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라 (9)

섭리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이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부탁하시는 말씀입니다. 장차 제자들은 세상의 미움을 받고 심지어 세상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입니다. 그래도 성령께서 함께하실 것이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킬 것을 부탁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0:1-23절).

 

앞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이라고 했으니 예수님과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제자들에게 험한 말을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주인 되신 하나님만 두려워할 뿐입니다.

 

첫째로, 감춘 것이 모두 드러나고, 숨은 것이 모두 알려질 것입니다.  결국에는 무엇이 진리이고 누가 옳은 지 확실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미움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담대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어두운 데서 들은 것을 밝은 데서 말하고, 귓속말로 들은 것을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몸은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몸과 삶은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음 이후를 주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고, 몸과 영혼을 모두 지옥에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의 삶을 뛰어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실 것이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까지 아십니다. 참새는 작고 헐값에 팔리는 새입니다. 앗사리온은 우리 식으로 페니에 해당합니다. 영원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참새 두 마리의 거래 가격까지 아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아주 작고 하찮은 곳까지 임한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작은 것까지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참새보다 귀합니다. 그렇다면 참새까지 돌보시고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시인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인정하고 함께하실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하나님 백성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크신 하나님께서 작고 작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와 머리카락까지 세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기에 큰 것은 물론 작은 것까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할 뿐입니다.-河-

종교개혁 주일에

지금부터 505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공포한 날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모든 성자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만성절(All Saint’s Day) 전날입니다.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였던 마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에서 가톨릭교회가 면죄부를 팔고 교황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와 성직자들의 타락이 성경에서 말하는 올바른 신앙과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발표한 95개조의 반박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5.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뜻(意志)을 가지지 못한다. 27.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43.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증을 하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95.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행 14:22).

 

루터 외에도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선구자들이 있었습니다. 존 위클리프는 사제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성경을 번역한 것이 이단이라면서, 죽은 지 31년 만에 무덤이 파헤쳐지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위클리프에 영향을 받은 얀 후스는 면죄부의 부당함과 교황의 권위에 반대하다가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땅에 떨어져서 죽은 한 알의 밀알과 같은 교회사 속의 인물들입니다.

 

거기에 구텐베르크에 의해서 발명된 인쇄술의 발달로 루터가 제기한 95개조의 반박문이 인쇄물로 제작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갔고, 훗날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도 일반 백성들에게 손쉽게 보급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 외에도 루터의 종교 개혁을 지지하는 비텐베르크 교수와 학생들, 멜랑톤과 같은 동지들, 루터를 보호하던 당시의 프레더릭 선제후 등의 후원자들이 있었습니다.

 

원래 루터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법률가의 길을 걷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도사가 되기로 결단하고 사제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루터에게는 온전한 신앙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문제와 씨름했습니다. 기도와 성경 읽기, 참회와 선행 등을 통해서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길 기대했지만, 루터에게 평안함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루터는 자신에게 의롭게 될 가능성이 없고 낯선 의가 손님처럼 찾아왔을 때 그 은혜로 의롭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 개혁의 캐치프레이즈가 나왔습니다. 개인의 고민이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되었고, 교회의 잘못을 세상에 알린 용기 있는 행동이 교회는 물론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물론, 루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河-

두려워하지 말라 (8)

다니엘 (2)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는 이름이 바뀌고 바빌론 언어와 학문을 배우면서까지 그곳에서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제국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학문과 일입니다.

 

다니엘이 바빌론 제국에서 야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뜻을 정해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다니엘을 도우셨고, 죽을 위기에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바빌론과 페르시아 제국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고 제국의 통치를 도왔습니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서도 야훼 하나님이 바빌론의 신 마르둑보다 크신 분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결코 제국에 맞서지 않았습니다. 폭력을 사용해서 제국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고 신앙을 지키는 일은 절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빌론이라는 제국에 순응했습니다. 대신,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고, 목숨 걸고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남았습니다.

 

바빌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성전을 다시 짓고 예루살렘 성곽을 복구했습니다.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이스라엘이 다시 타락합니다. 예전의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페르시아에 이어서 알렉산더 제국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립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보다 제국의 눈치를 보면서 권력을 독점하는 데 혈안이 됩니다. 그때도 순수하게 신앙을 지키려는 하나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서가 빛을 발한 것은 주전 2세기 알렉산더 대제를 계승한 안티오커스 4세가 예루살렘을 통치할 때였습니다. 성전 제사를 금지하고, 헬라 종교와 문화만 신봉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00여 년 만에 찾아온 가장 큰 신앙의 위기였습니다.

 

다니엘은 일찍이 이스라엘에 닥칠 어려움을 환상 가운데 보고, 하나님 앞에서 처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찾아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간구를 처음부터 듣고 계셨다고 확인해 주시면서, 미가엘 천사를 동원해서 악한 세력을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묵시의 시대를 사는 하나님 백성에게 큰 힘이 된 것입니다.

 

다니엘의 삶과 다니엘서의 예언은 박해 속에서도 신실하게 신앙을 지키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다니엘처럼 목숨 걸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때로는 문화에 동화되면서 살아남았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서 말씀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려는 그리스도인들과 힘겹게 신앙을 지키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줍니다.-河-

두려워하지 말라 (7)

다니엘 (1)

 

구약 성경의 다니엘서는 매우 독특한 말씀입니다. 전반부(1-6장)는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왕궁에서 활동한 다니엘과 세 친구의 활약상을 전하고 후반부(7-12장)는 다니엘이 본 환상을 중심으로 장차 일어날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언형식으로 전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으로 악한 세력이 무너진다는 예언은 다니엘서의 문학 장르를 묵시문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이 첫 번째로 예루살렘을 공격했던 주전 597년으로 추정됩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기 10년 전입니다. 당시 포로들 가운데는 다니엘 외에도 이스라엘 왕이었던 여호야긴과 에스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을 미리 포로로 잡아간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흠이 없고 총명하며 용모까지 아름다운 이스라엘의 귀족 출신입니다. 바빌론에 도착해서 이름부터 바빌론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빌론에서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의 공식적인 이름은 벨드사살(“벨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이었습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바빌론 언어와 학문을 배워야 했습니다. 당시 바빌론의 학문은 별을 보고 나라의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완전히 바빌론 사람으로 동화시키는 교육 프로그램에 투입된 것입니다. 포로 신분인 다니엘이 제국의 정책에 반기를 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니엘은 “뜻을 정해서” 왕궁에서 먹는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신전에 제사했던 음식 대신에 채식만 하였지만, 다니엘의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시니 각국에서 선발된 소년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바빌론 왕의 자문역이 됩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바빌론 제국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음식으로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 외에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는 ‘구별점’이 분명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았고,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하는 것도 목숨을 걸고 지켰습니다. 펄펄 끓는 풀무불에 던져지고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때마다 밀려오는 두려움을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극복했을 것입니다. 왕들의 꿈을 해석하면서 그들의 지혜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입증하고 바빌론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일도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바빌론 제국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고 신앙을 지켜야 하는 이중 사명(double mission)을 갖고 매일매일 살아갑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배우기를 원합니다.-河-

 

두려워하지 말라 (6)

이사야

 

이스라엘의 역사는 험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빌론에 속한 우르 땅에 살다가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서 정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 전에 400년을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게 됩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되고 광야 40년을 지났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셨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신, 세상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 백성의 구별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반짝했지만, 결국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당대의 제국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멸망했습니다. 성전도 무너지고, 나라도 사라지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빼앗겼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에 닥친 비극과 재난을 놓고 애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신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아닌 것을 쫓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애를 쓰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끝까지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흩어진 백성)의 삶을 살게 됩니다. 북왕국이 무너지면서 아시리아가 사마리아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남왕국이 무너지면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주민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이사야 말씀은 이사야서의 두 번째 메시지에(40-55장) 속합니다. 바빌론이 쇠퇴하고 페르시아가 신흥 제국으로 등장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의 막바지가 된 것입니다. 그때 바빌론에 포로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위로와 희망의 말씀입니다.

 

이집트에서의 400년에 비하면 짧고 상황도 비교적 좋았지만, 70년이라는 긴 시간을 바빌론에서 포로로 지냈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적인 상실감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때 모세를 통한 출애굽을 떠올리면서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하나님께서 바빌론에서도 자유를 주실 것을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이사야서 40장 이하는 절망하지 말고 제 2의 출애굽을 꿈꾸라는 소망의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