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이 주는 교훈 1 : 지혜

세상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은 공부나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지만 지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참되고 의미있게 사는 법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지혜가 그의 인생길을 제시해주고, 지혜가 그의 사람 됨됨이를 결정해 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들은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신약성경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시편 111편 10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며 그의 계명[말씀]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사모하는 이들은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특별히 구약의 잠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고 하고 새해를 맞는 올 해의 마지막 달에 하루에 잠언을 한 장씩 읽고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는 비결임에 틀림없습니다.

잠언(Proverbs)은 말 그대로 삶의 지혜를 주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다윗의 아들이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늘의 지혜를 얻은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1절에서 가르쳐줍니다. 잠언이 어떤 말씀인지 가르쳐주는 1장의 초반부에서는 지혜, 훈계, 명철이 말씀과 더불어 등장합니다.“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이라는 1장 3절 말씀을 통해서 잠언 말씀이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의 잠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배우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줍니다.

잠언의 주제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라”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구절이 잠언에만 18 번 이상 나옵니다. 잠언의 주제절이라고 할 수 있는 1장 7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목숨까지 바쳐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 그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잘못행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올 해의 마지막 달에 잠언 말씀을 매일같이 읽고 묵상함으로 우리 안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굳게 자리잡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고 그것을 통해서 험하고 복잡한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로 우리의 신앙이 세워져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함을 얻기 원합니다.-河-

감사

“감사”라는 말이 우리말 성경에 180번 이상 나옵니다. 그 가운데“감사하라”는 명령이 서른다섯 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다보면 감사에 대한 말씀은 물론“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서른 번 이상 듣게 됩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사하라는 명령을 따라 살면 더욱 좋겠지요. 하루에 서른다섯 번씩 감사할 것을 생각하고 말로 감사의 표시를 한다면 우리들의 삶이 부요해지고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살펴본 겸손과 회개와 마찬가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높은 곳에 있으면 감사하기보다 교만하거나 높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더 아등바등 살게 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작은 것만 얻어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에 감사를 느끼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의 자리로 나오는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함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오라고 권면합니다. 염려하는 마음에 감사가 사라집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꽁꽁 얼어붙게 만듭니다. 염려를 떨치고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할 때 감사가 살아나고 어려움을 이길 지혜와 힘을 얻습니다. 이처럼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며 엎드릴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인 골로새서 3장에서도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이나 행함에 감사가 넘쳐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시와 찬미가 임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야 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말씀대로 “감사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올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경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우리네 서민들의 경제는 여전히 힘겹습니다. 젊은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순간순간 느꼈을 것입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파도가 밀려오듯이 크고 작은 일들이 쉬임없이 밀어닥쳤습니다. 그래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주일을 맞게 됨이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는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주시는 가운데 젊은 성도님들이 새로 오셨습니다. 교회에 어린아이들이 뛰며 노는 소리만큼 우리들의 마음도 기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도움의 손길을 사방에서 제 때에 보내주셨고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낮은 자의 자리에 내려가서 무릎 꿇고 주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가난한 교회요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회개의 자리로 나가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되어야 할 부끄러운 주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기쁠 수밖에 없음을 추수감사주일을 지내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河-

갈망

우리는 4주에 걸쳐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요즘세대는 자신을 한껏 높이고 자랑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만큼 인간의 문명이 발달한 적도 없었기에 인간의 교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에 대한 간절함이나 갈급함이 많이 식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물질적으로 부유했지만 미지근한 신앙을 가졌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책망이 우리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솔직한 모습으로 나가야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낮은 자리로 내려갈 때 높으신 하나님이 보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질 때 하나님을 더욱 찾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과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회개하게 된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회개는 단순이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감사가 있어야 함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만을 기다리고 구하는 것을 넘어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자신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을 때 어떤 일이 닥치든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신앙으로 자라가길 원합니다.

마지막 시간인 오늘은 첫 시간에 읽었던 역대하 7장 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지난 세 시간에는 앞에서 말했듯이 악한 길에서 떠나는 회개와 스스로 낮추는 겸손, 그때 마음에 임하는 감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갈망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간절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하나님을 믿기보다 애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 있다면 얼른 회개하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적갈증을 하나님으로 채움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죄사함과 치유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보좌 앞에 들어가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합니다. 올해의 남은 한 달 동안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참빛교회 식구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회개

회개 또는 회심이라는 말을 교회에서 자주 사용합니다. 두 가지 경우가 비슷한 뜻이지만 회개(repent-ance)가 앞에 있고 회개한 이후에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회심(conversion)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회개는 회심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인 셈입니다. 회개는 구원에 이르는 현관문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회개의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회개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신의 옛 모습을 인정하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자신이 주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유아독존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살았던 인생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향해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회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슈브는“돌아서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삶,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부정하던 마음,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던 교만함을 깨닫고, 인정하고, 그런 옛날의 삶에서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모두 담당해 주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십니다.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죄의 지배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옮겨졌지만 우리 안에 여전히 죄의 찌꺼기가 남아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이 우리를 죄 가운데로 유혹합니다. 저는 이것을 두고 죄가 우리에게 달려 붙는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회개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회개는 매일의 과업입니다. 아니 순간순간 죄의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 백성으로 멋지게 자라가야 합니다. 앞에서 회개를“돌아섬”이라고 했습니다.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도 바뀌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비롯한 가치관도 바뀌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가 단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 또는 죄책감을 해결하는데 만 머물러서 안 됨을 발견합니다. 회개는 삶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셨고 그는 서둘러 내려와서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개했습니다. 말로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을 완전히 청산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삶의 변화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향해서“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새로운 삶으로 인도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죄를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삶으로 나가게 하는 힘이 회개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생명의 능력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기 원합니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 엎드려 우리의 남아있는 죄성과 그릇된 행동을 회개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가기 원합니다. 회개는 우리 모두를 근사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河-

겸손

2013년 한 해도 이제 한 달 반 정도 남았습니다.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맞설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에 시간을 막아보려는 시도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푸념하기보다 올 해 초 송구영신 예배에서 말씀드린 대로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가 아니라 가치와 추억이 가득 담긴 시간“카이로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시간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봅니다. 시간의 끝이 죽음이기에 더욱 절망스럽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발버둥을 칩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럽습니다. 어떤 경우는 끝이 있음을 망각한 채 천년만년 살 것처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구약 전도서 기자의 고백처럼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크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4주 동안“우리의 가난함, 주님의 부요하심”이라는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연속 설교의 제목을“가난한 마음을 주옵소서”라고 정했었는데 연말에 너무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기에 우리들은 미천하고 가난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부요하시다는 제목으로 바꿨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백성들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실제로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거할 집이 없는 가난한 백성들을 친히 입히시겠다고 성경 곳곳에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면서 양을 치던 유목민들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 같은 가난한 민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도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늘나라를 약속하신 축복으로 시작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몸과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셔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주시고 부요하심을 더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능력을 자신 안에 가득 채우려는 마음이자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7장 14절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악한 길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낮추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낮출 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려고 작정을 하신 것을 거두셨습니다(왕상 21:29).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옷을 찢으며 회개하면서 주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왕하22:19). 사자 굴에서 살아났던 다니엘은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겸손하게 살기로 결심한 첫 날부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고 그의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단10:12). 오늘 본문에서도 주의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주님이 계신 성전에 나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땅을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낮추는 겸손은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경험하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지나치게 교만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아가 살아나고 경험을 앞세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스스로 낮추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그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셔서 주님의 이름이 드높여지길 원하십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나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河-

감사

오늘은 우리 교회가 새로운 성전으로 이사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새성전을 구입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하나님의 뜻이면 새성전을 주시길 기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소 경험해 왔습니다. 우리들 인생이 그렇듯이 교회에도 파도처럼 크고 작은 어려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그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손길들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핏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심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엊그제 새벽기도회에서 읽은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 말씀에는 유사한 표현이 두 번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13장 10절에“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와 14장 12절의“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두 구절 모두 성도의 믿음과 인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입니다. 믿음의 진수는 얼마나 끝까지 견디느냐에 있습니다. 인내가 없는 믿음은 거품과 같습니다. 대신에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있을 때 믿음에 꽃을 피우게 됩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성도들의 믿음과 인내는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난 2년여 우리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우리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책임지실 것이라는 믿음, 거기에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없었다면 오늘 이렇게 2주년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묵묵히 잘도 견뎌냈습니다. 눈에 띨 정도로 화려하거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자랑거리도 없는 말 그대로 평범한 우리들이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습니다. 힘껏 교회를 섬겼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우리 안에 성도의 믿음과 인내가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기독교가 사람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기독교를 얕잡아보고 지나칠 정도로 기독교를 비난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들은 더욱 더 믿음의 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터를 잡고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제 말로 전도하는 시대는 지나갑니다. 우리들 각자가 세상 속에서 작은 예수가 되어서 마음으로 몸으로 진리와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참빛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이런 참다운 믿음과 인내가 더욱 넘치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는 김평욱 선교사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 가운데 하나가“구제와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아직은 부족해서 마음껏 돕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쫓아서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김 선교사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서 나가는 귀한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2주년 감사 예배를 드리면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에 에벤에셀, 도움의 돌을 하나 놓고 앞으로 나갑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예수님의 사랑으로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세워가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립시다. -河-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오늘은 개신교회들이 함께 지키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말틴 루터가 당시 교회와 사제들의 잘못된 관행을 고발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부르그 성당 앞에 게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비와 은행 빚을 갚기 위해서 신자들에게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이미 죽어서 연옥(가톨릭에서 죽은 자들이 가서 대기하고 있는 장소라고 보는 곳)에 있던 영혼들이 쨍그랑하고 헌금이 험금통에 떨어짐과 동시에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주장했습니다. 헌금을 걷기 위해서 만들어낸 방법인데, 멋모르던 백성들은 그 말을 믿고 조상들을 위로하기 위한 방편으로 너도나도 면죄부를 샀습니다.

이것을 본 수도사 말틴 루터는 마음에 분노가 일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것을 갖고 교회가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성도들을 속이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학 교수이기도 했던 말틴 루터는 이러한 교회의 그릇된 관행을 고발하고 학교 안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고 싶어서 95개조 반박문을 성당 앞에 게시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는 개신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말틴 루터 역시 자신의 처음 의도와 다르게 종교개혁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가 발표한 3대 논문 가운데 하나가 “교회의 바벨론 포로됨”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니 세상왕의 지배를 받게 되고 세상에 포로가 된 것입니다.

말틴 루터 시절에 교회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기보다 교황과 종교 지도자들의 잇속과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성례전까지 순수성을 잃어버린 채 교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진정한 믿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는 교회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혔다고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거나 세상을 쫓았을 때 자신들도 모르게 세상에 포로가 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포로생활을 했듯이 세상에 끌려가서 세상방식을 강요받습니다.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억압과 억눌림으로 괴롭습니다.

누가복음 4장 말씀은 메시야로서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에 대한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복음은 무엇엔가 포로된 사람들을 자유케합니다. 눈이 멀어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줍니다. 억압받는 사람들도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임하면 자유를 회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은 은혜의 선포입니다.

종교 개혁주일을 맞아서 우리들도 행여나 억압받고 무엇엔가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원합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세상에서 각자 지고 가는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말틴 루터의 말 대로 복음 아닌 다른 것들에 포로가 되어 있다면 거기서 헤어 나와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도 복음이 임하면 진정한 자유가 임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와 세상을 자유케하기 때문입니다. 새장의 문이 열리면서 갇혀 있던 새가 창공을 향해서 날아오르는 것처럼 우리들도 복음 안에서 날아오르기 원합니다.-河-

좋으신 하나님

누군가 저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지체 없이“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가 만난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의 삶과 목회의 여정 속에서 결국에는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만났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나눈 시편 23편 말씀 그대로 푸른 초장에 눕혀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말 그대로 평탄한 삶을 살았고,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인도해 주시는 길은 말 그대로 푸른초장이었습니다.

도리어 목회를 하면서 어려움이 종종 닥쳤습니다. 그때마다 목회가 영적인 싸움임을 깨닫고 더욱 더 기도의 자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움은 늘 상대적이어서 제가 겪은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 저는 다윗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제게는 힘겨운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다윗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막대기로 저를 보호해 주셨고 지팡이로 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푸른 초장에서 만난 하나님께는 저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만난 하나님 앞에서는 말없이 무릎 꿇고 그 크고 깊은 은혜에 감격할 뿐입니다.

어디 저만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모든 주님의 백성들은 푸른초장과 골짜기의 삶을 번갈아 경험하지만 그때마다 좋으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어디서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우리들을 인도해 주십니다. 저는 우리 참빛 교회 성도님들께서 삶의 순간 순간에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양희원 형제의 아버님께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장교로 복무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시고 목회를 시작하신 훌륭하신 목사님이십니다. 한국이나 미국 각지에 계신 부모님들께서 우리 교회를 방문해 주시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말로만 들으시다가 자식들이 섬기는 교회를 직접 와서 보시면 마음도 놓이시고 무엇보다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양 목사님께서 섬기시는 교회와 가정위에도 그대로 임하길 기도합니다.

어느 덧 10월도 중순이 넘어갔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사계절이 비슷하지만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낙엽이 지는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을은 말 그대로 결실의 계절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계절입니다. 농부들이 들에 나가서 정성껏 곡식을 추수하듯이,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정성껏 헤아리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기 원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이 가을에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하기 원합니다. -河-

흘러 넘치는 은혜 7 : 임재

“흘러넘치는 은혜”라는 제목의 연속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흘러넘치는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과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쳤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흘러넘치는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죄와 허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밧세바를 범한 다윗은 하나님께 나와서 통회자복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자신에게 실망한 나머지 예전 생활로 돌아갔지만 그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초대교회를 세우는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깊은 죄사함을 경험한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옥합을 깼습니다. 죄와 허물로부터 자유로워야 은혜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자리 잡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정결하게 씻음 받았을 때 비로소 거룩한 성령이 활동합니다. 이처럼 흘러넘치는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죄사함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가 우리 안에 부어지면 위로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손 마른 자가 예수님을 만나니 그의 오른손이 활짝 펴졌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면서 기름통이 마르지 않는 공급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은혜 가운데 살 때에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이 현실이 됩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지난주에 살펴본 창세기의 요셉이 그랬습니다. 형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내리막길의 삶이 이집트에서 총리가 되는 과정이었고, 결국에는 아버지와 형들을 가뭄에서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 받았으니 그의 모든 삶의 여정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 셈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할 때 은혜가 더욱 넘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들의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기 원합니다.

흘러넘치는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가 개인적으로 또는 가족이나 공동체 또는 민족이 겪는 고난입니다. 만사가 형통할 정도로 일이 잘 될 때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베풀어주신 은혜를 간증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반면에 어려움이 닥쳐오면 감사가 사라지고 염려와 근심이 몰려옵니다. 심하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믿음에 대한 회의가 생깁니다. 햇볕이 비출 때 은혜를 경험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먹구름이 인생길을 덮고 있을 때도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난 가운데서도 흘러넘치는 은혜를 경험해야 진정한 신앙입니다. 고난을 은혜로 감쌀 수 있을 때 비로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시편 23편의 전반부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시작되는 목가적이고 은혜가 넘치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햇볕이 비추는 밝은 날의 감사요 은혜체험입니다. 하지만 중간에는 사망의 음침할 골짜기가 등장합니다. 캄캄한 어두운 인생길을 걸어가는 다윗입니다. 고난의 내리막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벅차게 고백합니다. 흘러넘치는 은혜를 그의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한 것입니다.

흘러넘치는 은혜는 고난을 관통합니다. 고난이 은혜를 이길 수 없습니다. 고난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야 말로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할렐루야! -河-

흘러 넘치는 은혜 6 : 섭리

지난주에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1)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야 하고, 2)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피고, 구체적인 삶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를 생각하고, 3)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그곳에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은혜를 경험하는 토대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맞추는 과정입니다. 남들과 비교하거나 지난날에 대한 추억 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동안 살펴본 인물 가운데 다윗이나 베드로의 경우처럼 유혹에 넘어가서 지은 죄들이나 특별한 환경 속에서 범한 실수들이 은혜를 경험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죄나 실수 앞에 멈춰있거나 뒷걸음질 쳐서는 안 됩니다. 자칫 그것들이 우리 안에 쓴 뿌리로 남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얼른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달려가야 합니다. 부족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찾고 그 품에 안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심은 물론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들어있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들어서 사용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영광받기 원하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가장 잘 가르쳐주는 말씀은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들 삶의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충분히 경험한 후에 우리의 인생까지 손수 빚어 가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멋진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요셉이야말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한 평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편안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서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갑니다. 요셉을 시기한 형들이 그를 팔아넘긴 것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보디발이라는 고위 관리의 집에서 충성을 다하면서 인정받고 집안의 모든 일을 관할하는 청지기가 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모함해서 감옥에 갇힙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감옥은 가장 밑바닥 삶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합니다. 결국 바로왕의 꿈을 해몽해 준 덕택에 이집트의 총리에 오릅니다. 이 모든 과정을 두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신 결과라고 가르쳐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과 화해하면서 자신에게 생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고백합니다. 인생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흘러넘치게 체험한 사람의 멋진 고백입니다.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모두에게도 그대로 임할 줄 믿는 믿음과 확신으로 주어진 인생길을 꿋꿋하게 걸어갑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