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엊그제 신문에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 대한 소개가 실렸습니다. 그곳에서는 특별한 것을 요청하지 않았고 그냥 와서 편하게 명상하고 마음을 수련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그 종교로 귀의하고 그렇지 않아도 마음 편하게 모임에 참석하면 된답니다. 요즘 세대에 잘 맞는 종교적 처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종교를 믿는 것은 일단 편할 것입니다. 내가 편한 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우리 기독교는 신자들에게 확실한 믿음과 분명한 결심을 요청합니다. 우선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님보다 더 확실한 길이 없기에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요청합니다. 물론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생각하고 마음이 열렸을 때 지난주에 배운 것처럼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됩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음으로 신앙의 세계에 들어왔음을 온 교우들 앞에서 고백하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인격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기독교에서 확실한 믿음과 결심을 요청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실제로 체험하고 나면 저절로 믿음이 견고해 지고 하나님만이 구원자라고 스스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신앙의 진수인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가장 큰 비결은 바로 기도입니다. 지난 번 연속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접촉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세 주간에 걸쳐서 살펴보게 될 시편 116편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한 시편기자가 성전에 예배하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고백하는 간증이자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양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셨지요.

그렇게 하나님을 체험하고 난 시편기자는 오늘 본문 1-2절에서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고백입니다.:“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맞습니다. 우리들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순간순간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맞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고난도 맞이합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시는 참빛 교회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

빛으로 오신 예수님

신약성경 요한복음 1장은 구약 성경이 시작되는 창세기 1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되기 이전에 세상은 공허했고 어둠이 깊었습니다. 하나님께서“빛이 있으라”말씀하시니 빛이 생겼고 그때부터 어두운 세상이 빛으로 밝아졌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의하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로고스”인데 이것은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진리”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창조될 때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창조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이처럼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소개합니다. 말씀과 더불어 중요한 단어가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생명”과“빛“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두움과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1장 9절에서는 예수님을“참 빛(true light)”으로 소개합니다.:“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을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이 말씀은 첫째로, 예수님께서 세상을 비추는 유일하신 빛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비추는 빛이 여러 개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세상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심을 우리 모두는 똑같이 고백합니다. 둘째로, 예수님만이 진리이심을 보여줍니다. 참 빛을 다른 말로 ”진리의 빛“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이 진리라고 했듯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빛도 진리입니다. 진리 안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우리들의 신앙은 물론 삶도 밝아질 수 있습니다. 셋째로 참 빛 되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각 사람을 비추십니다. 예수님의 빛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빛 되신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인 것을 뜻할 것입니다. 오늘날도 빛 되신 예수님을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어두움의 세력이 모두 물러날 것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때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집니다.

우리 교회 새 이름은 바로 요한복음 1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참 빛은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참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와 각 성도님들을 빛으로 밝혀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참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언제나 새로운 생명으로 임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참빛 교회가 빛 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 속에 생명의 빛으로 나가길 원합니다. SF 참빛 교회로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 위에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진리로 임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길 기도합니다.-河-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 (2)

올 해 우리 교회 표어인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는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통해서 표어의 첫 번째 부분인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입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을 무엇보다 교회 식구들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표어의 두 번째 부분인 “섬김”에 대한 말씀을 나눕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예수님으로부터 임했듯이, 그리스도인의 섬김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섬김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빌립보서 2:5-8절에서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종의 형체, 즉 인간의 몸으로 입고 오신 성육신 사건을 언급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신 것이 곧 섬김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높은 곳에서 낮은 자의 자리로 내려오셨듯이 우리들 역시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교만해서는 섬길 수 없습니다. 높은 자리를 고집해서도 섬길 수 없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신 예수님의 섬김을 우리들도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섬김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섬기셨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섬김은 구원사역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섬김의 삶을 살 때,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로 돌아 올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매시고, 대야에 물을 떠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섬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발을 씻긴 놀라운 순간입니다. 발을 모두 씻기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내가 주와 또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예수님께서 친히 섬김의 본을 보이심으로 우리들에게도 섬김의 삶을 살 것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섬김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섬김 속에서 자신은 죽고 온전히 하나님과 이웃만이 드러납니다. 섬김은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고,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올바른 섬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섬김의 삶을 기억하시고 은밀히 갚아주십니다. 섬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시고 그리스도인만이 누리는 행복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 섬기는 서머나 식구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 (1)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사랑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연초에는 이삭에 대한 연속설교를 하느라 표어에 대한 말씀을 나눌 기회가 없었습니다. 물론 틈틈이 올해 표어를 언급했었지만 늘 부족했습니다. 이제 6월이 지나고 2011년도 하반기를 맞게 됩니다. 지금까지 잘 하셨지만 하반기에는 더욱더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두 주 동안 올 해 표어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핏값으로 사신 거룩한 모임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도들은 그 몸의 지체로 비유합니다(엡4:15-16). 각각의 지체가 모두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각자 맡은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건강한 지체가 건강한 몸, 곧 튼튼한 교회를 만들 것입니다.

교회의 사역을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worship), 복음과 사랑을 세상에 전파하는 구제와 선교 (Evangelism),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양육(education), 성령 안에서 서로 사귀는 교제(love)입니다. 교회는 이상의 네 가지 – 예배, 구제와 선교, 양육, 교제-를 통해서 균형 있게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샘(WELL)인 교회로부터 생명수가 세상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이 모든 교회의 사역은 사랑과 섬김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교회를 이루는 뿌리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교회는 세상의 사교단체 또는 자선단체와 똑같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물론 교회도 소망가운데 거합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교회는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델 하우스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충만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 위에 사랑이 더해져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교만이나 위선이 되기 쉽습니다. 사랑이 빠진 소망은 구원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엄격한 잣대만을 제시합니다. 사랑은 우리들 신앙에 힘을 주는 에너지입니다. 사랑은 신앙의 꽃이요 열매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삶 속에 드러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사랑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거저 받은 것이기에 우리들 역시 이웃과 세상에 그냥 나눠줘야 합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도“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들은 이처럼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눠야 합니다. 그 중에 먼저 믿음의 가정들, 우리 서머나 식구들께 사랑을 나눠줘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행함과 진실함 그리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교회로 자라가길 우리 함께 노력합시다. -河-

기도실천

기도에 대한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는 오늘까지 6주에 걸쳐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거의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눕니다. 성도님들의 신앙은 물론 우리 교회 사역에 기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면서 교회에 기도의 열기가 뜨겁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함께 모여서 기도할 시간과 장소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대신에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에 5분씩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부탁드렸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실천하고 계시는 줄 압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제목이 이루어지는 것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나 중심의 기도에서 하나님과 이웃으로 기도의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가 기복신앙이나 자기최면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바라보시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과 기도 가운데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기도시간에 만나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제목들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를 위해서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겸손은 하나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는 진정한 회개가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 되었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겸손한 기도 속에는 삶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서머나 식구들께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시길 다시금 부탁드립니다.

우리들은 또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살길입니다. 기도가 우리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연결시켜주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속으로 데려갑니다. 기도하지 않고 신앙이 자랄 수 없습니다. 기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첫 시간에 배운 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믿어지는 하나님을 꼭 붙잡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적어도 기도시간 만큼은 세상의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세상의 욕심과 자랑 그리고 교만도 내려놓고 하나님과 단둘이 골방에서 대화하셔야 합니다.

실제로 무릎 꿇고 기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진실 되게 기도하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기도할 것을 세 번씩 명령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마 7:7). 기도에 대한 삼중명령은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애타는 부탁입니다.

 또한 세 가지 명령이 기도에 대한 각기 다른 교훈을 줍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기도를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문을 열어주실 때까지 두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경우에 맞게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선한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분명히 체험하시길 바랍니다.-河-

겸손의 기도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또는 사귐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 보면 기도가 얼마나 커다란 특권인지 깨닫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들의 마음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기도는 자기최면이나 허공에 외치는 한탄에 불과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서머나 식구들 신앙 가운데 든든히 자리 잡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기도드리는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구약성경 시편 50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시 50:12)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되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은혜로 없애주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구원자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만약에 우리의 기도가 허공을 치고 힘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식었다는 표시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로 나올 때마다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성품, 손길, 역사를 묵상하면서 하나님 품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하 7장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긴 기도(역대하 6장)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이 기도의 집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백성들이 성전에서 기도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길 바랐습니다. 솔로몬이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드리는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장 15-16).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들과 함께 하십니다.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을 항상 생각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라면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겸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들의 망가진 삶을 고쳐주심을 기억하십시다. 겸손히 주님 앞에 나가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河-

믿음의 기도

앞으로 3주 동안은 기도에 꼭 필요한 덕목들과 기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기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흔히 기도를 두고 자신의 바람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도의 지경은 넓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로부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기도까지 기도의 지경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간구”입니다. 기도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귀는 시간입니다.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기도를 하나님과 나누는 친밀한 대화라고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우리의 기도제목만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양방향 소통인 셈입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신비로운 체험입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기도는 허공에 대고 외치는 하소연이나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게 되고, 우리들 역시 살아계신 하나님 품속에 거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19장의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올라가서 당시의 강국인 앗시리아 왕이 보낸 선전포고문을 펼쳐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믿음은 물론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펼쳐놓은 선전포고문을 읽을 수 있으시고 자신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왕하 19:16). 하나님을 향한 히스기야 왕의 믿음은 이처럼 실제적이었고 확실했습니다. 그에게 이정도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죽을병에 들었지만 기도함으로 15년의 생명을 연장받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야고보서 말씀에서도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깨우쳐 줍니다. 여기서 믿음은 단지 우리가 기도한 것이 응답될 것이라는 자기 최면식의 믿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믿음에 반대되는 표현인 의심이라는 말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의심 역시 우리가 기도한 내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그 기도가 응답되기가 힘이 듭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있습니다.:“오직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라”(6절).이것이 올바른 기도의 첫 번째 덕목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입니다. 바람이 불면 바닷물은 한 군데 있지 못하고 요동을 칩니다. 의심하는 마음은 이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시키지 않고 세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둘째로 의심을 “두 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두 마음은 하나님의 존재 유무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믿음의 기도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河-

기도의 지경

기도에 대한 말씀을 연속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세 주 동안에는 기도의 파장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기도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정과 교회로 동심원을 그리면서 펼쳐나가야 합니다. 반대로 그 파장은 교회와 가정으로부터 우리들 각자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안으로 밀려들어와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의 파장이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퍼져나가고 밀려들어올 때, 온 교회로부터 각 성도님들에 이르기까지 기도의 물결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강력한 기도의 파장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물론 가정과 개인의 삶이 기도를 통해서 세워짐을 구체적으로 체험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물결에 참여하고 실제로 기도의 사람, 기도의 가정, 기도하는 교회를 세워나갑시다.

이제 오늘은 우리의 기도가 어떤 지경으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 기독교에‘나만 복 받으면 된다’는 식의 개인주의가 팽배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여기서 기도의 지경이 자기 자신, 자기 가정 그리고 기껏해야 자기 교회정도에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것도 복을 달라고 하는 간구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연약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하기에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릴 틈이 없을 만큼 다급할 때도 많습니다. 또한 처음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으면, 기도가 자신의 소원이나 마음을 드리는 것에 머물게 됩니다. 처음 예수 믿는 신앙을 어린아이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것을 먼저 챙기고 자기만 더 많이 가지려고 하듯이,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졌을 때는 자기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의 지경이 늘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란 표시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 하나님을 위한 기도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달라는 간구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묻는 기도로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던 어린아이가 철이 들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행실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때가 되면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배운 대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대신에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실천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다면 괜찮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연령으로 말하면 사춘기를 지나서 청년기에 접어든 셈입니다.

우리들이 나이가 들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연락하지 않던 지인들과도 교제를 시작하고, 무엇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마지막 지경은 이웃을 위한 기도입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거쳐서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도까지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 말씀이 기도의 지경을 잘 보여줍니다.: “1)하나님이여 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땅에 있는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아멘 -河-

기도의 사람

기도에 대한 연속 설교 세 번째 시간입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교회가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살펴보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우리들의 가정이 기도하는 가정이 되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공동체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우리가 생각해도 그리 완벽해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로 모이기를 바라십니다. 나 혼자 잘되고 나 혼자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니라 비록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를 바라십니다. 따라서 좋은 교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가 그냥 세워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로 세워집니다. 서머나 식구들께서 기도의 체인으로 연결되고, 기도 가운데 사랑을 실천하실 때 더욱더 멋진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둘째로 가정이 기도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보금자리입니다. 세상의 삶에서 지치고 힘들 때 가정에 돌아오면 편안한 쉼과 재충전을 얻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입니다. 가정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키우고 세우는 터전입니다. 요즘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들까지 세상의 풍조와 유행을 따르고 있기에 안타까움이 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부로 맺어주셨고 그 안에서 가정을 허락하셨음을 믿고 신앙의 가정을 세워가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로 가능합니다. 부부가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고, 부모와 자식들이 둘러앉아서 기도하고, 할머니 권사님들도 장성한 자녀들과 후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정은 어떤 세상의 파도가 닥쳐와도 능히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 번째 시간은 우리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교회와 가정이 서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가족과 교회 식구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뒷전에서 기도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기도의 사람이 되어서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골방기도가 풍성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 기도하는 것은 실제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나가서 벌거벗은 것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골방기도, 은밀한 기도를 말씀하시면서 문을 닫고 골방에 들어가라고 하셨겠습니까? 하나님과 만나는 그 시간만큼은 세상과 통하는 문을 차단하고, 온전히 하늘 문을 열어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란을 떨면서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불필요한 말이나 미사여구로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솔직한 기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간절한 기도가 바로 골방기도입니다. 은밀한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의 사랑의 밀어입니다. 친밀한 기도입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신비로운 기도입니다. 교회가 기도하고, 가정이 기도하고, 우리 각 서머나 식구들이 골방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고 우리들 각자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河-

기도하는 가정

지난주에는“서로 기도하라”라는 제목으로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서로 서로 기도의 체인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온 교회가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병이 낫는 일은 물론 영생을 얻는 은혜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기도”/“의인의 간구”는 하늘을 움직일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 가운데 서로 서로 연결되고, 기도를 통한 섬김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Mother’s day입니다. 미국에서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따로 정해져 있지만, 한국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지킵니다. 이 세상에 부모님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육신의 부모님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부모님께 공경하라는 덕목은 성경은 물론 세상의 모든 윤리와 도덕의 근간을 이룹니다. 그 만큼 부모님의 은혜가 크고,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십계명의 다섯 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어서 부모님을 공경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약속이 나옵니다.:“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합시다.

우리 교회에는 자녀들보다 부모되신 성도님들께서 많이 계십니다. 성경에는 부모들에게 주는 교훈도 나옵니다.:“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5:4). 부모라고 해서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자식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들의 심령에 상처를 입혀서도 안 됩니다. 자녀들을 주의 말씀으로 훈계하면서 양육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초기 교육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이“나를 위해서 늘 기도하시는 부모님이 계셔”라고 느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장성한 자녀들은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기도하는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교회가 서로 서로 기도로 연결되듯이, 가정 역시 부부사이에 그리고 부모와 자식들 간에 기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죄를 회개하면서 간절히 간구하듯이, 가정에서도 믿음과 간절함으로 드리는 기도가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날 가정에 이런 일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TV와 인터넷과 같은 매체들과 이민가정의 경우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서 가정에서의 대화와 기도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님들도 자녀들을 위해서 매일같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 가정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가정 안에 기도가 막혀서는 안 됩니다. 서머나 가정들이 기도로 굳건하게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