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먼저 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새벽기도회를 갈 때였습니다.
아무래도 새벽기도회를 가는 길은 서두르게 마련입니다.
물론 새벽에는 I-280 고속도로에 차들이 별로 없습니다.
보통 70마일 이상을 달려갑니다.

그런데 그 날도 부지런히 속도를 높이며
교회로 향하고 있는데
앞에 자동차 한대가 60마일 정도로 달립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는 너무 답답한 것입니다.
옆에 있는 아내가 들을 정도로
너무 늦게 달린다고 구시렁댔습니다.
쪼금 화도 치밀었습니다.

그런데 5분여를 뒤에서 쫓아가고 있는데
불연 듯 내가 왜 이 차를 뒤따라가면서
불평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하루에 세 가지씩 감사하는 기간 아닙니까?

제 옆 차선에 차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앞에 차가 천천히 가면
제가 옆 차선을 이용해서 추월하면 그만인데
차선을 잘 바꾸지 않는 운전습관이라고 쳐도
괜히 앞차를 따라가면서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아차 싶어서
얼른 옆 차선으로 추월하면서
옆을 힐끔 쳐다보니 할아버지께서
새벽에 어딘가 가시는 듯 했습니다.
일부러 천천히 운전하셨겠지요.

2.
때때로 우리는
내가 바꾸고, 내가 먼저 변화되면
일이 성사될 수 있는데
제가 앞차를 5분여 뒤쫓아갔듯이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남을 탓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두 달여 살펴보았던
창세기의 요셉은 매우 주도적인(proactive) 인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었다면 뒤에서 불평하지 않고
얼른 차선을 바꿔서 자기 길을 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내가 바꾸면 가능한 것들입니다.
나의 태도,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을
먼저 바꾸면 되는데
나는 그대로 있으면서 남이나 환경을 탓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움직입니다.
내가 먼저 변화되고, 내가 먼저 사랑을 주고,
내가 먼저 양보합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12:10-11)
Love one another with brotherly affection. Outdo one another in showing honor.
Do not be slothful in zeal, be fervent in spirit, serve the Lord. (Rom 12:10-11 ESV)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행동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19 이-메일 목회서신)

변화를 받아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변화”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육신의 질병이 낫는 것부터
영적인 회복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엊그제 수요예배에서 살펴본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해서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누구의 죄로 인해서 소경으로 태어났는지 궁금해했고
죄 때문에 맹인으로 태어났으니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각은 정반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9:3)
Jesus answered, “It was not that this man sinned, or his parents,
but that the works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m. (Joh 9:3 ESV)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발라주시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낫는다는 약속이나 확증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단지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건만
맹인은 예수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눈이 뜨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난생 처음 세상을 보게 된 사람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확신있게 말합니다: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9:25)

결국 그들에게 쫓겨납니다.
그가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그를 다시 만나셔 믿음을 더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뜬 사람의 고백이 크게 들립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Lord, I believe.)”

2.
길가에서 구걸을 하면서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난생 처음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거듭 태어난(born-again)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새로운 태어남(新生)에 견줄만한 변화입니다.

무엇보다 생각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말과 행동의 변화입니다.
하나님 언어를 쓴다고 할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산다고 할까요?
주위 사람들이 감지할 정도의 변화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의 목표가 변화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 마음대로 살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이쯤 되면 완전한 변화입니다.

3.
요즘은 우리의 생각과 삶이 복잡해져서
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살기가 솔직히 힘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변화가 쉽게 감지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발휘되지 않고
옛사람 그대로 살거나, 세상 가치관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눈이 뜨이고,
생각, 언행, 삶이 모두 변화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생기는 변화를
몸으로 느끼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변화를 보기 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by testing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Rom 12:2 ESV)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고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12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8)

우리들 인생사가 꽤 복잡합니다. 인간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걸어가는 인생길도 다양하고 때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도우심을 구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생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것을 섭리(providence)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참새 한 마리가 얼마에 팔려나가는지 아시듯이 우리의 삶을 꿰뚫고 계시며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그럴 자격이 있기보다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그를 믿는 백성들을 무척 사랑하셔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우리들 자신과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믿음을 갖고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으로 소금으로 세상에 보내셨음을 믿고 세상 속에 녹아들어갑니다. 동시에 세상 속에서 거룩하신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멋진 모습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창세기의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세상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남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이름이 바뀌고 이집트 제사장의 딸과 결혼을 하면서도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이집트 총리까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성경은 그 자체를 두고 그를 형통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이집트 바로왕 역시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요셉이 이집트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요셉을 통해서 그의 아버지 야곱과 가족들이 이집트로 이주하게 됩니다. 갑작스레 형들을 대면한 요셉이 서두르지 않고 절차를 밟으면서 형들과의 용서와 화해를 시도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응어리를 풀어낸 후에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임을 밝힙니다. 그 과정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이집트에 보내신 것은 아버지와 가족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온 가족을 고센 땅에 정착시킵니다. 그곳은 이집트 사람들은 가기 싫어하지만 목축을 하기에 적합한 땅입니다. 이집트에 와서 나그네로 살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자기 가족들을 따로 한적한 곳에 정착시켰을까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것이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 시작입니다. 하지만 그 긴 종살이 동안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모세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들 각자는 물론 세상 속에도 임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어떤 삶의 모습이든지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믿음과 지혜를 요셉을 통해서 그동안 배웠습니다. 우리들 역시 요셉처럼 주도적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세상에서 근사하게 살아야합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께서 좋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로 살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7)

신앙생활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여러 가지 기적들도 나오고 한 번에 모든 일이 해결되는 듯 하지만 거기까지 이르기에 인고(忍苦)의 시간이 있었고, 때로는 정상에 섰다가도 다시 추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러한 예들을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서 발견하면서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배웁니다. 동시에 창조주되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변덕스러운지를 깨닫습니다. 그때마다 언제나 거기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시금 하나님 품에 안겨서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 바라보면서 주어진 인생길을 자기 속도대로 걷기도 하고 때로는 뛰는 것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온 요셉의 인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가는 곳마다 형통했습니다. 가정의 총무였던 그가 이집트 제국의 총리가 되는 펼쳐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신앙의 갈등은 심해졌고 히브리 사람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습니다.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후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첫째 아들 므낫세를 낳으면서 비로소 고향에 대한 마음을 접고 이집트에 정착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 앞에 열 명의 형들이 나타납니다. 아버지와 형들이 살던 가나안 땅에도 극심한 가뭄이 닥쳤고 아버지 야곱의 분부대로 양식을 구하러 형들이 이집트에 온 것입니다. 형들은 자신이 노예로 팔아버린 동생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기에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금방 형들을 알아보았습니다. 형들의 무감각과 요셉의 알아차림이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요셉은 형들을 거칠게 다룹니다. 형들에 대한 옛 감정이 되살아나서 그것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관계가 단숨에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이 꼭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거칠게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므온을 볼모로 잡고, 동생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형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20년 전 자신들이 동생 요셉에게 했던 일을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형들의 말을 옆에서 들은 요셉은 울컥합니다. 하지만 아직 형들 앞에 자신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뭄이 계속되면서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요구대로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다른 아들들과 함께 이집트로 보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이집트에 도착한 형들은 세 번씩이나 요셉에게 몸을 굽혀 절합니다. 요셉의 꿈이 이뤄진 것입니다. 친동생 베냐민을 본 요셉은 감정을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격해 집니다. 하지만 아직도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잃고 20년을 상심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나머지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내고 노심초사 기다릴 뿐입니다. 형들은 영문도 모르고 이집트에서 당하고 있습니다. 요셉 역시 형들과 완전한 화해와 용서가 가능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형들을 마주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의 꿈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본문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요셉과 그의 가족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서 빚어집니다. 마라톤과 같은 삶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니 소망이 생깁니다.-河-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6)

사순절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에 해당하는 영어 <렌트, Lent>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순절을 지나치게 금욕하고 절제하는 어두침침한 느낌으로 묘사하곤 했습니다. 물론 사순절 기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행여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부분이 있다면 회개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넘어서 부활을 준비하고 대망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근사하게 살기로 결단하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절기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찾아가서 따뜻한 말 한마디 또한 작은 선행을 실천하시면 좋겠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가정의 총무, 감옥의 총무를 거쳐서 당시의 제국 이집트에 총리가 되는 펼쳐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는데 총리가 되었으니 고진감래(苦盡甘來)의 표본이 될 만합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요셉에 대한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그의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창세기 본문은 요셉이 총리가 된 것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삶이 형통했다고 말합니다.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서 보디발 집의 노예로 있을 때도 형통했습니다. 그의 인생 최악의 순간일 수 있는 감옥에서 죄수로 살 때도 형통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성공 또는 형통함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었지,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만이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요셉은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이후에도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30년 동안 믿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이집트 총리로서의 생활방식이 부딪쳤습니다. 이집트 태양신 또는 왕의 형상이 새겨진 반지를 껴야했습니다. 이집트 귀족들이 입는 옷에도 태양신의 문양이 들어가 있었을 것입니다. 왕이 타는 수례를 내주었지만 거기도 이집트 신들의 형상이 새겨져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요셉이지만 사방에 이방신들의 우상들이 있고 바로는 물론 태양신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지어준 이름 요셉도 “사브낫바네아”라는 이집트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청지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름이 바뀌는 것은 그가 완전히 이집트 사람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바로왕은 요셉을 이집트의 제사장 딸과 결혼시킵니다.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하고 지위가 높은 제사장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은 바로왕에 의해서 이집트사람으로 변해갑니다.

요셉은 두 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첫째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모든 고난과 아버지집의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의 므낫세로, 둘째는 ‘하나님께서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의 에브라임입니다. 요셉이 이름도 바뀌고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면서 세상 속에 완전히 동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 아들의 이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음을 아들의 이름에 새겨둔 것이 인상 깊습니다. -河-

선행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뉴스에 보니
영화배우 헤리슨 포드가 자신의 경비행기를 몰다가
골프장에 추락했답니다.

3천 피트 상공을 날고 있을 때
엔진 이상을 발견하고
인근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으니 주택가를 피해서 골프장에 추락했다는 보도입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라니
30년 이상 비행경력을 가진
베테랑 조종사의 경험과
73세 노익장을 제대로 과시한 셈입니다.

헤리슨 포드가 나온 영화가 수없이 많지만
미국에 와서 우연히 보게 된 것은
Air force One이라는 영화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공중납치 되었다가
무사히 구출되는 전형적인 미국영화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은 자신이 비행기를 몰고
골프장에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는데
목숨이 무사하다니 정말 운이 좋은 분인 것 같습니다.

기사를 읽어나가면서
헤리슨 포드가 자신이 갖고 있던 헬리콥터로
사람들을 구조하는 일에 앞장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종된 보이스카웃 소년을 구출하기도 하고
작년에는 별장이 있는 와이오밍에서 등산객을 구조하기도 했답니다.

평소에 쌓아놓은 이분의 선행이
이번 사고에서 목숨을 구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불연 듯 들었습니다.

2.
사순절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기도와 말씀 그리고 금식의 경건생활과 동시에
이웃을 돌아보는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
우리보다 연약한 이웃
외로운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이지요.

선한 일을 하는 것은
하늘에 복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살다 보니
선한 일을 한 것이
어떤 방식이든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도 경험합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소소한 선행을 실천하시면서
사순절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는
근사한 선행도 시도해 보십시오.

그것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세상을 밝히는 생명의 길임을 믿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히13:16)
Do not neglect to do good and to share what you have,
for such sacrifices are pleasing to God. (Heb 13:16 ESV)

하나님 아버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기쁨의 제사를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5 이-메일 목회서신)

빗나간 화살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독감이 유행입니다.
어른도 독감에 걸리면 2-3 일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고
아이들도 열이 많이 오르는 등 무척 아프다고 합니다.

교회 식구들도 독감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몇 주전부터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안인 샬롬이
여러분의 육신의 건강에도 임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주
참빛 보이스에서
독감예방주사(flu shot)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독감 백신에는 아프리카나 먼 곳에서 이미 유행한
독감 바이러스가 미국에 상륙할 것을 예상해서 몇 가지 백신을 만드는 것인데
올해는 맞추지 못한 것 같다고 답변해 주셨지요.

요즘은 바이러스들이 하도 교활해져서
백신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듯합니다.

백신도 중요하지만
우리 몸에 면역력이 강해지도록
영양과 운동, 수면을 잘 취해야겠습니다.

노화를 방지하고 장수하는 데
‘명상’이 도움이 된다고 하였지요?

그러고 보니 쉬임없는 기도야 말로
더 없이 좋은 장수 활동입니다.

소리 내서 기도하고
하루에 잠시 시간을 내서 묵상으로 기도하는 것이
신앙은 물론 우리 몸에도 좋다니
부지런히 기도생활을 해야겠습니다.

2.
성경에서는 죄(sin)를 두고
“표적을 맞추지 못한 것(failing to hit the mark))”이라고 부릅니다.
헬라어 동사 “하마르타노”
히브리어 “하타”가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화살이 빗나가서.
표적을 맞추지 못했을 때 그것을 죄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엉뚱한 일에 힘을 쏟고
정신이 팔려서
그만 표적에서 빗나가버린 것들이 죄입니다.

여기서 표적은
“하나님” “하나님의 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빗나간 생각, 행동, 관계등이 죄입니다.

3.
사순절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신앙의 절기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들 신앙이나 삶 가운데
표적에서 빗나간 화살들이 있는지 돌아보고
재조준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일입니다.

올해 flue 백신은 바이러스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죄로부터 벗어나서, 신앙과 삶을 표적에 명중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발휘되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1-2)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For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has set you free in Christ Jesus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Rom 8:1-2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신앙과 삶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게 하옵소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날마다 우리를 주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2.26 이-메일 목회서신)

로봇 청소기

2주전 목사님들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 중에 한 목사님께서 어렸을 적 교회에 갈 때마다 사찰 집사님이 부러우셨답니다. 늘 교회에 계시면서 교회를 돌보시는 모습이 훌륭하게 느껴지셔서 한 때는 사찰 집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데 이민 목회를 하다 보니 그 꿈을 이루셨다고 허허 웃으면서 말씀하십니다. 교회 문을 열어주고, 쓰레기를 치우고, 교회를 청소하는 것이 목회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부터 교회 청소를 즐겼습니다. 예전 고향 교회는 마루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가서 주일학교 아이들이 오기 전에 교회 마루를 물걸레로 청소하곤 했습니다. 시골 아이들이 오면 흙 발자국이 나고 금방 더러워지지만,그래도 교회 마루를 깨끗이 청소해 놓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물론 지금도 교회 청소를 즐깁니다. 토요일 아침에는 권사님 내외분과 함께 저희 부부가 이곳 저곳을 청소하면서 주일을 준비합니다. 주일 날도 예외가 아닙니다. 친교실의 식탁들이 잘 정돈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가로 세로 줄을 맞춰서 정돈합니다. 반 지하에 있는 친교 실에 음식물 냄새가 배어있을까 염려되어서 환기를 시키고, 열심히 걸레질을 합니다. 설거지 당번들이 잘 정돈해 놓지만 목사가 맨 나중에 정리할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깔끔을 떨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올 해 들어서 저희 부부가 토요일에 청소하는 것이 내심 안타까우셨던 권사님께서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습니다. 로봇 청소기를 사서 교회 청소를 로봇에게 맡기자는 것입니다. 우선 권사님 댁에서 쓰시던 로봇 청소기를 갔다가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권사님들이 로봇이 얼마나 청소를 잘할 지 반신반의 했는데 생각보다 청소를 깨끗이 해주었습니다. 로봇청소기를 마련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로봇 청소기 한 대를 구입해서 교회에 풀어놓았습니다.

요즘은 로봇 청소기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청소하는 토요일까지 바닥에 자잘한 부스러기가 남아 있어서 눈에 거슬리곤 했는데, 평상시에도 로봇이 청소를 해주니 교회가 늘 깨끗합니다. 로봇이 지나간 길은 축구경기장의 잔디 처럼 카펫에 일렬로 줄이 납니다. 감독하는 사람이 없어도 예배실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청소합니다. 저와 아내는 로봇을 따라다니면서 말도 걸고, 혼자 두고 나올 때는 ‘바이’하고 인사도 합니다. 이름도 “로비”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교회를 청소하는 로봇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습니다. 무엇보다 교회 일은 말없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로봇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배터리가 있는 동안 쉬지 않고 일합니다. 교회 일 하면서 공치사하고 때로 불평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로봇은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열심히 청소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의식하거나 자랑하고 칭찬받기 위해서 일하는 우리네 모습과 대조적입니다. 로봇은 배터리에 힘이 다 소진되면 충전 스테이션을 찾아와서 차분하게 배터리를 충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치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불평하거나, 심하면 상처받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로봇은 말없이 제 발로 충전기를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도 그래야 합니다. 힘들고 지치면 말없이 하나님께 나와서 힘을 얻을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도리인 것을 로봇이 깨우쳐줍니다.

여기저기 의자와 벽에 부딪쳐서 이마가 벗겨지면서도 말없이 청소하는 로봇을 보고 있으니 괜스레 겸연쩍어 집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일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힘을 다해서 말없이 해야 함을 로봇을 통해서 다시금 배웁니다. 그나저나 교회를 청소하는 특권을 로봇에게 빼앗겼으니 가끔씩은 로봇을 쉬게 하고 제가 손수 청소기를 돌려야겠습니다. 땀을 흘리면서 주님의 성전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기쁨과 보람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2015년 2월 26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5)

지난주일 오후에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참빛 가족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참빛 보이스 두 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첫 번째 시간에는 뇌에 대해서 배웠고, 이번에는 노화와 면역을 연구하는 형제들께서 훌륭한 정보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몸에서는 끊임없이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청소하는 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약화된다는 의견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 몸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걸작품이니 쓰레기를 잘 소제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해서 더욱 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적당히 먹고, 잠을 푹 자고, 규칙적인 운동과 무엇보다 깊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우리 몸안에 어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마치 군대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면역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장에 들어있는 공생균들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장을 모두 펼치면 테니스 코트만큼 넓다는 설명에 창조의 신비를 다시금 느꼈습니다.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 큰 복입니다. 아프면 자신은 물론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삶의 질이 뚝 떨어집니다. 마음껏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참빛 교회 식구들 모두 건강하시길 바라고 바쁜 중에도 재밌고 쉽게 설명해주신 발제자들, 또한 기발한 질문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주인집 아내의 유혹을 거절해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은 감옥에서도 범사에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 자체가 형통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요셉의 생활태도가 간수의 눈에 들어서 요셉은 감옥에서도 총무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셉은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 두루 친분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왕에게 술을 공급하는 관리와 떡을 공급하는 관리가 꿈을 꾸었다고 요셉에게 말해줍니다. 요셉은 명쾌하게 두 사람의 꿈을 풀어줍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 꿈을 꾸었던 요셉이 이제는 꿈을 해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해석한 대로 한 사람은 죽고 다른 관리는 사흘 후에 복직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요셉이 이집트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요셉의 꿈 풀이대로 복직된 관리가 왕에게 히브리 소년 요셉을 소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요셉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심을 봅니다. 바로왕의 꿈은 7년의 풍년이 있은 후에 7년의 흉년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7년 풍년동안 흉년을 잘 대비해야 한다고 요셉이 조언합니다. 바로왕은 요셉의 말을 그대로 듣습니다. 그뿐 아니라 요셉을 이집트 총리로 세워서 앞으로 닥칠 흉년을 대비하게 만듭니다.

요셉은 보디발 집의 가정총무, 감옥의 총무를 거쳐서 이제 한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인생이 동심원처럼 펼쳐집니다. 이러한 요셉을 보고 이집트 관리들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속에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河-

세 가지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이 미국시간으로 설날이네요.
미국에서야 설날을 챙길 여유가 없지만
그래도 모두 모두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웨슬리는 신앙이 성장하고
은혜를 체험하기 위한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1) 초대교회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으로
개인은 물론 공동체 기도, 말씀읽기, 성만찬, 금식, 성도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2) 상황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은총의 수단은
선을 행하는 것(to do good)과
나쁜 것을 피하는 것(to do no harm)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
신앙이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이외에도 신앙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경제적 나눔, 시간의 선용,
사랑의 식탁나눔(애찬), 찬송, 영적일기 쓰기를 추천합니다.

이러한 은총의 수단들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성도의 삶이 풍성해지며
무엇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2.
어제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사순절마다 첨부해 드리는 자료를 꼭 읽어보세요)

올해 사순절 동안
우리 교회에서는
하루에 세가지 감사 제목을 떠올리고
그것을 기록해 놓으면서
삶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로 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감사 제목들이 생길 수도 있고
반복되는 일상이 그냥 감사할 수도 있고
또 특별한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세가지 이상을 적으셔도 되지만
40일 동안의 지속해야 하니
하루 중 가장 감사한 일 세 가지씩만 정리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마음이 더 가시면
주보 위에 있는 <첫 아침을 주님과 함께> 말씀을 갖고
경건의 시간(큐티)을 가지신 후
짧게라도 경건의 일기를 쓰시는 것입니다.

영적 일기를 쓰면서
삶을 돌아보게 되고,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되고
신앙 가운데 차분히 앞 길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여정을 글로 남겨놓으면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임했으며
자신의 신앙이 어떤 행보로 성장하고, 변화되었는지 발견합니다.

삶에 주님의 손길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 그대로 올려지게 될 것입니다.

3.
사순절 기간 동안
영적 일길를 쓰시는 것은 선택사항이고 (물론 강력히 추천합니다)
하루에 세가지 감사의 제목을 기록하시는 것은
참빛 식구들께 교회에서 드리는 숙제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속회나 개인적인 교제의 시간에
감사의 제목들과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시면
기쁨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질 것 입니다.

하루 세 가지 감사 –
꼭 부탁 드립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for you.  (1Th 5:16-18 ESV)

하나님 아버지,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시고
날마다 감사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2.19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