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여섯 번에

걸쳐서 수요예배에서는

<성경 바르게 읽기>라는 주제를 갖고 공부했습니다.

수요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조금 염려도 했지만,

기대한 것보다 더 훌륭하게

즐겁게 말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가운데

시편 119편은

매우 특이한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다 ( 119:105)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우선,

176절로 이루어진 시편 119편은

8절씩 22개의 연()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22개는 히브리어 알파벳 숫자와 같습니다.

또한 각 연의 8절은

같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연인1-8절은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인 알렙으로 시작되는데

첫 연을 이루는 8절은

모두 알렙으로 시작합니다.

그 뒤를 이어서

21개의 연이 같은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성경이 쓰여지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경에서 가장 긴 장(chapter)

시편 119편을 암송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우리 식으로 하면

A 부터 Z까지 모두 들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2.

늘 강조하듯이

하나님 말씀에는 하나님의 영감

즉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 안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20:31)

말 그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생명 책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앞에 인용한 시편 119 105절 말씀처럼

성경은 우리의 발에 등이 되고

우리 길을 멀리 비춰주는 빛이 됩니다.

신앙은 물론 인생 여정의

지침서요 나침반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하며,

암송 하고, 묵상 하시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부탁 드립니다.

아침마다 큐티하면서 말씀을 곱씹으시고

시간되는 대로 틈틈이 말씀을 읽으시고

첨부한 지난 주일 설교를 들으신다면

말씀에 뿌리를 내린 심지가 견고한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실 줄 믿습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시편 기자처럼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119:103)

는 고백이 마음 깊은 곳에 임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19:165)

Great peace have they who love your law;

And nothing can make them stumble.

하나님,

오늘 아침에도

서머나 식구들께서

주의 말씀을 대할 때에

눈을 열어 주의 법에 기이한 것들(wonderful things in your law)을 보게 하시고

그것으로 하루 종일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4.7메일 목회서신)

우물파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주일예배에서는

창세기 26장을 연속해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 사이에 낀 세대로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이삭에 대한 말씀은 아브라함과

야곱에 대한 말씀에서 겹쳐서 나오는데

창세기 26장만은

이삭에게 거의 모든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6장에서

특별하게 눈에 띠는 말은
우물입니다.

흉년을 피해서

블레셋 땅 그랄에 머문 이삭은

가는 곳 마다 우물을 팝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 놓았던 우물을

다시 팝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쫓아다니면서

이삭이 파놓은 우물을 자기들 것이라고

우겨댑니다.

이삭은 그때마다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옮겨 다니면서 우물파기를 계속합니다.

이렇게 이삭은

다툼과 대적함이 있던 에섹과 싯나를 지나서

넓은 곳 르호봇에 이르기까지

우물을 파고 또 팝니다.

2.

흉년이 지나서 고향 땅으로 돌아온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26:24)

(Do not be afraid, for I am with you;

I will bless you and will increase your descendents)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향한

약속을 다시금 확인한 이삭은

그 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삭은

종들을 시켜서

또 다시 우물을 팝니다.

이처럼 창세기 26장은

이삭을 우물 파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우물을 팠습니다.

물을 얻어야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우리들도 삶의 현장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우물을

끊임없이 파야 함을 배웁니다.

3.

이삭이 팠던 우물은

말 그대로 생명수 (living water)였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이삭이 얻은 생명수는 단지 물(water)이 아님을 느낍니다.

그는

흉년으로 대표되는

죽음의 세상에서

생명(살길)을 찾아낸 것입니다.

요한복음 7 38절의 예수님 말씀이 연상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7:38)

이삭은 땅 속에서

생수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들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은혜가

깊고 귀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오늘 하루 서머나 식구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생수의 강이 흘러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우물을

꾸준하게, 끝까지

파고 또 파실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파이팅!!!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

마음 속에

삶 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31메일 목회서신)

“깨어 있으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 Newsweek의 헤드라인은

지금이 종말 (Apocalypse Now)”이었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 누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혁명들,

거기에 계속되는 불확실한 경제위기 등이

사람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나 봅니다.

뉴스위크에서는

이상한 기호 넷이 들어간

다음과 같은 소제목을 붙였습니다.:

What the #@%! Is Next?

다음에 일어날 것은

아무도 모르고

행여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암시 같습니다.

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지나친 종말론은 금물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을

종말이라는 잣대에 올려 놓고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지나치게 세상을 추구하면서

지나갈 것들에 목숨을 걸고 에너지를 사용했다면

이 참에 과감히 정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내어 보일 수 있는 삶의 모습과 내용으로

모두를 전환하는 것이지요.

아마 많은 것을

버리고, 포기하고,

정돈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신약의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마가복음 13장에서는

주의하고 깨어있는 삶이라고 부릅니다.

주의하라 깨어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느니라 ( 13:33)

Be on guard! Be alert!

You do not know when the time will come.

주의하고 깨어있는 삶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삶을 미리 포기하면서

목을 쭉빼고

다시 오실 예수님만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주의하고 깨어있는 삶은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무엇을 보여드릴 지

매일같이 준비하고 예비하는 삶입니다.

신앙 안에서

깨어서 기도하고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쭉정이 인생이 아니라

깨알처럼 가득 찬

알곡 같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면서

하루 하루 천국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것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기로

매일같이 점검하고 결단하게 하옵소서.

서머나 식구들께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24메일 목회서신)

현재 진행형

좋은 아침입니다.

1.

살다 보면

시계추를 뒤로 돌려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지나온 삶에 대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아니면 반대로

과거의 영광에 다시금 도취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엄습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길을

미리 살펴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합니다.

뒤로 갈 수도 없고

앞 길을 미리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현재뿐입니다.

2.

종종 삶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고통이 언제 지나갈 지 막연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의욕을 잃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게 마련입니다.

머리가 멍해 지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지금/여기(here and now)의 삶입니다.

현재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먼 것을 생각하지 말고

너무 많은 것들을 복잡하게 고려하지 말고

현재 해야 할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을

잘게 잘게 쪼개서 한 가지씩 해 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었을 때

후계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모세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명기 31:8)

오늘 하루

서머나 식구들 모두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삶 속에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나온 삶에 대한 미련이나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근심과 염려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확신이 약해지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더불어

현재 진행되는 모든 삶을 힘차게 살아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17메일 목회서신)

행복이란…

좋은 아침입니다.

1.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선교를 하면서

아프리카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던

이태석 신부에 대한 영화와 자료화면들을

유트브로 보았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신부수업을 받고

한국의 노모를 뒤로 하고

아프리카 수단에 의료선교사로 가서

10년여를 살다가 마흔 여덟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난

어쩌면

친구였기에 더욱 마음이 찡했습니다.

그는 짧다면 짧은 삶을 살았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누렸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

내전으로 국토와 나라가 찢겨진 곳에서

삶으로, 아니 무엇보다 마음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던

우리 시대의 작은 예수였네요.

2.

진정한 행복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세상이, 삶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작은 빛 줄기를 따라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말씀대로 라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 (소명)을 따라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제가 가는 목회의 길이든지

또한

우리 서머나 식구들의 삶이든지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삭처럼

(이태석 신부의 웃는 모습처럼)

웃음을 머금고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쉬워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 앞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던

선배들이 있기에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3.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날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 동안

어떤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 싶으십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하나님,

오늘 하루 동안

서머나 식구들의 마음과 삶에

진정한 행복을 보여주옵소서.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10메일 목회서신)

역사 속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는 삼일절이었습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학창시절 삼일절이 되면 운동장에서 불렀던

삼일절 노래를 인터넷으로 클릭해 보았습니다.

삼일절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솔직히 이민생활을 하면서

3.1절을 되새길 틈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일상에 쫓겨서

또는 현재의 삶에 도취되어서

민족의 귀중한 역사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한국 근대사 가운데

삼일 운동을 마음에 품을 필요가 있습니다.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기미년(1919)

기독교인 숫자는 20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1.4%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은 16명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주도했고

급기야 민족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제암리(감리)교회에서는

문이 잠긴 채로 교인 30명이

불에 타서 순교하는 비극도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은 물론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강인했습니다.

기독교인 숫자가 많지 않았음에도

민족의 독립과 사회개혁을 주도했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2.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왔던 출애굽사건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서 물리쳐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사건을

후손 대대로 기념할 것을 권면합니다.

민족의 역사는

현재는 물론

미래를 지탱하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자칫 말 그대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신에 지나온 역사를 곱씹고

그것을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재구축(reconstruct)하는 민족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3.

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사도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온 인생의 여정 구비구비에서 체험했던

하나님의 크고 작은 손길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하나님 체험이

현재의 어려움을 견딜 힘을 주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혹시 엊그제 삼일절을 그냥 지나치셨다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고,

무엇보다 20-25%나 되는 기독교인 숫자에도 불구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각자의 삶의 발자취를 잠시 돌아보면서

삶의 여정 속에 간섭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마음 속 깊이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떠나온 조국 대한민국과

한국의 수많은 교회가 역사 속에 부끄러움이 없을

바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우리들 각자의 삶에

신앙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뿌리와 같은 우리의 내면이 튼튼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3.2메일 목회서신)

새 힘을 얻으리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무슨 힘으로 살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서

안전의 욕구 (safety need)를 채우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았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힘이 되는 것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경쟁적으로 추구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대 초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면서

제 인생관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지

꾸준히 생각하게 되었지요.

목회 하기 전에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목회하면서는

어떻게 하면

진실된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갈 수 있을 지

그리고

제 자신이 올바른 목회의 길을 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아침마다/순간마다 사모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40:31)

2.

그렇다고

우리가 늘 새 힘을 얻고

힘차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일이든

사업이든 학업이든

아니 제 목회든지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쉬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때는 쉬는 것이 상책인데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마음대로 쉴 수도 없고

그냥 탱크처럼 밀고 나가곤 합니다.

알리스커 맥그레스라는 분이 쓴

The Journey (“내 평생 가는 길”)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을 차분하게 그리고 깊이 설명하고

제시한 책입니다.

그 책에 이사야 40 31절과 연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지친 길손들은 쉼이 필요하다. 황량하고 적막한 땅을 지나 먼 길을 힘들게 걷고 나면, 누구나 휴식과 전환이 필요하다. 신앙여정에서 피곤이란 삶의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피곤을 인정해야 하며, 아울러 우리 힘으로 피곤을 이겨낼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소성케 하시며, 소망 중에 여행을 지속케하신다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신다는 이 놀라운 비전은 우리에게 큰 믿음과 확신을 준다.

맥그레스는

우리의 힘으로 피곤을 이겨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실 것을 믿고 확신할 때

새로운 날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신

주님의 자녀들이 쉴 수 있는 삶의 그늘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주와 함께 힘차게 날아오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24메일 목회서신)

게딩 베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말부터

감기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시간에 제 목소리는 거의 부흥강사 수준이었지요)

이번 감기의 특징은

처음에는 으슬으슬 추워지다가

목이 아프고, 머리가 아픕니다.

이쯤 되면

감기에 함락당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 다음에는

기침, 콧물, 두통, 근육통, 불면증 등등의

독감증상이 돌아가면서

정신 없이 계속됩니다.

지난 가을에

Flu shot을 맞았는데도

예방주사가 이번에 유행인 바이러스를

적중하지 못했는지

감기에게 무장해제를 당할 만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저녁부터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내일 있을 약속도 취소하고

쉬면서 주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2.

몸이 아플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상처가 나던지

아니면 감기처럼 몸이 아프던지 상관없이

일단 회복(getting better)의 기운만 감지되면

안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복, 좋아지는 것,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전히 우리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디 우리들 몸만 그렇겠습니까?

신앙은 물론 우리의 삶도

좋아지는 표시가 보인다면 그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시간과 자기 관리의 여부에 따라서

언젠가는 온전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심각합니다.

Getting worse – 점점 악화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육체의 건강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신앙과 삶의 문제라면

금식을 선포하면서라도 추락하는 자신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3.

구약성경에서 회복또는 회개를 말할 때

매우 간단한 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로 돌아오다라는 의미의 슈브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자기 신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한 후에

처절하게 드린 회개와 결단의 기도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51:12)

Restore to me the joy of your salvation

And grant me a willing spirit to sustain me.

전반부에 나오는 회복시키시고 (restore)”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바로 슈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회복은

하나님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참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향유하는 것입니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인생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슈브 (turn back)] 돌아서기만 하면

그것이 모멘텀이 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발걸음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을 체험했을 때

우리의 삶과 신앙은

getting better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번 주는 내내 비가 오고

감기가 유행을 하고,

삶의 환경이 그리 좋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순간 순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17 메일 목회서신)

웃으면서 삽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구약성경 창세기의 이삭에 대한

연속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 뜻이 웃음이듯이

저 역시 연속 설교의 제목을

웃음 가득한 인생이라고 정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고

이삭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웃음 가득한 인생이 가능할 지를 생각합니다.

솔직히

살다 보면 웃을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시간에 쫓기고

급한 일들에 쫓기며 살아가는

이민생활/유학생활 가운데

웃음 가득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심각한 상황은 늘 찾아 옵니다.

이것이 우리들 삶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이삭과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살아온

삶의 여정도 웃음만이 가득하고

장밋빛 융단이 깔린 인생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웃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그들의 삶 속에서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정한 때에 이삭이 태어났을 때

사라가 한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 21:6)

2.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멀리 이집트에서는 연일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가 계속됩니다.

그것이 중동의 다른 국가들은 물론

독재로 꼭 닫힌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한국에서는

구제역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나 봅니다

세 살 먹은 아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급기야 싱크대에 머리를 부딪치게 해서

목숨을 잃게 하고 쓰레기장에 유기하는 부모도 있답니다.ㅠㅠ

미국도 여전히 불경기에 허덕입니다.

캘리포니아는 예산 통과를 위해서

주지사가 나설 정도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뒤숭숭하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마음도 그리 밝지 않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삶도

물론 어둠일 수 있습니다.

이토록 어둠이 드리운 세상 속에

참 빛(true light)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과

각자의 삶이 밝지 않아도

오늘도 변함없이

새 날을 주신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때 우리 삶에

빛이 들어옴을 깨닫습니다:

생명의 빛, 소망의 빛, 확신의 빛

그리고 웃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웃음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

정확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을 때

온 삶으로 웃어내는

전율할 정도의 깊은 웃음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서머나 식구들 모두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높고 푸른 캘리포니아의 하늘을 바라면서

웃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S-mile!!!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케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요 간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10메일 목회서신)

새 날을 맞읍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이 음력 설날 입니다.

미국에 있으면

설날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날씨마저 한국의 겨울처럼 춥지 않아서

한국에 있을 때의 설 기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점심때

중국 음식점에 갔는데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종업원들이

우리를 중국사람으로 생각했는지

해피 뉴 이어라고 인사했습니다.

미국 분들 가운데서도

우리가 음력을 세는지,

양력을 세는지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양(중국)사람들이 많은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누리는

또 다른 혜택(?) 같습니다.

2.

이처럼 우리들은

신정과 구정

새해를 두 번 맞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설날에서 이라는 말은

새해의 처음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네요.

어릴 적에는

신정과 구정을 맞는 것이 이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설을 두 번 맞이하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정(설날)에 새해의 결심을

다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심삼일이라고

새해 초에 했던 결심들이 흐려질 때쯤 되면

꼭 음력 설을 맞이합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남은 1년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고 보니

설날이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구약성경의 창세기 11절은
태초에 (In the beginning)”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1 1절도

태초에라는 말씀으로 똑같이 시작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시작,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요한 복음의 시작이 맞물려 있는 셈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시작이 꽤나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신앙을 가진 것을

거듭남 (Born again)”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두고 중생(衆生)”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거듭남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펼쳐질 새로운 삶 (new life)을 강조해서

신생(新生)”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매일같이 새롭게 펼쳐지는 경이로운 삶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고

내일도 오늘과 다른 새로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천지만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우리에게 성실함으로 임하십니다.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애가 3:23)

우리들 안에 새로운 삶을 주시고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1:6)

오늘도

늘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잠깐씩이라도

새로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손길을 느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서머나 식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시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날을 힘차게 시작하게 하옵소서.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성실과

결국에는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마음에 품고 새 날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올림

(2011.2.3 일 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