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드리운 무지개

동부에 살 때 나이아가라 폭포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두 번 방문했었는데, 나이아가라 폭포는 갈 때 마다 참 장관이었습니다. 폭포 근처에 도착하면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웅장하게 들려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펼쳐진 야경은 말 그대로 환상적입니다. 나이아가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비를 입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바위 밑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폭포수가 머리 위로 떨어질 때의 짜릿함과 시원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한가지는 유람선을 타고 폭포 가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방에서 들리는 폭포 소리와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듯한 폭포수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우러러 볼 때”라는 찬양이 절로 나옵니다.

이처럼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라보고 있으면, 끊임없이 떨어지는 폭포수 위에 무지개가 선명하게 걸려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떤 각도에서 봐도 일곱 색깔 무지개가 폭포수에 걸려 있습니다. 무지개가 얼마나 선명한지 비디오 카메라에 담아서 재생을 해도 그대로 나타날 정도입니다. 폭포수는 쉬임없이 떨어져서 하류로 흘러가지만, 폭포수위에 드리운 무지개는 정지된 영상처럼 폭포수에 걸쳐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부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영생을 폭포수에 걸쳐있는 무지개에 비교하였습니다. 쉬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끊임없이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습니다. 따라서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젊어서는 영원히 살 것 같지만 금방 흰머리가 나고 인생을 마감할 때가 닥칩니다. 어쩌면 매우 허무하고 무상(無常)할 뿐입니다. 그런데 폭포수 위에 햇볕이 비취면 무지개가 생기듯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삶 한 가운데 영생이라는 무지개가 드리웁니다. 그때야말로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영원하고 진리 되신 하나님의 시간대를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허무해 보이던 인생이 아름다워 보이고 하나님의 손길을 눈으로 보듯이 체험하는 특별한 순간입니다.

2008년 새해도 한 숨에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이처럼 살같이 지나가는 광음(光陰) 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속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붙들어 매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드리운 은혜의 무지개를 포착할 수는 있습니다. 일곱 색깔 무지개로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순간순간 경험하고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영생입니다.

올 해도 어김없이 365일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은혜도 똑같이 내려 주실 것입니다. 마음이 아플 때는 위로해 주실 겁니다. 힘이 없고 낙심될 때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하늘의 힘을 공급해 주실 겁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서 갈팡질팡 할 때는 우리들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각자의 삶 속에 아름다운 무지개로 아로새겨지겠지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삶 속에 만들어주신 아름다운 무지개를 바라보고, 무지개의 색깔을 하나하나 세어보며 사는 것이 영생의 삶입니다. 그때 비로소 마음 깊은 곳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은혜로 사는 인생은 무지개처럼 아름답습니다.” (2008.1.17 SF 한국일보 칼럼)

새로운 시작 (New Start)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대표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 나타납니다. 첫째는 적신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똑같이 맨 몸입니다. 둘째는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입니다. 태어날 때 미리 많은 것을 갖고 태어나지 않듯이, 죽을 때도 모든 것을 놓고 빈손으로 떠나 갑니다.

세 번째는 살아있는 동안 매 해마다 365일을 부여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해가 되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365일을 허락해 주십니다. 누구도 더 많은 날짜를 갖지 못하고 동시에 더 적은 날로 한 해를 시작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입니다. 빈손으로 와서 커다란 업적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이 1년 365일을 살지만 삶의 모습과 결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이 세상을 하직할 때도 영생을 소유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에서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면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시작은 같지만 과정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열매가 다른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앞에 2008년 365일이 놓여있습니다. 2008년은 미리 가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전인미답(全人未踏)의 길입니다. 망설일 수도 없습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new start)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3-14절에서 자신이 영적 순례길을 걷고 있음을 담대히 밝힙니다. 그는“도상(道上)의 존재(存在)”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생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였습니다.

본문 그대로 표현하면, 빌립보서의 바울은 푯대를 향해서 영적 달음박질을 하는 달리기 선수였습니다. 육상 경주에 나선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추월당하기 때문이고 집중력이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경주를 하는 사람은 푯대, 즉 결승점을 향해서 질주합니다. 그의 눈은 시종일관 푯대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어질 상을 기대하면서 매 순간 있는 힘을 다해서 달릴 뿐입니다.

우리 모두 2008년 첫 달을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주를 시작한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푯대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달려갑시다.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나눠주신 365일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갑시다. 올 한 해 하나님의 은혜가 서머나 식구들 위에 임하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河-

새로운 시작 (New Start)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대표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 나타납니다. 첫째는 적신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똑같이 맨 몸입니다. 둘째는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입니다. 태어날 때 미리 많은 것을 갖고 태어나지 않듯이, 죽을 때도 모든 것을 놓고 빈손으로 떠나 갑니다.

세 번째는 살아있는 동안 매 해마다 365일을 부여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해가 되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365일을 허락해 주십니다. 누구도 더 많은 날짜를 갖지 못하고 동시에 더 적은 날로 한 해를 시작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입니다. 빈손으로 와서 커다란 업적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이 1년 365일을 살지만 삶의 모습과 결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이 세상을 하직할 때도 영생을 소유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에서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면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시작은 같지만 과정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열매가 다른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앞에 2008년 365일이 놓여있습니다. 2008년은 미리 가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전인미답(全人未踏)의 길입니다. 망설일 수도 없습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new start)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3-14절에서 자신이 영적 순례길을 걷고 있음을 담대히 밝힙니다. 그는“도상(道上)의 존재(存在)”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생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였습니다.

본문 그대로 표현하면, 빌립보서의 바울은 푯대를 향해서 영적 달음박질을 하는 달리기 선수였습니다. 육상 경주에 나선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추월당하기 때문이고 집중력이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경주를 하는 사람은 푯대, 즉 결승점을 향해서 질주합니다. 그의 눈은 시종일관 푯대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어질 상을 기대하면서 매 순간 있는 힘을 다해서 달릴 뿐입니다.

우리 모두 2008년 첫 달을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주를 시작한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푯대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달려갑시다.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나눠주신 365일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갑시다. 올 한 해 하나님의 은혜가 서머나 식구들 위에 임하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河-

창세기의 요셉

요셉: 샘 곁의 무성한 가지

오늘까지 3주에 걸쳐서 성경에 등장하는 동명삼인(同名三人) 요셉이라는 인물들을 한 사람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창세기의 요셉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입니다.

요셉은 열두 명의 형제들 가운데서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평상복을 입히면서도 요셉에게는 색동옷을 지어 입힐 정도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들에 나가서 양을 치면서 일을 할 때, 요셉은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인생에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서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서 이집트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서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지만, 그 그림자가 그의 마음까지 침투할 수는 없습니다. 요셉은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인정했고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요셉의 삶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형통했습니다. 한 가정의 노예로 일할 때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형통한 삶을 살았던 요셉은 무엇보다 매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있을 때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나중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요셉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을 때에 요셉은 그의 이름 뜻 그대로 “더하기 인생”을 살았습니다. 가정의 총무에서 감옥의 총무로 그리고 한 나라의 총무로 그의 삶은 마치 동심원처럼 퍼져나갔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요셉이 매사에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샘 곁의 무성한 가지처럼 그의 삶을 부요케하셨습니다.

요셉처럼 매사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 곁에 꼭 붙어 있기로 결심하면서 2008년 새해를 맞는 서머나 식구들 위에 요셉에게 임했던 축복이 그대로 임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河-

성탄의 종소리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울린다./저 깊고 깊은 산 속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땡땡땡.”

성탄절이 되면 어린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성탄찬송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도 같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실 그때는“탄일종”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율동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려서 종을 치는 흉내를 내던 율동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올 해도 성탄절을 맞아서 성탄의 종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축하하는 종소리입니다. 죄에 억눌려 살던 우리들에게 성령의 생명의 법을 선포하려고 오신 아기 예수님을 향한 감사의 종소리입니다.

왕들이 사는 궁전에서 태어나셨다면 그토록 감격스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은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하려고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성탄의 종소리는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이 울려 퍼집니다.

여느 해와 달리 각별하게 교회를 가슴에 품고 달려오신 서머나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성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길 기도합니다. 그동안 우리들 마음속에 숨겨있던 인생의 시름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들이 성탄의 종소리에 실려서 멀리멀리 떠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성탄의 종소리에 실려서 깊고 깊은 산속 오막살이까지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성탄의 아침 – 기쁨의 외침인 노엘로 주님을 찬양합시다.-河-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요셉의 배려

지난 주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이어서 오늘은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유다지파에 속했고 다윗의 후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목수일을 하면서 가족을 돌보는 당시의 직업으로 봐서 서민층에 해당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풍습에 의하면 약혼을 하고 보통 1년 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렇지만 약혼은 결혼에 버금가는 혼례식이어서 구약의 신명기 20장 7절에 의하면 한 여자와 약혼 한 남자를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행여나 전쟁에서 죽으면 약혼한 여자가 홀로 되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비극을 막기 위한 율법적 조치였습니다.

요셉은 약혼한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것을 눈치 챕니다.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는데 아기를 가졌으니 요셉이 얼마나 황당하고 실망스러웠겠습니까? 하지만 마리아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서도 요셉은 마리아를 배려합니다.

마태복음 1장 19절에 의하면 마리아가 수치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요셉이 가만히 끊고자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운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함을 겸비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을 칩니다. 선거에서 네거티브 전략이 난무하듯이 서로의 약점을 파헤칩니다. 남이 잘되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반면에 남이 수치를 당하는 것을 고소해 하면서 은근히 즐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취해야 할 생활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서로를 배려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피해를 입히고, 황당한 일을 겪게 하는 사람까지 배려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를 가만히 끊고자 했던 요셉은 의인이라고 불릴 만큼 성숙한 사람이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말이나 행동 뿐 아니라 인격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의인이었던 요셉이 마리아를 배려하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서로를 아껴주고 배려하면서 사랑이 넘치는 신앙공동체를 이뤄갔으면 좋겠습니다. 배려 – 우리 기독교인들이 마음에 품고 실천하기를 애써야 할 신앙의 덕목입니다.-河

아리마대 사람 요셉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구약성경의 역대상 앞부분을 읽고 있는데 사람들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아담부터 시작된 족보가 무려 첫 9장을 차지하고 있으니 성경에서 가장 긴 인명록일 것 같습니다. 역대상 뿐 아니라 신구약 성경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성경 자체가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크게 세 부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들. 이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성경의 주인공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나아가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3주 동안 세 명의 인물을 차례로 살펴볼 것입니다. 이들은 똑 같이 “요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하나님께 속한 인물들입니다. 오늘 살펴볼 첫 번째 인물은 예수님을 자신의 무덤에 장례한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다음 주에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2007년 마지막 주에는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에 대해서 차례로 설교할 예정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산헤드린의 의원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요셉의 이름을 대면 알 만큼 명예와 부와 권력을 모두 갖고 있었던 소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요셉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만났었는지, 아니면 전해 듣고 믿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요셉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회적 지위와 유대교의 눈총 때문에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숨기고 지냈습니다.

요셉은 선하였지만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로 결정하는 공회 석상에서 요셉은 공회의 결정에 혼자서 반대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신앙양심을 지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아리마대 요셉은 “당돌하게”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인수받고 자신의 묘지에 장사지냅니다.

그는 더 이상 숨어서 믿는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세상으로 나가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담대히 선포하고 신앙양심대로 행동했던 정말로 성공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河-

광야에서

지난주일 설교 제목은 “광야에서”였습니다. 우리들의 인생길이  광야와 같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광야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말씀드렸지요.

첫째로 광야는 말 그대로 척박한 환경입니다. 광야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허둥지둥 정신없이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둘째로 광야는 불안한 곳입니다. 광야는 통과해야 할 길목이지 정착할 곳이 못됩니다. 그러다보니 인생의 광야 길을 걸으면서 안정되었다싶으면 또 다시 문제가 터지고 안절부절 못하게 됩니다. 셋째로 광야는 참 외로운 곳입니다. 오아시스를 만나기 전에는 혼자서 외롭게 광야 길을 걸어야 합니다.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인생의 광활한 광야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광야 길은 통과해야 합니다. 중간에 멈추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주일에 광야 길을 통과하는 마음가짐으로 자신감과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소개했습니다. 인생의 광야 길에서 자신감을 잃으면 큰 일 납니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가 광활한 사막에서 엔진고장을 일으킨 것과 같습니다.

광야 길을 통과할 때 우리가 바라보고 추구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에서 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믿음 안에서 자신 있게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시편 68편에서는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갈 때, 우리들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시편 68편 4절에서 하나님을“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분”으로 소개합니다.

우리들이 인생의 광야 길에서 헤매고 지쳐서 방황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구름을 타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신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들이 광야 길을 걸어가지만, 하나님께서는 광야 길을 구름을 타고 날아가십니다. 수준이 다르지요!

인생의 광야 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동행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행하시면서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평탄케 하십니다. 생명의 단비를 흡족히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더불어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가는 주님의 백성들은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河-

2007년의 마지막 달을 맞으며

황금돼지해라고 야단법석을 떨면서 시작했던 2007년도 한 달 남았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사업체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정신없이 여기까지 달려오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지나온 11개월을 돌아보면 삶의 굽이굽이에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함이 넘칩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 역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 때문임을 조금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을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한 해를 마감하면서 할 일도 많고, 가셔야할 모임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새해가 눈앞에 닥칠 것입니다. 이렇게 분주한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면서, 우리 서머나 식구들께 다음의 세 가지를 꼭 부탁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말씀읽기입니다. 그동안 배우신 큐티를 12월 한 달 동안은 남다른 각오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꼭 큐티가 아니어도 매일같이 성경을 펼쳐서 한 절이라도 읽고 그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발걸음의 등불이요, 우리가 가는 길의 빛이라 고했습니다. 말씀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을 때, 우리의 삶은 한층 밝아지고 희망찰 것입니다.

둘째는,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새해에 하나님 앞에서 하셨던 서원이 있다면 한 해가 가기 전에 실천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원을 갚는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께 우리들의 마음과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들 인생의 주인(主人)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했던 약속가운데 아직 이행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한 해가 가기 전에 지키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홀가분하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12월 한 달 동안 크건 작건 좋은 일을 한 가지 이상 하는 것입니다. 선행은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을 베푸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작은 일이라도, 가족이나 친지 아니면 생면부지의 이웃들에게 선행을 베풀어보십시오. 행복해 지실 겁니다. -河-

큐티 : 이렇게 하십시오

큐티학교가 성황리에 진행 중입니다. 20여분이 성경공부에 참석하신 것은 우리 교회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큐티를 가르치는 것이 신이 납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신바람 나는 체험입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억눌려 살다가 주일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도 신명나는 축제입니다. 우리 같은 부족한 피조물이 손을 조아리고 작은 입술을 벌려서 기도했는데, 그 기도제목이 이루어질 때는 기쁨이 샘솟습니다. 어린 아이가 바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이루었듯이, 우리의 작은 정성이 세상을 밝힌다고 생각하면 가슴 벅찬 감격과 감사가 있습니다.

저는 서머나 성도님들이 우리 교회에서 신나게 신앙생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들과 한 마음이 되어서 신나게 목회의 꿈을 펼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오늘은 큐티 학교에 오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큐티하는 순서를 간단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참고하시고 그대로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1) 큐티는 찬양과 기도로 시작합니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간절히 찬양을 부를 때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 마음이 활짝 열립니다. 하나님 말씀을 밝히 깨닫기 위해서 눈이 열려야 합니다. 시편 119편 18절의 말씀을 갖고 기도하십시오.:“내 눈을 열어서 주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2) 주어진 본문을 자세히 읽으십시오. 큐티 속에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주보에 있는“첫 아침을 주님과 함께”에서 그 날에 해당하는 본문을 자세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3) 본문 속에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을 붙잡고 묵상하십시오. 한 단어도 좋고, 한 구절도 좋고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오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생명의 양식이라고 믿고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4)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결단의 기도로 마치십시오. 오늘 받은 말씀을 하루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로 큐티를 마무리합니다.

간단히 소개했지만, 서머나 식구들 모두 매일같이 큐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