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까지 이르러

사도행전 1장 8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는 네 번째 시간입니다. 한 구절을 갖고 한 달여 말씀을 준비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만큼 중요한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행전 전체는 물론 그 이후에 펼쳐진 2천년 교회사의 주제절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에 힘쓰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급기야 열흘이 지나고 오순절이 되었을 때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말씀도 성취되어서 제자들에게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이 임한 후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물론 그 복음은 지금도 계속 전해지고 있으니 사도행전은 28장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과 교회를 통해서 계속되고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갖고 한 달 동안 설교한 두 번째 이유는 중요한 말씀을 차근차근 그리고 깊게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이쯤 되면 말씀을 외우시게 됩니다. 또한 언제든지 이 구절을 만나시면, 한 달 동안 함께 나누었던 설교말씀이 생각나실 겁니다. 말씀 속에 들어있는 단어나 내용이 깊이 마음에 와 닿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자세히 살펴봄으로 그 안에서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2) 너희가 권능을 받고, 3)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4) 내 증인이 되리라. 그동안 세 부분은 살펴보았고 오늘은 증인이 되는 지경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첫 번째 지경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현재 제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온갖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증인의 삶은 바로 거기서 시작됩니다.

둘째로 온 유대는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의 물결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온 유대까지 퍼져나갈 것입니다. 셋째로, 사마리아는 유대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는 지역입니다. 그곳에 예수님은 가셨고 사마리아 여인과도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장벽을 초월해서 전파됩니다. 복음 속에는 편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렇게 복음은 동심원을 그리면서 땅 끝까지 전파될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증인들인 우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삶의 지경에서 증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河-

행복한 사람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전에

한국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중고등부 교사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입시공부에 지쳐있는 아이들에게

영화제목을 소개하면서

성적이 곧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고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네들이 지금 어느덧 30대가 되어 있을 텐데

모두들 행복하게 살겠지요?

학창시절이야 성적이 제일 먼저라고 생각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이 모든 것들을 합쳐서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성공의 특징은

회사에서 받은 연봉, 사업에서 올리는 매출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가격과 같이

수치로 계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성공이 숫자로 비교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미련을 갖고 성공을 쫓아 갑니다.

그러다 보니 소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고개를 푹숙이고

반대로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면서 살아갑니다.

2.

성공이라는 말은

우리들 신앙과 교회 안에도 슬며시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하면서

성공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성공이라는 말을 예수님께 적용해 보면

이것이 성경적인 개념이 아님을 금방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잣대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지 못하셨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핍박하고 급기야 십자가에 못박았던

사람들이 반대로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공이라는 말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저 역시 성공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제가 좋아하는 말은 행복(happiness)”입니다.

성공과 행복이 늘 비례하지 않습니다.

아니 행복은 성공이라는 세상의 잣대를 초월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성공을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어야 합니다.

그것도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할 푯대입니다.

4.

수님께서 행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그 유명한 팔복(The Beatitude)”이 나옵니다.

우리 말 성경에서 복이 있나니로 번역된 헬라어 마카리오스에는

(blessed)이라는 뜻과 함께 행복(happy)”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팔복은

기독교인의 행복선언문입니다.

이 아침에 함께 묵상하고

오늘 하루를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갑시다.

제가 마태복음 5 3- 10절에서

행복으로 바꿔서 옮겨보았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합니다.

배불리 채움을 받을 것입니다.

자비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자비롭게 대해 주실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부르실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 나라가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이라는 말을 행복으로 바꾸니

말씀이 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으십니까?

가능하시면 위의 팔복 말씀만 인쇄하셔서

중간 중간에 읽고 묵상하시면

우리 서머나 식구들의 삶이 더욱 행복해 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공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실 겁니다.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뒷전에서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521일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때

구약 성경의 전도서에서는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때”라고 하면 무엇보다 시간의 의미가 있습니다. “시간이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적당한 시간을 포착하는 것이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간을 따라서 그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시간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때”라는 말 속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기회 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것을 잡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새로운 예배장소에 온 지 어느덧 3개월이 다가옵니다. 이제는 처음에 어색했던 분위기도 적응이 되었고 차분하게 교회가 재도약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있고 여기가 좋다고 안주한다면, 하나님의 때를 잡지 못하고 흘려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점에서 매일 밤 10시에 온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서 정해진 시간에 무릎을 꿇고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할 때, 교회는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꿈꾸는“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신 교회,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있는 교회”로 세워갈 줄 믿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세상에 밝히 드러내지 않고 소극적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교회는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거듭 태어나야합니다. 5월 31일에 있을“교회 이전 감사 및 장로/권사 취임 축하예배”는 우리 교회를 세상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가능하면 많은 손님들을 초청해서 자리를 가득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함께 축하하고 기도해 주실 수 있는 분들을 모두 초청하고 싶습니다. 이번 주부터 지역신문에 게재되는 교회 광고를 이번 행사와 우리 교회를 소개하는 자료로 사용하셔도 좋겠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번에 취임하시는 임원들과 성도님들께서 장학금을 마련해 주셔서 우리 교회가 세워진 이래 처음으로 지역사회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장학금의 이름도 정하고 장학위원회도 구성해서 도움이 꼭 필요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지급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밖에도 홈리스 돕기, 영어교실, 음악교실, 컴퓨터 교실 등 지역사회를 섬기는 프로그램들을 소개했

니다. 이 모든 일들이 말에 그치지 않고 하나씩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선교지 한곳, 농촌교회 한 교회, 소년소녀 한 가정”을 매월 1천불씩 돕는 구제와 선교의 길도 활짝 열리길 바랍니다. 여기까지 이르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멋진 교회로 세워갑시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줄 믿습니다. -河-

숨은 축복 찾기

목사에게 주일 저녁은 달콤한 휴식의 시간입니다. 심방이나 다른 약속이 잡힐 수도 있지만, 주일예배를 마친 후의 모든 일들은 한결 부담이 없습니다. 아마 목사처럼 월요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주일 저녁의 자유함과 한가로움을 나름대로 즐기는 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피곤해도 주일 밤 늦게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입니다. 저는 그 시간이 무척 행복합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30여분은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우리 부자만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아들이 운전을 하고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옆 자리에 앉습니다. 조심스럽게 운전하라고 잔소리도 하지만, 그 때만큼은 좋은 얘기만 하려고 노력합니다. 여자친구가 있는지도 슬쩍 떠봅니다. 아들이 얘기하기 전까지 시험성적은 묻지 않습니다. 센스가 있는 아빠라면 그 정도 예의는 지켜줘야 합니다. 그러면 아들도 허물없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어떤 때는 오바마 대통령까지 들먹이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눕니다. 그때마다 아들이 어느덧 의젓한 청년으로 커있음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주일 저녁에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이 무척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이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앞으로 아이가 진학이나 직장을 찾아서 멀리 떠나거나 가정을 꾸미면 부자지간에 이런 시간을 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고 보니 이 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부자를 위해서 숨겨놓으신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들의 신앙이 너무 한탕주의가 되었습니다. 축복도 양적인 개념으로 바뀌어서 웬만큼 큰 일이 생기지 않으면 축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간증집회를 다니시는 분들이 워낙 큰 축복을 받고 극적인 인생을 살다 보니 우리 같은 범인들은 어디에 명함도 내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하나님은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입니다. 작은 자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은 형제들 가운데 막내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흔쾌히 받아서 축사하시고 그것으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은 작은 것에도 숨겨져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도 바로 여기에 맥이 닿아있습니다. 소위 큰 축복을 받고 감사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으로 여깁니다. 매일 아침에 건강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부터 축복입니다. 한 낮에 머리 위를 비추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것도 축복입니다. 밤이 되어서 평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축복입니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일을 겪어도 그 안에 숨겨진 축복을 찾아내는 사람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숨겨진 축복을 찾아내서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번 한 주간은 우리 삶 속에 숨겨진 축복을 매일매일 열심히 찾아봅시다. 어릴 적에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숨겨놓으신 축복을 찾아보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고 삶 속에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내일은 또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을 숨겨놓으실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2009년 5월 14일)

Mother’s Day 를 보내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예배시간에 함께 부른

어머님의 은혜는 여느 복음송가만큼

우리 모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아

아무리 갚아도 모두 갚을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겠지요.

철이 들고 여유가 생겨서 갚으려고 하면

부모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저 역시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죄송스러운 마음과 그리운 마음에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저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시는 성도님들이 계시더군요.

2.

Mother’s day 다음 날에는

매년 그렇듯이 할머니 권사님들을 모시고

Calistoga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부부까지 12분이 하룻밤을 묶었고

세 분이 중간에 왔다 가셨습니다.

이번에 다녀오면서 기쁜 일은

우리 권사님들께서 아주 흥겹게 다녀오셨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Napa winery에 잠깐 들렸을 때는

마치 술에 취하신 듯(?) 노랫가락을 하시면서 개인기를 뽐내셨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옆에 있던 미국 분들도 박수를 쳐 주면서 흥을 돋았습니다.

첫날 밤에는 전도사님께서 미리 복사해 오신

성경목록가와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은혜로운 찬양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실 때는

우리 교회를 지탱하는 뿌리가 바로 권사님들이심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도 있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네 번째 온천여행인데

우리 권사님들의 기력이 조금씩 약해 지심을 봅니다.

팔순에 수영복을 입으신 몸매는 여전하시고 멋지신데

어딘지 모르게 기운이 없어 보이실 때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기도해야지요!

우리 교회가 이제 아름답게 부흥하는 것을

전도사님과 권사님들께서 보시기를

3.

저는 우리 교회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인생 길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눈으로 보면서 배웁니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들고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더욱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4 15일을 한국에서는 스승의 날로 지키는데

바로 우리 할머니 권사님들이 저의 인생 스승님들이십니다.

전도사님 그리고 권사님들,

부디 믿음 안에서 건강하셔서 합니다.

지금 곧바로 우리 교회의 어르신들을 위해서

1분 동안만 기도합시다.

백발이 성성한 어른이 들어오면 일어서고,

나이 든 어른을 보면 그를 공경하여라.

너희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19:32)

샬롬

하목사 올림

2009 5 14메일 목회서신

온전한 믿음

“한 수도가가 기름이 필요해서 올리브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연약한 뿌리가 자랄 수 있는 비가 필요하니, 단비를 내려 주십시오.’주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단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수도사가 다시 기도했습니다.‘주여, 나무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해를 주십시오.’ 그러자 먹구름이 사라지고 해가 떴습니다. 수도사는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이 나무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서리가 필요합니다.’그랬더니 작은 나무에 서리가 앉아 반짝거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무를 보러 나온 수도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올리브 나무가 완전히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수도사는 동료 수도사를 찾아가 그의 경험을 털어 놓았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일일이 알리고 응답을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의아해했습니다. 한참 듣고 있던 동료 수도사가 말했습니다.‘나 역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은 제가 나무를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 말이지요. 하나님은 나무에게 필요한 것을 저보다 훨씬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나는 나무를 심고 기도할 때 ‘주여! 이 나무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시오. 강풍이든, 햇빛이든, 바람이든, 비든, 서리든 주님이 때를 따라 주십시오. 주님이 나무를 만드셨기에 가장 잘 아십니다.’라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짧은 예화지만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복잡해졌습니다. 더불어 우리들은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을 요청합니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듣고 난 다음부터 아주 세세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것이 응답되기를 기다립니다. 물론 우리들은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객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우리들의 마음을 빠짐없이 드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기 위함입니다. 대화가 많은 부부가 친밀하고 서로 의좋게 한 평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화가 많다고 남편이나 아내가 상대방에게 매일같이 세세한 것을 요청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질력이 나서 나중에는 관계까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맡기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 많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채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믿음에는‘나 자신’은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감사’가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면 세상살이에서 낙오할 것만 같습니다. 불안하니까 자꾸만‘주세요! 주세요!”라고 또 다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부족입니다.

교회도 믿음이 부족하면 혼란스러워집니다. 반면에 온전한 믿음으로 무장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 믿음이 요청됩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 그리고 교회의 주인으로 삼고 힘차게 앞으로 나갑시다.-河-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LA에서 열린 감리교 연회가 있어서

메일 서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죄송!!!

어느덧 5월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물 흐르듯이 쉬임없이 흘러서 우리 앞을 지나갑니다.

이렇게 올 한 해도 빠르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난 주일 설교처럼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더 나가서

세상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히 살아야겠습니다.

마음에 열정(passion)만 간직하고 있으면

분명히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저는 종종 좋은 책을 만나면

하루에 한 권을 모두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도 짐 월리스라는 분이 쓰신

회심이라는 책을 모두 읽었습니다.

회심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동안 적당히 믿었다면 한번 제대로 믿어보기로 결심하는 것이 회심입니다.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지요.

짐 월리스는 이 책에서 회심을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세상,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신앙의 지경을 나 중심에서 세상으로까지 넓게 펼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웅비를 펴는 것입니다.

회심한 사람의 특권이 기도입니다.

이에 대해서 짐 월리스의 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기준을 형성하는 틀을 바꾼다. 기도는 단지 활동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기도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 곧 세상의 가장 강력한 세력들에 대항하여 치르는 영적 전쟁에서

사용되는 강력한 무기임을 이해해야 한다

기도는 다른 활동을 대신하여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행동의 토대이다.

우리들이 늘 기도합니다.

교회적으로 <?xml:namespace prefix = st1 />저녁 10시가 교회를 위한 기도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거나

다른 방법을 썼는데 안되어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하거나

다른 일을 모두 하고 남는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것등은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모든 행동과 삶의 토대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골방기도야 말로

우리의 신앙과 삶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최고의 시간입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합시다.

임없이 기도하면서 하루를 살아냅시다.

그리고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므로

기도를 우리 삶의 영적토대(spiritual foundation)로 삼아 봅시다.

기도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선한 삶을 삽니다.예수님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57일 이메일 목회서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교회력으로 부활절을 지내고 오순절 성령강림절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이 자세히 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1장 초반부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적을 짧게나마 알려줍니다. 3절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을 실제로 보고 훗날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간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파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기도 하지요),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임할지 제자들에게 자세히 가르쳐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갖게 된 제자들은 이 세상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순교자의 자리에까지 나갈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실 때가 되면서 더 구체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여기서 성령이 임하는 것을 세례로 표현하면서 그동안 행해지던 물세례에 더해서 성령 세례를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이 오순절에 임하는 성령강림이었고, 오순절 사건을 기점으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온 세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의 겁쟁이가 아니라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하게 됩니다. 이 땅에 주님의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입니다.:“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처럼 사도행전은 성령이 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성령을 체험한 사도들에 의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차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도하던 제자들처럼 우리 교회는 물론 서머나 식구들 한 분 한 분 위에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기를 기대하면서 사도행전의 전반부 말씀을 연속으로 전할 예정입니다. 이번 연속설교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를 기도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온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열정(passion)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새롭게 세워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교회위에 임함으로 생기는 열심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처음 믿거나,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갖게 되는 첫사랑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들은 생명을 내놓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한 마음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고, 성도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머나 식구들께서 이번 연속설교를 들으시면서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강림절을 향해서 가는 이 즈음에, 말씀의 능력이 우리 모두 위에 임하기를 다 함께 기도합시다. -河-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동안 여섯 번에 걸쳐서 시편23편을 연속으로 설교했습니다. 새로운 예배처소에 와서 시편23편을 설교하면서 저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첫째로, 새로운 예배처소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교회 주일예배가 쉴만한 물가처럼 편안하며 푸른 초장처럼 생명의 양식이 매주일 공급되기를 원했습니다.둘째는, 아무래도 새로운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 수 있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남의 건물을 빌렸기 때문에 자유롭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까지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예배처소에도 함께 하실 줄 믿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 교회를 인도하고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심을 성도님들께서 몸소 체험하시기를 소원하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넷째로, 우리 교회와 예배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예배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다섯째로,“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임하는 교회”라는 표어대로 우리 교회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여섯째로, 새로운 예배처소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고“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감사의 고백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제 오늘 마지막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편 23편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을 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절까지 여호와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고, 공급해 주시는 목자가 되심을 차근차근 교훈해 주었습니다. 5절은 목자의 비유에서 잔치집의 비유로 바뀌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늘나라 잔치자리의 VIP로 대우해 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4절의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은혜는 매 순간 임하는 현재의 경험입니다. 5절에 나타난 잔치집의 비유는 이미 기름을 부어주시고, 잔이 넘칠 만큼 임했던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신앙고백은 과거와 현재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시편23편 6절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동안 계속될 것임을 믿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깁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임하면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선하다”라는 히브리어 속에 아름답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너무 보기 좋다고 스스로 감탄하셨습니다. 똑같은 히브리어가 오늘 본문에 사용되었습니다.

“인자하심”은 지난주일 주보에서 말했던 “헤세드”라는 히브리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평생 동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임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립니다.:“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윗에게 임한 시편23편의 은혜가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 위에 그대로 임하기를 바랍니다. 평생 동안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며 사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감사의 비결 12가지

좋은 아침입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서 그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실제 삶 속에서 지키기 어려운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범사에 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범사를 풀어서 쓰면 모든 일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이라면 좋은 일만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생겨도

그것을 두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제가 구독하는 신앙잡지에

범사에 감사하는 비결 12가지가 실렸습니다.

저녁에 한 가지씩 읽고 저에게 적용해 보니

제 삶 속에 감사가 널려 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12가지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1. 감사하는 마음을 개발하십시오.

2. 지나치기 쉬울 만큼 작고 평범한 일들을 찾아서 감사하십시오.

3. 삶 속에 숨겨진 축복들(hidden blessings)을 찾아서 감사하십시오.

4. 고난 중에도 감사하십시오.

5. 삶 속에 엄습하는 두려움이나 염려를 바라보지 말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6.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예를 들면 불치병을 앓고 있는)을 돕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7. 하루 중에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는 감사의 기도만 드리십시오.

8. 이웃들이나 교인들과 감사의 제목들을 나누십시오.

9.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금함으로 그 속에서 잊고 살았던 감사를 찾으십시오.

   (, 금식을 통해서 먹을 수 있는 능력과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10. 하나님께 받은 기도응답이나 약속을 낱낱이 기록하십시오.

11.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건네십시오.

12.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넉넉한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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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저는 숨겨진 축복(hidden blessing) 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 삶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숨겨진 축복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아무리 힘겹고 어려워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의 삶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09 4 23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