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

루스드라 (2)

 

바울과 바나바가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면서 루스드라 사람들은 예전에 그곳을 찾았다고 전해지는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다시 루스드라를 방문했다고 믿었습니다. 제우스 신전의 제사장이 소를 몰고 바울과 바나바를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구약의 하나님을 모르는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그들이 헛된 것을 신봉하고 있음을 깨우치고 천지를 지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농경 지대였던 루스드라에 비를 주시고 추수하게 하셔서 기쁨과 보람으로 감사하게 한 모든 선한 일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깨우쳤고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이 자기들의 상황에 맞게 전하는 복음을 받아드렸을 것입니다.

 
그때 바울을 핍박했던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100여 마일 떨어진 루스드라까지 내려와서 루스드라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이고니온 사람들은 군중들을 선동하는데 특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신처럼 받들던 사람들이 바울을 향해서 돌을 던집니다. 이고니온에서 돌로 치면서 바울을 죽이려 했던 계획을 루스드라에서 이뤘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예수님을 믿은 제자들이 쓰러져 있는 바울을 둘러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과 대조됩니다. 바울이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기적이 일어났고 그것을 루스드라의 제자들이 목격했습니다. 바울은 그 밤으로 루스드라로 들어갑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루스드라까지 내려온 유대인들을 보면서 악한 세력의 집요함을 발견합니다. 돌을 들고 죽이는 악의 폭력성도 발견합니다. 순식간에 변하는 루스드라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라고 외치던 예루살렘 군중들도 떠오릅니다. 예루살렘 밖 골고다에서 죽으신 예수님처럼 바울도 도시 밖으로 버려졌습니다. 바울이 다시 의식을 되찾은 것도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겪은 어려움은 예수님의 고난, 죽으심, 부활과 겹칩니다. 바울은 그렇게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갔습니다.

 
바울에게서 돌에 맞아 순교한 스데반의 모습도 발견합니다. 그때는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고 스데반 죽음의 증인이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스데반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참 신비롭습니다. 훗날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고백하는데 루스드라 사건도 바울의 몸에 새겨진 예수님의 흔적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河-

 

사도행전 (5)

루스드라(1)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도시의 관리들이 한 패가 되어서 돌로 치려 달려들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남쪽으로 20여 마일 떨어진 루스드라로 몸을 피했습니다.

 
루스드라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고 대부분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헬라 도시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날 때부터 발을 쓰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나라”고 외치니 이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여기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병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합니다. 고대 시대에는 병이 낫는 것과 구원을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서 걷게 한 사건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을 일으킨 것과 평행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 걸맞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평생 걷지 못하는 사람이 회복된 것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부르면서 칭송합니다. 루스드라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을 가져와서 바울과 바나바를 숭배할 참입니다.

 
루스드라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제우스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루스드라를 찾았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난한 농부 가정만 사람이 된 제우스를 환대했습니다. 농부의 집은 성전터가 되었지만, 마을 전체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처를 갖고 있던 루스드라 사람들이 기적을 행한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 다시 자기들의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신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옷을 찢고 자기들을 경배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자기들은 루스드라 사람들과 똑 같은 사람이고, 단지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뿐이라고 강력히 말합니다. 헛된 것을 버리고 천지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권했습니다. 간신히 루스드라 사람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경배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사는 두 사도의 모습 속에서 사람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적한 곳을 찾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유대인이 없던 루스드라에도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막을 사람도 세력도 없습니다. 할렐루야!-河-

 

사도행전 (4)

이고니온에서

 

지중해 섬 구브로에 이어서 소아시아 내륙지방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와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서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그것을 본 유대교 지도자들이 현지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동원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했습니다. 그래도 바울과 바나바는 물론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 성령과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고 100여 마일 떨어진 이고니온을 향해서 떠납니다. 이고니온은 갈라디아 지방 남부 무역과 상업의 요충지였습니다. 현재 터키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인 코니아(Konya)가 위치한 곳입니다. 바울은 자기 고향이 있는 길리기아 지방 다소에 가까운 도시를 정해서 선교 여행 일정을 잡은 것 같습니다.

 

이고니온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 있는 유대인 회당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과 헬라인들 상당수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허다한 무리”라고 했으니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어서 정말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에 바울과 바나바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임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믿을 때 가능하니 믿음과 순종은 서로 짝입니다. 가장 잘 믿고 순종해야 할 유대인들이 거부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습니다. 이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의 세력이 존재합니다. 복음을 훼방하는 악한 세력이 어디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역시 이런 어려움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 만큼 끝까지 견디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믿음은 인내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의 손에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사도들도 행한 것입니다. 말씀과 표적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복음이 강력해졌습니다.

 

나중에는 도시가 둘로 갈라지더니 유대인들이 동원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쳐서 죽이려 합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몸을 피하지만, 이고니온에 임한 복음의 능력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河-

사도행전 (3)

비시디아 안디옥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 말씀대로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꼭 필요한 인물인데 하나님께서 파송하라고 말씀하시니 두말없이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성숙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적인 정보다 하나님 말씀을 우선했습니다. 그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배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에 도착했습니다.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요한도 함께 했습니다.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니 마술사 엘루마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총독이 깜짝 놀라면서 주의 말씀을 받습니다.

 

바울 일행이 구브로를 떠나서 소아시아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습니다. 내륙 선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 무슨 이유인지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고 바울과 바나바만 비시디아 지방 안디옥에 도착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시리아의 안디옥과 이름이 같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세워진 헬라 제국에서 안티오커스라는 황제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도시들일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소아시아 지역에 속한 갈라디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훗날 바울은 갈라디아 지방에 세워진 교회들에 편지를 보내는데 그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해발 3600피트에 위치했고 로마 제국의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에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습니다. 회당의 지도자가 관례대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새로 동참한 바울과 바나바에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모세의 출애굽, 광야 40년, 가나안 정착과 사사 시대, 사울과 다윗 시대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두루 살피면서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케리그마>라고 불리는 복음의 진수를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과 이방인 유대교 신자들에게 전하니 그들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일주일 후에는 온 시민이 말씀을 들으러 올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회당을 지키고 있던 유대인들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이들은 유대인이라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회당의 귀부인들과 유지들을 동원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고 쫓아냅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에 기뻐할 뿐입니다.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河-

 

사도행전 (2)

안디옥 교회 (2): 새로운 교인

 

사도행전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교회에도 초대 교회를 세우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기대합니다. 초대 교회는 함께 모여서 떡을 떼며 친교했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니 믿는 자의 숫자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예배와 전도, 친교와 가르침과 배움, 거기에 기도까지 부족함이 없었던 충만한 공동체였습니다. 그 모든 사역에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세상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기독교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핍박과 박해가 찾아오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핍박과 박해는 복음이 온 세상으로 전해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아시아의 수도이며 로마 제국의 3대 도시인 안디옥에도 기독교인들이 도착했습니다. 대부분은 안디옥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아프리카 구레네와 지중해의 섬 구브로에서 온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디옥에 헬라인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유대인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에 파송한 바나바와 바울이 1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니 교회가 튼튼하게 세워졌고,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흥미롭고 멋진 안디옥 교회를 세운 지도자들을 소개합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앞 일을 미리 예언하는 사람이기보다 교인들의 삶에 관해서 권면하고 지도하는 사람들, 교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생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이끈 대표적인 교사입니다.

 

바나바와 사울 외에 세 명의 특별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는 라틴어로 “검다”는 뜻이니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검은색 피부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역시 아프리카 구레네 출신이기에 검은 피부의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은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의 이복동생입니다. 헤롯 가문의 후손이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다민족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할 수 없는 일을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이 시도했고, 바나바와 사울이 도우니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