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3)

이스라엘에 가면 사해 바다가 있답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dead sea)입니다. 사해 바다가 죽은 것은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사해 바다도 순환이 되지 않으니 그만 죽은 바다로 변한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교회 표어가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인데 우리가 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세상에 흘려보냄으로 살아있는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무엇이든지 나만 갖고 있으면 하나뿐이지만 그것을 누군가와 나눌 때 둘이 되고 셋이 되는 증폭의 역사가 일어남도 기억합시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칭찬 없이 책망만 받은 교회가 있는데 바로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사데교회는“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교회가 존재했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 보시기에 죽은 교회였습니다. 사데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행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거하실 곳이 없었습니다. 신앙을 모두 잃어버렸고 이름만 교회라고 불렸습니다.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다시 시작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보시기에 죽은 교회였지만 그 안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성도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힘든 가운데도 교회를 가슴에 품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부유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교인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레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듭니다.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신앙이 미지근해진 것입니다. 무엇보다 라오디게아는 물사정이 좋지 않아서 인근 온천에서 물을 배달해서 먹었는데 수도관을 통해서 도시에 도착할 즈음이 되면 물이 미지근해지곤 했습니다. 또한 골로새에서 찬물도 배달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미지근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미지근한 신앙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말씀을 두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뜨거운 신앙과 찬 신앙이 무엇인지 제 각각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본문의 초점은 미지근한 신앙을 책망하려는 것입니다.

생활이 편해지고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아지면 신앙이 미지근해집니다. 미지근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충 믿고, 형식적으로 교회 생활을 합니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두고 가련하고 벌거벗은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성공했지만 신앙적으로는 낙제점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입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세상 것들 보다 가장 위에 두는 것입니다. 받은바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河-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2)

올 해 우리 교회 표어는“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가 되고 성도들이 되기 위해서 어떤 믿음과 성품을 갖고 있어야 할지를 요한 계시록에 있는 일곱 교회를 통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책망 없이 칭찬만 들었던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화산과 지진이 자주 일어났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직은 능력”이라고 표현되었듯이 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주어진 여건과 능력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습니다. 무엇보다“인내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어떤 환난이 닥쳐도 끝까지 견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놓아주셨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들이 그들 앞에 나와서 무릎 꿇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심을 원수들 앞에서 보여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늘은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서신의 에베소서로 유명합니다. 바울이 2년여 머물면서 세운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명성에 걸맞게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힘든 일이 닥쳐와도 인내하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단들이 교회에 침투해 왔지만 그들을 들이지 않고 잘 처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부지런히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결정적인 잘못이 있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신앙생활은 습관적이었을 것입니다. 열심을 냈지만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보다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거나 교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열심을 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형식적인 열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촛대를 옮기시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대신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첫 사랑을 회복하면 에베소 교회가 쌓아온 신앙의 공적과 함께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두아디라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 반대입니다. 이들은 처음보다 나중이 좋았습니다. 두아디라는 염색 산업으로 유명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역시 사업을 많이 했고, 에베소 교회처럼 참고 인내하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처음보다 나중이 좋았으니 칭찬받을 만 합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이라고 하는 음란한 선지자를 교회에 들이면서 도덕적으로 문란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큰 환난을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얼른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는 나중 신앙을 궂게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두아디라 교회 역시 새벽별처럼 빛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서 처음과 끝이 똑같이 신실할 때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인내는 필수입니다. 잘못된 것은 얼른 고치고, 잘하고 있던 신앙을 굳게 잡을 때 하나님께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시고, 새벽별처럼 빛나게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도 주님 앞에서 처음과 끝이 일정하길 원합니다. 새해의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이어지고 그 안에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 -河-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올 해도 어김없이 새해를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365일이라는 귀한 자산을 인생통장에 넣어주신 것입니다. 이 귀한 자산을 관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청지기인 저희들의 몫입니다. 물론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우리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께 친히 기도해 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2015년 우리 교회 표어는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물론 성도님들 각자도 하나님께서 쓰시길 기대하면서 정한 표어입니다. 늘 그렇지만 우리 교회도 2015년이 꽤 중요합니다. 그동안 여기까지 잘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새해를 맞는 여러분들의 삶도 똑같이 중요한 단계에 진입해 있을 것입니다. 사업, 직장, 학업과 연구 그리고 개인의 모든 삶의 지경에서 중요한 한 해를 맞는 분들이 계십니다.“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성도님들을 써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쁠 때는 찬송하고, 힘들 때는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나침반 삼아서 한해를 살아갑시다.

올 해부터 몇 가지 변화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주일예배에서는 성경본문을 앞에 띠우지 않습니다. 꼭 성경책을 갖고 오셔야 하고, 예배 전에 성경본문을 미리 찾아 놓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도신경을 새로 개편된 것으로 앞에 띠우고 온 교회가 함께 고백합니다. 습관적으로 외우는 사도신경이 아니라, 또박또박 함께 고백하면서 매 주일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기 원합니다. 예배실 뒤에 헌금함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예배 전후에 자유롭게 헌금하시면 됩니다. 헌금하실 때 기도제목을 적어주시면 제가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을 갖고 소통하고, 또한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목회할 수 있습니다.

1월 중에 속회를 개편할 예정입니다. 작년에 속회모임이 생각만큼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속회를 작은 가정단위로 묶어서 개편할 계획입니다. 모임 횟수나 장소, 속회 헌금 여부도 속회 안에서 자유롭게 결정하시면 됩니다. 대신에 약속한 시간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말씀을 공부하고,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성도의 교제를 함으로 속회는 물론 우리 교회가 더욱더 친밀하게 하나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의 자원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닙니다. 생업으로 바쁘시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또 멀리서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팎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셔서 여기까지 왔지만 재정적으로도 안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올 해는 이웃을 섬기려고 합니다. 노숙자를 돕는 것, 작은 교회들을 지원하고, 수년 동안 해왔던 고국의 어린아이들을 돕는 일등 힘닿는 대로 구제와 선교를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 모든 교회의 사역에 꼭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주중에는 어려워도 토요일 새벽기도회에 많이 참석하시면 고맙겠습니다. 밤 10시에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전통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를 세워갑시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에 주님의 은혜와 신령한 하늘의 복이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河-

로마서 8장 : 끊을 수 없는 사랑

로마서 8장은 구절구절 주옥같은 말씀으로 이뤄져있습니다. 12월 한 달을 로마서 8장과 함께 지내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주일에 말씀을 듣고 주중에는 개별적으로 말씀을 묵상해 오셨다면 하나님 말씀의 깊은 맛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혹시 바쁘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말씀 묵상에 참여하지 못하셨다면 남은 삼일 동안 로마서 8장을 읽으시고 곱씹으시면서 말씀의 은혜를 흠뻑 체험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로마서 8장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라는 힘찬 선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을 법을 이겼다는 확신에 찬 고백이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를 비교하면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케 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하는 성령을 쫓아 살아야 함을 깨우쳐주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서”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는 말씀도 나눴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육신의 생각을 쫓을 때가 많이 있고, 어그러진 세상에 살다보면 죄악된 세상과 똑같이 신음하고 탄식합니다. 그때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 주신다는 말씀 앞에 큰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 뜻대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니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절)는 말씀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확신이요, 능력이요, 자신감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로마서 8장의 피날레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과 그 결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만도 감지덕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소개됩니다. 네 가지 질문으로 시작되는 각 단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이 쓰일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고발당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고난이나 가난, 위험이나 심지어 죽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바울이 고백하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대로 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고 죄에서 자유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유혹,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河-

로마서 8장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우리는 이제 로마서 8장의 한 가운데 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고난이 닥칩니다. 삶 속에서 겪는 신음이 있습니다. 세상을 둘러보아도 탄식이 나옵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 주신다는 말씀을 지난 시간에 나눴습니다.

힘겨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당황스러운 순간입니다. 때로는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해주신다는 말씀이 은혜로웠습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28절입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 삶의 모든 것들과 신앙생활의 모든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룹니다.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신음과 탄식의 순간들이 닥치지만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고백은 매우 강력한 말씀입니다. 28절 말씀을 믿는다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하나씩 대응해 나갈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뜻 또는 계획)가 들어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선으로 끝난다는 믿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축복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려는 육신의 생각과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다음 구절에 자세히 나옵니다. 29-30절의 다섯 가지 중요한 표현들입니다:“미리 아신 자들” “미리 정하셨으니” “또한 부르시고” “또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부르시기로 정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의롭게 하시고 결국 영화롭게 하십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를 가리킵니다. 결국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대로(계획하심대로) 부르심을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우리는 그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축복이 임합니다. 할렐루야!-河-

로마서 8장 : 성령의 탄식

로마서 8장에는‘성령’이라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무려 스물한 번 등장하는데 로마서는 물론 성경 전체에서 한 장(chapter)에 성령이란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오는 횟수일 것입니다. 성령뿐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하나님의 사역이 잘 나타납니다.

육신이 할 수없는 것을 성부 하나님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셨고, 육신에 죄를 정하셔서 그를 믿는 자들을 죄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모두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양자의 영을 받으므로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은 “생명의 성령“ ”하나님이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다양하게 불립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생명과 평안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들을 괴롭히는 죄의 행실에서 해방되도록 돕습니다. 이처럼 로마서 8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모두 소개되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25-26절은 18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 얽매여 있던 우리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되었습니다. 사망으로 이끄는 육신의 생각에 머물지 않고 생명과 평안을 주는 영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니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을 향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이나 삶이 하나님 자녀의 완전한 모습은 아닙니다. 모든 세상이 죄로부터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종종 탄식이 나오고 한숨이 나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피조물들도 탄식한다고 본문은 말합니다(22절).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질병에서도 해방되고, 근심과 염려가 없는 말 그대로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매우 힘들게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지만 신음하고 탄식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의 탄식과 약함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말합니다. 신음이 나오고 탄식이 나올 때는 기도도 나오지 않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다급한 상황입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들이 탄식하고 신음하듯이, 성령 하나님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기도해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시고 공감하신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통하시니 성령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탄식이 하나님께 전달됩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지쳐서 기도할 수 없을 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더욱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河-

로마서 8장 : 생명과 평안

지난 시간에는 로마서 8장의 첫 번 네 구절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되었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물론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육체에 죄가 침투하면 순간적으로 죄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줍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날마다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5-8절에서는 사람을 둘로 구분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여전히 죄와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의 일은 세상의 쾌락과, 자신을 위한 욕심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교만입니다. 세상 속에서 자신만이 주인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길 원하기에 하나님을 마음에 모실 수 없습니다.

반면에 영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여기서 영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가리킵니다. 9절에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인생의 주님(Lord)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집이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면 11절에 있듯이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 임합니다. 이처럼 영을 따르는 사람은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과 영을 따르는 사람은 확실하게 차이가 납니다. 우선 육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겉으로 또는 속으로 대적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부정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법을 따르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 죽음으로 끝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고 성령을 쫓아 행하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을 생각합니다. 생각 자체가 육신을 쫒는 자와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영원한 생명에 참예하게 됩니다.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따라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국 평안을 되찾습니다. 순간적으로 흔들려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회복하고 신앙과 삶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갑니다.

영을 쫓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변호해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면서도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생각으로 충만하니 생명과 평안이 그를 다스립니다. 생명의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참빛 교회 식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河-

로마서 8장 : 생명의 성령의 법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배우며 자라가는 교회>였습니다. 표어대로 전반기에는 전교인을 대상으로 <신앙터잡기> 성경공부를 하였고, 주일 설교에서도 참빛 성도님들의 신앙성숙을 위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제 201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더욱 튼튼히 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원해서 로마서 8장 말씀을 연속해서 전하기로 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신약성경은 물론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이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로마서가 16장이니 8장은 정확히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무엇보다 로마서 8장은 1-8장에 이르는 로마서 전반부의 결론이자 9장 이후를 열어주는 대문입니다. 로마서 앞부분을 모두 읽지 않아도 8장만 올바로 이해한다면 로마서 말씀을 쉽게 포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로마서 8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인 1-17절은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지위와 삶을 설명합니다. 두 번째 18-27절은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누릴 영광을 밝히 보여줍니다. 1-17절이 예수님을 믿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모습이라면, 18-25절은 장차 완성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의 삶으로 미래를 지향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26-3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느 정도로 사랑하시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알려주는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이처럼 로마서 8장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며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1-4절은 로마서 8장의 서두이자 7장과 8장을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죄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놓고 탄식했습니다.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싶지만 실제로 육체의 법에 종이 되는 자신을 보면서“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7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표현이“육신(flesh)”입니다. 여기서 육신은 우리의 몸(body)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지배를 받는 삶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곧 육신의 삶입니다.

바울이 육신에 침투한 죄와 그 결과를 놓고 고민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바울에게 새로운 소식, 기쁜 소식이 임했습니다. 7장 25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찬송합니다. 그리고 8장 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라고 하나님께 감사했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이제”라는 표현은 과거의 삶이 지나가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을 암시합니다. 바울의 고민과 비참함이 사라졌음도 예고합니다.

죄가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여기서 정죄는 재판정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다고 선포합니다. 죄가 사라졌습니다.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고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죄가 사망의 법을 갖고 오는데 비해서 성령은 생명의 능력을 갖고 왔습니다. 따라서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은 능력이요 은혜요 사랑입니다. 할렐루야! -河-

신앙의 인물 – 땅콩 박사와 최씨부인

이번 연속설교에서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본받을만한 신앙의 인물들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땅콩박사로 유명한 조지 워싱턴 카버(Washington Carver)와 한국인 최초 해외선교사였던 최씨 부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워싱턴 카버는 흑인 노예의 아들로 1864년에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노예상인들에게 잡혀가면서 어린 시절을 힘겹게 보냈습니다. 워싱턴 카바는 매우 총명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림과 예술에도 재능이 있었고 비록 노예 신분이지만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성품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림을 배우러 다니던 부부의 추천으로 흑인들을 받아주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중에는 아이오와 주립대학으로 옮겨서 농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워싱턴 카버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땅콩이었습니다. 농부들이 땅콩을 많이 재배하고 수확하는데 보관할 방법이 없어서 버려지곤 했습니다. 대학 연구소에서 일하던 위싱턴 카버는 땅콩을 사용해서 피넛 버터를 만드는 등 땅콩을 사용한 가공식품을 발명하게 됩니다. 땅콩 연구로 유명해 진후에는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서 수입땅콩에 관세를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세법개선책을 의회에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생 땅콩을 연구하면서 사회에 공헌하는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번째로 살펴볼 최씨 부인 최나오미는 1873년 개성에서 출생했습니다. 당시 풍습에 따라 젊은 나이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술주정뱅이에 노름꾼입니다.. 게다가 아이를 갖지 못한 탓으로 시댁 어른들의 냉대도 극에 달했습니다. 어려운 삶을 살던 최씨 부인은 서양 사람들이 이상한 종교를 전한다는 소문을 들었고 선교사들이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낙천적이고 활발한 성격의 최씨 부인은 성실하게 예배에 나갔고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핍박도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습니다.

외출이 잦은 아내를 의심한 남편이 최씨 부인의 뒤를 쫓아서 몰래 예배에 참석합니다. 남녀가 따로 앉아 있고 선교사가 전하는 말씀이 틀리지 않은 것을 보고는 결국 남편도 예수님을 믿게 되고 나중에는 선교사 집에서 집사로 일하게 됩니다. 최씨 부인의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감리교회의 전도부인으로 임명되어서 원산 근처에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기 몸에서 낳은 아이는 없지만 어려운 아이를 양자로 들여서 친자식처럼 키웠습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최씨부인은 시베리아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해외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시베리아에서 일 년 동안 선교를 하고 귀국해서 개성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평생 여성운동을 펼치다가 1949년 하나님께 갔습니다. 여성의 몸으로 해외선교사로 나갈 정도의 열심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더 많은 인재를 키우는 선교사역에 힘쓴 최나오미 부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모두 완수하면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던 신앙의 인물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귀감이 되는 신앙의 선배들이 계심이 자랑스럽고 도전이 됩니다. 우리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河-

신앙의 인물 – 우찌무라 간조

오늘 살펴볼 신앙의 인물은 일본 기독교 역사에 토대를 놓았고 기독교는 물론 일본의 사회와 문화 발전에 공을 세운 우찌무라 간조(内村鑑三)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1861년 무사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군인이었고, 아버지는 문무를 겸비한 학자였습니다. 일본에는 천주교가 1549년에 일찍이 전래가 되었지만 200여년간 박해를 받아서 30만 이상의 순교자를 냈습니다. 명치유신이후에도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가 금지되었다가 1873년 기독교 금령이 해제되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가 기독교를 접하게 된 것은 삿포로 농업대학에 입학하면서 부터입니다. 그곳에는 선교사들은 물론 기독교를 믿는 학생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기독교 모임에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우찌무라 간조는 기독교에 반대하는 아버지를 전도하기 위해서 마가복음 주석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서양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주석을 모두 읽고는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이후에 우찌무라 간조를 통해서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우찌무라 간조는 미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How I became a Christan>라는 책에 그가 미국에 와서 경험한 일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을 마음속에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도 미국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였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1884년 11월 24일 새벽에 나는 황홀한 눈으로 기독교 국가의 희미한 윤곽을 처음으로 포착했다. 다시 한 번 나는 내가 묵었던 3등 선실로 내려가 거기서 무릎을 꿇었다. 여러 사람들의 흥분에 뒤섞이기에는 너무도 진지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지막한 해안 산맥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자 내 꿈이 실현되었다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나를 압도했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금세 금문교를 지났고, 눈앞에 펼쳐진 굴뚝과 돛대들은 모두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교회 첨탑처럼 보였다.”

미국에 온 우찌무라 간조는 성경식 이름이 많이 있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랍니다. 사람들이 성스러운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랍니다. 소매치기도 당하고 처음 미국에 온 대가를 혹독하게 치릅니다. 팁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는 “자선까지 물물교환을 하는 이 나라에 대해 놀라움과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망연자실”했다고 적었습니다. 시카고를 거쳐서 보스턴에 간 우찌무라 간조는 애머스트 대학과 커네티컷 하드포드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신학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지난주에 배운 썬다싱이나 종교개혁자 루터가 한 순간에 예수님을 체험한 것과 달리 우찌무라 간조는 끊임없는 고민과 질문을 통해서 차근차근 기독교의 진리를 깨우쳤습니다. 일본에서는 신앙의 동지들과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미국에 와서는 그의 스승들과 목사들과 교제하면서 신앙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중요하게 여겼고 기독교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명감을 갖고 평생을 살았습니다.“맑고 기분 좋은 날이다. 고요하다. 아직도 너무 외로울 때가 많지만 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그의 일기 중에서.-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