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거하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수요예배에서는
요한복음을 한 장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6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말씀의 대상은 순전히 제자들입니다.
제자들만 세상에 두고 가시면서 주신
마지막 부탁의 말씀인 셈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를 비유하시면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거하다”는 표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눠서 설명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믿음 안에서 거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실까?”
“어떻게 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실까?”
–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끈임 없이/매사에 예수님을 대입하는 신앙입니다.

셋째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삶에서 예수님을 맨 위에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가장 위에 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보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행하는 것이지요.

2.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If you abide in me, and my words abide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done for you. (Joh 15:7 ESV)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매사에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께 우선순위를 둔다면
당연히 구하는 것을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여러모로 힘들었던 4월이 지나고
새달 5월을 맞았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5월 한 달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곳곳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자꾸만 일어납니다.

이럴 때일수록
예수님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기 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쉼을 얻고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새 달을 맞읍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
Abide in me, and I in you. (Joh 15:4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거함의 기쁨과 거함의 열매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30 이-메일 목회서신)

쑥과 담즙

1.

구약 성경의 예레미야 애가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부른
슬픔의 노래입니다.

예레미야는
500여년 동안 이어졌던
다윗 왕조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바벨론 군인들이 들이닥쳤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짓밟히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황량하고 적막한 예루살렘과
폐허가 된 성전터
말 그대로 땅의 사람들인 힘없는 백성들뿐입니다.

이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남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탄식하면서 애가를 지어서 불렀습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애3:19)

2.
오늘이 4월 16일이네요.

지난 한 해 동안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쑥을 먹는 것 같이
달콤한 음료수를 마셔도 담즙을 마시는 것 같이
한 해를 살아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가슴에 묻고 길고 긴 한 해를 지내신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모든 분들께
깊이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들의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3.
예레미야 선지자는
고초와 재난 한 가운데서
소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쑥과 담즙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한결같이 임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노래합니다.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애3:20-22)

우리들 인생 여정이
마쉬멜로우처럼 달콤하고
산봉우리를 뛰어다니는 사슴 발처럼 가볍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솔직히 인생길 여기저기
아니 때로는 대부분이
쑥과 담즙의 여정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백성들은 진멸되지 않고 다시 일어남을 믿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비춰주시는 소망의 빛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내가 낙심이 되오나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됩니다.
But this I call to mind, and therefore I have hope: (Lam 3:21 ESV)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애3;24)
“The LORD is my portion,” says my soul,
“therefore I will hope in him.” (Lam 3:24 ESV)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고
여전히 쑥과 담즙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을 꼭 안아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16 이-메일 목회서신)

사각의 링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 시간으로 5월 2일에
세기의 복싱 대결이 펼쳐집니다.

필리핀 출신의 파퀴아오와
미국 메이웨더의 세계 웰터급 통합 챔피언전입니다.

체중을 20킬로그램이나 올리면서
8체급을 제패한 파퀴아오는
필리핀을 넘어서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저돌적인 복싱 스타일에 전 세계 복싱 팬들이 열광합니다.
지금까지 64번 싸워서 5번 패했습니다.

반면 메이웨더는 복싱집안에서 태어나서
일찌감치 복싱에 입문했습니다.
47번 싸워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파퀴아오와 달리
밖으로 돌면서 상대방의 펀치를 어깨 위로 흘려 보낸 후에
맞받아치는 복싱 스타일입니다.

두 사람의 대결을 일찌감치 성사시키려고 했지만
양쪽이 은근히 꺼렸습니다.
그만큼 서로에게 위험부담이 있는 경기였답니다.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메이웨더의 부담감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각각 37세와 38세가 된 2015년 5월 2일
운명의 대결을 펼칩니다.
대진료가 2억달러를 넘고
티켓값은 최고 만 불에 이를 정도입니다.

이제 다음 주 토요일,
지상 최고의 권투선수 둘이
피할 수 없는 사각의 링에서 시합을 펼칩니다.

권투팬인 저로서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2.
인생을 사각의 링에 비유하곤 합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이
상대방과 또는 주어진 상황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칙을 하면 안됩니다.
주어진 규칙에 따라서,
정정당당하게 인생의 링에 올라가서 싸워야 합니다.

등을 보이면 지는 것입니다.
주저앉아도 집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상대방을 제압해야 챔피언이 될 수 있습니다.

권투 선수가 경기에 이기기 위해서
체중 조절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매우 힘들다고 하지요.

혹독한 연습은 말 그대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홀로 링 위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12라운드의 경기를 위해서
한계상황에 이를 정도로 연습합니다.
반사적으로 펀치가 나오고
스텝을 밟으면서 링에서 공격하고 수비합니다.
모든 것이 훈련의 결과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허리띠를 조여 매는 것은
전쟁이나 인생의 큰 사건을 대면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준비한 것만큼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지요.

우리들 역시
매일같이 인생의 사각 링에 올라갑니다.
위기와 기회에 반사적으로 대처할 정도로 훈련하면
후회 없는 시합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각자에게 펼쳐지는
인생의 사각 링에 올라가실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준비한 것을
사각의 링에서 충분히 발휘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겁니다.

힘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벧전1:13)
Therefore, preparing your minds for action[lit. having girded up the loins of your mind], and being sober-minded, set your hope fully on the grace that will be brought to you at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1Pe 1:13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참빛 식구들이
각자의 인생을 맞닥뜨릴 때
주님의 강한 팔로 저들을 보호하시고 힘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23 이-메일 목회서신)

부활절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교회 주보에는
주일예배순서에
교회력을 표시해 줍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 세례와 공생애(public life),
사순절과 부활절
그리고 성령 강림절을 따라서
한 해를 살도록 안내합니다.

지난 주에 부활절을 보낸 우리는
이제 부활절 둘째 주일을 맞게 됩니다.

부활절기는
5월의 성령 강림절까지 계속되고
강단 색깔은 부활을 상징하는 흰색입니다.

2.
부활절은 말 그대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기독교는 물론
우리들 신앙의 뿌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있기에
교회의 가장 큰 절기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부활 장으로 불리는
고린도전서 15장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고전15:58)
Therefore, my beloved brothers, be steadfast, immovable,
always abounding in the work of the Lord,
knowing that in the Lord your labor is not in vain. (1Co 15:58 ESV)

사도바울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
우리들로 하여금
부활절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줍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까지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Be steadfast, immovable)

견실하여 흔들리지 않는 것은
사시사철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상록수를 생각하면 됩니다.

비바람이 치거나 눈보라가 쳐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킵니다.
게다가 사시사철 푸르른 상록수의 위용을 갖추고 서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우리는
소나무처럼 믿음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폭풍우가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2주 동안 나눈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육체 가운데 살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삽니다.
그것은 “동참(partnership)”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으니
예수님과 함께 부활합니다.

그렇기에 부활 그 이후의 삶은
더욱더 주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아무도 다시 살아나실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약속하신 대로
사흘 후에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에 힘쓴 것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기대를 갖고
부활절 그 이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의 은혜와 능력이
참빛 교회 식구들의 신앙과 삶 속에
생명으로
항상 임하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활절 그 이후의 삶이
더욱 힘차고 확신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9 이-메일 목회서신)

십자가 십자가

1.

고난 주간 한 가운데 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캘린더가 약간 달랐지만
우리 식으로 바꿔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겟세마네에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후에
잡히셔서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성금요일,
빌라도를 통해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후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12시부터 운명하시던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다고 전합니다(눅23:4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일곱 번 말씀하셨는데
마지막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고난 주간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함께 걸어가는 시간입니다.
매우 세세하게 예수님을 느끼는 주간입니다.

십자가의 은혜,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느낄수록
부활의 기쁨도 그만큼 클 것입니다.

2.
올해 부활절을 맞으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 한 구절을 갖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모두 외우시길 부탁 드렸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 2:20 ESV)

우리들도 바울처럼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기 원합니다.
우리의 죄를, 욕심을, 염려와 근심을
우리들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몽땅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로(New being)
다시 태어나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요
부활의 능력입니다.

3.
존 스토트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마지막을
캄벨 몰간의 글로 마무리합니다.

“십자가를 전할 수 있는 자는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이다.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다. 런던의 파커 박사는 도마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것을 세상은 지금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은 모든 복음 전파들에게도 역시 말하고 있다: 당신 손에서 못 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이다.” (존 스토트, <그리스도의 십자가>,438)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우리들의 손과 옆구리에 예수님처럼 못과 창자 국이 있을 때
우리를 보고 세상은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장식품이 아닙니다. 그냥 바라만 볼 대상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곳에 올라가야 하고, 우리의 옛 자아가 그곳에서 죽은 것을
세상 사람들이 확인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인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여정에 참여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확연히 드러나길 바랍니다.

온 세상의 고난 받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위로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4.2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의 형상

1.

요즘 비행기 사고가 자주 일어납니다.
엊그제도 독일 비행기가
알프스 산맥에 추락하는 대형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비행기 사고의 원인으로
부조종사의 고의 추락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문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부조종사에 대한 기사가 뜨는 것이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그 동안 심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어떤 징후도 없었기에
그분의 행동이 더욱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만약에 언론보도처럼
이번 사고가
여객기 조종사가 저지른 단독 범행이라면
목숨을 잃은 150명에 가까운 승객들과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요.
너무 안타까워서 말문이 막힙니다.

2.
구약성경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고
그 만큼 우리 인간이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피를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피는 곧 생명의 상징입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경건한 행위였습니다.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레 17:14)
For the life of every creature is its blood: (Lev 17:14 ESV)

3.
사고를 낸 부조종사의 기사를 읽으면서
분노와 안타까움이 겹쳐서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사고를 저질렀는지,
그 맘 속에 얼마나 큰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길래,
자기 통제(self-control)를 하지 못하고
그토록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동시에
안전을 책임져야 할 조종사가
자신을 믿고 탑승한 승객들의 생명을
눈곱만치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음에 화가 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번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세상 곳곳에서 생명을 천시하고
폭력과 테러, 전쟁을 일삼는 일들이 비일비재한데
그곳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고
이웃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존귀한 이웃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God bless you” – 축복해 줍시다.

하나님 아버지,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무엇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26 이-메일 목회서신)

서로 먼저 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새벽기도회를 갈 때였습니다.
아무래도 새벽기도회를 가는 길은 서두르게 마련입니다.
물론 새벽에는 I-280 고속도로에 차들이 별로 없습니다.
보통 70마일 이상을 달려갑니다.

그런데 그 날도 부지런히 속도를 높이며
교회로 향하고 있는데
앞에 자동차 한대가 60마일 정도로 달립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는 너무 답답한 것입니다.
옆에 있는 아내가 들을 정도로
너무 늦게 달린다고 구시렁댔습니다.
쪼금 화도 치밀었습니다.

그런데 5분여를 뒤에서 쫓아가고 있는데
불연 듯 내가 왜 이 차를 뒤따라가면서
불평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하루에 세 가지씩 감사하는 기간 아닙니까?

제 옆 차선에 차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앞에 차가 천천히 가면
제가 옆 차선을 이용해서 추월하면 그만인데
차선을 잘 바꾸지 않는 운전습관이라고 쳐도
괜히 앞차를 따라가면서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아차 싶어서
얼른 옆 차선으로 추월하면서
옆을 힐끔 쳐다보니 할아버지께서
새벽에 어딘가 가시는 듯 했습니다.
일부러 천천히 운전하셨겠지요.

2.
때때로 우리는
내가 바꾸고, 내가 먼저 변화되면
일이 성사될 수 있는데
제가 앞차를 5분여 뒤쫓아갔듯이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남을 탓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두 달여 살펴보았던
창세기의 요셉은 매우 주도적인(proactive) 인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었다면 뒤에서 불평하지 않고
얼른 차선을 바꿔서 자기 길을 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내가 바꾸면 가능한 것들입니다.
나의 태도,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을
먼저 바꾸면 되는데
나는 그대로 있으면서 남이나 환경을 탓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움직입니다.
내가 먼저 변화되고, 내가 먼저 사랑을 주고,
내가 먼저 양보합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12:10-11)
Love one another with brotherly affection. Outdo one another in showing honor.
Do not be slothful in zeal, be fervent in spirit, serve the Lord. (Rom 12:10-11 ESV)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행동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19 이-메일 목회서신)

변화를 받아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변화”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육신의 질병이 낫는 것부터
영적인 회복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엊그제 수요예배에서 살펴본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해서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누구의 죄로 인해서 소경으로 태어났는지 궁금해했고
죄 때문에 맹인으로 태어났으니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각은 정반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9:3)
Jesus answered, “It was not that this man sinned, or his parents,
but that the works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m. (Joh 9:3 ESV)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발라주시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낫는다는 약속이나 확증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단지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건만
맹인은 예수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눈이 뜨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난생 처음 세상을 보게 된 사람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확신있게 말합니다: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9:25)

결국 그들에게 쫓겨납니다.
그가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그를 다시 만나셔 믿음을 더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뜬 사람의 고백이 크게 들립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Lord, I believe.)”

2.
길가에서 구걸을 하면서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난생 처음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거듭 태어난(born-again)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새로운 태어남(新生)에 견줄만한 변화입니다.

무엇보다 생각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말과 행동의 변화입니다.
하나님 언어를 쓴다고 할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산다고 할까요?
주위 사람들이 감지할 정도의 변화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의 목표가 변화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 마음대로 살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이쯤 되면 완전한 변화입니다.

3.
요즘은 우리의 생각과 삶이 복잡해져서
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살기가 솔직히 힘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변화가 쉽게 감지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발휘되지 않고
옛사람 그대로 살거나, 세상 가치관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눈이 뜨이고,
생각, 언행, 삶이 모두 변화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생기는 변화를
몸으로 느끼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변화를 보기 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by testing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Rom 12:2 ESV)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고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3.12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