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2)

올해 우리 교회 표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맞춰서 아침마다 요한일서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생명의 삶>의 진도와 맞았습니다.

 

요한일서는 구십이 넘은 사도 요한이 기록했습니다. 특별히 요한일서 4장은 사랑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8,16절)고 하나님을 정의하였습니다. 말씀 그대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복음서는 회개하라는 세례 요한의 선포에 이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 주제입니다. 성령 행전이라고 불리는 사도행전은 오순절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면서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성령이 사도행전의 화두입니다. 로마서를 비롯한 바울 서신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확립했습니다. 믿음과 은혜가 바울서신의 주제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시작되면서 믿음과 은혜는 개신교의 핵심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은 물론 요한서신에서 ‘사랑’이라는 화두로 신앙과 삶을 풀어갑니다. 독특한 해석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계명을 쫓아 살아야 하는데, 계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그 믿음을 갖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계명을 쫓아 살 때,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고 온전히 믿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제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 글의 강령(요약, 핵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사도 요한이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깨우쳐줍니다.

 

요즘은 기독교가 힘을 쓰지 못합니다. 때로는 이리저리 치이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기독교와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잊혀지는 시대에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복음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사도 요한의 메시지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설득력을 갖지만, 교회 안의 기독교인들이 믿음과 은혜를 강조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믿음과 은혜의 끝에도 결국 사랑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 소망, 사랑이 항상 있지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대신, 우리 힘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때 저절로 사랑이 흘러갈 것입니다. 신앙은 이 모든 것이 함께 작동하는 협력이고 순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河-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1)

새해에는…

 

2026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한 살이라도 빨리 먹고 싶어서 새해를 기다렸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새해를 맞으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매우 빠르다는 상념과 더불어 겸허하게 새해를 맞게 됩니다. 그래도 새해를 맞는 설렘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이라는 말 그대로 인류 역사에서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2026년입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손에 백지가 들려진 것과 같습니다. 하얀 백지를 어떻게 채워갈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해를 맞는 우리 마음에는 기대와 더불어 두려움도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갖게 되는 필요한 긴장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도 새해를 맞이합니다. 우리 교회는 해가 바뀌었다고 커다란 변화를 겪는 교회는 아닙니다. 변화보다는 일상을 사는 교회입니다. 소박하고 덤덤하게 새해를 맞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사역에 역동성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신바람이 나야 하는데,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목사인 제가 20년 넘게 우리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성을 유지하고 신바람까지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상을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새해에는 우리 교회 사역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또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일 예배에 신선함을 가져올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선, 교회는 기도로 세워집니다. 바른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밤 10시는 우리 교회가 정해 놓은 기도 시간입니다. 매일 새벽기도회를 할 때도 밤 10시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전도사님과 권사님들께서 저녁 기도 시간을 지키셨고, 그때 심어 놓으신 기도의 씨앗이 지금 결실을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전 교인이 저녁 10시에 시간을 맞추고 교회를 위해서, 참빛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둘째로, 저와 함께 신앙생활 하시는 동안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모두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해도 성경 통독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보에서 안내하는 순서를 따라서 올해는 성경 통독에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원하시면 통독을 위한 카톡방에 초대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가르쳐 주신 덕목입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연속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공부하고,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것을 하기보다,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실행하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河-

예수님의 손과 발 (6)

릴리 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안식월 여행을 다녀온 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감사가 나옵니다. 초행길인 유럽 여행 40일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마친 것은 하나님의 돌봄과 교회의 기도 덕분이었습니다. 저나 아내나 건강한 편이 아닌데, 영국 런던에서 이태리 로마까지 큰 여행 가방 두 개를 들고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중간에 감기에 걸린 적은 있어도 저의 어지럼증이나 아내의 갑작스러운 기운 빠짐없이 여행을 끝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계획한 여행을 거의 모두 실행했습니다. 재단에 지원서를 신청할 때부터 계획했던 여정입니다. 선발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마음으로 가고 싶은 곳을 쭉- 열거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에 가지 못했지만, 하고 싶었던 빽빽한 여정을 모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 인생 여행이 된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유럽 여행을 마치고 런던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모든 것이 잘 끝났습니다”라는 감사의 마음만 남았습니다. 후회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하고 싶고 일을 다 했고, 가고 싶은 곳도 모두 방문했습니다. 기간이 더 길었어도 지칠 뻔했습니다. 저희에게는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앞으로 가는 목회와 인생 여정이 지난 유럽 여행 같기를 기도했습니다. 목회의 길을 마무리할 때도 “모든 것이 잘 끝났습니다”고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로 “다 끝났습니다”고 고백하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저희에게 유럽 여행은 매우 훌륭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동안 두 달여 함께 살펴보았던 예수님의 생각(“생명”), 마음(“긍휼”), 손과 발(“평화”)에 관한 말씀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연말과 맞물려서 예수님과 손과 발에 관한 말씀을 서두른 감이 있지만, 앞으로도 예수님에 관한 말씀은 계속 나누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 마지막 시간인 오늘,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두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신 채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을 결박해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본을 보이셨고, 옆에 매달린 강도를 구원하셨으며,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진 죽음의 순간까지 내려가셔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후회가 없으신, 아쉬움도 없으신 완벽한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한 해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다 이루었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새해를 맞이합시다. -河-

평화의 왕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어둠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무너지고 6백 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70년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페르시아, 헬라, 로마에 이르기까지 식민지로 살았습니다. 중간에 마카비 가문이 독립전쟁에 승리해서 80여 년 동안 하스모니아 왕조를 세웠지만, 그때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권력다툼이 계속 되었고, 세상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스모니안 왕조가 로마에 무너지면서, 이두매(에돔) 사람 헤롯이 로마의 지지 속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헤롯 대왕과 그의 자식들은 로마에 아부하면서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세리들을 세워서 지나친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 역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가운데 율법을 갖고 서로 다투고, 백성들을 정죄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메시아가 올 것을 예언했지만, 성경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설마’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권력에 취해서 메시아가 오는 것을 반기지 않은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에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시므온과 안나라는 노인과 여자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어디나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신실한 주님의 백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어둡고 거친 세대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던 백성들에게는 희망을 주었고, 메시아를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셨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일한 왕이 되고 싶었던 헤롯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어둡고 힘겨운 세상에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던 학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읽은 누가복음에서는 천사들이 내려와서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을 알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구주로 오셨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수많은 천사들이 들에 있던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찬양합니다:“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오랜 구원이 성취되는 순간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지럽습니다. 지구상에는 전쟁에 휩싸인 나라와 민족, 부족이 많습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河-