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라 (5): 스바냐 3장 14-17절
스바냐
스바냐 선지자는 유다 왕 요시야 시대(주전640-609년)에 활동했습니다. 아버지 아몬이 살해되면서 요시야가 여덟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무너지고 남유다만 존속하던 시대입니다. 훗날 요시야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 책에 따라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다윗에 버금가는 왕이 되었지만, 요시야 개혁 전의 남유다는 정치, 경제, 종교 완전히 엉망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때 스바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스바냐는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셨다” 또는 “숨어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앗시리아와 같은 제국에서 수입한 우상들이 판을 쳤고 백성들은 우상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겼습니다. 이방신의 특징은 물질과 번영입니다.
신앙은 물론 도덕적으로 나라가 망가지는데 앞장선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관리들은 폭력을 사용해서 힘없는 백성들을 학대하고, 선지자들은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며,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예루살렘의 상황을 패역, 더러움, 포학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패역한 세상 가운데 계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날이라는 말씀대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세상이 망가졌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남아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3:14-18)은 남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기쁨으로 찬양하라는 부탁으로 시작합니다. 심판이 지나고 구원과 회복의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한 가운데 계십니다. 모든 어려움이 지났고 원수는 쫓겨났습니다. 이제 기쁨의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선지자는 그동안 많이 지쳐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16절). 손을 늘어뜨리는 것은 낙심과 절망 그리고 포기입니다. 힘이 없어서 털썩 주저앉은 모습입니다.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들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 끝까지 남아서 하나님을 의지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찬양이 이어집니다:“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17절).
우리도 오늘 말씀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찬양하고 기뻐하기 원합니다.-河-
여호수아 (2)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웠고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광야 40년과 전혀 다른 리더쉽이 요청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찾아오셔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광야 40년 동안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모세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5절). 여호수아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이고 약속입니다.
여호수아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시는데, 전쟁에 나가는 장수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성전과 가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여기서 “율법책”은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7절) 입니다. 우리 성경으로 하면 토라로 불리는 모세 오경입니다.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합니다.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지키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인도할 여호수아에게 요청되는 최고의 덕목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 곧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백성을 인도하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가까이하고 익혀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십니다. 우선,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합니다. 눈과 입으로 읽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을 묵상(meditation)해야 합니다. 묵상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것입니다. 눈과 입으로 보고 읽은 말씀을 마음과 삶에 채우는 과정입니다. 보고 읽는 것을 통해서 말씀이 머리에 머문다면, 묵상을 통해서 말씀이 마음으로 내려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머리와 마음 그리고 손과 발로 말씀이 자라고 연결되는 과정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말씀으로 삶의 중심을 세웠을 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갖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은 우리 안에 자리잡은 불안과 두려움을 다스리고,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을 마주할 힘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河-
여호수아 (1)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의 믿음을 실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자손과 땅을 약속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 지시겠다는 일방적인 계약을 맺으십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사는 아브라함의 나그네 삶을 공감하고 돌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 전에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게 될 것을 예고하셨는데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창세기 족장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갖게 된 근거, 요셉을 통해서 이집트에 내려가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는 과거로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400년동안 종으로 살았습니다. 마지막에는 바로의 학정으로 신음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괴로움과 탄식을 보시고 모세를 부르셔서 이집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바로에게 내린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죽음의 사자가 이집트 모든 집에 밀어닥쳐서 장자는 물론 동물의 맏배까지 죽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죽음의 사자가 건너뛰었습니다(pass-over). 유월절의 시작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 직선거리로 10여 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는데 40년을 광야에서 지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꾸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먹이고 입히시는 보호자요 구원자 되심을 훈련하셨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와서 광야 40년을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역사는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뤄질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열두 지파의 대표로 가나안 땅이 내다보이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약속의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인물입니다. 열 명의 대표단이 땅을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증언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약속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 확언했습니다. 결국 그 시대 사람들 가운데 갈렙과 함께 약속의 땅을 밟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끌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6,7,9절). 모세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계승해야 합니다. 광야 생활과 차원이 다른 가나안 정복입니다. 모든 것을 앞두고 불안하고 두려웠을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주의 백성들에게 이보다 더 강력한 말씀이 없습니다.-河-
아브라함
두려움은 안팎에서 밀려옵니다. 무엇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의 끝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적당한 두려움은 미래를 대비하게 하고, 현재를 성실하게 살도록 돕습니다. 건강한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두려움은 몸과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러니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두려움을 지혜롭게 관리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창세기 15장은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에서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갈데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하란을 거쳐서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인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가뭄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난 간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자기만 살아남을 궁리를 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간섭으로 도리어 많은 재산을 갖고 처음 도착했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조카 롯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자기는 가나안에 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그가 있는 곳을 사방으로 걸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땅을 주실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개인 군대 318명을 둘 정도로 번창한 아브라함이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을 구해냈습니다. 오는 길에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통하는 멜기세덱을 만나서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바치면서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가나안 땅에서의 나그네 삶이 쉽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나름의 성실함으로 살아남았고 부(富)까지 축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삶에도 두려움이 늘 깃들어 있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 부부의 불임으로 성취될 수 없다는 불안함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후손과 땅에 대해서 약속하시고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 있는 다메섹 출신의 종 엘리에젤이 자기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을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그랬듯이 후손들의 여정도 쉽지 않겠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 증표로 아브라함이 준비한 제물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깊은 잠에 빠진 아브라함 대신, 하나님께서 혼자서 행하신 특별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말씀하시고,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미래에 관한 두려움을 소망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河-
낙심과 불안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당장 피해를 입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고물가에 시달립니다. 기후 위기도 이곳저곳에서 감지됩니다. 파키스탄은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면서 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반면, 유럽은 극심한 가뭄으로 수백 년 만에 강바닥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끊임없이 총기사고가 이어집니다. 팬데믹의 어두운 그림자는 3년이 지나도록 완전히 거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녹록지 않습니다. 연로하신 권사님들은 부쩍 육체적으로 연약해지심을 봅니다. 젊은이들도 샌프란시스코와 베이지역에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투쟁입니다.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물질, 즉 숫자가 모든 것을 가늠하고 결정할 때도 많습니다. 앞만 보고 내 길을 간다고 하지만, 잠시라도 옆을 보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상대적으로 초라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안에 염려와 근심, 불안, 두려움이 상존(尙存)합니다. 인간은 원래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사는 존재라고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말했는데, 우리 역시 안팎에서 밀려오는 불안과 두려움에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우리 역시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질그릇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 본문을 갖고 연속해서 말씀을 나눌 예정입니다. 혹자는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365개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 년 내내 두려움을 느끼기에 매일같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숫자를 확인할 수 없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시간 제약상 모두 살필 수 없기에 신구약 성경에서 여덟 개 정도의 본문을 살필 계획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42편은 43편과 서로 짝입니다. 원래는 하나의 시편이었는데, 성전에서 예배하기 편하게 둘로 나뉘었다고 봅니다. 두 개의 시편을 묶어주는 후렴구가 있습니다:“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5,11; 43:5).
사람들이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조롱합니다. 예전에는 함께 성전에 올라가서 기뻐하고 예배했는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상합니다. 그때 시인은 자기 자신에게 왜 낙심하고 불안해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분명히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찬양하라고 자신에게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극복할 대상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