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형제 빌레몬 (2)

– 믿음과 사랑

 

사도 바울은 당시의 편지 형식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는 방식으로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익숙한 형식의 편지를 받았고, 낯설지 않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장뿐인 빌레몬서 역시 인사말, 감사와 축복에 이어서 본문이 시작되고 마지막 인사로 끝나는 바울 서신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빌레몬서의 인사말에서는 바울과 디모데가 편지를 보내는 사람으로, 빌레몬과 그의 가족, 빌레몬 집에서 모이는 골로새 교회가 편지를 받는 수신인이었습니다. 은혜와 평강으로 인사말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인사말에 이어서 등장하는 빌레몬을 향한 바울의 감사와 축복 (기도)입니다(4-7절).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편지를 받는 빌레몬과 사도 바울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장면입니다.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기억했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은 예수님과 성도들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는 믿음이, 성도들을 향해서는 신뢰와 성실함이 빌레몬의 믿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빌레몬은 하나님은 물론 성도를 향한 사랑이 컸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성도들과 나눴습니다. 물론, 본문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사랑은 성도들을 향한 마음으로 나눠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참고 골1:4).

 

이어지는 6절과 7절은 믿음과 사랑을 다시 한번 각각 부연해서 설명합니다. “믿음의 교제”는 빌레몬이 골로새 교인들은 물론 동역자인 바울과 나눈 믿음안에서의 사귐과 행위입니다. 교제는 마음이 하나 되는 행동까지 포함합니다. 빌레몬이 나누는 믿음의 교제는 선한 것을 깨닫고 그것을 행하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돕는 구체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했기에 “믿음의 교제”라고 불렀습니다.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평안을 얻었습니다. 빌레몬의 믿음이 사랑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은 믿음과 사랑이 자리 잡는 자리입니다. 믿음의 교제가 이뤄지는 자리가 빌레몬을 비롯한 성도들의 마음입니다. 바울도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소식을 듣고 기쁨과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과 사랑은 서로 짝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허상이고, 믿음 없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불가능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힘이 우리 참빛 교회 속에서도 역사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사랑받는 형제 빌레몬 (1)

골로새 교회의 빌레몬

 

매년 하반기에는 신약 성경 가운데 한 책을 선택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올해는 사도 바울의 옥중 서신 가운데 하나인 빌레몬서를 읽겠습니다. 빌레몬서는 한 장으로 되어 있고, 빌레몬이라는 개인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에서 존경받는 신실한 지도자였습니다. 그에게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는데 오네시모가 주인인 빌레몬에게 큰 잘못을 범하고 도망했고, 로마 감옥에 있던 바울을 만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레몬서는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라고 요청하는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빌레몬이 살던 골로새라는 지역은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100여 마일 떨어져 있었고, 인근에는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가 있었습니다. 골로새 역시 한때는 명성 있는 도시였지만,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쓰는 당시에는 에베소나 라오디게아에 비해서 작은 도시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주후 60년경에 라오디게아와 골로새 일대에 커다란 지진이 연거푸 발생하였는데 라오디게아는 스스로 지진복구가 가능했던 반면 골로새는 폐허가 된 채로 재기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네 개의 옥중서신(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을 남겼습니다. 바울이 직접 개척한 에베소와 빌립보 교회와 달리,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그곳을 방문했던 에바브라가 예수님을 믿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추측합니다(골4:12).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은 로마를 방문한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 교회에 그릇된 복음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에 대해서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골로새서입니다.  바울은 두기고와 오네시모 편에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때 빌레몬서도 함께 전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읽은 빌레몬서의 인사말(1-3절)에서는 편지를 보내는 바울과 디모데가 빌레몬과 골로새 교회에 문안합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빌레몬, 빌레몬의 부인으로 추측되는 자매 압비아, 빌레몬의 아들일 가능성이 큰 바울과 함께 주님의 군사된 아킵보입니다. 빌레몬은 그의 집을 예배처소로 개방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과 그의 가정 그리고 골로새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임하길 기원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기둥이었고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데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이 꼭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河-

하박국 (5)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구약성경 하박국서에 관한 연속 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 인물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떠나고 결국 당시의 제국 바빌론에 멸망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들고 거리로 나가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외쳤다면, 하박국 선지자는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홀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질문하고 탄식했습니다(1-2장).

 

하박국 선지자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이스라엘에 만연한 악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 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의 예상과 달리 바빌론 제국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무너뜨리실 것이라고 답변하셨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이방 제국에 무너질 수 있냐고 강력히 항의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 “화 있을진저”라는 경고를 통해서 바빌론을 비롯한 악한 세력과 민족들이 반드시 멸망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박국서 마지막 3장은 하나님의 응답에 설득당한 하박국의 찬양과 기도입니다. 하박국은 마음에 생기는 의심을 하나님께 나와서 솔직히 질문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찾으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때가 되면 악한 세력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은 세상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2:14).

 

하박국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이전에 임했던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찬양합니다(2-15절).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죽음의 세력인 바다와 물을 제압하십니다. 악인의 머리를 치시고 그들을 산산조각 부숴 버리십니다. 전사 하나님(Warrior God)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바빌론을 비롯한 악한 세력과 싸우시는 장면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앞으로 닥칠 재앙을 생각하니 창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박국은 희망을 찾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립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유명한 고백이 이어집니다:“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라고 고백하면서 어려움을 넘고 탄식을 넘어서 소망의 길로 나갑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기다리고 찾고 구한 하나님 백성이 누리는 은혜입니다.-河-

하박국 (4)

– 정한 때가 있나니

 

하박국서는 선지자 하박국이 두 번의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으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이스라엘에 만연하는 악을 두고 보실 것이냐는 항의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바빌론이라는 당시의 최고 강대국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빌론에 멸망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서 어떻게 하나님 백성이 세상 제국 바빌론에 멸망할 수 있느냐고 재차 질문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백성이 바빌론에 무너졌을 때 그들이 기뻐하는 것을 차마 지켜볼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

 

두 번째로 질문한 하박국은 망대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끝까지 기다리고 추구하는 하박국의 태도와 믿음이 돋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대답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판에 새겨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은 곧 바빌론에 멸망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바빌론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도록 판에 기록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바빌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교만, 정직하지 못한 거짓, 술을 즐기며 권하듯이 다른 사람을 유혹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바빌론에 하나님의 화가 임할 것입니다. 바빌론은 여러 나라를 무너뜨리고 큰 제국을 세웠지만, 그들이 행한 교만과 악행을 그대로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으로 장차 멸망할 바빌론의 교만과 악행을 일일이 열거하십니다. 첫째는 폭력과 학정으로 여러 나라를 착취한 행위, 둘째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것, 셋째는 백성들의 피의 댓가로 불의로 도시를 건축하고 곧 불에 타버릴 헛된 일을 행한 것, 넷째는 이웃에게 술에 취하게 해서 수치를 당하게 하고 치욕스러운 길을 가게 한 것, 마지막 다섯째는 나무와 돌을 신처럼 섬기는 우상숭배에 대해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성전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분명하게 판에 기록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은 훗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河-

하박국 (3)

–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그동안 살펴본 하박국 선지자의 탄식은 하나님 백성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탄식하고 때로는 항의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탄식하고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표시입니다. 물론,“나의 하나님”이라는 선지자의 고백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고 하나님의 응답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함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뿐 아니라 시편에도 하나님 백성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드리는 탄식 기도가 많이 등장합니다. 개인에게 닥친 어려움 가운데 드린 개인 탄식시,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에 환난이 닥쳤을 때 드리는 공동체 탄식시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13편은 다윗이 드린 개인 탄식시입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십여 년 이상 광야에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왕이 되고 노년이 되었을 때는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밤중에 피신을 가야 했습니다. 다윗은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시편에 등장하는 다윗의 시는 다윗의 삶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대표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남유다는 바빌론에 무너지면서 포로로 잡혀가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습니다. 후대에는 알렉산더의 후예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성전을 유린하고 예배를 금지했습니다. 그때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시편 13편에는 “어느 때까지니이까(how long)”라는 질문이 네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으시는 것 같고,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지 않습니다. 원수들은 하나님 백성을 이겼다고 자랑하고 즐거워하니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니 고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질문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라는 질문은 탄식시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다윗은 탄식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구합니다. 대적에게 무너질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탄식시는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5절)는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탄식의 열매는 포기나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확신하는 구원의 소망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탄식과 애통의 기도는 마음을 하나님께 솔직히 내어놓고 주의 도움을 구하는 깊은 기도입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기회입니다. 우리가 애통하고 탄식할 때 임하는 주님의 위로와 소망을 기대합니다. 할렐루야!-河-

하박국 (2)

– 주께서 어찌하여

 

구약성경 하박국서를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하박국서의 특징은 하나님과 선지자 하박국의 대화와 고백으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세상에 나가서 선포한 것과 구별됩니다. 그런 점에서 하박국서는 선지자의 내적 고뇌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특징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이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죄악, 패역, 겁탈과 강포, 변론과 분쟁”이 세상에 판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무너졌습니다. 의롭게 살려고 해도 악인들이 둘러싸서 의인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때 하박국은 왜 지켜만 보시는지 하나님께 질문하고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일종의 항의였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계셔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의에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벌을 주셔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세상에 보여주시길 하바국 자신의 입장에서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대답하십니다. 하박국 개인이 하나님께 질문했는데, 하나님은 “너희들”이라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답변하십니다. 자기중심에 머물고 있는 하박국의 신앙을 확장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북쪽의 강국 바빌론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사납고 성급한 백성”입니다. 표범보다 빠른 강한 군대를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빌론은 당시 최강의 제국이었습니다. 앗시리아를 정복해서 바빌론 제국을 세웠고, 남쪽의 이집트와의 싸움에서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멸망할 것이랍니다. 그것은 수치입니다. 바빌론이 던지는 그물에 이스라엘이 걸려들고 이방 민족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 아니라 그물에 경배하는 민족입니다. 자기 힘을 믿고 그것을 신처럼 위하는 민족에게 이스라엘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하박국이 두 번째로 질문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에 멸망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찾는 하박국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하신 이” “만세 전부터 계신 분” “반석”이라고 고백합니다. 절대로 사망에 이를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지만, 다시 하나님께 질문하는 하박국의 모습이 대단해 보입니다. 그 여정에서 하박국의 신앙이 자라고 있습니다. 끈질기게 하나님을 찾는 구도자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