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 끊을 수 없는 사랑

로마서 8장은 구절구절 주옥같은 말씀으로 이뤄져있습니다. 12월 한 달을 로마서 8장과 함께 지내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주일에 말씀을 듣고 주중에는 개별적으로 말씀을 묵상해 오셨다면 하나님 말씀의 깊은 맛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혹시 바쁘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말씀 묵상에 참여하지 못하셨다면 남은 삼일 동안 로마서 8장을 읽으시고 곱씹으시면서 말씀의 은혜를 흠뻑 체험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로마서 8장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라는 힘찬 선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을 법을 이겼다는 확신에 찬 고백이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를 비교하면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케 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하는 성령을 쫓아 살아야 함을 깨우쳐주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서”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는 말씀도 나눴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육신의 생각을 쫓을 때가 많이 있고, 어그러진 세상에 살다보면 죄악된 세상과 똑같이 신음하고 탄식합니다. 그때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 주신다는 말씀 앞에 큰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 뜻대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니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절)는 말씀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확신이요, 능력이요, 자신감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로마서 8장의 피날레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과 그 결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만도 감지덕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소개됩니다. 네 가지 질문으로 시작되는 각 단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이 쓰일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고발당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고난이나 가난, 위험이나 심지어 죽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바울이 고백하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대로 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고 죄에서 자유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유혹,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河-

로마서 8장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우리는 이제 로마서 8장의 한 가운데 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고난이 닥칩니다. 삶 속에서 겪는 신음이 있습니다. 세상을 둘러보아도 탄식이 나옵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 주신다는 말씀을 지난 시간에 나눴습니다.

힘겨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당황스러운 순간입니다. 때로는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해주신다는 말씀이 은혜로웠습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28절입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 삶의 모든 것들과 신앙생활의 모든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룹니다.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신음과 탄식의 순간들이 닥치지만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고백은 매우 강력한 말씀입니다. 28절 말씀을 믿는다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하나씩 대응해 나갈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뜻 또는 계획)가 들어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선으로 끝난다는 믿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축복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려는 육신의 생각과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다음 구절에 자세히 나옵니다. 29-30절의 다섯 가지 중요한 표현들입니다:“미리 아신 자들” “미리 정하셨으니” “또한 부르시고” “또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부르시기로 정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의롭게 하시고 결국 영화롭게 하십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를 가리킵니다. 결국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대로(계획하심대로) 부르심을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우리는 그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축복이 임합니다. 할렐루야!-河-

로마서 8장 : 성령의 탄식

로마서 8장에는‘성령’이라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무려 스물한 번 등장하는데 로마서는 물론 성경 전체에서 한 장(chapter)에 성령이란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오는 횟수일 것입니다. 성령뿐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하나님의 사역이 잘 나타납니다.

육신이 할 수없는 것을 성부 하나님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셨고, 육신에 죄를 정하셔서 그를 믿는 자들을 죄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모두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양자의 영을 받으므로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은 “생명의 성령“ ”하나님이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다양하게 불립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생명과 평안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들을 괴롭히는 죄의 행실에서 해방되도록 돕습니다. 이처럼 로마서 8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모두 소개되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25-26절은 18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 얽매여 있던 우리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되었습니다. 사망으로 이끄는 육신의 생각에 머물지 않고 생명과 평안을 주는 영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니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을 향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이나 삶이 하나님 자녀의 완전한 모습은 아닙니다. 모든 세상이 죄로부터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종종 탄식이 나오고 한숨이 나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피조물들도 탄식한다고 본문은 말합니다(22절).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질병에서도 해방되고, 근심과 염려가 없는 말 그대로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매우 힘들게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지만 신음하고 탄식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의 탄식과 약함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말합니다. 신음이 나오고 탄식이 나올 때는 기도도 나오지 않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다급한 상황입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들이 탄식하고 신음하듯이, 성령 하나님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기도해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시고 공감하신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통하시니 성령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탄식이 하나님께 전달됩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지쳐서 기도할 수 없을 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더욱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河-

하나님의 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는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목요서신도 쉬었습니다.^^

2주 전 목회서신의 제목이
“은혜의 단비”였지요.

지난 3년여 극심한 가뭄으로 시달린
샌프란과 캘리포니아에 비가 내린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들 신앙과 삶에도 은혜의 단비가 내리길 소망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가 내려서
가뭄 해갈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폭우가 쏟아져서
도로가 물에 잠기고, 샌프란 주택가에 싱크 홀도 생기고
우리 교회도 빗물이 아래층으로 역류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어제 오전 내내 박권사님 내외분과 청소했습니다.
미래와 주영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물이 차서
이번 주 학교를 쉰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 앞으로도 계속 비소식이 있습니다.
물이 차고, 도로가 미끄럽고 아무래도 비가 오면 생활하기가 불편하지만
이번 기회에 가뭄이 말끔히 해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한꺼번에 비가 내리지 않고
조금씩 분산해서 내려주신다면
우리 교회는 물론
빗물도 잘 저장해 놓을 수 있고 더 바랄 것이 없겠군요.^^

2.
가뭄이 들 때는 영원히 비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내로 캘리포니아가 사막으로 변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나왔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이렇게 많은 비가 단숨에 내려서 가뭄을 해소해 줍니다.

우리들 인생길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최악의 사태를 상상하면서 불안해하고 심하면 절망합니다.
영원히(?)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 않은 ‘깜깜함’입니다.

하지만
인생길에 가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 기다리면 단비가 흡족이 내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것을 두고 ‘하나님의 때’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시간이 임할 것을 믿고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3.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여호수아 21장 43-4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정착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라는 말씀은
창세기의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는 약속이니
거의 600년 만에 이뤄진 셈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수21:45)
Not one word of all the good promises that the LORD had made to the house of Israel had failed;
all came to pass. (Jos 21:45 ESV)

2014년의 마지막 달을 살고 있습니다.

감사할 일들도 많이 있지만
어떤 일들을 생각하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 지,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과 염려를 밀려옵니다.
그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케 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믿음은 인내(perseverance)라고 생각합니다.
소망 중에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남김없이 응할 줄 믿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차근차근 앞을 보며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믿음 안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때”를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측불허의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하나님의 때를 살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걸어가는 신앙의 길, 인생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2.4 이-메일 목회서신)

은혜의 단비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녁을 먹고
아내와 근처 학교까지 산책을 했습니다.

비가 내린 다음에 걸으니
공기가 참 신선하고
덩달아 기분도 상쾌했습니다.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 반짝입니다.

비가 조금 더 왔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
집에 와서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토요일까지 비가 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직 비를 만들지 못합니다.
그저 하늘을 바라볼 뿐입니다.

2.
지난 몇 년간 캘리포니아는
유래 없는 가뭄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입니다.
운전하다 보면 가뭄이 심하니
물을 절약하자는 광고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이 정도의 비로 가뭄이 해소될 수는 없습니다.
기상청에서는 앞으로 수년간
캘리포니아에 가뭄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보합니다.

그러던 차에
비가 내리니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지요!

3.
단비를 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참빛 교회 식구들의 마음과 삶에도
은혜의 단비가 내리길 기도했습니다.

행여나
마음이 갈급하고
메마른 분들이 계시다면
은혜의 단비로 촉촉히 적셔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비를 기다리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신32:2)
May my teaching drop as the rain, my speech distill as the dew, like gentle rain upon the tender grass, and like showers upon the herb.  (Deu 32:2 ESV)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에 충분한 비를 내려주시고
참빛 교회 식구들 신앙과 삶을
주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1.20 이-메일 목회서신)

로마서 8장 : 생명과 평안

지난 시간에는 로마서 8장의 첫 번 네 구절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되었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물론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육체에 죄가 침투하면 순간적으로 죄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줍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날마다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5-8절에서는 사람을 둘로 구분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여전히 죄와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의 일은 세상의 쾌락과, 자신을 위한 욕심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교만입니다. 세상 속에서 자신만이 주인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길 원하기에 하나님을 마음에 모실 수 없습니다.

반면에 영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여기서 영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가리킵니다. 9절에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인생의 주님(Lord)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집이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면 11절에 있듯이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 임합니다. 이처럼 영을 따르는 사람은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과 영을 따르는 사람은 확실하게 차이가 납니다. 우선 육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겉으로 또는 속으로 대적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부정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법을 따르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 죽음으로 끝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고 성령을 쫓아 행하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을 생각합니다. 생각 자체가 육신을 쫒는 자와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영원한 생명에 참예하게 됩니다.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따라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국 평안을 되찾습니다. 순간적으로 흔들려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회복하고 신앙과 삶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갑니다.

영을 쫓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변호해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면서도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생각으로 충만하니 생명과 평안이 그를 다스립니다. 생명의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참빛 교회 식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河-

로마서 8장 : 생명의 성령의 법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였습니다. 표어대로 전반기에는 전교인을 대상으로 <신앙터잡기> 성경공부를 하였고, 주일 설교에서도 참빛 성도님들의 신앙성숙을 위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제 201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더욱 튼튼히 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원해서 로마서 8장 말씀을 연속해서 전하기로 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신약성경은 물론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이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로마서가 16장이니 8장은 정확히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무엇보다 로마서 8장은 1-8장에 이르는 로마서 전반부의 결론이자 9장 이후를 열어주는 대문입니다. 로마서 앞부분을 모두 읽지 않아도 8장만 올바로 이해한다면 로마서 말씀을 쉽게 포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로마서 8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인 1-17절은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지위와 삶을 설명합니다. 두 번째 18-27절은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누릴 영광을 밝히 보여줍니다. 1-17절이 예수님을 믿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모습이라면, 18-25절은 장차 완성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의 삶으로 미래를 지향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26-3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느 정도로 사랑하시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알려주는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이처럼 로마서 8장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며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1-4절은 로마서 8장의 서두이자 7장과 8장을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죄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놓고 탄식했습니다.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싶지만 실제로 육체의 법에 종이 되는 자신을 보면서“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7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표현이“육신(flesh)”입니다. 여기서 육신은 우리의 몸(body)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지배를 받는 삶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곧 육신의 삶입니다.

바울이 육신에 침투한 죄와 그 결과를 놓고 고민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바울에게 새로운 소식, 기쁜 소식이 임했습니다. 7장 25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찬송합니다. 그리고 8장 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라고 하나님께 감사했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이제”라는 표현은 과거의 삶이 지나가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을 암시합니다. 바울의 고민과 비참함이 사라졌음도 예고합니다.

죄가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여기서 정죄는 재판정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다고 선포합니다. 죄가 사라졌습니다.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고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죄가 사망의 법을 갖고 오는데 비해서 성령은 생명의 능력을 갖고 왔습니다. 따라서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은 능력이요 은혜요 사랑입니다. 할렐루야! -河-

감사

오늘은 2014년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알다시피 지금부터 394년 전인 1620년 102명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후,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디안 추장의 도움과 불굴의 신앙심으로 첫 번째 추수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감사와 기도의 날을 제정했고, 남북 전쟁 중에 아브라함 링컨이 추수감사절을 국가 공휴일로 정하면서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길 추수감사절이지 영어 그대로 하면 “감사절(thanksgiving day)”입니다. 또한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제쳐놓고도 일년 중에 하루를 감사절로 지킬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뜻 깊은 일입니다. 그것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감사의 날이 있으니 더욱 의미가 큽니다.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저는 다리미질하는 것을 좋아해서 가족들의 옷을 거의 다 제가 다립니다. 세탁기에서 갓 나온 구겨진 옷들도 다림질을 하면 반듯하게 다려집니다. 와이셔츠를 예로 들면, 갓세탁한 와이셔츠는 쭈글쭈글 심하게 구겨져 있습니다. 그대로 입고 나갔다가는 창피당하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고급 넥타이를 해도 와이셔츠가 구겨져 있으면 옷맵시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내서 구겨진 와이셔츠를 다리면 금방 새 옷으로 변합니다. 새로 다린 옷을 입을 때 느끼는 쾌감도 있습니다. 다림질은 서둘러 해서는 안됩니다. 높은 온도의 다리미를 서둘러 움직이면 자칫 주름이 더 생기고 그것을 복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다림질은 대충해서도 안됩니다. 평면은 쉽지만 어깨나 소매 등은 정성껏 대려야 반듯해집니다. 다리미가 지나가지 않은 부분은 여전히 쭈글쭈글 보기 싫어서 꼼꼼하게 다리미를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다림질을 하면서 감사를 떠올리곤 합니다. 우리들 인생길도 만만치 않게 쭈글쭈글 구겨져 있습니다. 경기가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우리네 살림살이는 늘 쪼들립니다. 남들은 자녀들도 잘 키우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 같은데 막상 자신에게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닥칩니다. 갑자기 건강에 빨간 불이 켜져서 가슴 졸이면서 한 해를 보내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인생길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염려와 근심으로 구겨져있고, 불안과 두려움은 인생길에 골을 새겨놓습니다.

그때 우리의 인생을 반듯하게 펴 주는 것이 ‘감사(thanksgiving)’입니다. 감사는 염려와 근심으로 구겨진 인생을 활짝 펴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감사하면 여유가 생기고 마음 깊은 곳에서 소망의 빛이 비춰 옵니다. 그리고 기쁨이 생깁니다. 감사와 기쁨은 서로 짝입니다. 저는 옷을 다리면서 제 삶을 생각하고, 다림질을 하면서 감사로 제 삶을 다려봅니다.그래서 다리미질 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다림질이 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다림질을 통해서 옷들이 반듯하게 펴지듯이 감사로 제 삶이 반듯해 지길 기도하면서 옷을 다리곤 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감사는 날개를 가지고 있어서 가야 할 곳까지 날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가진 것에 감사하십시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입니다. 만약 갖고 있지 않은 것에 계속해서 마음을 쓴다면,당신의 인생은 늘 부족해서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딤전4:4)라고 깨우쳐줍니다. 감사는 우리들 인생길을 날아오르게 합니다. 감사는 더욱 풍성한 삶을 살게 만들어줍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감사는 우리의 삶을 반듯하게 다려줍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감사하라고 국가가 정해준 뜻 깊은 날입니다. 요즘은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 감사절의 본래 의미를 빼앗아버렸지만, 감사절의 본뜻을 되찾아야 와야 합니다. 지나 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감사를 세어보고 여기저기 보기흉한 구김살들을 감사로 반듯하게 펴는 감사절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고 보니 감사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커다란 축복입니다. 복된 추수감사절 맞으십시오.(2014년 11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신앙의 인물 – 땅콩 박사와 최씨부인

이번 연속설교에서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본받을만한 신앙의 인물들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땅콩박사로 유명한 조지 워싱턴 카버(Washington Carver)와 한국인 최초 해외선교사였던 최씨 부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워싱턴 카버는 흑인 노예의 아들로 1864년에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노예상인들에게 잡혀가면서 어린 시절을 힘겹게 보냈습니다. 워싱턴 카바는 매우 총명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림과 예술에도 재능이 있었고 비록 노예 신분이지만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성품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림을 배우러 다니던 부부의 추천으로 흑인들을 받아주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중에는 아이오와 주립대학으로 옮겨서 농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워싱턴 카버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땅콩이었습니다. 농부들이 땅콩을 많이 재배하고 수확하는데 보관할 방법이 없어서 버려지곤 했습니다. 대학 연구소에서 일하던 위싱턴 카버는 땅콩을 사용해서 피넛 버터를 만드는 등 땅콩을 사용한 가공식품을 발명하게 됩니다. 땅콩 연구로 유명해 진후에는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서 수입땅콩에 관세를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세법개선책을 의회에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생 땅콩을 연구하면서 사회에 공헌하는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번째로 살펴볼 최씨 부인 최나오미는 1873년 개성에서 출생했습니다. 당시 풍습에 따라 젊은 나이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술주정뱅이에 노름꾼입니다.. 게다가 아이를 갖지 못한 탓으로 시댁 어른들의 냉대도 극에 달했습니다. 어려운 삶을 살던 최씨 부인은 서양 사람들이 이상한 종교를 전한다는 소문을 들었고 선교사들이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낙천적이고 활발한 성격의 최씨 부인은 성실하게 예배에 나갔고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핍박도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습니다.

외출이 잦은 아내를 의심한 남편이 최씨 부인의 뒤를 쫓아서 몰래 예배에 참석합니다. 남녀가 따로 앉아 있고 선교사가 전하는 말씀이 틀리지 않은 것을 보고는 결국 남편도 예수님을 믿게 되고 나중에는 선교사 집에서 집사로 일하게 됩니다. 최씨 부인의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감리교회의 전도부인으로 임명되어서 원산 근처에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기 몸에서 낳은 아이는 없지만 어려운 아이를 양자로 들여서 친자식처럼 키웠습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최씨부인은 시베리아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해외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시베리아에서 일 년 동안 선교를 하고 귀국해서 개성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평생 여성운동을 펼치다가 1949년 하나님께 갔습니다. 여성의 몸으로 해외선교사로 나갈 정도의 열심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더 많은 인재를 키우는 선교사역에 힘쓴 최나오미 부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모두 완수하면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던 신앙의 인물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귀감이 되는 신앙의 선배들이 계심이 자랑스럽고 도전이 됩니다. 우리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河-

아이성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의 성경읽기가
여호수아서까지 왔습니다.

여호수아 말씀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읽기만 해도 신이 납니다.

오늘 새벽에는
여리고성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을 맞닥뜨리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길갈에서 열두 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이었지만
순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너뜨립니다.
일곱 바퀴를 돌고 크게 함성을 질러서
성이 무너졌다는 말씀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나타내줍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이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일어난 일인데도
마치 자신들이 한 공적처럼 생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교만해졌습니다.

이것은
여리고성 다음에 아이성을 정복할 때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보냈는데
이들이 오더니 별 것 아니라고 보고합니다.
단지 이삼천 명만 올라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얕잡아 보았습니다.
적당히 대응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공격했을 때
이스라엘은 처참하게 패배합니다.

2.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에서 패배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위에서 말했듯이
아이성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하게 대응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이스라엘은
두 번째 공격을 할 때는
삼만 명의 군대를 보내서 승리를 거둡니다(8:3).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것 하나 얕잡아 보거나
교만한 마음으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둘째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면서
그 어떤 탈취물도 개인적으로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간이란 사람이 외투와 금과 은을 몰래 감췄습니다(7:24)

한 사람의 범죄함이
이스라엘 온 민족에게 미쳤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것을 묵인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쉽게 넘어갈 것 같은 사소한 일들
우리 삶 여기저기에 버려진 작은 죄들
몰래 행하는 작은 일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데 장애가 되는군요!

3.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사소한 잘못이나 부끄러운 부분까지
점검해서 하나님께 내어놓기 원합니다.

작은 것들에 마음을 쓰고
세세하게 챙기고
관리하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6:10)
“One who is faithful in a very little is also faithful in much,
and one who is dishonest in a very little is also dishonest in much. (Luk 16:10 ESV)

하나님 아버지,
주님으로부터
작은 것에 충성했다고 칭찬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4.11.6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