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성 길가에서 구걸을 하던 소경 바디메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칩니다. 주변사람들이 그를 윽박지르고 핀잔을 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외쳐 부르짖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의 불쌍한 인생에 빛이 비추고, 예수님의 은혜로 새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메오 앞에서 발길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멈추심과 부르심은 소경 바디메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순간순간 필요한 은혜입니다. 우리들 삶의 여정에서 발길을 멈춰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간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 8:4)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소경 바디메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겉옷을 두고 뛰어나갔습니다. 겉옷은 일교차가 심한 중동 지역에서 밤마다 이불역할을 합니다. 앞에 펼쳐놓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귀에 동전을 던져줍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필수품을 버려두고 예수님께 나간 것입니다. 또한 겉옷을 둔 것은 자신을 두르고 있던 것을 버린 것입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갔음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메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바디메오는 소경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불려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눈이 뜨는 것을 원했을 텐데 예수님께서 그에게 질문하십니다. 바디메오는 “(다시)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얼른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이나 바디메오의 대답이나 당연한 것을 묻고 답한 셈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보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을까요? 본문이 속한 마가복음 10장 앞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그를 시험하기 위해서 이혼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느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혜롭게 대답하십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와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왕이 되면 자신들을 좌우에 앉혀 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는지 되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경 바디메오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소경에게 먼저 질문하십니다.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당시의 기득권자들인 유대지도자들이나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하고 부탁했지만, 불쌍한 소경을 앞에 두고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질문하십니다. 시험하는 질문도 아니고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질문도 아닙니다. 소경의 입장에서 가장 답하기 쉬운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여리고 소경의 입에서 다시 보기를 원한다는 고백을 듣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상황을 구체화하시면서 소경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시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바디메오의 눈이 밝아 졌습니다. 다시 보게 되었으니 하고 싶은 일들이나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자신이 더 이상 죄인이 아님을 밝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디메오는 그 길로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소경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부르짖는 행동부터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결심까지 우리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바디메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신 예수님, 그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시고 다시 보게 해 주신 예수님, 우리들도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간절히 구하고 은혜의 손길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