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 (2)

든든히 서게 하소서: 속사람

 

겉치레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겉치레를 “겉만 보기 좋게 꾸미어 드러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겉치레가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외모를 꾸미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남에게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도 겉모습일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겉도 중요합니다. 외모나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전혀 꾸미지 않는 것도 문제일 수 있습니다. 단정해 보여야 합니다. 이왕이면 밖으로 드러나는 삶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겉만 보기 좋게 꾸며서 드러내는 겉치레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겉보다 내면을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의 속사람(inner being)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외모가 출중했습니다. 처음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는 짐짝 뒤에 숨을 정도로 겸손했지만,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교만한 인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고 베들레헴 목동이었던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십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내려갔을 때, 다윗의 형들이 먼저 선지자 앞에 나섰습니다.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 형들의 외모가 어린 다윗에 비하면 출중해서 사무엘 선지자도 잠시 헷갈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막내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하나님께서 보시는 사람의 중심이 속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두 가지 마음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는 마음과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려는 또 다른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는 마음을 속사람이라고 했습니다(“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7:22).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는 겉사람(엑크소)과 속사람(에소)를 비교합니다. 겉사람은 점점 쇠약해지고 쓸모없게 쇠퇴해 갑니다. 속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새롭게 됩니다. 보이는 겉사람은 잠깐입니다. 속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속사람이 강한 에베소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강력한 속사람을 갖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우리가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속사람을 강하게 만드시는 힘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 집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삶인지 경험합니다. 속사람이 강해졌을 때, 누리는 은혜입니다. -河-

2024년 새해 (1)

든든히 서게 하소서: 바울의 기도

 

2024년 새해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든든히 서게 하소서”입니다. 우리 각자의 신앙이 든든히 서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도 흔들림 없이 견고해지길 기대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 이후를 맞이하는 교회도 든든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에서는 든든히 서기 위한 조건으로 “깊이”와 “넓이”를 소개했습니다.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 기초공사를 깊이 해야 하고 터를 넓게 잡아야 합니다. 건물의 겉을 장식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위한 기초 공사에서 필요한 세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우선순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뢰였습니다. 매번 듣던 익숙한 말로 들릴 수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합니다. 기초공사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모퉁잇돌 삼은 신앙의 집이 멋지게 세워질 것입니다. 2024년은 신앙과 삶을 튼튼하게 세워 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첫 달에는 그해의 표어를 갖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올해는 에베소서 3장에 등장하는 바울의 기도를 갖고 든든하게 서가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도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밝혀 주셔서 성도에게 주신 소망과 능력을 발견하길 기도했습니다. 성도를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에 감사하길 기도했습니다. 영적 각성(spiritual enlightenment)입니다.

 

바울의 두 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성도와 공동체 안에 간직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힘(spiritual strength)을 내면에 장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for us) 일하시고, 우리 안에서(in us)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4-21절은 기도를 시작하는 바울의 마음과 행동(14-15), 바울의 기도(16-19), 기도 후에 드리는 찬양(송영, 20-21)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가 끝내고 감격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본문에 해당하는 바울의 기도는 “히나(위하여)”라는 헬라어 단어를 중심으로 셋으로 나눠집니다: 1)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고,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랑 가운데 뿌리가 깊어지고 터가 굳어지길(16-17절); 2)성도와 함께 그리스도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깨닫기를(18절); 3)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넘치게 채워 지길 기도합니다(19절). 앞으로 한 달 동안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우리 안에 가득 채우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河-

종이 아니라 아들이니

2023년 마지막 날에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늘 그렇듯이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한 해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치솟는 물가 때문에 외식이나 쇼핑을 망설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 역시 불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권사님들께서는 연세가 드시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내려앉으셨습니다. 한국에 계신 가족들의 건강이 늘 염려가 됩니다. 교회적으로도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참빛 식구들 개인과 가정마다 한 해를 돌아보시면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실감나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2023년 마지막 날까지 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만큼 우리 삶이 치열하고, 생소하고, 때로는 힘겨웠습니다. 그래도 기도와 말씀 가운데 2023년 365일을 믿음으로 완주하신 참빛 식구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은 성탄절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약혼기간의 요셉과 마리아 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보면 10대의 젊은 부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셉의 직업이 목수였으니, 말 그대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00%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음을 뜻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어둠을 밝히실 참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에서는 세상을 통치할 왕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메시아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너무 평범해서 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이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거부했습니다.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다윗 왕국을 세울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기에 예수님을 애써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은 온 인류와 세상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므로 죽음과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완벽하게 화해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평화의 왕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모든 사람은 그릇된 것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사로잡혀서 자유를 잃었습니다. 생명의 율법이 서로를 정죄하는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무엇인가에 매인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니 종에서 아들로 지위가 바뀌었습니다.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외쳐 부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종은 없습니다. 얽매인 것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河-

2023 성탄 주일

평강의 왕

 

오늘이 대강절 마지막 주일이지만, 우리 교회는 성탄 주일로 지킵니다. 지난 한 달여 마음에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참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고 세상 곳곳에 깃든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길 기도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누가복음의 시므온과 안나를 보면서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린 하나님 백성에게 임하는 은혜가 특별함도 배웠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한 주간 예수님을 기다렸기에 오늘 예배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실 예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죄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하나님 백성 삼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일4:10).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신 이유와 목적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거듭남(born-again)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영접했을 때 임하는 것이 평안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우리 마음과 삶을 지배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찾아오는 평안입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에서 임하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다는 은혜 속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야기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죽음을 극복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에 근거합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에서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다)”로 오실 예수님을 예고했습니다. 이 시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9장 역시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앗시리아라는 제국에 의해서 핍박받고 고통받는 이스라엘에 임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북쪽의 스블론과 납달리 땅은 앗시리아에 의해서 힘없이 무너졌지만, 요단강 건너 남쪽 유다는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에게 큰 빛이 비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앗시리아가 탈취물을 나누면서 기뻐하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는데, 그것을 능가하는 기쁨이 하나님 백성에게 임할 것입니다. 주께서 압제자의 채찍과 막대기를 꺾어 버리십니다.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모두 불에 타버리고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실행하기 위해서 메시아가 오십니다. 한 아기로 태어나셨지만,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가 통치하는 나라가 영원할 것입니다. 그 아기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