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마음의 기도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 다윗도 실수를 합니다. 아니 보통 사람이 범하기 힘든 죄를 범합니다. 왕의권력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범죄였습니다. 그의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 마저 전쟁터에서 죽게 만든 죄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 51편은 이토록 큰 죄를 범한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지적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한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 앞에서 더욱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가 아니면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새로운 영을 창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달라는 기도입니다.:”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절)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상한 마음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상한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부서진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죄를 범함으로 그의 영혼이 부서졌습니다.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힘들게 된 것은 물론 그의 영혼까지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때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한 심령까지 받아 주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부서지고 깨진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이것을 17절에서는“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한나가“나는 슬픈 여자라”고 했듯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울음입니다. 서러움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통회 자복하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여기저기서 상처받은 부서진 마음(broken heart)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통회하는 마음을 솔직히 아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기다리시고 그것을 멸시치 않으십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의 상한 마음이 온전하고 새로운 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을 우리 안에 창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河-

기도의 능력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5장 14절에서 기도는 우리들을 담대하게 만들어준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에, 제자들을 향해서 그와 같은 능력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막9:29). 그만큼 기도의 힘은 강력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 속에는 아사왕이 나옵니다. 그가 왕이 되고 십여 년 동안 유다는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 동안 아사는 나라를 새롭게 세우고 우상을 타파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때 구스(이디오피아)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유다를 위협합니다. 당시 아사에게는 58만 명의 군사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디오피아의 군사는 백만이었고 300승의 전차부대도 있었습니다. 양쪽의 군사력만 비교하면 아사왕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이처럼 국가가 위기에 닥쳤을 때, 아사는 하나님께 나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나와 야베스 그리고 아사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문제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먼저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나오게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 역대하 14장 11절은 아사가 하나님께 나와서 부르짖은 기도입니다. 아사가 드린 기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 아사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현재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다른 도움은 생각지도 않고 하나님께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둘째로
, 아사는 믿음을 갖고 이디오피아 군사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갖고 앞으로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 아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권자이심을 믿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 보다 크고 강한 것이 없음을 확실히 알았습니다.“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세상 속에서 힘겨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아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이디오피아 군대를 멋지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기도 속에는 어떤 문제라도 부딪쳐서 이길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강합니다.-河-

야베스의 기도

8년여 전에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저자 브루스 윌킨스는 역대상 4장 9-10절에 나타난 야베스의 기도를 소개하면서 누구나 야베스의 기도문을 갖고 반복해서 기도하면 야베스에게 임한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주문처럼 외우는 우스운(?)일이 벌어졌었습니다.

기도는 어떤 문장이나 내용을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요 대화입니다. 또한 기도를 개인의 출세나 성공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도 안됩니다. 수요일 주기도문 강해에서 배웠듯이 기도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온 세상과 우리들 삶 속에 이뤄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복이 두 배로 임합니다 (실제로 히브리어 본문의 뜻은 “꼭 복을 주세요”임). 기도해서 삶의 지경이 넓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의 손이 늘 함께 하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야베스는 이렇게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서머나 식구들에게도 같은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가서 야베스가 드린 기도의 내용보다 기도하는 마음자세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야베스는 가장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운명을 바꿔주실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꼭 따라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유지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야베스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즉 하나님 뜻에 따라서 기도했다는 증거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문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중심을 보시고 응답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요즘 세대에 야베스와 같은 기도의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인생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신앙과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도의 사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河-

장막을 거둬내는 기도

한 평생을 살면서 달팽이처럼 살아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달팽이와 같은 인생은 자꾸만 안으로 움츠려듭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몸을 숨기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끝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또한 달팽이와 같은 인생은 자신을 겉껍질로 꼭꼭 싸매고 삽니다. 보는 이도 답답하지만 정작 힘든 것은 본인 자신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야베스 역시 달팽이와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야베스는 성경에서 흔히 듣는 명칭이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야베스라는 히브리어는“고통(pain)”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인물은 이름이“야베스”입니다. 그것도 어머니가 그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극심한 산고 끝에 야베스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이처럼 구사일생으로 태어났고 고통이라 뜻의 이름을 갖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10절에는“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는 야베스의 기도가 나옵니다. 추정컨대, 야베스는 어렵게 태어난 것 뿐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길도 환난과 근심에 쌓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 달팽이 인생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달팽이 속에 던져진 저주받은 인생으로 태어났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고통스러웠고 힘겨웠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때 야베스가 택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도가 자신에게 드리운 인생의 장막, 고난과 저주의 장막을 거둬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인생의 달팽이 껍질이 벗겨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와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역시 좋으신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들 인생을 돌아보면, 장막처럼 자신을 꼼짝 못하도록 발을 묶는 것들이 있습니다. 인생의 달팽이집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할 것 같은 굴레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멈추면 안 됩니다. 인생길을 가로막는 장막을 거둬내야 합니다. 그 비결이 바로 기도인 것을 오늘 야베스를 통해서 배웠습니다.-河-

응답하는 기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가장 확실한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재(實在)하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자연만물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를 느끼고 찬양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 밖에서 일어나는 경험이고 계시입니다. 반면에 기도는 우리들 안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확신하게 만듭니다.

기도에 대한 오해도 많습니다. 기도를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우리들의 소원을 이루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기도의 주체는 우리들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산신령(?)과 비슷합니다. 물론 처음에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내가 주체가 되어서 기도를 합니다. 무조건 달라고 조르는 갓난아이와 같은 신앙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살펴본 한나가 온전한 기도를 드린 대표적인 성경의 인물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기도를 드렸고 실제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어떻게 얻은 아들입니까? 가진 설음을 겪은 끝에 기도해서 얻은 믿음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미련 없이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2장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는 한나의 찬양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고백입니다.

기도의 주체는 우리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들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법에 그쳐도 안 됩니다. 그것은 반쪽짜리 기도입니다. 온전한 기도는,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듯이 응답된 기도를 다시금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를 들면, 건강을 위해서 기도했고 응답을 받았다면, 건강한 몸을 갖고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섬겨야합니다. 사업이나 직장을 놓고 기도해서 응답받았다면, 그것을 갖고 어떻게든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의 주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나가면 기도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나 처럼 자유함 속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할 수 있습니다. -河-

편견과 교만

깊은 산속에 작은 옹달샘이 있었습니다. 옹달샘에서는 언제나 맑고 깨끗한 샘물이 솟아 나왔습니다. 큰 짐승한테 쫓겨 다니다가 겨우 몸을 피한 토끼가 이젠 살았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옹달샘을 찾아 허둥지둥 목을 축이고는 “아이고. 시원하다. 물맛이 이렇게 달콤한 줄 몰랐네”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있자니 이번에는 감기가 잔뜩 걸린 사슴이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비틀비틀 옹달샘을 찾아 왔습니다. 와서 샘물을 바짝 마른 혀로 몇 번 핥아 마시고는, “어 참 쓰기도 하다. 샘물 맛이 이렇게 소태처럼 쓴 줄은 몰랐어”하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개미 한 마리가 옹달샘 곁 바위를 기어가다가 아차 잘못하여 데굴데굴 굴러 풍덩 샘물에 빠졌습니다. 개미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있는 힘 다 내어 소리질렀습니다. “개미 살려요! 개미 살려요!” 물 위에 떠서 허우적거리는 개미는 옹달샘이 그냥 무섭기만 했습니다. 마침 바람이 휙 불자 가랑잎 하나가 매달려 있던 마른 가지에서 시나브로 떨어져 옹달샘 위에 내려 앉았습니다. 가랑잎은 샘물 위에 팔다리 죽 뻗고 누워 둥둥 떠다니며 “허허 참! 세상에 이렇게도 편한 침대가 다 있었던가? 아 기분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옹달샘 둘레에 토끼, 사슴, 개미 그리고 가랑잎이 모였습니다. 먼저 토끼가 나서더니, “이 샘물은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시원한 물이야”, 사슴이 썩 나서서 “천만에 말씀! 이 옹달샘은 세상에서 제일로 소태처럼 쓴 물이야.” 죽을 뻔하다가 겨우 가랑잎 위로 기어올라 살아난 개미가 앞다리로 힘껏 도리도리를 하며 말했습니다. “말도 말아. 말도 말아. 옹달샘은 죽음으로 이끄는 넓고 넓은 문이야. 끔찍해!”

그러자 마지막으로 가랑잎이 말했습니다. “너희들 다 모르는 소리, 옹달샘은 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편한 침대야.” 넷이서 서로 자기 말이 옳다고 우겨대고 있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이 모든 얘기를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한 말씀하셨습니다; “허허허…… 옹달샘은 그냥 샘이란다.”

이현주 목사님의 <옹달샘은 샘이다>라는 동화책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인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들은 자꾸만 자신의 관점에서 사물을 파악하고 이해하려 합니다. 토끼와 사슴 그리고 개미와 가랑잎이 옹달샘을 각각 평가하듯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편견 때문입니다. 편견이 지나치면 자신만이 옳다고 우겨대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체험하고 이해한 그 하나님만이 진짜인 것처럼 고집할 때가 있습니다.하나님을 자꾸만 좁디 좁은 자신의 생각 속에 가두어 두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자신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믿음을 그것만이 진리인 양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보다 더 심한 교만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편견에서 비롯된 현상들입니다.

편견을 없애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비결입니다. 그것은 내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고집과 편견을 버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변사람들을 받아주고,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옹달샘이 그냥 샘이듯이 말입니다. (2008.6.19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심정을 통하는 기도

앞으로 주일 예배에서는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도문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과 기도의 내용을 설교할 예정입니다. 수요예배에서 진행 중인 주기도문 강해와 맞물려서 기도에 대해서 배우고 실천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첫 번째로 살펴 본 한나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기도의 인물입니다. 한나라는 이름의 뜻은“은총을 입은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나는 은혜를 입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를 막으셔서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살던 당시에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여자로서 가장 큰 약점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로 태가 열려야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한나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지 않은 셈입니다.

게다가 한나는 남편의 또 다른 부인인 부닌나로부터 심한 구박과 핍박을 받습니다. 브닌나는 한나와 달리 아들과 딸을 여러 명 낳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주고 그녀를 배려해 주었지만 한나의 괴로움과 상한 마음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나는 하나님의 성소인 실로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갑니다. 당시에는 성소를 찾은 사람들이 소리를 내서 기도하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한나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소리를 내서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기도하였음을 뜻합니다.

또한 한나는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개역성경은“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라고 번역했습니다. 심정(心情)- 하나님은 심정을 통하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여기서 심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목숨”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목숨을 다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녀에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고, 사무엘은 훗날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심정이 통하는 간절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풀어주셔야 할 문제를 안고 있을 때는 목숨을 바칠 정도의 간절한 기도가 요청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토하는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음을 기억합시다.-河-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오늘로 감사하는 삶이라는 주제의 연속설교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지난 두 달여 동안“감사”에 대한 말씀을 듣고, 감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며 실천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감사(感謝) –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있어야 할 신앙의 덕목입니다. 무엇보다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자고 했습니다. 어버이 주일에는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발에 쇠사슬이 묶인 채로 빌립보의 깊은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했듯이 우리들 역시 범사에 감사하고 찬양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이 닥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는 더 크고 귀한 신앙을 사모했었습니다.

감사하는 삶을 사는 구체적인 방법도 살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비교하는 마음이 시기와 질투로 발전하고, 때로는 열등감으로 이어져서 감사를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빌립보서 4:6-7절 말씀 속에도 감사의 비결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실만큼 끝까지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을 때 감사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 마지막 시간에 감사의 비결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속의 갈렙처럼 꿈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믿음의 보고를 한 인물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면서도,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그의 나이 85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러 올라갑니다.“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팔순 노인 갈렙의 청원은 언제 들어도 우리들로 하여금 힘과 용기를 갖게 합니다.

감사의 비결을 생각하면 과거를 떠오르기 쉽습니다. 감사는 지난 세월에 대한 감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갈렙이 40년 동안 마음에 품었던 꿈을 성취했듯이,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마음에 품으시고 그것을 성취해 가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河-

수요예배에서는 (3)

그동안 수요예배에서는 거의 4개월에 걸쳐서 사도신경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주일예배에서 한 목소리로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가장 잘 요약해 놓은 신앙고백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초대교회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교육할 때 사용되었다고 했습니다.

전능하시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고백,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 권능과 인도자로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진리의 영,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확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 각자의 영생에 대한 고백으로 구성된 사도신경을 공부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기초를 튼튼히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약 8주에 걸쳐서 주기도문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사도신경이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가장 정선된 신앙고백문이라면,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가장 완벽한 기도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주일예배에서 주기도문을 갖고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또한 수요예배는 물론 대부분의 예배와 모임에서 주기도문을 함께 외움으로 모임을 마칩니다.

이렇게 주기도문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보니, 어떤 때는 마치 “기도”는 빠지고 “주문”만 남아서 상투적으로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 수요예배에서 주기도문을 한 구절 한 구절 강해식으로 공부하고 살펴봄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기도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올 해 상반기의 수요예배를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시간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참석하시는 분들께 매주 교재를 만들어서 드린 것은 말씀을 전함과 동시에 성경공부도 병행하고자 하는 제 바람이었습니다.

생업이 바쁘시고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서 많은 분들이 수요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십니다. 혹시 교재나 녹음CD를 원하시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기도문 강해를 통해서 우리 교회와 각 성도님들 위에 참된 기도의 영이 임하고, 말씀위에 굳게 선 신앙으로 무장하시길 바라면서 수요예배를 준비하겠습니다. -河-

고난중에 감사

지난주에 말씀드린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상황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지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일이 잘되면 감사할 것 같지만, 감사도 잠시뿐이고 은근히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취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커지는 것이 바로 욕심이요 집착입니다. 그래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면 감사하기 쉬운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어려울 때는 역시 고난 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대로, 욥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힘써 경외하였기에 그에게서 죄악을 발견하기 힘들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어쩌면 창세기의 노아 이후에 가장 완벽한 의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욥은 재물을 많이 가진 부자였습니다. 자식들을 일찌기 모두 분가시켰으니 부모로서의 책임도 다 끝낸 상태였습니다. 말 그대로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축복을 모두 받은 행복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재앙이 찾아옵니다. 그것도 자신이 잘못해서 생긴 재앙이 아닙니다. 사단이 하나님께 허락을 받고 그를 시험한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욥으로서는 매우 억울할 일입니다.

자식들이 죽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가축들을 죽였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는 거지신세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몸에는 부스럼이 생깁니다. 모든 재산을 잃은 욥은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어야 할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아내마저 욥을 저주합니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땅에 엎드려 회개합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죄를 돌아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로다.”욥의 찬양은 그가 부유할 때 드렸던 찬송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숭고한 감사의 찬양입니다.

우리는 오늘 욥을 통해서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와 찬송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임을 배웠습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그 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멋진 신앙인이 됩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