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해설(8): 내 주를 가까이/ 시편 63편
찬송가 해설(8): 내 주를 가까이/ 시편 63편
야곱에 관한 연속 설교를 마치면서, 생각난 찬송이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내 주를 가까이>였습니다. 권사님들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찬송입니다.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는 야곱이 자기를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갈 때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배경입니다. 훗날 고백했듯이 야곱은 지팡이만 들고 집을 떠났기에, 돌베개를 베고 들에서 잠을 자는 신세였습니다. 야곱이 꿈을 꿉니다. 하늘이 열리면서 땅에서 하늘까지 사닥다리가 세워지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어느 곳에 가든지 함께 하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고, 야곱이 누워있는 땅도 장차 후손에게 주실 것도 약속하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곳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의 배경입니다.
작사가 사라 애덤스(Sarah Adams 1805-1848)는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던 여배우였습니다. 언론인이자 정치가 아버지를 둔 명문 가문에서 태어난 애덤스는 어릴 적부터 외모는 물론 다재다능했습니다. 여배우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애덤스 부인이 공연 중에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과로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당시의 치명적인 질병인 폐결핵이었습니다.
애덤스 부인은 나이 서른둘에 배우의 길을 접습니다. 절망에 젖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을 때, 길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창세기 말씀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야곱의 처지에 중첩되면서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를 쓰게 됩니다: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애덤스 부인이 작사한 지 15년 후, 1,600여찬송가를 작곡한 미국의 유명한 작곡가 로웰 메이슨(R. Mason, 1792-1872)이 곡을 붙였습니다. 메이슨은 어느 날 밤에 일어났을 때 고요함 가운데 멜로디가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미국의 25대 대통령 매킨리는 <내 주를 가까이> 찬송을 자주 불렀고 임종과 장례식 때도 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 나라로 갔다고 알려집니다. 영화 <타이타닉>에도 침몰하는 배의 갑판에서 평온하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1912년 4월14일 새벽 2시 20분, 대서양을 항해하던 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가 암초에 걸려서 침몰할 때, 영국 감리교 신자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월리스 하트리(Wallace Hartley, 1878-1912)가 여덟 명의 동료 연주자와 함께 <내 주를 가까이>를 실제로 연주했다고 알려집니다. 이처럼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힘과 용기와 소망을 주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것이 신앙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河-
야외예배: 참 아름다워라/ 마태 6:25-33
5년 만에 야외 예배로 모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2년마다 야외 예배를 갖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오고, 중간에 계획했던 야외예배가 갑작스러운 오미크론 바이러스로 취소되면서 이제야 비로소 야외예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팬데믹의 끝이 찾아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마스크를 벗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약이라고 했듯이 마스크도 벗고 우리가 함께 모여서 야외 예배를 갖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갖는 야외 예배이기에 더 뜻깊고 감사할 뿐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노동절 연휴를 맞아서 출타하신 참빛 식구들이 계셔서 모두 모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야외 예배에 참석해 주시고 음식과 순서를 준비해 주신 남선 교회와 여선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맛있게 드시고, 마음껏 즐기시고, 아름답고 풍성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니 많은 무리가 모였습니다. 그 가운데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왔고 예수님께서 팔복으로 시작하는 산상수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구약의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새로운 율법 선언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마태복음 6장도 특별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섰지만, 여전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관한 염려와 불안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공중에 새가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공중의 새는 사람들처럼 물질을 모으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고 먹거리를 제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공중의 새도 하나님께서 먹이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니 백합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니 솔로몬의 영광도 들의 백합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도 입히실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먼저 하나님을 찾고 구할 뿐입니다:“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오랜만에 온 교회가 야외로 나왔습니다. 하나님 주신 자연을 마음껏 즐깁시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를 느끼고 감사합시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공동체로 묶어 주셨습니다. 야외에 나오니 얼굴과 모습에서 빛이 나십니다. 참빛교회 식구들의 밝음과 아름다움을 서로 칭찬하고 축복합시다.
세상에서 갖고 살던 염려와 근심을 모두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뛰놀고 즐기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자기 백성을 책임지심을 믿습니다.-河-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16): 은혜 / 창세기 46장 1-7절
은혜
우리는 지난 넉 달 동안 야곱에 관한 말씀을 함께 나눴습니다. 야곱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여정이었습니다.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싸웠습니다. 형으로부터 팥죽 한 그릇에서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서 외삼촌 집으로 피난 가서 20년을 살았습니다. 외삼촌에게 연거푸 속지만,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니 열두 명의 아들과 재산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형 에서를 마주하기 전날 밤,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고, 다음날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야곱의 삶도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세겜에서 딸 디나가 성폭행 당합니다. 세겜의 삶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온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과 다시 언약을 맺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길에서 죽습니다. 장남 르우벤이 라헬의 여종이자 야곱의 부인인 빌하와 동침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야곱이 편애하던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로 팔려 갔습니다. 아들들은 야곱이 아버지를 속일 때 사용했던 숫염소를 죽여서 그 피를 요셉의 옷에 묻힙니다. 그리고 요셉이 들짐승에 물려서 죽었다고 아버지 야곱을 속입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인 것처럼 야곱도 아들들에게 속은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굳게 믿고 살았는데, 이집트에 팔려 간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서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열두 자식들을 축복하면서 생을 마감합니다. 이처럼 야곱의 인생은 험악했지만, 끝이 좋았습니다.
야곱에 관한 말씀을 마치면서 그동안 소개했던 몇 가지 표현을 다시 생각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그까짓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그까짓 것으로 생각하고 팥죽 한 그릇과 바꿨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그까짓 것 취급하지 말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둘째는, “산 넘어 산”입니다. 야곱에게 어려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쉬운 인생은 없습니다. 늘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셋째는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야곱과 함께 하셨고, 야곱의 모든 인생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보이지 않게 뒤에서 도우셨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복된 삶이었습니다. 마지막 “스티그마”입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몸에 남겨진 하나님의 흔적이었습니다.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도 거룩한 상처를 간직하길 바랐습니다.
야곱에 관한 연속 설교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함께 읽고 나누면서 만났던 야곱의 하나님을 우리 각자의 하나님으로 삼고 주어진 인생길을 믿음으로 걸어갑시다. -河-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15): 약속/ 창세기 34-35장
약속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화해하고 하란을 떠났습니다. 형 에서와도 화해하고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얍복강에서 이름까지 바뀌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으니 야곱 앞에는 장밋빛 융단이 펼쳐져야 할 것 같습니다.
벧엘, 하란, 얍복강 그리고 형 에서와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야곱도 한층 성숙해서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에 적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야곱의 남은 인생이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인생에 어울립니다.
그런데 야곱의 인생이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형 에서와 헤어진 야곱은 하나님과 약속했던 벧엘로 가지 않고 당시 경제의 중심지라고 추측되는 세겜에 정착합니다.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도시에 상업이 발달해서 돈을 벌고 가족을 돌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체류 신분을 확보하지 못한 야곱과 그의 가족이 경제적인 이유로 세겜에 터를 잡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루는 레아에게서 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마을에 놀러 나갔다가 세겜 부족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성폭력을 당합니다. 세겜은 디나를 강제로 추행했지만, 진심으로 디나를 좋아해서 아내로 삼길 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하몰과 함께 야곱을 찾아와서 디나를 아내로 줄 것을 요청합니다. 부족장과 사돈이 되면 야곱과 그의 가족의 합법적인 체류가 가능해집니다. 괜찮은 제안입니다.
하지만, 여동생이 성폭행당한 것을 알고 있는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으면 동생 디나를 아내로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는데, 세겜 사람들을 속이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실제로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움직일 수 없을 때, 레아의 아들인 레위와 시므온이 세겜에 가서 사람들을 죽입니다. 여동생 디나를 대신해서 복수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 야곱은 말이 없습니다. 나중이 되어서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느냐고 한탄할 뿐입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31절)라는 구절에서 야곱의 무기력과 야곱 아들들의 분노를 느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벧엘로 가지 않고 세속 도시 세겜에 머물다 생긴 일입니다. 디나 사건을 다루는 본문에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이처럼 세겜은 하나님 부재(divine absence)의 장소였습니다.
디나 사건을 겪은 후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서 그곳에 거주하며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신을 차린 야곱은 이방 신상들과 장신구를 모두 나무 밑에 묻고 벧엘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힘들 때마다 찾아오셨고 약속을 모두 지키셨습니다. 진작에 벧엘로 와서 자리를 잡아야 했습니다. 있어야 할 곳,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河-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14): 화해/ 창세기 33장 1-17절
화해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은 형 에서를 대면해야 했습니다. 지팡이 하나 들고 고향을 떠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족들과 함께 재산을 갖고 오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에서라는 큰 산이 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에 잔뜩 긴장한 야곱은 재산을 둘로 나누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에서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모든 준비를 끝낸 야곱이 얍복강에 혼자 남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밤새도록 씨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기에 다리를 절었지만, 야곱은 새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영광의 상처를 몸에 새긴 셈입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형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야곱에게 자신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사람과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의 여종과 그의 자식들을, 레아의 자식들,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차례로 배치했습니다. 야곱이 앞에 섭니다. 형 에서가 나타나자, 야곱은 당시 왕 앞에 나갈 때 하는 예식대로 일곱 번 몸을 굽히면서 형에게 다가갑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에 따르면 에서가 야곱에게 몸을 굽혀야 하는데 반대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야곱의 상황이 다급했습니다.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웬일인지 형 에서가 달려와서 야곱을 환영합니다. 목을 어긋 맞추어 안아주고 입을 맞추면서 서로 웁니다. 야곱과 에서가 커다란 전투를 벌일 것을 예상한 우리 독자들에게 싱거운 결말입니다. 누구보다 야곱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형 에서가 눈을 들어서 야곱 일행을 보면서 누구냐고 묻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라고 답변합니다. 야곱의 부인과 자식들이 차례로 나와서 에서에게 절합니다. 야곱이 선물로 준비한 가축 떼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야곱은 말끝마다 에서를 “내 주”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낮춥니다. 준비한 선물을 받아 주길 간청합니다. 야곱은 20년 전 형을 속인 것을 보상하듯이 에서를 깍듯이 윗사람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에서가 자기와 함께 가자고 제안합니다. 야곱은 자기 일행은 지쳐 있으니 천천히 에서가 살고 있는 세일로 가겠답니다. 에서가 야곱을 도와줄 종들을 남겨놓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형과 작별합니다. 야곱은 형에게 말한 것과 달리 숙곳으로 갔습니다. 숙곳은 “머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야곱과 형 에서가 이렇게 화해했습니다. 에서가 상남자로 등장하지만, 그에게서 하나님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야곱은 여전히 형 에서를 의식해서 세일로 가지 않고 숙곳으로 갔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살아남았듯이, 형 에서를 만나서도 살아남았습니다. 형과 화해했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