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6)

룻과 보아스

 

룻기에는 세 명의 중요한 인물이 나옵니다. 첫째는 모압 여인 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자기 나라로 피난 온 가정의 아들과 결혼했는데, 그만 병약한 남편이 먼저 죽고 시어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시어머니가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특별한 충성이었습니다.

 

둘째로 시어머니 나오미입니다. 룻기 1장의 주인공이 나오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 엘리멜렉을 따르는 여성이었지만, 남편과 두 아들이 죽으면서 <에솃 하일, 용맹한 여성>이 됩니다. <마라> 쓰디쓴 인생을 살면서도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용기도 남달랐습니다.

 

세 번째 인물은 룻기 2장(막)에 등장하는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유력한 자”라는 소개에 걸맞게 베들레헴에서 명성과 부 그리고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입니다. 본문에서는 용맹한 여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솃 하일”과 짝을 이루는 “이쉬 깁보르 하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깁보르”는 전쟁에 나가는 용사, 또는 부와 명예를 갖고 있는 인물을 가리킵니다. “하일”은 힘이 있다는 뜻이고 “이쉬”는 남성입니다. “유력한 자”라는 한글 번역 그대로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이었습니다. 보아스는 <깁보르 하일, 힘 있는 자>라는 이름 뜻대로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집안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보아스가 베들레헴에 있는 자기 보리밭에 도착해서 일꾼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4절)고 인사합니다. 일꾼들 역시 보아스를 향해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4절)로 응답합니다. 주인 보아스와 일꾼들 간의 관계가 꽤 훌륭합니다. 보아스는 유력한 인물이지만, 사리 분별이 확실하고 친절하며 약한 자들을 배려하는 선한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와 룻의 삶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자기 사정을 말했지만, 실제로 닥친 어려움에 마음과 삶이 무너지고 살길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때 룻이 나섭니다. 룻이 <에솃 하일, 용맹한 여성>이 됩니다. 룻기 1장에서 행동하는 사람이 나오미였다면, 2장으로 오면서 나오미는 조언하고 룻이 행동합니다. 마침 보리 추수 때이니 들에 나가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에게 허락된 보리 이삭을 주워 오겠답니다. 나오미는 담담하게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룻이 찾아간 곳이 바로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이렇게 룻과 보아스의 인연이 시작되고 하나님의 손길(섭리)이 나오미, 룻, 보아스 위에 임하기 시작합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간섭입니다. -河-

룻기 (5)

마라: 쓰디쓴 인생

 

구약성경 룻기의 시작은 나오미가 자신을 부르듯이 “마라” 즉 쓰디쓴 인생길입니다. 베들레헴의 유력한 가문의 가장 엘리멜렉이 아내와 두 아들을 이끌고 모압 땅으로 가면서 생긴 마라의 삶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왕이십니다”라는 이름을 가진 엘리멜렉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셨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살았던 엘리멜렉입니다.

 
그의 아내 나오미는 “나의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고 두 아들은 건강이나 능력 면에서 조금 부족했지만, 훌륭한 남편을 만났습니다. 무엇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해서 베들레헴에 가뭄이 들기 전까지 기쁨의 삶을 살았던 나오미입니다.

 
그런데 집안의 가장 엘리멜렉과 상속자 두 아들이 모압 땅에서 죽고 나오미 혼자 남았습니다. 모압 출신 두 며느리가 있었지만,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따르기 전까지 그들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나오미에게 닥친 엄청난 고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는 분들은 나오미 가족이 약속의 땅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주한 것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두 번씩이나 이방 땅으로 이주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었으니 나오미가 모압으로 이주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닥친 고난을 쉽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정죄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설교 시간에 나오미에게 닥친 고난을 우연(랜덤/random)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나오미 자신은 하나님의 손이 자신을 쳤고(1:13),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벌을 내리셨고 괴롭게 하셨다고 말합니다(1:20-21). 누구나 어려움이 닥치면, 나오미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정죄하는 것은 조심할 일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생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질서가 깨지고, 악이 판을 치고, 세상 사람들은 자기 좋을 대로 행하는 사사 시대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면 현재의 고난과 악은 사라지고 다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낙원이 회복되겠지만, 그것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소망입니다.

 
일단 우리의 삶은 힘겹습니다. 나오미가 아니라 마라의 삶을 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고통을 어떻게 맞이하고,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느냐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룻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교훈이랍니다.-河-

룻기 (4)

베들레헴에서

 

4장으로 구성된 룻기는 각 장에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서, 룻기를 연극 무대에 올린다면 1장부터 4장까지 4막의 연극이 될 것입니다. 룻기 1장의 주인공은 나오미입니다. 나오미는 잠언 31장에 나오는 “에셰트-하일, 강인한 여성”입니다.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뭄이 들면서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의 인도로 두 아들과 함께 모압 땅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습니다. 두 며느리와 셋이 살다가 고향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룻의 충성이 돋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오미와 룻 모두 “에셰트-하일, 강인한 여성”입니다.

 

룻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작은 동네 베들레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온 동네가 떠들썩했을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나오미를 보고, “이 사람이 진정 나오미냐”(19절)고 수군거렸습니다. 여러 날을 며느리 룻과 함께 걸어서 왔으니 나오미의 모습은 더욱 더 형편없었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나서서 자신의 처지를 알립니다. 자신을 더 이상 “즐거운, 기쁜, 행복한”이라는 뜻의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쓰디쓴)”로 부르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엘-샤다이)께서 자기에게 고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풍족하게 모압으로 떠났는데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알고 보니 나오미는 베들레헴의 유력한 가문이었습니다. 재산을 정리해서 넉넉한 자금을 갖고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떠나갔더니”라는 나오미의 말이 증명합니다. 그런데 빈털털이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예전에는 풍족했는데 지금은 비었습니다. 나오미는 그 모든 것을 전능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오미의 말을 들은 베들레헴 사람들의 반응은 본문에 없습니다. 쯧쯧 혀를 차면서 나오미를 동정하거나, 무시하거나, 수군수군 비난했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오미의 과거는 화려했습니다. 그런데 모압에서 십여 년을 살고 돌아온 현재의 모습은 초라합니다. 현재는 아예 나오미가 없고 “마라”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오미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를 벌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오미에게는 모압 며느리 룻이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룻기 말씀이 흥미진진합니다. -河-

룻기 (3)

– 베들레헴을 향해서

 

룻기 같은 이야기체 성경 본문을 네러티브(narrative)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절반 이상이 이야기체 본문입니다. 네러티브에는 등장 인물이 나오고 이들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서 사건들이 일어나고, 사건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합니다. 그러니 네러티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등장 인물과 이들의 대화와 행동입니다.

 
네러티브는 구약성경의 신명기나 신약성경의 바울서신처럼 직접적인 교훈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등장인물과 이들의 행동, 변화, 등장인물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인 우리가 교훈을 얻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네러티브 본문은 읽는 우리 자신의 입장과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과 교훈이 가능합니다. 때로는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이야기 속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성경 본문에 몰입하게 됩니다. 전형적인 성경의 네러티브인 룻기를 읽으면서 성경의 이야기체 본문 즉 네러티브의 힘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룻기의 서론에 해당하는 1장 1-5절을 살펴보았습니다. 베들레헴에 가뭄이 들면서 모압으로 내려간 나오미는 그곳에서 10년을 살면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간 곳이 죽음의 땅이 된 것입니다. 모압에서 얻은 두 며느리가 있었지만, 나오미는 홀로 되어서 모압 땅에 남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룻기 1장 6-18절은 베들레헴의 가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가 모압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본문은 네러티브의 특징대로 나오미와 두 며느리 간의 대화가 주를 이룹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남편을 잃은 세 여성이 함께 떠나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얼마를 가다가 시어머니 나오미가 발길을 멈추더니 두 며느리에게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요청합니다. 모압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나오미는 타향살이의 힘듦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향해서 왜 모압에 남아야 하는지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나오미의 설명을 들은 며느리 오르바는 모압에 남기로 합니다. 그런데 다른 며느리 룻은 나오미에게서 떨어지지 않겠답니다. 끝까지 나오미와 함께 가겠답니다. 결국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남편을 잃은 세 여인이 함께 동고동락하려는 마음이 귀합니다. 무엇보다 나오미에게 붙어서 함께하겠다는 룻에게서 합리적인 이유를 넘어서 끝까지 신앙의 길을 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사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갈보리 십자가까지 동행하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河-

룻기 (2)

– 모압 땅으로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구약성경의 룻기는 사사시대가 배경입니다:”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1:1). 수요예배와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듯이,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옳은 대로 행하던 때입니다. 무엇보다 지도자격인 장로들, 레위인, 심지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까지 자기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누구 하나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룻기는 4장으로 구성된 매우 짧은 말씀입니다. 작게 보면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멀리 보면 이스라엘에 다윗이라는 최고의 왕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다윗은 곧 예수님의 조상이 되니 룻기가 성경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룻은 이스라엘 출신이 아닌 이방 족속 모압 여인입니다. 모압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긴 하지만, 정통 이스라엘 여인이 아닌데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룻은 마태복음 첫 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룻기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 사는 엘리멜렉(“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과 나오미 (“나의 기쁨”) 가족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베들레헴에 기근이 닥쳤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에 기근은 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재난이었습니다. 엘리멜렉 부부는 두 아들 말론(“병약함”)과 기룐(“끝남”)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피난갑니다. 물이 있는 모압 땅에서 잠시 거주하다가 돌아올 계획이었습니다. 물론, 모압에서 살아가는 엘리멜렉 가족의 체류신분은 “나그네(게르 ger)”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엘리멜렉처럼 기근이 찾아왔을 때 외국으로 피난간 경우가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에 왔지만, 기근이 닥치면서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기근이 닥치자 그랄이라는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이방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들의 아내 사라와 리브가를 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습니다. 야곱도 기근이 들어서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기근을 피해서 모압으로 내려간 엘리멜렉 가족에게 힘든 일이 연거푸 닥칩니다.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어머니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과 결혼시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십년이 지났을 때 두 아들마저 죽습니다. 살기위해서 모압 땅으로 피난을 왔는데 그만 나오미만 홀로 남았습니다. 룻기는 이렇게 슬픈 나오미의 가족사로 시작합니다.

 

세상 일이나 인생사가 마음먹은 대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설명이 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 지 룻기를 통해서 발견하기 원합니다. -河-

룻기 (1)

– 사사시대

 

팬데믹 가운데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모두에게 힘과 위로, 그리고 소망이 되는 말씀이길 원했던 시편 91편을 지난주에 마쳤습니다. 오늘부터 구약성경 룻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룻기의 역사적 배경은 그동안 수요예배에서 공부했던 사사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된 후, 40년 동안 광야 생활 끝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야 할 덕목을 구약성경 신명기에서 조목조목 알려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결단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곳의 토착신이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 것을 구체적으로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눈에 보이는 가나안 신들을 쫓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한꺼번에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지켰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으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사(judges)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이방 민족의 통치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외손잡이 사사 에훗, 여성 드보라, 기드온, 입다가 대표적인 사사들입니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힘들면 다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사사를 세우셨지만, 나중에는 사사들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등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나실인 삼손이 이방 여인들의 품에 쌓여서 사사답지 않게 생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스라엘을 위해서 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사기 마지막 4장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인 레위인들이 앞장서서 잇속을 챙기고, 도덕성을 상실하는 등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이스라엘에 닥친 재난입니다.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여서 베냐민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내분입니다.

 

이처럼 사사 시대는 어지러운 세상이었습니다. 룻기는 바로 이런 사사시대가 배경입니다. 앞으로 룻기를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선한 하나님 백성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우리가 가야 할 바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