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의 회복

올해 하반기에는 줄곧 큐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주간동안의 큐티 본문가운데서 설교 본문을 정해서 말씀도 나누고 있습니다. 이제 12월의 큐티 본문은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밧모섬에 있던 요한이 환상가운데 보고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 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을 마지막 날을 기준삼아서 다시 정돈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어려운 말씀이나 표현에 신경 쓰기보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하며, 마지막에 성취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될 일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고 호기심을 갖는 것보다,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첫 장에 의하면, 요한 계시록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주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요한 계시록 말씀은 교회와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지를 깨우쳐주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적같이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은 지금 이 순간에 각자의 신앙을 점검하고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 7주에 걸쳐서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일곱 교회가 어떤 상황에 있었기에 하나님 말씀이 그들에게 임했는지 살펴보고,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새롭게 다짐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2년여를 머물면서 특별한 애정과 열심을 갖고 세운 교회였습니다. 에베소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이기도 합니다. 에베소를 떠나서 예루살렘에 간 바울은 그곳에서 체포되고 로마로 호송되기 때문입니다.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곧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 말씀은 이번 큐티와 주일설교에서 줄곧 나누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배운 대로 실천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사모하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바랐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옛 사람의 모습을 모두 버리고 새 사람을 입기를 지속적으로 권면합니다. 교회는 물론 가정과 사회생활에서도 빛의 열매를 맺기를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에베소 교회는 모범이 되었고, 예수님을 향한 첫사랑이 뜨거웠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 계시록 본문에서 에베소 교회를 두고 첫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합니다. 얼른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회복하기를 촉구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이 급격하게 식어진 것 같습니다. 첫 사랑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처음이 좋아도 끝이 망가지면 소용이 없습니다.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역시 처음과 나중이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를 기대하십니다. 처음보다 끝이 좋고, 아니 처음과 끝이 똑같은 서머나 식구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河-

추수감사절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 한국일보 칼럼에도 썼듯이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해서

인디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는

청교도들과 인디언들이 함께 어울려

감사의 축제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디언들과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원주민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끝까지 선한 길로 가는 것이

쉽지 않은가 봅니다.

관계를 끊어놓고, 선한 것을 없애려는

악한 세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2.

옛날 체로키 인디안들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인디안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인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싸움은 네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란다..

그것은 네 안에 두 마리의 늑대가 들어있는 것처럼 아주 심각하단다.

한 마리는 악(evil)인데 이 놈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일으킨단다: 분노, 질투, 슬픔, 후회, 욕심, 자만심, 자기연민, 죄책감, 열등감, 거짓, 그릇된 교만, 우월의식, 회의, 이기심.

다른 한 마리는 선(good)인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이 나오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평온, 겸손,

친절함, 자선, 동정심, 관대함, 진실, 긍휼, 신뢰.

두 마리의 늑대가 네 안에서 아주 격렬하게 싸움을 한단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도 마찬가지란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손자가 1분 정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러면 결국 어떤 늑대가 승리를 거두나요?”

할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네가 먹이를 준 늑대지 (the one you feed).”

3.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관심을 선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입니다.

선한 마음을 갖고

그것이 인격으로 삶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 가운데 힘쓰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의 생각이 옛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안에 추한 것들이 자꾸만 생겨날 것입니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4:23-24)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우리 안에 있는 선한 것들을

감사함으로 먹이고, 사모하고,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우리 모두는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안에도

두 가지 마음이 늘 갈등을 일으킵니다.

선한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이 우리 자신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범사에 감사하는 서머나 식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11.25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꿈을 꿉시다 (2)

지난 주일 저녁, 스무 명에 가까운 임원들과 성도님들이 교회 부흥을 위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저희 집에 여섯 시에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고 일곱 시부터 약 두 시간 동안 부흥을 위한 아이디어를 허심탄회하게 나누었습니다. 작년 수요예배 시간에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별도로 시간을 내서 모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두 시간이 부족할 만큼 많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 가운데 모든 서머나 식구들께서 함께 기도하고 실천하기 원하는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부족한 모습을 지적하는 얘기가 먼저 나왔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을 더욱 반갑게 맞이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서머나 식구들께서 마음은 있는데, 선뜻 다가가지 못하시고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데 서툴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야 상대방이 알아줍니다. 교회적으로는 환영 팀을 활성화하겠습니다. 온 성도님들께서 새로 오신 분들을 반갑게 맞이함으로 따뜻하고 가족 같은 교회임을 행동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배 후, 친교시간에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우리 성도님들끼리도 깊은 교제를 나누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성도님들의 좌석을 추첨으로 배치해서 골고루 친교하실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좋은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미국교회에 간판을 달지 못하지만 예배시간동안 교회 배너를 크게 만들어서 입구에 세워놓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국제수퍼와 지역 신문에 교회 광고를 하고 있는데, 교회 홍보를 위한 전단지나 자체 홍보물의 제작 등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의 전도를 위해서 교회가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지역에서 직장을 갖고 있는 30대 청년들과 젊은 가정을 위한 전도에 힘쓰기로 했습니다. 교회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교회 홈페이지의 활성화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성도님들께서 교회 홈페이지에 관심을 가지시고 방문하셔서 글도 남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장기적으로 교회 부흥을 위해서 주일 예배가 오전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오후 예배가 전도에 장애가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공간의 제약이 전도와 부흥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입니다. 우리 교회가 제한 없이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도록 기도하면서 열심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이 밖에도 교회학교의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교회를 정하지 못하신 이웃 분들을 우리 교회로 모셔오는 것이 가장 빠른 부흥임을 공감했습니다. 온 성도님들이 한 사람씩 전도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것입니다. 온 성도님들이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마음과 몸으로 헌신하신다면 우리가 꿈꾸는 교회가 조만간 세워질 것도 확신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임원들과 성도님들이 함께 모여서 교회 부흥을 위해서 생각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사람이 계획하지만 그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또한 현재 우리가 부족해도능력의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기에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河-

“한 길 가는 순례자”

“한길 가는 순례자” –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한국어판 책 제목입니다. 영어 제목은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이고 우리 말로는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 시편 가운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은 말씀을 묵상한 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을 순례길로 표현하곤 합니다. 순례길은 힘이듭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기에 외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순례자는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갑니다. 그 길이 어떤 모습이든지, 아무리 힘이 들고 지치더라도 묵묵히 자신이 가야 할 순례길을 걸어 갑니다. 순례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400여년 전, 자신들에게 주어진 신앙의 순례길을 걷기 위해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일단의 순례자들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험난한 대서양의 파도와 싸운 끝에 65일만에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꿈이 있었다면, 자유롭게 신앙의 꿈을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갖고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낯선 곳에서 살아남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순례의 여정이었습니다. 겨울을 나면서 절반에 가까운 동료들이 폐렴 등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처럼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청교도들에게 봄이 찾아 왔지만, 신대륙의 환경은 여전히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유럽에서 갖고 온 씨앗들은 신대륙에서 싹을 틔우지 못했습니다. 커다란꿈을 안고 신대륙에 왔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먹고 사는 것 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들에게 나타난 천사와 같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곳에 살던 인디안 부족이었던 스콴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인생역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하기 15년 전에 영국의 한 탐험가가 스콴토를데리고 영국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영어도 배우고 서양문물을 접하게 한 후에 다시 신대륙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스콴토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영어를 하는 것이 빌미가 되었는지 영국의 노예상들이 밀어닥쳐서스콴토를 카리브 해안 국가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스콴토는 그곳에서 마음 좋은 가톨릭 사제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스콴토가 이렇게 인생역정을 거치고 고향에서 지내고 있을 때 메이플라워를 탄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한 것입니다.

당시 그곳에 살던 인디안 부족들은 낯선 사람들이 자신들을 방문하면 극진히 대접하는 관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연히영어를 할 줄 아는 스콴토가 나섰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정착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 모든 곡식을 추수하였을 때 청교도들과 원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한 길을 갔던 청교도들에게 임한 축복이자 감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방황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갈피를 못 잡고 허둥지둥 대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것은 신앙의 순례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대신에 목적지를 향해서 꿋꿋하게 순례길을 걸어가는 “한길 가는 순례자”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은 분명히 임할 것입니다. 신대륙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스콴토를 만날 줄을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낯선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원주민들이 신대륙에 있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푯대를 세우고꿋꿋하게 앞으로 나가는 신앙입니다. 흔들림 없이 하나님만 똑바로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갈 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우리의 순례길 여기저기서 임할 줄 믿습니다. 한 길 가는 순례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요 축복입니다. (2010년 11월 19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순전한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저는 주일과 수요일 말씀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서머나 성도님들께 전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때로는 제가 전하는 말씀이

버거울 수도 있고

소위 축복만을 전하는 말씀에 비해서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번 무례한 기독교라는

목요 서신을 보낸 이후에

그리고 에베소서 큐티 본문을 지나오면서

온전한 신앙” “멋진 신앙” “매력적인 신앙

무엇인지를 연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큐티 본문이

요한 계시록으로 넘어갔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주제는

아멘,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마지막 말씀처럼

우리의 신앙과 삶을 종말이라는 시간대로 옮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종말은 세상의 끝을 가리키지만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시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을 삽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기에

지나갈 것들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애를 쓰려면

세상을 등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지나갈 것들에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욕심부리거나

지나갈 것을 두고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겸손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곧 성령충만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향해서 진정으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멋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순전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그립습니다.

정말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저와 우리 서머나 식구들이

이 길로 나가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이 아니라

삶으로 우리의 신앙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형식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향해서

사랑합니다고백하는 신앙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11.18 메일 목회서신)

새 사람을 입으라

지난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에베소서에는 예수님을 믿기 전의 모습과 예수님을 믿은 후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본 본문에서도“옛사람”과 “새사람”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예수님을 믿은 후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삶은 천사들이 흠모할 만큼 매력적인 삶입니다. 요즘은 세상적인 축복에 관심을 많이 기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우리가 흔히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이 세상에서 조금 편하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쭐대고 싶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비롯한 성경에서는 “가지는 것(having)”을 크게 강조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일용할 양식 정도, 남에게 꾸지 않을 정도의 삶이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대신에 성경에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being)에 관심을 갖습니다. 신앙의 정도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나, 많이 소유한 것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인격과 그것이 겉으로 표현된 삶에 따라서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덕목들도 우리들의 인격과 교회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관계에 대한 말씀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스타일이 180도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욕심에 따라 사는 것은 옛 모습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새 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좇아 살아갑니다. 여기서 의는 바른 것입니다. 무엇 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진리는 거짓이 없는 참된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진리를 좇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의와 진리로 살면 자연스레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천국 백성으로 구별된 모습입니다.

25-32절에는 의와 진리로 거룩함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줍니다. 무엇보다,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거짓된 언행에 악한 세력이 임하고 자신과 이웃까지 시험에 들게 만듭니다. 분을 다스려야 합니다. 화를 낼 때도 사탄이 틈타기 때문입니다. 도적질과 같은 나쁜 습관도 고쳐야 합니다. 고칠 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언어생활도 조심해야 합니다.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선한 말만 사용해야 합니다. 새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의롭고 참된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옛 습관을 그대로 갖고 살면, 마귀가 틈을 탑니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근심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구원은 보장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 그 이후의 삶이 옛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꾸만 시험에 들고 성령을 근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은 이후의 삶과 신앙의 성숙이 꼭 필요합니다.

마지막 31-32절은 오늘 본문의 요약입니다: “너희의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오늘 말씀만 잘 지키면, 멋지고 매력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님들이 모여 있는 우리 교회는 말 그대로 천국이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나가기를 기도 가운데 노력합시다.-河-

“더 넘치도록”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토요일 큐티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 3:20-21)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Immeasurably more than all we ask or imagine)”

하나님은 능력의 주님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때는

우리의 기도와 생각을 뛰어넘을 정도로

넘치도록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어떻게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재 그의 상황은 더 넘치도록이 아니라

극도의 초라함입니다.

편지를 받는 에베소 교인들 역시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핍박과 환난 게다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속에서 더 넘치도록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물질, 출세 등 세상에서의 형통함을

뛰어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 누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바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성하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늘의 능력이요 은혜입니다.

이 아침에

바울이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더 넘치는 은혜와 능력이

믿음으로 꿋꿋하게 살아가시는

서머나 성도님들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서머나 성도님들이

더 넘치도록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꼭 체험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1.11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선물

선물 – 언제 들어도 마음 설레는 말입니다. 남에게 선물을 줄때도 기분이 좋지만, 선물을 받고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업습니다. 그래서 잠언 19장 6절에서는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선물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고받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선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에베소서 말씀에도 선물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2장 8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교훈합니다. 이 말씀 속에 나오는 “은혜”와 “선물”은 각각 다른 헬라어가 사용되었지만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은혜는 값없이 베풀어주는 호의입니다. 선물은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낄 정도로 구체적인 사건 또는 물질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그렇습니다. 2장 1-3절에 있듯이, 우리들은 본질상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였습니다.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추한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세상 풍속을 따릅니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을 따르는 모든 행위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를 구체적으로 표시해 주는 두 번째 삶의 모양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능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삶의 모양은 두 번째 모습과 비슷한데 마음이 추가되었습니다. 육체의 욕심이 충동적이고 말초적이라면, 마음의 욕망은 고상해 보이지만 그 안에 역시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면서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허물과 죄로 인해서 죽은 삶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믿음을 갖고 예수님을 믿는 삶은 겉모습과 삶의 목적에서 차이가 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커다란 사랑을 입었으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가사가 딱-맞습니다. 육체를 좇는 삶은 이 세상의 삶이 끝입니다. 지나갈 것들입니다. 그래서“죽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은 영생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서 살려내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나와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은혜가 우리들에게 임했습니다. 할렐루야!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은 선물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삶 자체가 선물인 것을 깨닫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구원받은 삶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삶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줍니다. 첫째는,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그것을 오는 세대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는 분수처럼 세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둘째로, 구원을 놓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갖고 서로 키재기를 하거나 자랑을 한다면 그것은 선물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의 겸손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선한 일입니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행복입니다. 다음 한 주간 하나님의 선물인 여러분 각자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누리기시를 바랍니다.-河-

지나갈 것에 대한 미련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우리 교인들 외에

다른 분들과 만나는 시간은 거의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내성적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힘이 생기고 내적인 기쁨이 있고,

외향적인 사람은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만나야 힘이 생긴답니다.

저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고

그 시간에 대부분 하나님 말씀과 책을 읽습니다.

근래 몇 달은 논문과 씨름하면서 보냈구요.

그 일들을 하면서 괜히 혼자 기뻐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군요.

커다란 목회를 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우리 서머나 교회가 그저 좋습니다.

서로 아껴주는

가족 같은 교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바른 교회,

세상을 돕는

구제와 선교에 힘쓰는 교회만

우리의 분량 것 세워가길 소원할 뿐입니다.

수요 예배 전에

30분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드린 기도제목을 갖고

각자 알아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참하기를 바라고

기도의 불꽃이 우리 안에 은은하게

그렇지만 깊이 타오르기를 기도합니다.

2.

미국의 중간 선거가 끝났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이 참패했습니다.

신문에는 침울한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이

연일 보도됩니다.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에는

30년 만에 다시 브라운 주지사가 당선됐습니다.

정치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못한다지만

정치만큼 부침이 심한 것도 없습니다.

정치인들의 입장과 퇴장은

인기와 권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인기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잘 봐줄 때 생깁니다.

철저하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삶입니다.

권력은

반대로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대부분 권력을 손에 넣으면 인기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얻기 위해서

진흙탕 싸움도 불사합니다.

구약 성경의 전도서에서는

이 모든 일들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히브리어 뜻에는

모든 일들이 거기서 거기라는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별차이가 없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3.

엊그제 수요예배에서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공부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간단히 정리됩니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빼앗기지 않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시편기자처럼 아주 간절히/기쁨으로 고백하는 삶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시편 18:1)

이웃 사랑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실제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들 역시 도움을 실천할 때 다른 이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영생의 삶을 조금이라도 살아낸다면

천국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지나갈 것에 미련을 두고 살면

이 다음 하늘 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 뵐 면목이 없을 것입니다.

올 해도 이제 두 달 남았습니다.

두 달 훌쩍 지나갈 것입니다.

지난 열 달도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멈춰서

우리의 삶을 중간 점검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 저녁에

책상(식탁)앞에 앉아서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흰 종이를 꺼내놓고

지나갈 것 vs. 영원할 것

을 차례로 써 내려가 보십시오.

그리고 남은 올해의 두 달은

영원한 것에 올인하기로 결단해 보십시오.

전도서 기자의 말씀을 마음에 곱씹으면서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이제 나는 알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니

사람은 그를 두려워할 뿐이다. (전도서 3:12-14, 표준새번역)

하나님,

우리 서머나 성도님들이

영생의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1.4 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꿈을 꿉시다

우리 교회는 지난 3년여 어려움을 겪으면서 꿋꿋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 마음속에는 두 가지 결단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에 간직한 교회를 세우고, 온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한 마음이 되어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큰 대형교회를 세우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분량에 맞게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실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신 바른 교회를 세우기 원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정성스런 구제의 손길을 펼치고 싶은 꿈입니다.

등산을 해 보신 분들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처음에 시작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간에도 웬만해서는 견딜 만합니다.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마음속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상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힘이 듭니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힘도 들고 의외의 복병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 고비를 잘 넘겨야 정상에 설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꿈에 그리던 교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훌쩍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듯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자리요 모습입니다.

마지막 스퍼트는 기도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이 앞서면 혼란스러워집니다. 세상의 방법을 동원하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겸연쩍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도로 교회를 세울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예배처소로 옮겨오면서 새벽기도와 금요 심야 기도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처소를 놓고 이런저런 방도를 생각하지만, 미국 교회를 임대한 우리의 한계를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10시를 우리 교회의 기도시간으로 정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함께 모여서 기도할 시간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을 두고 기획위원들과 임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10월 정기 기획위원회에서 두 가지 결정을 했습니다.

수요 기도회: 수요일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7-9시까지입니다. 수요예배를 7시 30분에 시작하기에 예배 전 30분의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기도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수요일 7시부터 세미나실에서 30분간 기도회를 갖습니다. 우선 교회의 기도제목을 드리고,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필요하면 제가 30분 동안 기도회를 인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수요기도회가 우리 교회의 기도의 불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부흥을 위한 세미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습니다. 목사 또는 기획위원들의 생각보다 임원들과 교회 부흥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교회 부흥을 위한 아이디어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장(場)을 마련하였습니다. 11월 14일 저희 집에서 저녁 6시에 모입니다. 임원들은 모두 참석하시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실 분들은 누구나 환영입니다. 지금부터 두주 동안, 기도하면서 순간순간 교회를 떠올리면서 부흥의 아이디어를 생각하시고 함께 나눠봅시다. 참신하고 실제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거기서 논의된 내용들은 2011년 교회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예정입니다.

우리 모두 힘든 기간을 지내고 있지만, 어려움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시다. 기도하고 생각을 모으며 하나님의 꿈을 꾸어봅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