처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귀가 하나였다면

저는 지금 무척 답답하고 불편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귀가 두 개인 이유는

세상의 말들을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리라는 뜻도 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말들을 들었다면 곧바로

다른 쪽으로 흘려 보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소리들을 듣습니다.

이른 아침의 맑은 새소리부터 시작해서

대낮의 자동차 소음과 군중들의 말소리,

귀담아 듣고 마음에 간직해야 할 조언과

하나님 말씀에 이르기까지

두 개의 귀를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정말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따금씩

양쪽 귀에 필터(filter)를 설치해 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들어야 할 말만 들을 수 있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그런 장치는 없습니다.

필터가 없으니 앞에서 말한 대로

필요 없는 소리들은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 보내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모든 소리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

생각이 혼란스러워지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들을 소리만 정선해서 마음에 간직한다면

한결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두 개의 귀와 눈을 열어놓는 것은 물론

눈과 귀를 지혜롭게 차단하는 비결도 배워야 합니다.

이사야서 33장 15-16절에서는

하늘 나라 백성의 자질과 그들이 누리는 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 정직히 말하는 ,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 흔들어 뇌물 받지 아니하는 ,

귀를 막아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He who walks righteously and speaks uprightly, who despises the gain of oppressions, who shakes his hands, lest they hold a bribe, who stops his ears from hearing of bloodshed and shuts his eyes from looking on evil, 16 he will dwell on the heights; his place of defense will be the fortresses of rocks; his bread will be given him; his water will be sure.(Isa 33:15-16)

우리 귀를 통제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세상만 볼 수 있기 원합니다.

우리의 감각까지 통제할 수 있는

온전한 신앙인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곳,

견고한 바위를 요새로 삼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양식과 물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누리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눈과 귀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선하게 사용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10 이-메일 목회서신)

믿음의 사람들 5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첫째 시간에는 시카고 구두공이 부흥사가 된 무디 선생님, 둘째 시간에는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후 술주정뱅이가 되었다가 한국의 무디로 변화된 김익두 목사님, 셋째 시간에는 신혼의 단꿈을 뒤로 한 채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와서 순교한 아펜셀러 선교사님,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계속되는 인생의 역경 속에서 신앙과 인생을 꿋꿋하게 헤쳐나간 멋진 조선의 여인 김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을 인생길 한 가운데서 만났고 그로부터 인생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후에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마지막으로 살펴볼 믿음의 사람은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가인 존 뉴턴(John Newton)입니다. 존 뉴턴은 지금부터 약 300년인 1725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배를 타고 아프리카와 인도를 오가면서 무역을 하는 선장이었습니다. 존 뉴턴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아기 때부터 뉴턴을 목사로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뉴턴이 여섯 살 때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 이후로 존 뉴턴은 새엄마 밑에서 자랐고 조금 큰 후에는 기숙학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는 매우 포악한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아버지를 따라서 배를 타게 되는데 그의 입에서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상스러운 말들이 나왔습니다. 훗날에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와서 파는 노예선의 선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고를 하도 많이 쳐서 노예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결코 새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았고 누구하나 관심을 갖지 않는 뉴턴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찾아가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한번은 항해를 하다가 커다란 폭풍우를 만납니다. 모든 선원들이 물을 퍼내고 짐을 모두 바다에 던지면서 배의 침몰을 막았습니다. 그때 뉴턴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다급한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뿌리가 뉴턴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뉴턴은 목사가 되어서 당시의 유명한 장로교 부흥사였던 조지 휫필드와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의 삶이 죄악 가운데 빠져있었음을 알았기에 자신을 구원해 준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감격했습니다. 뉴턴 자신은 죄에 대해서 무력했고 고의로 죄를 짓는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뉴턴을 찾아 오셨고 그에게 복음의 빛을 비춰주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송시로 적어서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입니다. 단순히 시를 쓴 것이 아니라 뉴턴 자신의 삶과 신앙의 고백이 깃들어 있기에 진정으로 은혜를 끼치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그 큰 사랑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깊이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인생, 멋진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에베소서 2장 4절 말씀대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이 참빛 교회 식구들 위에 그대로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河-

확신있게 서기

좋은 아침입니다.

한국을 방문하느라

지난 3주 동안 목회서신을 보내지 못했는데

어느덧 5월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세월을 붙들어 놓을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아니 인생길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에 대한 점검과 확신입니다.

이것을 두고 골로새서 4 13절에서는

확신 있게 서기라고 말합니다.

골로새 교회를 세운 바울의 제자 에바브라가

교회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입니다.

그가[에바브라]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 4:13)

He is always struggling on your behalf in his prayer, that you may stand mature and fully assured in all the will of God.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 확신이 필요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확신

우리들 안에 계시는 성령님에 대한 확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모든 것을 유보하고

불확실성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어느 한 가지 확실한 것을 붙잡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여서

확신 있게 서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면서 예수님을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확신 있게 서 있어야 합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을 맞으면서

우리들의 신앙과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빛 교회 식구들께

흔들림 없는 확신과 온전함을 더해 주옵소서.

확신 있게 서 있는 굳건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5.3 메일 목회서신)

고향의 봄

9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가기 전부터 여러 분들이 한국에 가면 많은 것이 변화되었을 것이라고 귀띔을 해 주셨기에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고 아내와 함께 고국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오랜만의 고국방문에 설렜던 제 마음을 시기했는지 열두 시간의 비행시간 내내 기류가 좋지 않아서 비행기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비행기 멀미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기분 좋게 공항을 빠져 나와서 가족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서 봄이 늦게 왔답니다. 이제야 개나리가 핀다는 누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들판을 보니 여전히 겨울빛이었습니다. 4월의 생동감 넘치는 고국의 자연을 머리에 그리면서 왔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공항을 빠져 나오는 길가에 전에 없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것을 보면서 이곳이 대한민국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그리운 친지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동안 파킨스씨병을 앓아오신 장모님은 많이 수척해 지셨고 걸음걸이도 힘겨우십니다. 아내는 장모님을 뵙자마자 눈물을 닦습니다. 누님과 매형들의 얼굴에도 주름살이 깊이 파여있습니다. 조카들도 많이 장성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삼촌을 맞으러 왔습니다.미국에 간 이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조카는 어느덧 오십이 된 삼촌이 늙어 보인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족의 정입니다.

그 동안 하늘나라로 가신 부모님과 장인 어른 그리고 큰 누님은 성묘를 통해서 만나야 했습니다. 고즈넉이 봄볕이 드리운 선산에 누워계신 부모님께서는 사랑하는 막내가 찾아왔음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습니다. 불효자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도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시면서 기뻐하실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생전에 사시던 아파트를 가보았습니다. 부모님의 체취가 여기저기서 느껴집니다. 살아생전 부모님의 모습이 눈 앞에 떠오르고 그리움이 밀려와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꽤 오랜만에 친지들을 만났습니다. 고향친구 삼총사를 만나서 복 요리를 코스로 즐겼습니다. 군대시절 신우회 활동을 함께 했던 옛 전우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그랬듯이 큰 힘을 주었습니다. 선교단체를 함께 섬겼던 후배들과도 오랜만에 호형호제하면서 회포를 풀었습니다. 한국에 귀국한 옛 교인들도 한국에서 근사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처음 만난 친구들은 중년을 지나서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미국에 살다 보면 때때로 외로움이 밀려오고 고국의 친지들과 단절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우리 모두는 마음 속에서 서로를 그리워했고 기도해주고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만남이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얘기해 주신대로 한국은 정말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고향마을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외곽도로가 많이 생겼다지만 교통체증은 여전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얼굴의 반 이상을 덮은 황사방지용 마스크를 쓰신 아주머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모두들 종종 걸음을 걷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삶도 녹록하지 않음을 금새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섞여서 길을 걷고 있는 제 자신이 때때로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처음 사용해본 교통카드에 익숙해 지고 시차가 적응될 즈음에 샌프란시스코의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생각납니다. 교회 식구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해 집니다. 역시 제가 있을 곳은 샌프란시스코임을 새삼 깨닫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오랜만의 고향 방문을 끝내고 고국에서의 모든 만남을 마음에 간직한 채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해주시는 고국의 가족들이 있기에 저희 네 식구가 편안히 지낼 수 있고 목회도 능히 해 낼 수 있습니다. 친지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지만 마음은 얼마든지 돌이킬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모든 만남을 가슴에 품고 그들의 모습을 눈 앞에 그리면서 새벽마다 기도해주고 축복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앞 길에 어떤 만남의 축복을 예비해 놓으셨을지 기대하면서 모든 분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가꿔가야겠습니다. (2012. 4. 27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