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합시다 (5): 깊은 구덩이에서/ 애가 3장 55-60절
https://www.youtube.com/watch?v=Go1QeoJMQK0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어려울 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침묵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심과 주님의 은혜를 잠잠히 바라는 시간입니다. 조용한 기도에도 힘이 있습니다. 깊은 기도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시작합시다>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살펴보는 예레미야 애가서에 조용한 기도가 등장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기도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춘 기도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대부분은 부르짖고 외치는 기도입니다. 상황이 어려우니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초저녁부터 눈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히11:6)을 확실히 믿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결국에는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 것도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진심(眞心)을 확신하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깊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해서 벌을 받는 것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회개하고 다시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구하면서 소망을 발견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치니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어려운 틈을 타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제압하려는 무리도 있습니다. 생명을 끊으려고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지고 물을 붓는 악한 사람들입니다(3:53).
그때 애가서 기자가 “여호와여”라고 하나님을 부릅니다. 깊은 구덩이에 빠진 채로 하나님을 부르는 간청입니다.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입니다. 간절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전에도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이 과거 시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음성에 귀 기울이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깊은 구덩이에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믿음의 자산을 갖고 탄식하며 부르짖는 확신의 기도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올 한 해 우리의 삶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쉬운 삶은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임재와 도움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
– 인자하심을 따라
예레미야 애가서를 읽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대하시는 것이 너무 심하게 느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충분히 경고하셨고, 이스라엘의 죄악도 용서받기 힘들었지만,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멍에를 메우셨다고 말하니,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선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도 하나님을 기업삼고 아침마다 새롭게 찾아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애가서 말씀이 대단하게 다가옵니다.
애가서 속의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구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서로 대표되는 구약의 정통 신학은 인과응보입니다. 그에 반기를 드는 욥기같은 말씀도 있지만, 대부분 구약성경은 죄와 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애가서 역시 이 같은 구약의 큰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가서 처음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리고 오늘 본문(33절)에도 알려 주듯이 백성들에게 벌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잠시 벌을 주어서 힘들게 하시지만, 결국에는 구원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악해서 보통 벌을 갖고는 뉘우칠 가능성이 없으니 하나님께서도 궁여지책으로 큰 재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역시 “인자와 긍휼”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에 따른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기 백성을 심판하지만, 하나님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변치 않는 인자(헤세드)와 어머니 같은 긍휼(레헴)이 자리잡습니다. 그러니 재난으로 인해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결국에는 구해 내실 것입니다.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이 여기실 것임이라”(32절)는 말씀이 당시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생하게 하시고 근심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절대 아닙니다. 또한 여기서 “근심”은 힘든 일이 겹치면서 찾아오는 슬픔입니다. 애가서의 슬픔은 죽은 자를 애도할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이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할 신앙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입술을 땅에 대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혹시라도 소망을 주실 것을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河-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새롭게 시작합시다>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에 맞춰서 예레미야 애가서를 읽고 있습니다. 여전히 팬데믹이 지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과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기다리는 애가서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애가서는 예루살렘의 멸망 앞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눈물로 기록한 슬픔의 노래입니다. 조가(弔歌)에 맞먹는 애가서는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했음을 슬퍼합니다. 큰 재앙이 닥쳤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앞세워서 애통하고 부르짖습니다. 예루살렘은 자신들의 행위를 조사하고 결국에는 하나님께 돌아와서 다시 눈물로 회개합니다.
애가서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이 한 가운데 위치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애가서 3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벌을 내리신 것은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벌을 내리시지만, 그 끝에는 구원과 회복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들을 야단치고 꾸짖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에 어머니의 마음이 들어있는 이유입니다.
쑥과 담즙과 같은 고난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이 눈물로 회개하면서 소망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이 겪는 모든 어려움이 결국에는 소망이 된다는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인데 하나님께 소망을 두니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힘든 삶 한 가운데서 아침마다 찾아오시는 성실하신 주님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기업삼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애가서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고난을 주신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니 고난도 결국에는 소망이고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좋으신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따라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 잠잠히 주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힘든 멍에를 지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듯이 우리도 자기 멍에를 지고 묵묵히 인생길을 가는 것입니다. 옛날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처럼 자기가 스스로 자초한 멍에라면 입을 땅의 티끌에 대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주님을 찾습니다. 그때 임하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어떤 이유든지 인생길에 근심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때 소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치욕을 당해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주님을 찾고 기다리는 주의 백성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河-
아침마다 새로우니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심한 것이 3일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새해가 되면 너도 나도 새해 결심을 정해서 노트하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알립니다. 그런데 새해 결심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새해 첫 달이 지나면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회자됩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예레미야 애가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반역한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죽음을 맞이한 듯 폐허가 된 것을 애도한 슬픔의 노래입니다. 절망이요 깜깜한 어둠입니다. 전쟁으로 나라를 잃고 나니 그 재난이 고스란히 힘없는 백성들에게 옮겨와서 어린이까지 거리에 내팽개쳐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쑥과 담즙과 같은 고난이 밀어닥친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마음과 손을 들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낙심한 마음을 그대로 갖고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때 그 고난이 “오히려 소망”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심판하셨지만, 하나님의 본래 의도는 그들이 하나님 백성의 자리를 지키도록 회복시켜 주시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자(헤세드)와 긍휼(라헴)의 마음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침마다 성실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찾아오셨습니다. “주의 성실”은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심입니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태양이 세상을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규칙적이시고, 일정하시고, 틀림없으신 분입니다. 이렇게 성실하신 주님께서 아침마다 함께 하시니, 매일 아침이 새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애3:23). 올해 우리 교회 표어 <새롭게 삽시다>에 해당하는 주제절입니다. 매일같이 주님과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또는 마지못해 맞이하는 아침이 아니라, 성실하신 주님과 더불어 시작하는 새로운 아침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내가 그를 바라리라.”(애3:24).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기업”이라고 고백합니다. 기업(portion), 자신이 추구하고 갖고 싶은 몫입니다. 하나님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올 한해 아침마다 새롭고 성실하신 주님과 동행합시다. -河-
새롭게 시작합시다 (1): 오히려 소망이 됩니다/ 애가 3장 19-24절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새롭게 시작합시다”입니다. 지난 2년여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코로나바이러스 침투에 쩔쩔 맺습니다. 1년여는 집에서 갇혀 있다시피 했습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많이 좋아졌지만, 우리 마음은 얼굴을 덮고 있는 마스크만큼 답답했습니다. 델타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렇게 거의 2년을 보내고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았습니다. 올해야말로 세상이 열리길 기대합니다. 새롭게 열리는 세상에서 호랑이처럼 포효하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우리는 일상이 무너진 지난 2년 동안도 열심히 살아남았습니다. 새로운 일상(new normal)을 사는 삶의 지혜도 터득했고, 새로운 일상이 갖다 준 선물도 누렸습니다. 그래도 훨씬 자유롭고 마음까지 가벼운 새로운 세상을 기대합니다.
작년에 예레미야서 한 가운데 있는 소망의 말씀(렘30-33장)을 공부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 주제절 역시 예레미야 애가 한가운데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3:23). 앞으로 한 달 동안 애가서 3장 19절 이하의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예루살렘의 멸망 앞에서 부른 선지자의 슬픈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그곳에 바빌론 군대가 몰아닥쳤습니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많은 사람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빌론 제국의 신 마르둑이 통치하는 세상에 던져진 것입니다. 각지로 흩어진 민족과 백성들이 다시 시작하거나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것입니다.
절망입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가 애가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 소망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초와 재난”을 쑥과 담즙에 비유합니다. 그만큼 쓰라린 고난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뚝 떨어지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가운데 그 모든 어려움을 마음 속에 기억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모셨습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마음 깊은 곳에 임합니다. 그러자 그의 고난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의 삶이나 세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지난 2년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 마음에 상함을 경험하신 이웃들이 너무 많습니다. 쑥과 담즙과 같은 시간을 보낸 분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 어려움이 오히려 소망이 되는 역전이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