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 (9): 성령의 능력/ 에베소서 1장 19절
Category: 말씀과삶
성령 하나님 (9)
– 성령의 능력
성령에 대한 말씀을 연속해서 살펴보았고 오늘이 마지막 시간입니다.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참빛 식구들이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과 친해지고,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시길 원했습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보혜사”는 성령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함께 걸으시고, 곁에서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진리의 영이시니 생명과 진리 되신 예수님께 인도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변호하십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이 계시기에 삼위 하나님의 교제도 가능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 가운데 가장 감정적이고 어머니같은 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감싸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우리가 기도할 수 없을 때 탄식하면서 기도하는 분입니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바람의 존재를 확실히 알고 바람의 능력을 인정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체험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증거가 바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인격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에게 있고, 교회 공동체는 물론 기독교 전체가 성령의 열매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면, 추락한 기독교의 위상이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시간에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1:8). 발전기(다이나모)를 연상시키는 <뒤나미스> 라는 헬라어가 쓰였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두려움을 쫓아내고, 염려를 없애고, 어떤 어려움도 뚫고 나갈 힘을 주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사람은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죽음까지 불사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마음에 그리면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한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9)고 기도한 것도 성령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주간 “성령 하나님”을 부르며 지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원했습니다.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취하는 성령 충만함을 더욱 원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로 인해서 근심하지 않도록 하나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플레처라는 분이 말했듯이, 참빛 식구들께서 각자의 오순절 성령 강림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河-
2020년 7월 2주 말씀
성령 하나님 (8): 성령의 탄식/ 로마서 8장 26-30절
성령 하나님 (8)
성령의 탄식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 <라함>에는 어머니가 열 달 동안 아기를 품고 있는 아기집(자궁)이라는 뜻이 있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신약성경의 아가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라함>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compassion)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애틋하게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 <라함>을 잘 알려주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되신 성부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를 함께 보여주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 모두를 사랑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사랑이 성령 하나님 안에 통합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심정을 잘 표현한 단어가 오늘 본문 속에서 “탄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낙모스>입니다. 앞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까지 있어서 우리를 향하신 성령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실제로 힘이 없고 염려와 근심은 물론 두려움을 달고 삽니다. 몸과 마음만 약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도 연약합니다. 지난 세 시간에 걸쳐서 배운 성령의 열매를 맺기에 부족한 심성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드리는 기도는 우리 자신을 숨기고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여야 하는데 우리 자신을 위한 간구가 기도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기적이고 욕심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칫 우리 기도 대부분이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두려울 뿐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는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 망설임, 염려와 근심, 신앙의 방황까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게다가 성령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알고 계시니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6절).
성령의 탄식은 노아의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됩니다. 사람들이 악한 길을 가는 것을 보고 슬퍼하고 후회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하나님을 등지려는 인간의 속성은 변치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입니다. 우리 안에도 연약한 본성이 그대로 있지만, 보혜사 성령께서 하나님의 근심을 탄식으로 바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 가운데 보혜사 성령 속에 하나님의 사랑 <라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를 감싸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하십니다. 복음성가 가사 대로 “따스한” 성령 하나님을 깊이 느끼기 원합니다.-河-
2020년 7월 1주 말씀
성령 하나님 (7):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장 22-24절
성령 하나님 (7)
– 성령의 열매 (3)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으로 충성, 온유, 절제를 공부하겠습니다.
먼저, 충성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은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이 헛되지 않고 반드시 보상이 있을 것을 믿고 걷는 신앙의 길입니다(히11:6).
충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티스>는 신실함(faithfulness)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니 우리도 신실해야 합니다. 약속한 것을 지키고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맡은 일을 완수하는 것이 신실입니다. 세상 속에서 믿을만하다는 평판을 얻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마25장)에서 각각 맡은 달란트를 갖고 열심히 장사해서 갑절의 이익을 남긴 종들은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았습니다. 착한 것은 지난 시간에 배운 “양선”입니다. 선한 동기를 갖고 맡겨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성령의 열매 온유야말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온유와 겸손이 함께 갑니다. 겸손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의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으로 겸손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온유는 순종으로 연결됩니다.
이웃을 향해서도 온유해야 합니다. 이웃을 배려하고 끝까지 참아주는 것이 온유입니다. 신사적입니다.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삼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화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온유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엡4;2)라는 말씀대로 온유와 겸손, 오래 참음과 사랑은 이웃사랑에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성령의 마지막 열매는 절제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문제가 생깁니다. 욕심과 이기적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절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크라테이아> 역시 “어떤 영역에 머무는 것”이라는 뜻이니 경계를 넘지 않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절제입니다.
바울은 절제가 아닌 것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는 것은 절제가 아닙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는 상태입니다(딤후3;2-5).
그동안 살펴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참빛 식구들에게 충만히 임해서 근사한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삶을 갖추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2020년 6월 4주 말씀
성령 하나님 (6): 성령의 열매 2/ 갈라디아서 5장 22-24절
성령 하나님 (6)
성령의 열매 (2)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가늠하는 지표가 바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맺도록 도와주시는 결실이기에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인간적인 성품과 구별됩니다. 베드로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을 언급했는데(벧후2:4),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하나님의 성품에 가장 근접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성령의 열매 세 가지는 오래 참음, 자비, 양선입니다. 먼저, 오래 참음은 말 그대로 오래 참는 인내를 가리킵니다. 일상적인 인내도 포함할 수 있지만, 본문의 오래 참음은 환난과 핍박으로 어려웠던 초대 교회 당시의 상황을 반영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어려움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것이 오래 참음입니다. 바울은 환난이 닥치면 인내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인내가 연단(단단한 신앙 인격)을, 연단은 소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롬5:3-4).
오래 참음이 성령의 열매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두고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시103:8)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리석은 제자들과 3년을 함께 하시면서 참고 참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모든 고통과 조롱도 참으셨으니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성품임이 틀림없습니다.
둘째는 자비입니다. 새번역은 “친절(kindness)”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친절한 마음 또는 관대함을 뜻합니다. 트렌치라는 분은 자비를 “은혜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말, 상냥함,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라고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비로 대하십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6:1)는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성경에서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은 고통 당하는 사람들(나훔1:7), 가난하고 따돌림 당하는 사람들(시68:10),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주의 백성들(시34:8)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차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셋째는 양선입니다. 양선은 자비와 사촌지간으로 “선함(goodness)”이라는 뜻입니다. 친절한 마음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 양선, 즉 어질고 착한 행동입니다. 양선의 반대말을 생각하면, 성령의 열매 양선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흘기는 눈, 악한 행실, 인색함, 욕심 많음”등은 선한 행동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었다면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5:9)의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했는데 착함이 바로 양선입니다.
신앙생활은 물론 사람과 상황을 잘 참고 견디며, 자비를 선한 행실로 옮겨서 우리는 삶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2020년 6월 3주 말씀
성령 하나님 (5)/ 성령의 열매 1/ 요한 14장 27절
성령 하나님 (5)
성령의 열매 (1)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성령을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보았을 때, 약하고 비천한 자들과 함께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앞으로 두 주간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에 씨가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열매를 통해서 거짓과 참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뿌리까지 마르도록 저주하셨습니다. 이 정도로 열매가 중요한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고 친절하게 인도하십니다.
오늘 본문(갈 5:2-23)에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변화와 성숙을 가리킵니다.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변해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다면 겉은 화려했지만 속은 더러웠던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열매가 없다면 복음의 씨가 길가, 돌밭, 또는 가시덤불에 뿌려졌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좋은 밭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마음가짐 즉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좋은 밭을 준비하고 그 밭에 씨가 떨어졌을 때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입니다.
성령의 열매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 그 자체이시니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의 열매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을 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희락(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금세 사라집니다. 밖에서 오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리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납니다. 성령의 기쁨이 있을 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화평입니다. 기쁨과 화평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입니다(롬14:17).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니 내 안에 평화가 임하고, 세상에 나가서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처음 세 가지만 있어도 행복하고 품격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팬데믹 상황에 있는 우리 자신과 교회 그리고 세상에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