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그리스도인 (4): 분별하라/로마서 12장 1-2절
진짜 그리스도인 (4): 분별하라/로마서 12장 1-2절
분별하라
로마서 12장 말씀을 공부하면서, 처음 두 구절에서 한 달 동안 머물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로마서 전반부(1-11장)를 요약함은 물론, 앞으로 펼쳐질 로마서 말씀(12-15장)의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옷매무새가 망가집니다. 높은 건물일수록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이 첫 단추와 같고, 건물의 토대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로마서 12장 1절에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던 죄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고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은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백성이 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첫 번째가 “예배”입니다. 몸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예배입니다.
몸을 드리는 예배에 이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존재 근거입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중심입니다. 마음이 변하면 우리 자신이 새롭게 됩니다. 몸으로 드리는 예배도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세대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는 거룩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니 하나님과 우리의 동역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정렬되었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내면서 신앙의 길을 가야 합니다. “분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는 무작정 또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심사숙고하면서 주의 길을 가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찾고 분별하면서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사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신앙과 생활이 통합되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
진짜 그리스도인 (3):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로마서 12장 1-2절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로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이 계속됩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촉구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로마 교회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미 임했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해서 로마 교회를 향해서 강력하게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12장 2절 가운데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를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2절 앞부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가 겉모습이라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은 내면에서 시작되는 변화입니다. 세상에서 겉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을 “이 세대”라고 했습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유혹과 세력에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밖으로부터의 영향을 방지했다면, 이제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마음은 존재의 심연입니다.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마음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생활방식이 시작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느끼고 체험합니다. 이웃사랑도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변화되는 것은 존재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새롭게 되는 것은 변화입니다. 겉모습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바뀌어서 새사람이 됩니다. 옛날의 성품과 삶이 바뀌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을 갖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변화를 받아”라는 수동태 동사가 쓰인 이유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옛사람과 새 사람을 대조해서 자세히 알려줍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또한 새사람을 입는 것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는 에베소서 말씀과 맞물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릴 때 일어나는 완전한 변화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옛날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우선, 세상을 본받지 않는 구별, 즉 거룩함입니다. 다음에는 마음이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셔서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기 원합니다. -河-
진짜 그리스도인(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로마서 12장 1-2절
로마서 12장(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진행하고 완성하신 구원에 참여하였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고 보답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12장 말씀이 우리가 해야 할 도리의 시작을 알립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임을 지난주에 배웠습니다. “몸”이라는 표현 속에서 신앙이 단순히 영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과 실제로 살아가는 삶과 연결됨을 깨달았습니다. 삶을 하나님께 드리니 거룩한 산 제사(living sacrifice)가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이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수요예배에서 레위기를 공부할 때 나눴듯이 하나님은 뒤섞이는 혼란함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질서를 갖추고 하나님 백성으로 단정하게 사는 것을 요청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르고 닮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을 사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그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거룩의 길을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절과 추구입니다. 우선, 세상과의 단절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 또는 환경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과 반대편에 있는 세력, 상황,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쫓아 사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기 전에 쫓았던 세계관이나 생활방식입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했거나 원래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가 명확하게 구분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세상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모습입니다.
“이 세대”라는 표현에서 로마서가 쓰일 당시의 세상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통치합니다. 쾌락을 즐깁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로마 제국이 최고입니다. 제국의 시민으로 사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세상의 모습일 수 있어서 섬찟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 백성으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결정나는 것도 잊지 맙시다. 세상에서 거룩의 길을 걸어가는 참빛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河-
진짜 그리스도인:로마서 12장 (1)/ 로마서 12장 1-2절
로마서 12장 (1): 너희를 권하노니
오늘부터 로마서 12장을 차근차근 연속해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기 전에 당시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얼마전 아침에 나누었듯이 바울이 드디어 로마로 가서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서 교제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로마서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전반부(1-11장)는 “무엇을 어떻게 믿을까”에 대한 대답이고 설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유대인은 물론 로마 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은 역사합니다(롬1:16).
로마서의 후반부(12-15장)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 12장 1절이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전반부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이제는 하나님 백성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가리키는 접속사입니다. 전반부가 ‘신앙’에 관한 교훈이었다면, 후반부는 ‘생활’에 관한 교훈인 셈입니다. “그러므로”라는 표현은 신앙이 생활과 삶에서 결정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혹자는 로마서는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한 교리를 설명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로마서의 종착지는 신앙을 넘어서 생활 즉 거룩한 삶에 있음을 “그러므로”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은 바울이 앞에서 설명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베푸신 은혜를 모두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긍휼(compassion)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긍휼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이처럼 큰 은혜를 힘입었으니 그 은혜에 걸맞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너희를 권하노니”라는 말씀은 로마 교회를 향한 바울의 부탁입니다. “권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속에는 “강요하다” “간곡히 부탁하다” “가르쳐서 행하게 하다” “위로하면서 격려하다”와 같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로마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길 부탁합니다. 몸은 육체를 뜻합니다. 영과 육을 분리하고 영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바울은 몸을 강조합니다. 육신은 영혼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그리스-로마 철학과 다른 주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영적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河-
찬송가 해설(8):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시편 27편 1절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베풀고,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는 분들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좋은 교회들이 훨씬 많습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밝고 맑게 만드는 원천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찬송가 429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를 지은 엘라이자 휴잇(Eliza E. Hewitt, 1851-1920) 역시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밝힌 인물입니다.
휴잇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한 학생이 널판자로 자기 선생님인 휴윗을 공격했습니다. 그 사고로 휴잇의 척추에 문제가 생겼고, 평생 척추 장애인으로 살았습니다.
졸지에 장애인이 된 휴잇에게 하루하루가 절망이었습니다. 6개월쯤 지났을 때, 깁스를 풀었지만, 더 이상 학교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었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었고, 아이들도 성실하게 가르쳤는데 자기에게 찾아온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원망이 나왔습니다. 당장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휴잇 여사에게 공원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생겼습니다. 담당 의사의 허락을 받고 목발을 짚고 공원에 나와서 햇빛을 씌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밝은 빛으로 그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자기 몸은 비록 망가졌지만, 하나님은 따스한 봄볕처럼 휴잇 여사를 비추고 언제나 거기에 계셨습니다.
병원에 돌아온 휴잇 여사가 창가에 앉아서 받은 은혜를 글로 적어 내려갔고, 그것이 찬송가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입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광채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그 이후로 휴잇 여사는 교회 초등부를 맡아서 주일학교를 섬겼습니다. 한때는 휴잇 여사가 부장으로 있는 주일학교가 백여개 클래스를 운영할 정도로 부흥했습니다. 비록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었지만, 교회에서 가르치는 은사를 마음껏 발휘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찬송으로 표현하는 일도 계속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휴잇 여사의 찬송이 여섯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주 안에 있는 나에게>도 휴잇 여사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도 휴잇 여사가 만든 찬송입니다.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