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가득한 인생 6 : 신실하신 하나님 (1)

이삭이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았던 비결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그의 신앙과 삶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체험을 통해서 구체화되었습니다. 이삭은 튼튼한 믿음위에 4가지 S로 요약된 신앙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단둘이 교제하는 영적인 고독(spiritual solitude)을 즐겼습니다. 이삭의 삶은 단순했습니다(simple life). 이삭은 양보하며 희생했습니다(sacrifice). 겉으로 보면 부드럽고 나약해 보일 수 있었지만 이삭은 강했습니다(strong).

우리들도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이삭의 네 가지 삶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삭이 추구했던 네 가지 삶의 모습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내 리브가가 아이가 없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고 쌍둥이 아들을 얻었습니다. 기도는 이삭의 삶에 힘이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였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에 의하면, 이삭은 완벽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 가까이 하기 힘든 탁월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삭도 사람입니다. 그에게도 허점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살던 곳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삭도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애굽으로 피난을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만류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삭의 자손들이 만민에게 복의 통로가 될 것이랍니다. 이삭과 그의 후손이 이 같은 복을 받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삭과 그의 후손에게 그대로 지키시는 장면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 말씀을 들은 이삭은 블레셋 땅 그랄에 그대로 머무릅니다. 하나님 말씀에 두말없이 순종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삭에게 어려움이 닥칩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그랄 사람들이 외모가 출중했던 리브가를 탐낸 것입니다. 이삭 역시 행여나 이방 사람들이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서 아내 리브가를 여동생이라고 속입니다. 아내라고 하면 리브가를 빼앗기 위해서 남편인 자신을 죽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비겁하지요. 부전자전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랄왕 아비멜렉이 이삭과 리브가가 함께 있는 것을 봅니다. 둘이 부부인 것을 알아챈 아비멜렉 왕은 이삭을 불러서 사실을 확인한 후 모든 백성에게 리브가를 범하는 사람은 죽일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랄 왕 아비멜렉을 통해서 이삭의 두려움을 바로잡으시고 두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를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우리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의 백성을 세상에서 구해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삭이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그의 성품과 노력위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河-

역사 속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는 삼일절이었습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학창시절 삼일절이 되면 운동장에서 불렀던

삼일절 노래를 인터넷으로 클릭해 보았습니다.

삼일절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솔직히 이민생활을 하면서

3.1절을 되새길 틈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일상에 쫓겨서

또는 현재의 삶에 도취되어서

민족의 귀중한 역사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한국 근대사 가운데

삼일 운동을 마음에 품을 필요가 있습니다.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기미년(1919)

기독교인 숫자는 20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1.4%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은 16명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주도했고

급기야 민족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제암리(감리)교회에서는

문이 잠긴 채로 교인 30명이

불에 타서 순교하는 비극도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은 물론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강인했습니다.

기독교인 숫자가 많지 않았음에도

민족의 독립과 사회개혁을 주도했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2.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왔던 출애굽사건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서 물리쳐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사건을

후손 대대로 기념할 것을 권면합니다.

민족의 역사는

현재는 물론

미래를 지탱하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자칫 말 그대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신에 지나온 역사를 곱씹고

그것을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재구축(reconstruct)하는 민족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3.

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사도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온 인생의 여정 구비구비에서 체험했던

하나님의 크고 작은 손길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하나님 체험이

현재의 어려움을 견딜 힘을 주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혹시 엊그제 삼일절을 그냥 지나치셨다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고,

무엇보다 20-25%나 되는 기독교인 숫자에도 불구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각자의 삶의 발자취를 잠시 돌아보면서

삶의 여정 속에 간섭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마음 속 깊이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떠나온 조국 대한민국과

한국의 수많은 교회가 역사 속에 부끄러움이 없을

바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우리들 각자의 삶에

신앙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뿌리와 같은 우리의 내면이 튼튼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2메일 목회서신)

말씀 앞에서

지금은 큐티(Quite Time경건의 시간)를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1980년대 초만해도 매일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생소했습니다. 대학 새내기로서 이곳 저곳 교내 서클을 전전하다가 정착한 곳이 IVF라는 기독학생회였고, 그곳에서는 소그룹 활동을 통해서 신입생들에게 큐티를 소개하였습니다. 이처럼 20대 초반에 큐티를 알게 된 것은 저에게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경건의 시간을 갖지만,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는 것도 경험합니다. 20대에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때는 매일 주시는 말씀을 제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 인생의 야망(?)을 이루는 도구로 삼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시의 안타까운 사회현실 속에서 구약의 예언서를 읽고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기적인 성경읽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의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30대 후반에 미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30대는 계속해서 인생의 방향을 바꾸며 변화를 경험했던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그때 저는 아침 마다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갓 태어난 두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 지, 가장으로서 다니던 직장을 접고 신학의 길에 접어드는 것과 뒤늦게 유학의 길에 오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 말씀은 제 인생의나침반처럼 갈 길을 제시해 주었고 때로는 제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마흔에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학생촌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개척하면서 드디어 담임목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40대 중반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옮겨와서 이민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서 이민자들로 교인들이 바뀌는 경험과 더불어 40대에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설교준비였습니다. 40대의 큐티는 매 주일 설교를 위한 말씀 묵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큐티를 통해서 설교의 주제를 정하기도 하고, 큐티를 통해서 체험한 영적독서가제 설교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20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신앙의 습관으로 자리잡았던 큐티와 개인 성경연구가설교와 목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지난 30년 동안 아침 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섰고, 말씀은 제 인생길의 안내판이 되었습니다. 말씀 앞에서 20대에 꾸었던 꿈이 30대에 목회의 길로 접어들면서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도 했습니다. 40대에 목회를 시작하면서,하나님 말씀을 옳게 그리고 열정을 갖고 전하기 위해서 아침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섰습니다. 여느 인생처럼 제 인생여정도 계속해서 변화되었지만, 하나님 말씀은 언제나 제 발의 등이었고 제  길을 비추는 빛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나이로 오십에 접어들었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하나님 말씀 앞에 서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바라기는 제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성찰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그 동안제가 하나님 말씀을 읽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 말씀이 저를 읽도록 제 자신을 말씀 앞에 내어놓고 싶습니다. 말씀 앞에서 지나온 인생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예수님을 닮는 거룩함의 훈련이 되기를 아침마다 애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다음 노년이 되었을 때, 다니엘 호손의 단편 “큰 바위 얼굴”처럼 제 모습과 삶 속에 예수님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나타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SF 한국일보 2011년 2월 25일 종교칼럼)

웃음 가득한 인생 5 : 기도

지난 주 설교에서 이삭이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이것은 이삭의 신앙과 인생에서 토대가 되었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첫째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창 17: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듯이 그의 아들 이삭과도 태어나기 전에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식언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이삭 역시 하나님과의 언약 가운데 약속의 자녀로 태어났기에 그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약속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백성이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이삭이 약속의 자녀에 걸맞은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삭의 믿음과 순종 없이는 아브라함이 그를 하나님께 바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었고 이삭이 많이 컸기에, 이삭의 협조 없이는 모리아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제단에 제물로 드려지는 모든 과정에서 이삭은 아버지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순종하는 이삭의 믿음은 그의 인생길을 웃음 가득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경험한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향한 확신 때문입니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 대신에 양 한 마리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 하나님께서 미리 보고 계시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셨다는 뜻인데, 이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었습니다. 실제로 이삭의 아내를 얻는 과정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앞서 가셔서 그의 아내를 예비하셨고, 그것을 통해서 이삭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길을 지켜보고 계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약속의 자녀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리브가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어머니를 잃은 이삭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어머니 사라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외모가 남달리 아름다웠습니다. 훗날 이삭의 아들 야곱도 외모가 출중한 라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결국 그녀를 아내로 삼지 않습니까? 그토록 아름다웠던 리브가였지만 그녀도 시어머니 사라처럼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이삭이 60이 되었지만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약속하실 때 그의 후손과도 언약을 맺으셨는데 이삭에게 자식이 없으니 여러 가지로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던 이삭에게 자신의 힘으로 넘기 힘든 큰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은 셈입니다. 그때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삭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음으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창25:21).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았던 이삭 – 그는 아내 리브가를 기다리면서 들에 나가서 묵상했습니다. 인생길이 막혀서 불가능해 보일 때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때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확실히 체험했습니다. 이삭이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된 비결이 바로 기도였음을 잊지 맙시다. -河-

새 힘을 얻으리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무슨 힘으로 살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서

안전의 욕구 (safety need)를 채우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았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힘이 되는 것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경쟁적으로 추구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대 초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면서

제 인생관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지

꾸준히 생각하게 되었지요.

목회 하기 전에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목회하면서는

어떻게 하면

진실된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갈 수 있을 지

그리고

제 자신이 올바른 목회의 길을 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아침마다/순간마다 사모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40:31)

2.

그렇다고

우리가 늘 새 힘을 얻고

힘차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일이든

사업이든 학업이든

아니 제 목회든지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쉬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때는 쉬는 것이 상책인데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마음대로 쉴 수도 없고

그냥 탱크처럼 밀고 나가곤 합니다.

알리스커 맥그레스라는 분이 쓴

The Journey (“내 평생 가는 길”)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을 차분하게 그리고 깊이 설명하고

제시한 책입니다.

그 책에 이사야 40 31절과 연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지친 길손들은 쉼이 필요하다. 황량하고 적막한 땅을 지나 먼 길을 힘들게 걷고 나면, 누구나 휴식과 전환이 필요하다. 신앙여정에서 피곤이란 삶의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피곤을 인정해야 하며, 아울러 우리 힘으로 피곤을 이겨낼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소성케 하시며, 소망 중에 여행을 지속케하신다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신다는 이 놀라운 비전은 우리에게 큰 믿음과 확신을 준다.

맥그레스는

우리의 힘으로 피곤을 이겨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실 것을 믿고 확신할 때

새로운 날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신

주님의 자녀들이 쉴 수 있는 삶의 그늘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주와 함께 힘차게 날아오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24메일 목회서신)

웃음 가득한 인생 4 : 이삭의 웃음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제물로 드려지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나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제물로 드려지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의연하게 대처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듯이 이삭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제단 위에 결박당한 채 누워 있었던 이삭의 마음을 생각해 보셨는지요? 아버지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던 순간에 이삭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지만 그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젊은 시절에 경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숫양을 예비해 놓으셨고 이삭 대신 양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잠깐 동안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의 인생에 모리아산에서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하나님 체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이 오가는 순간에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의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가장 선한 길로 예비해 놓으신다는 사실도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체험했습니다. 이삭이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의 인생길에서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 역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구체적으로 임한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가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물론 이삭 역시 어머니 사라를 잃고 슬픔에 쌓여 지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장가들일 계획을 세웁니다. 가장 아끼는 종을 불러서 자기 친족들이 있는 하란으로 가서 이삭의 규수감을 구해오라는 부탁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먼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삭의 규수감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들 가운데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자신과 약대들에게 물을 주는 여인이 있으면 그 여인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삭의 규수감으로 알겠다는 것입니다.

종의 바람대로 우물가에서 아리따운 여인 리브가가 그에게 물을 건네줍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 여인이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해서 예비해 두신 규수감이라고 확신합니다. 알고 보니 아브라함의 친척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가문에서 자란 여인이었습니다. 리브가는 물론 그녀의 아버지도 이삭의 아내로 데려가겠다는 종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이 모든 상황의 인도하심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여호아 이레의 하나님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모든 과정에서도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종을 멀리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종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들에 나가서 산책합니다. 단지 산책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깊이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이삭 앞에 나타납니다. 리브가를 본 이삭은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아내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리브가를 데리고 어머니의 장막으로 들어갑니다. 드디어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던 이삭이 다시금 웃음을 되찾은 것입니다.

이처럼 이삭은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준비하심 가운데 그의 인생길을 걸어가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할렐루야! -河-

게딩 베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말부터

감기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시간에 제 목소리는 거의 부흥강사 수준이었지요)

이번 감기의 특징은

처음에는 으슬으슬 추워지다가

목이 아프고, 머리가 아픕니다.

이쯤 되면

감기에 함락당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 다음에는

기침, 콧물, 두통, 근육통, 불면증 등등의

독감증상이 돌아가면서

정신 없이 계속됩니다.

지난 가을에

Flu shot을 맞았는데도

예방주사가 이번에 유행인 바이러스를

적중하지 못했는지

감기에게 무장해제를 당할 만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저녁부터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내일 있을 약속도 취소하고

쉬면서 주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2.

몸이 아플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상처가 나던지

아니면 감기처럼 몸이 아프던지 상관없이

일단 회복(getting better)의 기운만 감지되면

안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복, 좋아지는 것,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전히 우리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디 우리들 몸만 그렇겠습니까?

신앙은 물론 우리의 삶도

좋아지는 표시가 보인다면 그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시간과 자기 관리의 여부에 따라서

언젠가는 온전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심각합니다.

Getting worse – 점점 악화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육체의 건강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신앙과 삶의 문제라면

금식을 선포하면서라도 추락하는 자신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3.

구약성경에서 회복또는 회개를 말할 때

매우 간단한 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로 돌아오다라는 의미의 슈브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자기 신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한 후에

처절하게 드린 회개와 결단의 기도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51:12)

Restore to me the joy of your salvation

And grant me a willing spirit to sustain me.

전반부에 나오는 회복시키시고 (restore)”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바로 슈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회복은

하나님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참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향유하는 것입니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인생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슈브 (turn back)] 돌아서기만 하면

그것이 모멘텀이 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발걸음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을 체험했을 때

우리의 삶과 신앙은

getting better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번 주는 내내 비가 오고

감기가 유행을 하고,

삶의 환경이 그리 좋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순간 순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17 메일 목회서신)

웃음 가득한 인생 3 : 하나님의 웃음

하나님의 약속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약속의 자녀 이삭이 태어난 것입니다. 천사가 아브라함의 집에 와서 이삭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장막 뒤에서 이 얘기를 들었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사라에게 임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도 웃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자식의 이름은 이삭(웃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얼굴을 땅에 대고 웃었지만, 하나님은 이들에게 진정한 웃음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이 태어난 것입니다. 이삭을 낳은 후, 사라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20:6).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셨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고 한없이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면 꼭 특별한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아브라함을 시험(test)하십니다. 그런데 그 시험이 너무 어렵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달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100세에 이삭을 얻은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더니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네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고 말씀하십니다.

다음 날 아침, 아브라함은 일찍 일어나서 종들과 이삭을 데리고 길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찌니이다”(욥1:21)는 욥의 고백을 연상시킵니다.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리아 땅에 오자 종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아들 이삭과 단둘이 길을 갑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번제에 쓸 장작을 메고 가게 한 것을 보면 이삭이 꽤 컸고 아브라함은 많이 연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산에 두 부자가 도착해서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어서 제단에 올려놓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험이었음을 밝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아니라 번제로 드릴 양을 이미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이레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 갈 것은 아버지의 말씀에 그대로 따른 이삭의 모습입니다.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모리아로 갔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해서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서 죽이려고 했을 때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되었던 또 다른 비결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린 아브라함, 하나님과 아버지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던 이삭을 보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이처럼 이삭은 하나님께도 웃음을 주었습니다, -河-

웃으면서 삽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구약성경 창세기의 이삭에 대한

연속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 뜻이 웃음이듯이

저 역시 연속 설교의 제목을

웃음 가득한 인생이라고 정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고

이삭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웃음 가득한 인생이 가능할 지를 생각합니다.

솔직히

살다 보면 웃을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시간에 쫓기고

급한 일들에 쫓기며 살아가는

이민생활/유학생활 가운데

웃음 가득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심각한 상황은 늘 찾아 옵니다.

이것이 우리들 삶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이삭과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살아온

삶의 여정도 웃음만이 가득하고

장밋빛 융단이 깔린 인생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웃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그들의 삶 속에서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정한 때에 이삭이 태어났을 때

사라가 한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 21:6)

2.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멀리 이집트에서는 연일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가 계속됩니다.

그것이 중동의 다른 국가들은 물론

독재로 꼭 닫힌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한국에서는

구제역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나 봅니다

세 살 먹은 아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급기야 싱크대에 머리를 부딪치게 해서

목숨을 잃게 하고 쓰레기장에 유기하는 부모도 있답니다.ㅠㅠ

미국도 여전히 불경기에 허덕입니다.

캘리포니아는 예산 통과를 위해서

주지사가 나설 정도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뒤숭숭하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마음도 그리 밝지 않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삶도

물론 어둠일 수 있습니다.

이토록 어둠이 드리운 세상 속에

참 빛(true light)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과

각자의 삶이 밝지 않아도

오늘도 변함없이

새 날을 주신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때 우리 삶에

빛이 들어옴을 깨닫습니다:

생명의 빛, 소망의 빛, 확신의 빛

그리고 웃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웃음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

정확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을 때

온 삶으로 웃어내는

전율할 정도의 깊은 웃음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서머나 식구들 모두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높고 푸른 캘리포니아의 하늘을 바라면서

웃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S-mile!!!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케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요 간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10메일 목회서신)

웃음 가득한 인생 2 : 사라의 웃음

지난주에 함께 나눴듯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아기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사라가 가진 딜레마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때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나타나셔서 같은 약속을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합니다. 처음에는 자기 집에서 태어나서 자란 충직한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15:4)고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사라의 아이디어로 이집트에서 온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재차 약속하십니다: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창17:19).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나서 사라는 실제로 아기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as he said) 사라를 권고하사”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는 “평상시에 하는 말”을 뜻합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을 찾아온 천사들이 평상적인 언어로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 말을 엿들은 사라가 장막 뒤에서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의 일상적인 말 그대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라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둘째로 1절 후반부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as he spoke/promised)”라는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는 앞에 쓰인 표현보다 의미가 깊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단순히 ”말하다“는 번역보다 ”약속하신대로“라고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녀가 아이를 갖도록 하셨습니다.

2절에 있듯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때가 되니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이 정확히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말실수를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예사롭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주신 말씀, 깊은 기도 가운데 마음에 주신 약속을 꼭 간직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1년 전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과 사라 모두 속으로 웃었고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이삭(웃음)”으로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진정한 웃음을 주신 것입니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비로소 자신을 웃게 하셨다고 기뻐합니다. 사라의 웃음은 아브라함은 물론 온 세상을 웃음 짓게 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졌기에 기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정확히 이루어졌기에 기쁨의 웃음을 지은 것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