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 이고니온/ 행 14:1-7절
이고니온에서
지중해 섬 구브로에 이어서 소아시아 내륙지방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와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서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그것을 본 유대교 지도자들이 현지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동원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했습니다. 그래도 바울과 바나바는 물론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 성령과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고 100여 마일 떨어진 이고니온을 향해서 떠납니다. 이고니온은 갈라디아 지방 남부 무역과 상업의 요충지였습니다. 현재 터키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인 코니아(Konya)가 위치한 곳입니다. 바울은 자기 고향이 있는 길리기아 지방 다소에 가까운 도시를 정해서 선교 여행 일정을 잡은 것 같습니다.
이고니온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 있는 유대인 회당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과 헬라인들 상당수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허다한 무리”라고 했으니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어서 정말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에 바울과 바나바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임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믿을 때 가능하니 믿음과 순종은 서로 짝입니다. 가장 잘 믿고 순종해야 할 유대인들이 거부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습니다. 이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의 세력이 존재합니다. 복음을 훼방하는 악한 세력이 어디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역시 이런 어려움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 만큼 끝까지 견디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믿음은 인내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의 손에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사도들도 행한 것입니다. 말씀과 표적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복음이 강력해졌습니다.
나중에는 도시가 둘로 갈라지더니 유대인들이 동원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쳐서 죽이려 합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몸을 피하지만, 이고니온에 임한 복음의 능력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河-
비시디아 안디옥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 말씀대로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꼭 필요한 인물인데 하나님께서 파송하라고 말씀하시니 두말없이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성숙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적인 정보다 하나님 말씀을 우선했습니다. 그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배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에 도착했습니다.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요한도 함께 했습니다.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니 마술사 엘루마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총독이 깜짝 놀라면서 주의 말씀을 받습니다.
바울 일행이 구브로를 떠나서 소아시아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습니다. 내륙 선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 무슨 이유인지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고 바울과 바나바만 비시디아 지방 안디옥에 도착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시리아의 안디옥과 이름이 같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세워진 헬라 제국에서 안티오커스라는 황제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도시들일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소아시아 지역에 속한 갈라디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훗날 바울은 갈라디아 지방에 세워진 교회들에 편지를 보내는데 그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해발 3600피트에 위치했고 로마 제국의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에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습니다. 회당의 지도자가 관례대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새로 동참한 바울과 바나바에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모세의 출애굽, 광야 40년, 가나안 정착과 사사 시대, 사울과 다윗 시대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두루 살피면서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케리그마>라고 불리는 복음의 진수를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과 이방인 유대교 신자들에게 전하니 그들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일주일 후에는 온 시민이 말씀을 들으러 올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회당을 지키고 있던 유대인들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이들은 유대인이라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회당의 귀부인들과 유지들을 동원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고 쫓아냅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에 기뻐할 뿐입니다.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河-
안디옥 교회 (2): 새로운 교인
사도행전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교회에도 초대 교회를 세우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기대합니다. 초대 교회는 함께 모여서 떡을 떼며 친교했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니 믿는 자의 숫자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예배와 전도, 친교와 가르침과 배움, 거기에 기도까지 부족함이 없었던 충만한 공동체였습니다. 그 모든 사역에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세상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기독교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핍박과 박해가 찾아오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핍박과 박해는 복음이 온 세상으로 전해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아시아의 수도이며 로마 제국의 3대 도시인 안디옥에도 기독교인들이 도착했습니다. 대부분은 안디옥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아프리카 구레네와 지중해의 섬 구브로에서 온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디옥에 헬라인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유대인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에 파송한 바나바와 바울이 1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니 교회가 튼튼하게 세워졌고,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흥미롭고 멋진 안디옥 교회를 세운 지도자들을 소개합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앞 일을 미리 예언하는 사람이기보다 교인들의 삶에 관해서 권면하고 지도하는 사람들, 교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생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이끈 대표적인 교사입니다.
바나바와 사울 외에 세 명의 특별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는 라틴어로 “검다”는 뜻이니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검은색 피부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역시 아프리카 구레네 출신이기에 검은 피부의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은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의 이복동생입니다. 헤롯 가문의 후손이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다민족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할 수 없는 일을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이 시도했고, 바나바와 사울이 도우니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河-
안디옥 교회 (1): 새로운 교회
오늘부터 신약성경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주일설교를 시작합니다. 오래전 주일예배에서 나눈 적이 있기에, 그때 빠뜨린 본문을 마저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가 기록한 두 번째 책입니다.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탄생에서 부활까지 기록했다면,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면서 예루살렘부터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으로 시작해서 예루살렘에서 마무리되었다면,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다와 사마리아, 세 차례에 걸친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을 통한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앞으로 두 시간에 걸쳐서 살펴볼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안디옥은 로마와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주전 300년경 알렉산더 대제의 후예들인 셀류시드(안티오커스)에 의해서 세워진 이래, 로마 시대까지 동서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 당시에 안디옥은 인구가 3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대도시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로 사도들과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아프리카 북부 지방 구레네와 지중해의 섬나라인 구브로 출신 사람들이 안디옥에 도착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들은 안디옥에 있는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이 300마일 떨어진 예루살렘에 전해졌습니다. 안디옥과 같은 큰 도시에 복음이 전해진 것과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지도자로 있던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했습니다. 바나바는 제사장 지파인 레위 족속이고 자기 밭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내놓을 정도로 헌신 된 사도였습니다.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출신 성도들이 안디옥 교회 개척 멤버로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를 인도하기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울까지 데리고 와서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세우니 교회가 든든해졌습니다. 가뭄으로 예루살렘 모 교회에 구제헌금을 거둬서 바나바와 사울 편에 보낼 정도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이어받아서 복음 전도의 전초기지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河-
슬픔에서 희망으로
2022년 임인년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 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았던 팬데믹은 꼬박 2년째 접어 들고 있습니다. 지난 2년여 우리 교회도 예기치 않게 영상 예배를 실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카톡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유튜브로 실시간 예배를 전송하고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하셨고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한 마음으로 견딘 지난 2년의 팬데믹 기간이었습니다.
올해는 정상으로 복귀할 것을 기대하면서 <새롭게 시작합시다>라는 교회 표어를 정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고, 팬데믹 이후의 일상을 맞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기에 구약 성경의 예레미야 애가서를 본문으로 택해서 지난 7주 동안 말씀을 나눴습니다. 애가서 한 가운데 있는 소망의 말씀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독특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전체가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 네 장은 각 절마다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합니다. 영어로 하면 A부터 Z까지 알파벳 순서대로 각 절이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모두 스물 두 자입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던 애가서 3장은 히브리어 알파벳 한 글자에 세 구절을 배치해서 전체 66절로 구성된 것도 특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애가서 5장은 알파벳 순서가 아니지만 알파벳 숫자를 반영해서 22절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 히브리어 알파벳을 두운으로 삼고 말씀을 기록한 것은 무엇보다 고대 시대에 암송과 교육을 위한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운을 띄어주면 쉽게 풀어나가듯이 모든 사람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당시에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운을 띄우면서 말씀을 암기하고 익혔을 것입니다. 애가서 외에도 구약 성경에는 시편 37편과 119편처럼 지혜를 알려주는 말씀에서 아크로스틱(Acrostic) 구조라고 불리는 알파벳 순서로 기록된 본문이 있습니다.
이처럼 애가서는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까지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을 알파벳 순서대로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훗날 슬픔을 경험한 하나님 백성들 역시 애가서를 읽으면서 자신들에게 닥친 슬픔을 낱낱이 헤아리고 하나님 앞에서 풀어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애가서 3장처럼 슬픔 너머 소망까지 완벽하게 역사에 새기기 위해서 알파벳을 동원해서 말씀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애가서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삶과 신앙을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날마다 새로우신 주의 성실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