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마음 (2) : 예수님의 일생을 따라살기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에서 주현절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전통적으로 1월 6일을 주현절로 지키고 있기에 오늘이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이 된 것입니다.

교회력은 초대교회 이후 그리스도의 교회가 여러 절차를 걸쳐서 제정한 교회의 달력(church calendar)입니다. 종교개혁시대에 교회력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이유로 배척되기도 했지만, 현대에 와서 다시금 교회력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교회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짜여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력에 따라서 한 해를 살아가는 것 역시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매 주일 예배순서 앞에 교회력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교회력의 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또는 대강절, Advent)부터 시작됩니다. 성탄절 4주전부터 시작되는 대림절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오실 것을 기대하는 절기입니다. 대림절 다음에 성탄절기가 대개 2주간 계속됩니다. 성탄절 이후 사순절 전까지를 주현절(Epiphany)이라고 합니다. 주현(Epiphany, “빛으로 나타나심“)이라는 의미대로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교회력에서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고난주간 전까지 40일간을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기도와 금식을 행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을 교회의 전통으로 삼았습니다. 기도와 금식이 하나님 사랑의 실천이라면 선행과 섬김은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몸으로 행하는 것입니다(막 12:30-31).

부활절후 여덟 번째가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대림절부터 오순절까지가 교회력의 전반부로서 예수님의 생애를 기념합니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의 약 6개월 기간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강조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세워졌듯이 오순절 이후 약 반년 동안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세우는 기간입니다. 그리스도인 개인의 삶과 교회의 사역은 똑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야한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한 해를 교회력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 교회력에 맞추어서 설교와 교회행사를 준비하시는 목사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교회력에 맞춰서 성경을 읽는 성서일과(lectionary)도 있어서 매일같이 교회력에 맞춰서 신구약 성경을 읽도록 안내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한 해 동안 주보에 실린 교회력을 자세히 살펴보시고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시고 그대로 따라 사시길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주현절을 맞아서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머나 식구들의 마음과 삶을 하늘의 빛으로 밝혀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경인년 새해에

좋은 아침입니다.

1.

경인년(庚寅年) 새해의

여덟 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올해는 호랑이띠해입니다.

그것도 60년 만에 돌아오는 “백호랑이띠”랍니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아주 상서(祥瑞)로운 동물로 여겼습니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김홍도를 비롯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 소재였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도 “호돌이”였지요.

호랑이는 야행성입니다.

또한 천천히 움직이다 먹이를 향하거나 이동할 때는

산을 타고 넘듯이 빨리 움직입니다.

하늘을 나는 듯이 움직이는 호랑이의 빠른 동작에서

“비호(飛虎)”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2.

성경에는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호랑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호랑이는 시베리아와 근동 지역에 서식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구약 성경에

표범(leopard)이 종종 등장합니다.

성경 속의

표범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갈릴리 지역에 서식했고

시속 70마일 정도로 빨리 달리는

치타에 가까운 동물이랍니다.

성경에서도 표범은 맹수로 불리어집니다.

예레미야 5장 6절에 의하면

표범은 사자와 이리와 함께

죄를 지은 백성들을 벌하는 동물입니다.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호세아서 13장 7절에서도

길가에서 기다리는 표범의 모습을

하나님의 심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사자 같고, 길가에서 기다리는 표범과 같으니라.

다니엘서(7:6)와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13:2)에서는

표범이 심판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상징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11:6절에는 앞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면서

맹수인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지내는 “하늘의 평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이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표범은

맹수, 아주 빠른 동물(합1:8),

표범의 겉모습을 따라서 반점을 가진 동물(렘13:23) 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3.

경인년 새해에

호랑이의 기상과 패기가

우리 서머나 식구들에게 그대로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올 해도 불경기가 지속될 것 같지만

우물쭈물 거리기보다

표범처럼 빠르게 질주하시고,

마음이 힘드실 때는

기도가운데 호랑이처럼 포효하시면서

한 해를 능히 승리로 이끄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사자와 어린 양이 뛰놀고

표범과 어린 염소가 함께 눕는

하늘의 평화가

우리 모두의 마음과 삶 속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올 한 해 동안

주일예배 후에 부를 찬송가 495장처럼

예수님과 동행하심으로

그 어디나 하늘나라로 변화되는 체험을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올 한 해 동안

우리 서머나 식구들과 동행하여 주옵소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곳에서

할렐루야 찬양하며 하늘나라를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0년 1월 7일 이-메일 목회서신)

새해 새 마음

오늘은 2010년 새해 첫 번째 주일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해를 맞는 것이 무덤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송구영신예배에서 설교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이전 것은 지났고 새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서머나 식구들께서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시고 그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새해를 맞아서 우리 교회도 새롭게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오늘 새로운 임원들이 세워졌습니다. 집사님과 권사님으로 임명되심을 축하드리고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멋진 임원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꾼들을 세우는 것은 매우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이 세상에서는 자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새로 임명되신 임원들은 물론 기존의 임원들께서도 하나님의 동역자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올 해부터 매 분기 첫 번째 주일은“성만찬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성만찬을 통해서 온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성만찬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새롭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성만찬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매 분기마다 갖게 될 성만찬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더욱 하나됨을 확인하고 믿음이 자라며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예배 후에 마지막 결단의 찬송이 495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502장을 예배 마지막에 찬송했는데 올해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를 함께 찬양하게 됩니다. 2010년에 서머나 식구들께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로 변하고, 무엇보다 우리들 마음속에 할렐루야 찬양이 넘치고 의와 기쁨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주보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올해부터는 한두 가지 주보양식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주보 내용도 조금 변경되었습니다. 예배순서 밑에“짧은 글/깊은 생각”이라는 코너가 생겼습니다. 이곳에는 우리들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는 글들과 때로는 웃음을 선사하는 글들이 실리게 될 것입니다. 주보를 자세히 읽으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전에는 맨 밑에 한줄 성경구절이 시편말씀이었습니다. 올 해는 잠언과 전도서 말씀을 한 구절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 구절 말씀도 마음에 품고 깊이 묵상하시면 말씀의 깊이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올 한해도 주보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올 여름에 중고등부와 청년부를 데리고 애리조나에 있는 인디안 보호지역으로 단기선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처음으로 계획하는 단기선교인데 기도로 준비해서 우리 2세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또한 올 하반기에 제자훈련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전반기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성경공부와 중간에 기초성경공부를 하고, 하반기에 제자훈련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통해서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우고 싶은 것이 저의 커다란 기도제목입니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이처럼 작은 변화들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고 귀하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河-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마지막) : 믿음의 사람

시간이 이렇게 빠를 수가 있습니까? 한해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09년도 나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나이로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제가 이 정도인데 할머니 권사님들과 서머나 성도님들께서는 훨씬 빠르게 시간의 속도감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올 한해가 정말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초에는 예배 처소를 찾느라 정신없이 두 달여를 보냈고, 새로운 예배당으로 이전해 와서는 정착하고 이전감사 예배드리고 나니 벌써 여름이 닥쳤습니다. 매주 닥치는 일들을 놓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면서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앞으로는 시간이 더 빨리 지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 작은 일부터 최선을 다하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매사에 충성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오늘까지 아홉 번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눴습니다.“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인생의 물결 속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된다면 그야말로 가장 큰 행복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기준을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해서 명예를 얻거나 남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갖는 등 소위 세상에서 난 사람이 되는 것을 두고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멀리 떨어진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난사람이 됨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멋진 인생을 펼쳐 보이면 그만큼 신앙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하나님께 쓰임 받은 길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은 도리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계시는 33년 동안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고, 급기야 자신이 뽑은 제자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교회가 온 세상으로 전파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사도바울은 세상에서 전도유망한 젊은이요 이미 난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은 후 그의 인생은 굶주리고, 사람들에게 쫓기고, 감옥에 갇히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예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꼭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행여나 은연중에라도 그렇게 생각하신 분들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면 오늘 생각을 바꾸시고 세상의 지위와 상관없이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처소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매 순간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감사가 넘치고,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감지하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 곧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모습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내면과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갈 때 그 자체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와 복음이 전파된다면 하나님께 가장 귀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마지막 덕목이 바로“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계시다는 “존재에 대한 확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신다는 “열매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음껏 쓰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담대합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성품과 삶 속에서 예수님이 드러납니다. 서머나 식구들과 우리의 자녀들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받기를 기도합시다.-河-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 요즘 어디를 가나 쉽게 듣는 인사말입니다. 말 그대로 성탄절은 즐거운 절기입니다. 아니 즐겁다 못해서 기쁜 성탄입니다.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성탄 카드와 선물을 주고 받는 것도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캘리포니아는 불가능하지만, 성탄절 아침에 하얀 눈이라도 내려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된다면 연인들의 마음은 한없이 설렐 것입니다. 이쯤 되면 말 그대로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하지만 매년 맞는 성탄의 참 뜻은 이것보다 훨씬 깊고 넓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한 농부의 집에 세를 들어 사는 가난한 구두수선공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아내와 번갈아 입는 낡은 외투가 한 벌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여유가 생기면 양 가죽으로 된 외투를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이 구두수선공의 소박한 소원이었습니다. 하루는 모아놓은 돈을 갖고 양 가죽을 사러 읍내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양 가죽이 터무니없이 비싼 겁니다. 외상으로 양 가죽을 사려고 하니까 가게주인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구두 수선공은 화가 나서 가지고 있던 돈으로 그만 술을 마셔 버렸습니다.

얼큰하게 술이 취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교회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교회 앞에 이상한 물체가 있는데 술김에 보아도 사람 같습니다. 괜히 다가갔다가 화를 당할까 두려워 못 본 척 하고 지나쳤지만 양심에 가책이 생겼습니다. 발길을 돌려서 가까이 가서 보니 아주 온화하게 생긴 젊은 청년이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측은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입고 있던 한벌뿐인 낡은 외투를 젊은이에게 냉큼 벗어줍니다. 젊은이에게 이말 저 말을 걸어보니 집도 없고 거할 곳도 없답니다. 결국 이 젊은이를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이 아주 환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 젊은이를 본 구두수선공의 아내가 펄펄 뜁니다. 그나마 있던 외투도 젊은이에게 주었고, 가난한 살림에 군식구가 늘었으니 아내가 화를 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때 구두수선공이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당신에게는 하나님도 없소?”

이 한마디에 구두수선공의 아내는 자신의 인색함을 뉘우치고 젊은이를 받아들입니다. 갈 곳 없는 젊은이는 가게에서 구두수선을 돕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이 젊은이는 하나님께 벌을 받고 세상에 내려온 천사였습니다. 훗날 이 천사는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결국 구두수선공과 그의 아내는 은연중에 천사를 대접한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 앞에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걱정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한 벌뿐인 외투가 없어도, 가난한 살림에 군식구가 들어와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사랑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성탄의 정신 속에도 이와 같은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세상을 한없이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 죄로 인해 죽어가는 인생을 살리기 위해 결국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성탄의 즐거움보다 더 깊고 오묘한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0.12.24.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 아침입니다.

매 주일마다 마음에 촛불을 드리우고

기다리던 성탄절이 드디어 찾아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

그것도 마구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신 예수님!

그분은 가장 낮은 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낮은 자들을 가슴에 품고

그들에게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전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6-8)

예수님은 이렇게 낮은 곳에

낮은 자로 임하셨는데

우리들은 자꾸만 높은 곳에

높은 자로 올림을 받고 싶어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우리들의 모습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2009년도 성탄절을 맞으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가지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낮아지신 예수님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지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 같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과

밑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위에서 쫓기는 인생과

밑에서부터

한 계단씩 한 계단씩

걸어 올라가는 인생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무엇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분의 은혜에 깊이 침잠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마음이 아직도 높은 곳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계신 낮은 곳으로 내려가지 못해서입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예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

예수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4:18-19)

서머나 식구들은 물론

이-메일 편지를 받으시는 모든 분들께

성탄의 기쁨과 은혜가 넘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목사 올림

(2009.12.24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 무릎꿇음

오늘은 2009년도 성탄주일입니다. 성탄절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을 비워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온 세상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성탄절은 요즘 세상에서 말하듯이 연말에 찾아오는 휴일(holiday)이 아닙니다. 싼 값에 쇼핑을 즐기는 날도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마음 깊은 곳에 모시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기로 결심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래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33년을 우리와 똑같은 인생을 경험하시면서 지내셨습니다. 때로는 피곤하셔서 뱃전에 몸을 기대고 주무셨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불러서 훈련시키셨지만 그 가운데 한 명으로부터 배신감도 맛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는 죽음 앞에서 심히 괴로워하셨고 육신의 괴로움에 절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우리와 똑같은 인생을 사신 것을 두고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같이 기록했습니다.:“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은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히2:18, 표준새번역).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이처럼 여러 가지 고난과 핍박을 받으셨지만, 예수님은 한 번도 세상에 무릎 꿇지 않으시고 꿋꿋하게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신약성경 가운데 누가복음은 그 이유를 예수님의 기도에서 찾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누가복음 은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기도하셨습니다 (눅3:21-22).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세우시기 직전에 예수님은 온 밤을 새우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눅 6:12-13).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셨지만 그는 본래 하나님과 본체셨습니다. 한 번은 사랑하는 제자들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온 몸에 광채가 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신 것입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눅9:28-30).

무엇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만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고 가시는 길이 결코 쉽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자신에게서 치워달라고 하실 정도로 고뇌하시면서 솔직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면서 자신을 뜻을 내려놓으십니다(눅22:39-46). 마지막으로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의 백미는 십자가에 위에서 드리신 용서의 기도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4:3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고 많이 부족해도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쓰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할렐루야! -河-

고래반응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사업체 심방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들은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간다고 느끼실까요!

올 해도 이제 보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은 2009년을

어떻게 살까를 생각해 봅니다.

요즘 연속으로 설교하는 제목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앞 날을 설계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감사하려고

온유 하려고

기다림의 끝을 보려고

작은 일에 충성하려고……

매번 설교한 내용을 곱씹으면서 하루를 살아갑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시고

말씀을 실천하고 계시는 줄 압니다.

우리 함께

힘을 냅시다.

하나님께서 쓰시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새해를 맞이합시다.

2.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어 원제는 “Whale done!”입니다.

<고래가 해냈다!> 정도로 번역하면 되나요?

이 책에서 저자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뒤통수치기 반응’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가

실수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만 꼬투리를 잡아서

비난하는 것이 뒤통수치기 반응입니다.

우리들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뒤통수치기 반응의 명수들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이

남들이 잘하는 것보다

잘못하는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고래반응”입니다.

이것은 저자가 플로리다의 해양관에서

돌고래를 조련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것입니다.

돌고래는 칭찬을 할 때 춤을 추고

조련사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합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칭찬을 하면 가족간의 문제도 해결되고

직장에서의 관계도 회복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Whale done! 고래가 해냈습니다.

Well done! 우리도 해낼 수 있습니다.

3.

한 해를 돌아보니

칭찬을 하면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삶인데

반대의 경우도 꽤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올 해의 남은 날들을

칭찬만 하면서 살기로 결심합시다.

뒤통수 치기 반응은 뒤로하고

고래반응을 마음에 장착하고

그대로 실천에 옮겨봅시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니라. (잠언 25:11)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칭찬이야 말로

잠언에서 교훈하는 경우에 합당한 말임에 틀림없습니다.

올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삶의 은쟁반에 금사과를 많이 담아봅시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지와 이웃들

그리고 교회 식구들께

고래반응을 실천해 봅시다.

춤 추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희들의 마음과 입술이

칭찬과 격려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들의 가정과 사업체

그리고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칭찬할 수 있는 마음과 입술을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09.12.17일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 충성됨

한 해의 마지막달을 맞이하면 왠지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세월이기에 지금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새해를 두고 인생에서 최고의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기대하지만 솔직히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처럼 우리들 인생은 지난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올 날들에 대한 불안한 기대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집중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은 바로 현재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나중에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순간을 소홀히 여기면 우리들의 앞길도 평탄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현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영어에서 현재는 present입니다. 이 단어는 동시에‘선물’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현재야 말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잘 활용하고 누리면 인생 전체가 행복해 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행복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현재에 충실(faithful)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충성”또는“신실”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공통적으로‘피스토스“라는 말입니다. 헬라어 피스토스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믿음직스럽다. 충실하다. 의지할 만하다. 실패하지 않는다.”주어진 삶에 순간순간 충실한다면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는 믿음직스럽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겠지요!

오늘 본문에서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 명의 종들에게 재산을 나눠주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각자 갑절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돈을 땅에 묻어 놓았습니다. 훗날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겨놓은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묻습니다. 갑절의 이익을 남긴 종들에게는 최고의 칭찬을 합니다.:“잘하였도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반면에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을 두고“악하고 게으른 종/무익한 종”이라고 야단칩니다. 그리고 어두운 밖에 내어 쫓으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사람을 쓰십니다. 그것도 작은 일 즉 현재 주어진 일에 충성된 사람을 쓰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을 때 더 큰 일도 맡기시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잔치자리에 초청하십니다.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 것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들의 삶 전체가 우리들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들일 뿐입니다. 본문에서 주인이 다시 와서 종들을 불러서 회계하였듯이, 우리들 역시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인생을 회계하실 것입니다. 그때“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주어진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직스러운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믿을만하다는 평판을 듣는 빛과 소금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높이시고 멋지게 사용하실 것입니다.-河-

크라카토아 화산처럼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인터넷 초기 화면으로

msn.com을 사용합니다.

그곳에 가면 여러 가지 정보들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오랫동안 사용했던 터라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이-메일 계정에 들어가면 my msn이라는 곳이 있어서

제가 필요한 정보를 편집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더 좋은 초기 화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한 가지를 정하면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가는 성향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유행에 덜 민감해서인지 msn을 10여 년 이상 애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msn 홈페이지 한 모퉁이에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 화산이 폭발하는 동영상이 떠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화산활동을 하는 곳으로

섬 전체가 화산입니다.

화산이 폭발해서 터져 나오는 모습이

동영상에 있었습니다.

마치 원자폭탄이 터지는 듯한 개스와 연기와 빨간 불꽃!

땅 밑에 그런 엄청난 화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화산의 분출을 막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자연의 움직임 앞에서

우리들 인간은 무척 초라해집니다.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과 능력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2.

크라카토아 화산이 터지는 동영상을 보면서

두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신앙이 저렇게 폭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망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은 화산의 폭발력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할 것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들 말과 행동 그리고 삶 전체에

폭발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화산이 저절로 폭발하듯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면

그 능력이 저절로 밖으로 분출될 것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삶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장착해 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화산이 폭발하듯이 분출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이 변할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찰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다이내믹한 성령의 능력과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사랑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로 세상에서 활동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크라카토아 화산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번 설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통제하고 자신이 변화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면, 그리고 깊이 그 내면을 살펴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괜찮은 모습과 마음씀씀이도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반면에 드러내기 힘든 추한 모습도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습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염려와 근심도 마음 속에서 자꾸만 생깁니다.

답답합니다.

어디론가 가고 싶습니다.

불안합니다.

때로는 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마음을 모두 토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싸주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마음 속에 들어있는 만가지 모습을 하나님께 모두 토해내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온유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새롭게 새해를 맞아야겠습니다.

시편기자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62:8)

3.

하나님,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화산처럼 힘차게 분출되는 신앙을 갖게 하옵소서.

한 해가 가기 전에

우리 안에 쌓이고 쌓인 것들을

하나님 앞에 토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09.12.10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