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하는 교회 (1) : 참된 복

새해를 맞아서“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가장 많이 듣습니다. 물론 우리들 자신도 누구를 만나든지 똑같은 인사를 건넵니다. 이처럼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은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누구나 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런데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주고받으시면서 과연 여기서 말하는 복이 무엇일까를 잠시라도 생각해 보셨는지요? 교회에서 말하는 복이나 옛날 우리 조상들이 뒤꼍에 냉수를 떠놓고 새벽정성을 드리면서 복을 비는 것과 같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복” 또는 “축복”에 대해서 성경적인 관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앞에서 지적한 대로 하나님을 믿고 복 받는 것이나 조상들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면서 복을 빌던 것을 똑같은 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같은 동양인들이 복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칫 우리의 신앙도 기복주의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실제로 교회에 나오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녀들이 출세하는 형통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을 믿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녀들에게 복이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부모를 공경할 때 장수의 복도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단지 세상에서 누리는 복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우리들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에베소서 1장 3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신령한”이라는 말에서부터 세상의 복과 차이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의 다윗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은혜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가장 큰 상급”(창15:1)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상급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상급이요 축복입니다. 시편 73편 28절에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하나님이 함께 거하는 것,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복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복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 속에 간섭하시고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것이 복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물질이나 장수에 대한 복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 물질의 복은 물론 건강과 자녀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믿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복을 많이 주셨다면 그것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열심히 믿으라는 표시입니다. 만약에 조금 가난하고 세상에서 그리 출세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을 알고 영생의 삶을 누린다면 그것 역시 똑같이 복된 인생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기준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축복하는 교회”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믿고 더 많은 은혜를 체험해서 그것을 갖고 세상을 축복해야 함을 깨닫습니다.“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을 때도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믿읍시다”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우리 교회와 참빛 교회 식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토기장이 하나님

Happy New Year!!!

1.

새해의 첫 번째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새해 들어서 결심한 것들은 잘 지키고 계시는지요?

작심삼일이라고 하지만

3일마다 다시 결심하면

일년 내내 초심을 잃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답니다.

새해가 밝았는데

지구촌 곳곳은 물론이고

한반도와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왠지 모르게 혼란스럽습니다.

SNS의 혁명으로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해진 듯 한 느낌을 받는데

검증되지 않은 말과 정보들이 마구 쏟아져서

자칫 진실을 가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튼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올 한 해를 생각하면서 한국의 대학교수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사자성어를 말씀하셨답니다.

파사현정 (破邪顯正) :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잡다.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지도자들이 많이 세워지는 올해에

세상을 바로잡을 훌륭한 분들이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2.

엊그제 새벽기도회에서는

예레미야 18장에 나오는 토기장이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했습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의 뜻대로 토기를 빚어내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빚어가실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 18:6)

“O house of Israel, can I not do with you as this potter does?” declares the Lord.

“Like clay in the hand of the potter, so are you in my hand, O house of Israel.”

하나님께서 토기장이 되시고

우리가 토기장이의 손에 얹어진 진흙이라는 비유는

때때로 거부감을 줄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독재자처럼 비추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 마음대로

우리의 인생을 빚어가시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 가지 사실만 마음에 품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선하시다는 믿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악한 것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임을 묵상하면

우리 스스로 하나님 손 위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고백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마음대로 빚어 주십시오!

3.

2012년 새해를 살면서

우리에게 토기장이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신뢰가 있길 원합니다.

그때 올 한 해를 하나님 손에 맡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인생으로 빚어가실지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개인뿐만 아니라

다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온 세상도

토기장이 하나님께서 선하게 빚어가시길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올 한 해를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주님의 뜻대로 빚어주옵소서.

그 길이 가장 선하고 최선임을 믿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2.1.5 메일 목회서신)

토끼와 거북이

2011년은 토끼해였습니다. 올 한 해를 보내려니 뜬금없이 이솝 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보고 느림보라고 놀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거북이가 토끼에게 도전장을 냈습니다. 토끼는 여유 있게 거북이의 도전을 받아 줍니다. 심판은 여우가 맡았습니다. 여우가 정해준 코스에서 토기와 거북이가 경주를 시작했습니다. 토끼는 빠르게 출발해서 저만치 앞서 갔습니다. 한참을 달린 토끼는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잠시 누웠는데 그만 잠이 들어 버립니다. 거북이는 뒤에서 느릿느릿 기어옵니다. 그리고 잠을 자고 있던 토끼를 지나서 결승점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한참을 자고 난 토끼가 잠에서 깨어나서 서둘러 결승점에 갔지만 거북이가 승리한 뒤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토끼는 시간당 56킬로미터(35마일)을 달릴 수 있고, 거북이는 아무리 빨리 기어도 시간당 300미터(328야드)밖에 갈 수 없답니다. 그러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솝 우화 속에서는 거북이가 승리합니다. 불가능한 일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거북이가 갑자기 힘이 생겨서 빨리 달렸거나 축지법을 쓰는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거북이는 평소의 속도대로 기어서 경주에 임했습니다. 문제는 토끼에게 있었습니다. 토끼는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아니 거북이를 무시해서 중간에 쉬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방심하다가 쉽게 이길 수 있는 경주에서 패한 것입니다.

올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들도 토끼처럼 사뿐사뿐 뛰면서 한 해를 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런데 한 해를 돌아보니 방심하다가 찾아온 기회를 놓친 경우가 꽤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해서 큰 코를 다친 경우도 있습니다. 끝까지 달려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만 중간에 잠시 쉰 것이 일을 그르치기도 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과신과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인생의 경주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이솝 우화는 물론 우리들 인생 경험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학창시절 선생님들께서는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끝까지 달려가라”는 말씀을 주시곤 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 50여 년 살다 보니 인생이 마라톤인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인생의 승부가 생각보다 금방 나지 않습니다. 조금 빨리 갔다고 자만해도 안되고, 빨리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자기에게 맞는 속도로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거북이처럼 기어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승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솝은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였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경주에게 이긴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이쯤 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짙게 밀려옵니다. 잠을 자다가 경주에서 진 토끼에게 밀려왔을 아쉬움입니다. “…하지 말걸” 하는 식의 후회들입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세네카는 “인생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후회”라고 했습니다. 후회는 결국 마음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또한 거북이처럼 태생이 느린 것을 두고 자책할 수도 있습니다. 남과 비교해서 느린 것이지 거북이 자신의 발걸음은 결코 느린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만하지 않고 “천천히 꾸준히” 주어진 인생길을 끝까지 걷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계속되는 불경기 속에서 2011년 365일을 살아낸 우리 모두는 승자들입니다. 밀려오는 세파와 어려움 속에서도 올 해의 결승점까지 달려오신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2011년 12월 30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2012년을 맞으며

새해 첫날입니다. 어제 저녁 송구영신예배로 모였고 또 다시 새해 첫날 신념감사 주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새해 첫 번째 날이 주일인 경우가 자주 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새해 첫날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래서 올 한 해가 더욱 은혜가 넘칠 것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

작년이 교회적으로 매우 뜻 깊은 해였다면, 새해는 이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부흥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올 해 우리 교회 주제가 “축복하는 교회”입니다. 가만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보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복이 자꾸만 생각나서 나중에는 하나님께 불평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더 많은 것을 받기 원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하는 욕심과 집착을 보이곤 합니다. 올 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기 원합니다. 축복을 받는 교회에서 축복을 하는 교회로 하나님 앞에 서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였을 때, 서로 축복하기 원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우리의 이웃을 축복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와 미국을 축복하고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도 축복하기 원합니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축복을 한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통해서 하늘의 복이 전해질 것을 믿고 기대하기에 마음껏 축복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의 인사가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로 확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마음으로 말로 또 우리의 행함으로 축복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 원합니다. 외국 사람들에게도 “God bless you”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들 자신이 복의 통로로 손색이 없는 정결함과 투명함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닮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그릇이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겸손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 복이 우리 안에서 차고 넘쳐서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출구를 열어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사랑입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상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는 참빛 교회 식구들게 특별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모두 진실된 신앙을 갖기로 결심하고 애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어디서나 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은 힘이 있습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짜가 되기로 함께 결심하고 그 길로 나가기 원합니다.

둘째는,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나로 똘똘 뭉쳐있고 교회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매사에 어떤 일을 앞두고잠시 멈춰서“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행동으로 옮깁시다.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하나 된 공동체로 만들 것입니다.

셋째로, 한 해 동안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토요일은 새벽기도회에 오셔서 주님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기도가 우리를 힘입게 만들어줍니다.

올 한해도 참빛 교회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세울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영육간에 강건하시고 주님 안에서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한 분 한 분을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河-

진짜 그리스도인 2

좋은 아침입니다.

1.

이제 2011년이 딱 이틀 남았습니다.

올해의 삶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미국의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서

우리네 서민의 주름살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월가에서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세상에서 가장 호위호식하던 여섯 명의 독재자가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세계 경제나 정치 모든 분야에서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안은 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듯 해서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살펴보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심정으로

세상을 마음에 품고 눈물로 기도하는

의인, 남은자, 진짜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2.

올해 첫 번째 목요서신을 검색해 보니

제목이 진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한 문단을 이곳에 다시 옮겨 왔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새해 첫 주간에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께 조율하기 원합니다.

다시금 우리들 신앙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성경의 진리 속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그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탁 드렸듯이

올 한해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짜는 가짜보다 세련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가짜가 더 요란한 법이거든요.

가짜는 자기를 변명하고 자랑하기에 급급하지만

진짜는 가만히 있어도

그 성품과 삶으로 진짜인 것이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진짜 그리스도인들

요한 계시록 말씀에 나오는 “흰 옷 입은 자들”

을 주목하시고, 그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고린도후서 6 1-10절에 잘 나옵니다.

그 가운데 9-10절만 옮겨왔습니다.

이름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표준새번역)

올 한해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진짜”로 살기를 힘씁시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진짜 그리스도인을 찾으시고

그들과 더불어 한없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3.

과연 올 한해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는지

함께 돌아보기 원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진실됨으로

안과 밖이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는지요.

남은 이틀 동안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

진실된 신앙을 올려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진실된 그리스도인으로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2.29 메일 목회서신)

2011년을 보내며

2011년은 교회적으로 잊을 수 없는 상징적인 해임에 틀림없습니다. 새해가 되면서 교회 이름을 변경하는 것을 기획위원회와 임원회에서 조심스레 의논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지난 일들이 차근차근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교회 이름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부흥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임원들의 제안으로 한 달 동안 기도한 후에 교회 이름을 바꾸는 것을 두고 교인 전체의 뜻을 물었을 때 절대 다수가 동의하셨습니다. 그 이후 교회 이름을 공모하였고 6월 마지막 주에 전 교인의 참여 속에 “샌프란시스코 참빛교회”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 이름을 한참 공모하던 6월에 불현듯 교회 건물을 구입하는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매우 신기한 일이었기에 그동안 우리의 아픔을 위로하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알고 차분하게 교회 구입절차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0월 14일 에스크로가 닫혀 지면서 현재 우리 교회 예배당 구입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11월 6일은 우리 교회가 새로 구입한 건물에서 첫 예배를 드렸던 역사적인 주일이었습니다.

교회이름을 바꾸는 것이나 건물을 구입하는 것이 모두 예사로운 일은 아닙니다. 한 가지도 쉽게 하기 어려운 일인데 온 성도님들께서 한 마음이 되셔서 두 가지 커다란 일을 거뜬히 해 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물심양면으로 그리고 기도로 도우신 참빛 교회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번듯한 우리 교회 건물이 생겼습니다. 11월 내내 설교했듯이 마음껏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집이 생겼습니다. 예배시간도 11시로 옮겨졌고 미국 교회 눈치 보지 않고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중고등부와 청년들의 모임방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님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터전을 주신 것입니다. 감사하고 말 그대로 감격할 일입니다.

이처럼 올 한 해 동안 우리 참빛교회에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풍성하게 임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임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하고 계셨고, 한 걸음 한걸음 친히 인도하셨음을 눈으로 목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은혜가 넘칩니다. 앞으로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길 원합니다.

또한 올 한해를 돌아보니 기도의 어머님들이신 전도사님과 연로하신 권사님들께서 교회를 굳게 지키셨습니다. 조금씩 기력이 쇠약해지심을 엿볼 수 있지만 그래도 한 해 동안 강건하게 신앙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내년에도 올해만큼만 강건하시길 기도합시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신 참빛 교회 성도님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래도 신앙을 잃지 않으시고 한 해를 갈무리하실 수 있음도 감사의 제목입니다.

돌아보면 아쉬움은 늘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목회를 하고 성심껏 교회를 세워나가려 해도 부족한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상처받고 실망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과 실망을 뒤로 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감사의 제목들을 조목조목 세어보기 원합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한 해를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2011년 한 해 동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시고 한 마음으로 교회를 세우신 참빛 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河-

(2011년 12월 25일 마지막 주일 목회서신)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대신에

해피 할러데이 (Happy Holiday)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성탄 휴일을 모든 사람이 즐긴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임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옵니다.

물론 세상에서의 인사가 바뀐다고

이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탄생의 본뜻이 바뀔 수는 없지요.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7-8)

But made himself nothing,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ce to death –

even death on a cross.

2천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말 그대로 자신을 nothing으로 만드시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기독교의 진수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똑 같은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에 있습니다.

그 날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날이 성탄절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해피 할러데이를 외쳐도

예수님의 탄생은 보석처럼

우리 안에서 빛을 발할 수 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2011년 성탄절이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시기 원합니다.

낮아지신 예수님,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기쁘고 복된 성탄 맞이하기 원합니다.

예 수 님!

사 랑 해 요!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마음에 품습니다.

한없이 낮아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무릎 꿇고 경배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그대로 걷기로 다짐하는 참빛 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2.22 메일 목회서신)

잠언이 주는 교훈 (3)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위주로 세상을 삽니다. 자기 마음에 맞으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쾌하고 그릇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심하게 봅니다. 자신의 생각이 올바르더라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 갑니다. 소위 줏대가 없다는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사람중심이 아니라 물질중심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 즉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물질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이 많이 등장합니다. 부유함은 부지런히 산 결과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잠11:16), 물질로 친구를 사귀는 등 재물이 가져다주는 유익도 간과하지 않습니다(잠9:4).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 때에 물질의 복도 주신다는 말씀도 나옵니다(잠 22:4). 하지만 불의의 재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물질만을 추구하는 삶에 대해서는 마지막 심판 날에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잠 11:4).

무엇보다 잠언 말씀에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이 최고의 행복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최우선에 두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서는 첫 번째 시간에 세 가지로 정리해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 하나님을 실제로 두려워하는 삶,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삶. 잠언 말씀을 읽어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이 나오는 구절들을 따로 노트해보시면 하나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금방 깨닫게 되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우리들의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자신감(confidence)과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확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기에 자신 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은 자신감보다는 절망 내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물질도 금방 없어지고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지기에 궁극적인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자신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데서 옵니다. 여기서부터 이웃사랑도 나와야 하고, 세상에서의 형통함도 비롯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the fountain of life)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핵심이 빠지면 나머지 것들도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자동차에서 엔진이 없다면 아무리 비싼 자동차라도 단지 고철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경외할 때 그 복이 우리 자녀들에게도 임합니다.:“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26절)

여호와를 경외할 때 사망의 그늘이 우리 곁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의인의 삶을 걸어갈 때, 죽음의 순간에도 피할 길이 열리고 소망을 얻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요 하나님 백성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원천입니다.-河-

인내는 연단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화요일 저녁에는

우리 교회에서 청년부 리더와

찬양팀으로 섬기는 경욱 형제의

첼로 독주회가 있었습니다.

샌프란을 떠나는 경욱 형제이고

짧은 기간 있으면서도 교회를 열심히 섬긴 것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다른 스케줄을 취소하고 독주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도 미국에 와서

늘 음대생들이 있는 교회에서

목회를 했었기에

연주회에 많이 다녔지만

첼로 리사이틀은 매우 오랜만에 갔었던 것 같습니다.

중후하면서도 매우 섬세한 첼로의 선율을

만끽할 수 있었던 리사이틀이었습니다.

거기에 경욱 형제의 멋지고 열정적인 연주에

큰 감동을 받고 자칫 기립박수를 칠 뻔했습니다.

2.

음악을 하시는 분들과 목회를 하면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습하는 자세입니다.

거의 똑 같은 것을 반복해서

완전히 외우고 매스터할 때까지

인내를 갖고 연습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악기로 또는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음악 하시는 분들은

연습실을 내 집처럼 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저 역시 매사에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습니다.

로마서 5 4절에는 그리스도인의 세가지 덕목이 나옵니다.:

인내 (perseverance), 연단 (character), 소망 (hope)

위의 세가지 덕목들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인내는 연단으로 이어집니다.

연단에 해당하는 영어가 (성품)character입니다.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난 후에

쇳덩이가 풀무 불에서 연단되듯이 생겨나는

그리스도인의 깊은 마음이요 근사한 성품입니다.

연단은 소망으로 이어집니다.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환난을 뛰어넘는

궁극적이고 진실된 소망을 가리킬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내에서 시작합니다.

인내는 단순히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듯이

습관이 되고 인격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거듭해서 연습하고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3,

우리는 지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돌아보면 아쉬움이 먼저 생각납니다.

물론 감사한 일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11년이었습니다.

올 한 해의 모든 일들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습관과 품성으로 자리잡고

그것이 신앙 안에서 소망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하루 하루가

우리의 신앙인격과 소망을 이루는

거룩한 연습이요 훈련이길 원합니다.

올해의 남은 반 달 동안

말씀과 기도 가운데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시고

주님의 은혜를 깊이 느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끝까지 견디는 인내를 더해 주옵소서

인내가 우리 안에 성품으로 자리잡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마음에 품고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12.15 메일 목회서신)

기드온의 에봇

구약성경은 쉽게 읽어지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무척 재미있고, 지루한 말씀은 세상에 이렇게 재미없는 책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경을 취사선택해서 읽곤 합니다. 구약성경의 일관된 주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God’s endless love)”입니다. 구약 성경의 첫번째인 창세기 3장부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엇박자가 시작됩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구약 내내 메아리 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 자리를 엿보고 때마다 변명하고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하나님 속을 푹푹 썩이던지요!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특별히 구약성경의 사사시대는 어지럽기 그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기드온이라는 사사가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미디안 족속을 몰아내고 나라를 구합니다. 그때 백성들이 “장군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대를 이어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기드온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군중은 눈앞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행간을 읽지 못할 만큼 충동적입니다. 기드온의 대답은 현명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런데 곧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적군에게서 탈취한 전리품 가운데 귀고리 하나씩만 나에게 주십시오.” 삼백 명을 이끌고 미디안을 무찌른 하나님의 용사가 백성들에게 귀고리 하나씩만 달라는 쩨쩨한 요청을 합니다. 그것도 적군에게 빼앗은 전리품을 달라는 것이니 신앙의 지도자로서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기드온의 청을 들어줍니다. 기드온은 겉옷 위에 백성들이 던진 귀고리로 에봇을 만듭니다. 에봇은 구약시대에 대제사장들이 입던 성스런 예복입니다. 기드온은 에봇을 자신의 고향에 둡니다. 자신의 고향을 성지로 만드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민족을 구한 전쟁영웅 기드온이 만들어 놓은 근사한 에봇을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여기서 “음란하다” 라는 말에는 (매우 추잡한) 성적인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기드온 마음에 슬며시 들어온 욕심이 백성들까지 죄의 길로 빠지게 한 셈입니다.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안에 올가미가 되었다”라는 말씀으로 에봇 사건은 끝을 맺습니다.

기드온이나 그 시대의 백성들만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사사로이 자신을 높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쫓아 다닙니다. 그래서 신비주의와 충동적인 신앙이 위험한 것입니다. “적어도 저 사람보다는 나아야지,” “내 수입이 저 사람보다 적을 수는 없지.” “내 교회 아니 내 가정에만 하나님께서 계셨으면…”등등 끊임없는 경쟁심과 욕심이 속에서 생겨납니다. 전쟁영웅이었던 기드온이 쩨쩨하게 귀고리를 가지고 에봇을 만들어서 자기 땅에 모셔 두었듯이, 우리들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기 영역 안에 가두어 두려는 죄를 짓습니다. 물론 그릇된 신앙입니다.

올 해도 이제 달력이 한 장 남았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나 에봇에 한눈이 팔려 있지 않았는지, “하나님께서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말은 번드르하게 했지만 그 속에 슬쩍 자신의 생각을 끼워 넣지 않았는지, 혹시라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에봇은 없는지 –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신앙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 마지막 한달 만이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조로 살기 원합니다.

(2011년 11월 25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